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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덕

파일:태극무공훈장 약장.png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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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극무공훈장 부장.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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랄프 퍼켓
미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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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백재덕
白載德
출생 1925년 9월 28일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군
사망 1988년 1월 24일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50년 ~ 1954년
최종 계급 이등 상사[1]
참전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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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수도사단 기갑연대 제3대대 11중대에 3소대 3분대장으로서 1953년 5월 14일 강원도 금성 샛별고지에서 야간 매복작전 중 중공규 3개 중대의 공격 징후를 파악, 이후 분대장의 현장 판단하에 분대원들을 이끌고 백병전을 벌여 적의 공격을 3차에 걸쳐 격퇴해 중대를 위기로부터 구하고 중동부 전선 요충지인 샛별고지를 사수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2. 생애

1925년 9월 28일 경상남도 창원에서 출생, 전쟁이 발발한 1950년 9월에 군에 입대하여 하사관으로 수도사단 기갑연대 제3대대 11중대에 소속되었다.

전쟁 동안 기갑연대에 소속되어 안강 기계 전투 및 원산탈환작전 등 북진의 최전선에서 일선하였다.

전쟁 막바지아 백재덕이 소속된 수도사단 기갑연대 제3대대 11중대는 금성지구의 요충지인 샛별고지에 대한 방어임무를 부여받고, 제10중대 3소대에 배속 받아 1953년 5월 14일 밤부터 새벽까지 진지를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저항선 방어임무 교대를 1953년 5월 17일부로 예정된 사단예비인 제1연대와 준비하고 있었다.

백재덕이 지휘하는 제11중대 3소대 3분대는 매복조로 차출되어 5월 15일 밤, 진지를 향해 중공군 3개 중대가 접근하고 있음을 파악, 이에 백재덕 분대장은 매복진지가 돌파될 경우 중대의 주진지가 위험할 것이라 판단하고 전투에 임할 것을 전 분대원에게 지시하며, 진지를 사수하기 위해 철수를 하지 않고 기습을 감행하기로 결정한다.

능선의 중앙에 백재덕 분대장이 자리하고, 좌우로 4명씩 분대원을 배치한 후 접근해오는 적을 향해 사격을 집중 3분대원들은 수류탄을 던지며 적의 공격을 막았으나, 인해전술로 접근해오는 적을 막기에는 중과부적이었다.

결국 적의 제1파 15~16명이 분대의 진지 안까지 돌입함으로써 백병전이 시작되었고,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백재덕 이하 모든 분대원은 적을 모조리 격퇴하였다. 적의 제2파가 약 20분이 경과된 후 다시 공세를 해옴에 따라 서로 간에는 수류탄전과 백병전이 동시에 전개되었다. 처절한 사투 끝에 3분대원들은 적을 모두 사살하였으나, 1차에 1명이 전사하였고, 2차에 2명 전사, 3명 부상의 피해를 입었다.

상황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또 다시 제3파의 공격을 받아 분대 진지까지 10명이 다시 돌입하였다. 이에 총검과 맨주먹 혈전으로 분대원들은 대적하였고, 중대에서는 진내사격을 하였다. 이렇게 대적하면서 계속하여 돌진해오는 적을 격퇴하였다.

샛별고지 전투에서 9명의 분대원들 가운데 4명이 전사, 나머지 5명도 부상을 입는 손실이 입었지만 날, 진지를 고수하여 중대를 위기로 부터 구하는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백재덕 분대장이 이끈 샛별지구 전투의 승리는 6·25전쟁 당시 소부대 독단활용으로 적군의 대규모 공세를 막아낸 대표적적인 사례로서 분대장의 현장 판단하에 중공군의 공세를 사전에 예방하고 차단한 모범적 사례로 손꼽힌다.

1954년 6월 25일 백재덕의 이러한 활동을 인정한 정부는 1계급 특진과 함께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으며 백재덕 이등 상사는 샛별고지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해 1954년 군에서 제대하였다. 이후 고향인 가덕도에서 정부 지원 없이 전쟁의 상흔으로 고생하며 어업에 종사하다가, 1974년 경상남도 마산의 섬유공장에 취직해 비정규 노동자로 일하며 1988년 1월 24일 63세를 일기로 별세하였다.#

2017년 5월 이달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성되었다.


[1] 1954년 전역과 동시에 이등 상사로 1계급 특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