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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달진

파일:태극무공훈장 약장.png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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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극무공훈장 부장.png
||<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373a3c,#ddd><width=20%> 1950
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원수 ||<width=20%> 1951
이근석
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백선엽
육군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정일권
육군대장 ||<width=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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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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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일등상사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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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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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1953중복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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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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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민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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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충식
육군대장
1953
한신
육군대장
1953
김점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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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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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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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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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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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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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섭
육군소장
1954
임선하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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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최득수
육군이등상사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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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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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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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
이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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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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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지덕칠
해군중사
1967
정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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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신원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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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최규식
경무관
1968
이익수
육군준장
1968
최범섭
육군중령
1970
이세호
육군중장
1972
이무표
육군대위
1972
임동춘
육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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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
전두환(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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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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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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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조달진
육군소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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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에밀 카폰
미 육군대위
2023
랄프 퍼켓
미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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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조달진
趙達珍
파일:1000125131.png
출생 1928년 11월 28일
일제강점기 전라남도 승주군 주암면 대광리 두지동[1]
사망 2008년 10월 25일 (향년 80세)
대한민국
계급 소위
복무 기간 1949~1955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2. 생애

1949년 8월 육군 사병으로 입대해 제6보병사단 19연대 3대대 소총수로 배치되었다. 6.25 전쟁이 발발해 춘천-홍천 전투당시 철원, 홍천으로 들어오는 말고개를 지키던 19연대장 민병권대령은 적의 대전차 파괴를 목적으로 휘하의 장병들을 모아놓고 훈시를 한 다음, 특공대를 직접 선발했다. 연대 전체 장병들 중 30여명이 지원했고, 조달진을 포함한 11명이 선발되었다.[2] 이들은 대전차 파괴무기로 81mm 박격포탄 1발과 수류탄 2발씩을 분배받았고, 북한군 전차 T-34의 장단점과 파괴요령[3]을 교육받았다.

새벽 4시경 북한군의 주력 전차부대를 격파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특공대는 27일 밤 10시에 트럭을 타고 전투지역으로 출동하게 되었다. 6월 28일 아침 8시 반, 북한군의 공격으로 치열한 전투가 시작됐다.

북한군은 10여대의 전차를 앞세워서 진격했고, 아군이 전투에서 밀리기 시작하자 특공대가 나서기 시작했다. 조달진은 각 대원에게 1인당 전차 한대를 분담했다. 전차가 가까이 다가오자 1번조였던 조달진은 수류탄과 81mm 포탄을 가지고 T-34전차 후미에 올라탄 후 해치를 열어 박격포탄과 수류탄을 던진 후 곧바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후미의 전차장이 고개를 내밀어 무슨 일인지 확인하려는 순간 아군 기관총에 맞아 죽었다. 직후 11용사 중 한 명이 그 전차 안에 수류탄을 까넣었고, 이로 인해 행렬 중간의 전차들은 앞뒤가 가로막힌 채 고립되었다. 이후 이 전차들은 승무원들이 상황을 확인하려고 혹은 강제로 해치가 열려 차례차례 정리되었다.

이날 11인의 특공대는 선두의 전차를 비롯해 북한군 전차들을 완파 또는 노획했으며, 특공대원 중 부상자는 1명뿐으로 작전은 대성공을 거뒀다.

이는 전쟁 초기 북한군 전차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아군의 사기를 높였고, 6월 30일까지 홍천을 사수해 북한군의 남침을 사흘간 지연시키는 데 기여했다. 이 전공으로 병장으로 2계급 특진했다.

같은 해 7월 25일 경북 상주군 유곡전투에서 민병권은 조달진을 포함한 특공대 7명을 다시 편성했다. 교량에 대전차 폭파지뢰를 설치했다. 아침 식사를 하던 중 길이 20m의 교량 앞에 있던 북한군의 전차를 발견한다. 가설해놓은 대전차 폭파지뢰 스위치를 눌렀지만, 북한군 전차는 뒷걸음을 치며 포신을 아군 진지로 돌렸다. 조달진은 대원 4명에게 엄호를 부탁하고 적 전차에 뛰어 올라 해치를 열려했지만 실패했고, 포구에 수류탄을 던져 넣은 후 뛰어 내렸다. 그 후 전차 안에 타고 있던 전차 승무원 7명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아군의 피해는 전사자 1명이였다. 전사자를 제외한 6명은 2계급 특진했으며 조달진은 이등상사가 되었다. 이후 북한군의 전차는 낙동강 전선에서 대부분 파괴되었고 미군의 바주카등 여러 대전차무기가 공급되며 특공대가 다시 편성되진 않았다.

이러한 두 차례의 전공으로 1950년 10월 을지무공훈장(2등급)과 함께 한국군 최초로 미국 동성훈장을 받았고, 1951년 화랑무공훈장(4등급)을 추가로 수여받았다. 이후 19연대의 수색중대 선임하사로 근무하다가 전후 1955년 소위 진급과 동시에 예편했다.

2008년 80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 장교묘역에 안장되었다. 2011년 10월 태극무공훈장(1등급)이 추서되었다.

3. 여담

  • 2번의 전공으로 '불사조', '탱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 1975년 홍천군 말고개에 군민들의 성금으로 조달진을 비롯한 특공대 11명을 기리기위한 육탄용사 전적비가 세워졌다.
  • 2019년부터 고향인 순천시에서 조달진 소위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2015년에는 제31보병사단 95연대 5대대가 ‘조달진대대’로 명명됐다. 또 순천 주암면에 ‘조달진로’가 생기기도 했다.
  • 같은 6사단의 일원으로 전차를 격파했지만 전적논란이 있는 심일과 다르게 전적논란이 없다.
  • 육군에서 펴낸 전기만화를 보면 전쟁 전 국군의 모병에 마을 청년들과 함께 입대할 때, 원래 키가 작아서 불합격이었으나 계속해서 지원한 끝에 합격했다고 한다.


[1] 現 전라남도 순천시 주암면 대광리[2] 이 때 삼대독자는 우선 제외되었다고 한다.[3] 해치가 열려있으면 수류탄과 화염병을, 해치가 닫혀있으면 81mm 박격포탄을 궤도 밑으로 밀어넣으며, 이조차도 안되면 연막탄으로 시야를 가린다. 그럼에도 계속 저항하면 화염병을 엔진실 상판 덮개 위에 투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