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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찬

파일:태극무공훈장 약장.png
태극무공훈장 수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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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태극무공훈장 부장.png
||<tablewidth=100%><table bgcolor=#fff,#191919><tablecolor=#373a3c,#ddd><width=20%> 1950
더글라스 맥아더
미 육군원수 ||<width=20%> 1951
이근석
공군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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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장 ||<width=20%> 1951 1953중복수훈
정일권
육군대장 ||<width=20%>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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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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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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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재근
육군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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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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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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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
민기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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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
육군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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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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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1953 1954중복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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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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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중장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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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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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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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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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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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하
육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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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최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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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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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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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최규식
경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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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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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랄프 퍼켓
미 육군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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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권동찬
權東贊
출생 1919년 2월 15일
일제강점기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사망 1951년 1월 1일 (향년 31세)
경기도 가평군 북면 도대리
학력 철원공립보통학교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2기
계급 준장[1]
복무 기간 1947~1951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군인이다.

2. 생애

강원도 철원군출신으로 1936년 보통학교 고등과를 졸업하고 경성지구법원 철원지청에 취직했다. 이후 1937년 12월 경성지구법원 검사국고장으로 영전했며 1940년 7월 철원세무소에 취직한 후 징용과 공출 등 일본의 압정으로 만주로 건너가 만주국립청년특별연성소에 들어가 구대장에 취임해 만주에 거주하는 한국청년들에 대한 훈련을 담당하게 되었다.

해방 후 철원으로 돌아와 문맹퇴치를 위해 청년들을 모아 군사훈련과 교육을 진행했으나 북한의 압제로 인해 월남해 1946년 2월 20일 국방경비대 제7연대에 입대했고 9월 23일 국방경비사관학교 제2기로 입교해. 3개월 뒤 12월 14일 졸업과 동시에 육군 참위로 임관했다.

1947년 1월 제5연대에 배속되어 소대장과 중대장 그리고 대대부관으로 근무한 후 1950년 3월 소령으로 제11연대 부연대장에 임명되었으며, 5월에 중령으로 진급해 한 달만에 6.25 전쟁에 참전하여 낙동강 해평지구방어작전에서 1950년 8월 3일 성공적으로 방어선을 사수하였다. 해평인근이자 대구 북부 다부동 전투에 투입되어 치열한 접전끝에 패퇴시켰다. 또한 탱크를 앞세운 적 2개연대가 팔공산 북방으로부터 1950년 8월 29일 침투를 시작하자 백병전을 치열하게 전개하여 격퇴하기도 하였다. 

11월 13일 새로 편성된 제2보병사단 32연대장으로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공산군 패잔병에 대한 소탕전을 수행하였다. 그러나 12월 13일을 전후하여 제3군단사령부가 양평에 도착하자 작전을 종결해 가평 북쪽으로 군단장 이형근 소장의 명령에 따라 배치되었고, 제5보병사단과 함께 여기서 주저항선을 구축하였다.

1950년 12월 31일부터 중공군의 공세가 시작되었고 중화기를 앞세운 중공군에게 중과부적으로 무너지며 주저항선이 무너졌고 후방에 아군의 종심을 뚫고 들어온 중공군이 포위하고 있고 각 제대별로 통신망도 무너졌다. 1951년 1월 1일 퇴각을 결심하고 부대원들과 퇴로를 개척해 부대원들을 탈출시켰으나 본인은 포위망을 뚫지 못하고 소총과 권총으로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마지막 남은 권총탄으로 자결했다.

1952년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고 준장으로 추서했다. 시신은 국립서울현충원 장군묘역에 안장되었다.


[1] 추서 계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