조열승 曺烈承 | |
출생 | 1920년[1] |
경상북도 김천군 봉산면[2] | |
사망 | 1988년~1993년 사이(향년 68~73세)[3] |
대한민국 일대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조직폭력배, 정치깡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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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실존했던 정치깡패로 동아일보의 1961년 10월 24일자를 통해 동대문파에서 동대문시장상인련부회장을 지낸 것으로 나오며, 제1공화국 당시의 여러 가지 폭력 사건으로 인해 1961년 12월 23일 혁명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1965년에 가석방되었고 이후 행적은 불명. 약 20여 년 뒤에 동대문파 분석기사로 잠시 등장하는 것 외에는 소식을 알 수 없다.아마 1980년대 후반이나 1990년대 초반쯤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조열승 및 이석재 등과 인연 있는 이천 출신의 사람들과 제보자의 말에 의하면 이석재나 유지광처럼 석방 후 이천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개인 사업을 하며 지냈고 이천에서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다는 설이 존재하나 사실 확인은 어렵다. 그리고 이석재가 운영하는 고아원에 매달씩 돈을 기부했다고 하나 이 또한 사실 확인이 어려운 썰일 뿐이다.
2. 대중매체에서
SBS 대하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배우 차룡이 연기했다.2.1. 드라마 야인시대
자세한 내용은 조열승(야인시대) 문서 참고하십시오.[1] 신문에서 1961년 당시 41세라고 표기한 신문도 있고, 43세라고 표기한 신문도 있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자신보다 한 살 많다고 임화수가 직접 언급했다. 임화수가 1921년 생이니, #s-2은 작중 1920년생이 되는 셈이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나이가 불명확하나, 아마도 임화수와는 비슷한 나이대고 이정재하고는 연배 정도쯤 될 것으로 추정된다.[2] 現 경상북도 김천시 봉산면[3]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주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