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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법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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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8대 검찰총장
이태희
李太熙 | Lee Tae-hee
파일:이태희(법조인).jpg
<colbgcolor=#324d6c><colcolor=#ffffff> 창씨명 산코 다이키(三江太熙)
산코 타츠오(三江達夫)
소산(少山)
본관 청주 이씨[1]
출생 1911년 11월 8일
평안남도 강동군
(現 평양시 강동군)
사망 1999년 10월 27일 (향년 87세)
1. 개요2. 생애3. 미디어에서4. 가족관계5.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법조인이자 제8대 검찰총장.

일제강점기 검사 경력으로 친일인명사전 사법 부문에 등재되었다.

2. 생애

1911년 11월 8일 평안남도 강동군에서 아버지 이병돈(李秉敦, 1886 ~ ?)[2]과 어머니 파평 윤씨(1881 ~ ?) 사이에서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평양고등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에 유학하여 1934년 사가고등학교, 1937년 도호쿠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40년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 경성지방법원 검사대리를 거쳐 광복 때까지 해주지방법원에서 검사로 근무했다.

8.15 광복 후 월남하여 1945년 11월 법무국 특별검찰청 검사에 임명되었고, 1948년에는 대검찰청 검사로 근무했다. 이후 법무부 검찰국장을 거쳐 1949년 9월 23일부터 1950년 6월 21일까지 제2대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을 지냈다.

1950년 서울지검장 재직 중 제2대 검찰총장이던 김익진이 서울고검장으로 좌천되자 이승만 대통령을 상대로 인사처분무효소송을 냈다가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으로 좌천됐다.

1951년 거창 양민 학살사건 의 합동조사단장으로 보고서를 낸 후 사임, 변호사로 개업하였다. 이후 1951년부터 1958년까지 이화여자대학교 법정대학 교수 겸 법정대학장을 지냈고, 1958년 한국형사법학회 회장, 국제대학 학장 등을 역임했다. 1959년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 부회장을 지냈다.

4.19 혁명으로 출범한 허정 내각에서 1960년 5월 5일부터 1961년 5월 27일까지 제8대 검찰총장을 지냈다.

5.16 군사정변으로 검찰총장직에서 경질되자 1963년 변호사를 재개업해 활동하였다.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제4대 한국법학원장을 지냈다. 1969년부터 1990년까지 한국어문교육연구회 부회장, 1972년 변호사 징계위원, 1990년 한국어문교육연구회 고문 등을 지냈고, 1999년 10월에는 장안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에 위촉되었다.

3. 미디어에서

제2공화국에서는 신충식이 연기하였다.

4. 가족관계

3남1녀를 두었다.
  • 장남 이대황: 토털해운 대표
  • 차남 이대우: 고합 부사장
  • 삼남 이대철: 농장 경영
  • 장녀 이희영

5. 기타

파일:이태희아들.png

이태희의 아들이 그것이 알고 싶다와 인터뷰한 내용이 논란을 불러 일으킨 바 있다.링크
(피디: 이태희 검사가 혹시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와 있는 걸 아십니까?)
거기 들어가 있다, 있을 거라고 짐작은 했어요. 실제로 이야기 듣는 건 처음이에요.
(피디: 한 번 보여 드릴까요?)
필요 없어요. 그런 거지 같은 책은 안 보기로 했습니다.
친일인명사전을 만든 사람들도 반쯤 정신 나간 놈들이죠
그걸 갖다가 거의 100년 전 이야길 들춰서 뭘 하겠다고 무슨 도움이 된다고.
과거는 다 잊어버려야 된다고요. 거기서 뭘 배울게 있다면 모르지만.
지나간 일에서 뭘 배우겠어요, 과거에서.
세상이라는 건 그런 거예요. 언제든지 공평하지 않은 게 인생이라고요.
가령 독립운동 하는 사람들은 왜 가난하게 살고 친일했던 사람은 잘 살고 그러냐
그것도 한 세대만 따지는 거죠.
그게 두 세대 세 세대 그렇게 넘어간 후에는 잊어버리고 미래를 생각하는 게 더 나아요.
그런데 지금 문재인 씨는 미래 이야기 하는 건 난 들어본 적이 없어요. 미래 이야기는.
과거만 뒤지고 있어요.
지금은 이제 뭐 박근혜 그렇게 하고 나서 못마땅한지 그 다음에
이명박 것도 뒤지고 있다고요. 과거 뒤지는 게 전 제일 미워요.
(기자: 어르신 그런데 과거도 좋은 미래로 가려면 과거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거 아닌가요?)
사람의 능력은 한계가 있으니까 둘 중 하나를 택해야죠.


[1] 진천파(鎭川派) 32세 희(熙) 항렬.[2] 보성전문학교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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