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1-26 19:57:01

김동빈(군인)

파일:태극무공훈장 약장.png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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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극무공훈장 부장.png
||<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373a3c,#ddd><width=20%> 1950
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원수 ||<width=20%> 1951
이근석
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백선엽
육군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정일권
육군대장 ||<width=20%> 1951
심일
육군소령 ||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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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일등상사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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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근
육군일병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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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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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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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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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1951 1953중복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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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준장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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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1952 1953중복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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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중장
1953
장덕창
공군중장
1953
최용덕
공군중장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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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육군대장
1953
김교수
육군대위
1953
김한준
육군대위
1953
김용배
육군대장
1953
민기식
육군대장
1953
임충식
육군대장
1953
한신
육군대장
1953
김점곤
육군소장
1953
이성가
육군소장
1953
이용문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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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부택
육군소장
1953 1954중복수훈
강문봉
육군중장
1953
김동빈
육군중장
1953
김종갑
육군중장
1953
백인엽
육군중장
1953 1954중복수훈
송요찬
육군중장
1953
유재흥
육군중장
1953
최영희
육군중장
1953
함병선
육군중장
1953
최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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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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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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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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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령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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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송석하
육군소장
1954
엄홍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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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임선하
육군소장
1954
백재덕
육군이등상사
1954
최득수
육군이등상사
1954
김옥상
육군일병
1954
조재미
육군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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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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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최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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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이익수
육군준장
1968
최범섭
육군중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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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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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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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육군병장
2021
에밀 카폰
미 육군대위
2023
랄프 퍼켓
미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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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김동빈
金東斌
출생 1923년 3월 22일
일제강점기 함경북도 길주군
사망 2002년 2월 1일
학력 용정중학교
육군사관학교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46년 ~ 1967년
최종 계급 중장
주요 참전 다부동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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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다부동 전투에서 제 1사단 11연대장으로서 장비와 수적열세에도 과감한 돌격 지휘로 많은 전과를 올리며, 낙동선 방어선 사수에 크게 기여하였다.

2. 생애

1923년 3월 22일 길준군 덕산면에서 출생하여, 만주의 용정중학교을 졸업하였다. 이후 1946년 6월 국방경비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육군소위로 임관하였다. 1950년 7월 혼성 제2사단 참모장으로 한강방어전투에 참전하였으며, 3일만에 5연대장으로 전보되었으나, 한달 뒤 제 1사단 11연대장으로 임관되었다.

1950년 8월 다부동 전투에서 1사단 11연대장으로서 사단장 백선엽, 12 연대장 박기병 등 과 같이 다부동 전투의 승전을 이끌었다.

제1사단이 대구방어와 동시 남하하는 적을 낙동강 선에서 섬멸할 목적으로 포진하고 있을 당시, 김동빈 대령과 11연대는 해평지구의 전선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해평지구는 적이 낙동강을 건널 수 있는 관문인 동시에 아군의 낙동강선 방어의 지형적 약점이었다.

1950년 8월 3일 김동빈의 제11연대는 연대수색대를 전방에 침투시켜 적의 행동기도를 탐지, 이 과정에서 문경·상주 방면으로부터 아군의 후퇴로를 추격해 온 북한군 제13사단 및 제15사단의 일부 병력이 8월 4일 09시 낙동강 북안 3㎞ 지점에 도착하여 다수의 직사포로 아군 진지에 사격을 가했으며, 적 1개 연대 병력이 송정리-강창리 도하장으로 건너려는 것을 알게 된 제11연대는 제1대대 및 배속된 제12연대 3대대를 이 지점에 재빠르게 배치, 박격포 및 대전차포격을 가해 적 병력의 반수 이상을 섬멸하여 해평지구에서 2개 사단의 절반을 격퇴, 잔여 병력은 북으로 퇴각한다.

한편 8월 9일 18시경 수양과 점촌에 침입한 적은 낙동리-해평리로 남하하여 송천동에서 제7중대 배후를 우회 위협했습니다. 제 2대대가 완전포위 상황에 빠지게 됐으나 연대장 김동빈 대령의 진두지휘아래 수 시간에 걸친 격전을 펼쳤습니다. 적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제2대대를 구출하는 전과를 올렸으며, 이후 병력을 해평동-신기동-161고지에 배치한 제11연대는, 전차를 선두로 남하하는 적을 진지에서 저지하고 격멸했고, 8월 12일 미 제8군의 전략변동에 의거 다부동선으로 진지를 이동할 때까지 화력·장비 및 병력의 열세로 인한 불리한 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정면에서 도전해 오는 적에게 연속적인 타격을 주었으며 이는 1사단의 차기작전 성공에 대한 기반을 제공했다.

이후 8월 14일부터 29일까지 전개된 다부동지구 전투에서 11연대는 대구방어의 최후 아성인 다부동 207고지, 265고지 일대의 방어 정면을 담당하였고, 제11연대는 4시간에 걸친 치열한 백병전을 감행하여 일단 격퇴시켰으나, 8월 15일 적은 야포와 직사포의 강력한 지원 아래 전차를 선두로 신주막, 여남동, 유학산, 금곡사에 각각 1개 연대의 병력으로 공세를 취해 오는 것을, 과감한 지휘와 최후의 벼랑 끝 전술을 내세웠다. 한국군은 로켓포 특공대로 맞받아치면서 돌격 육박전을 펼치며, 제1보를 개척한 장비와 수적 열세에서도,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경북 영천 주변에서 벌어진 영천 전투에 김동빈과 제11연대는 지원에 나서며, 공훈을 세우기도 했다.

다부동 전투 이후 평양탈환과 태천전투, 신벽제지구전투 등에서도 많은 전공을 올렸고, 1951년 8월에는 수도사단 부사단장, 1952년 3월에는 제9사단 부사단장을 지냈고, 1953년 2월에는 제7사단 포병단장에 임명되었다. 1953년 4월에는 육군준장으로 진급하였으며, 5월에는 제1사단장에 임명되었으며, 1953년 8월 27일 그 공훈을 인정받아 최고 등급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

1955년 1월 소장으로 진급하였고, 1959년 7월에는 육군보병학교장을 맡았다. 1962년 8월에는 육군 중장에 진급하였고, 1963년 2월에는 제5군단장, 1965년 3월에는 국방부 군수차관보를 지내고 1967년 7월 전역하였다. 이후 대한준설공사(현 한진중공업) 초대사장으로 임명되어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대부분을 전선에서 활약했던 김동빈 장군은 2002년 80세의 일기로 별세하였고, 국립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