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7 20:20:59

서울사범대학 독서회 사건


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이 문서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사고의 자세한 내용과 설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개요2. 전개3. 재판4. 평가

1. 개요

1968년 4월 3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공공안전부에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재학생 및 졸업생들을 불온한 목적으로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음모했다고 조작한 사건.

2. 전개

1968년 4월 3일 서울지검 공안부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일부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독서회'라는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음모하려고 했다고 발표하였다. 검찰은 김기수, 김이부, 김각, 최동전, 이반호 등 5명을 반국가단체를 구성하고 음모하는 한편 북한을 찬양하고 동조하는 표현물을 배포했다는 혐의로 구속 기소하였다. 같은 혐의를 받아왔던 이종태, 정동오 등은 기소중지 처분을 받게되었다. 그리고 반국가단체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로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민주화운동가인 김정남(1942)공개수배하였다.

검찰이 밝힌 서울대 사범대학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혐의는 다음과 같다.
주모자인 김기수는 북한의 무력침공에 앞서 먼저 공산당의 지하조직을 만들기 위해, 구성원들이 불온서적을 돌려가며 탐독하는 방식으로 공산당식 점조직을 확충하려 하였다. 이에 김기수는 국가를 변란할 목적으로 공산주의 노선에 동조하는 학생들을 ‘독서회’ 조직을 통해 개별적으로 포섭하기 시작하였다. 일단 김기수는 서울대 사범대 교육과 2학년에 재학 중인 1965년부터 신입생들을 포섭, 10여 회에 걸쳐 ‘우리의 임무는 남한에서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일으키는 것’이라는 강좌를 진행하였다.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신입생들에게 북한이 남한보다 살기 좋다는 등 북한을 찬양하는 발언을 하였다. 이후 이들은 결정적인 시기에 행동할 제1단계 조직으로, 서울대 사범대 내에 북한 노동당의 하부조직인 ‘중앙위원회’라는 반국가단체를 만들기로 합의하고, 우선 신입생 10여 명으로 ‘교육동호인회’라는 명칭의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또한 김기수는 1967년 4월 초 서울시내사직공원 뒤 활터와 서울대 향토개척단 본부사무실 등에서 신입생 두 사람을 불러내 노트를 찢어 만든 북한 인공기를 오른손에 들게 하고, ‘생명과 재산을 바쳐 공산당 수령에 충성을 맹세한다’는 내용으로 선서식을 하게하여 북한을 이롭게 하였다.

3. 재판

서울형사지법은 1968년 8월 24일 서울사범대학 독서회 사건에 관련된 이들에게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을 적용해 유죄를 선고하였다. 주범인 김기수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으며 나머지 관련자들은 징역 3년과 집해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서울대 사범대학생들의 명석한 두뇌와 범행동기, 생활환경 등에 대해서는 동정이 가나 국가안전보장에 위험한 인물로 인정되기에 중형으로 처벌한다고 밝혔다.

4. 평가

일반적으로 이 사건은 1969년 삼선개헌을 앞두고 정부가 학생운동 세력을 탄압하기 위하여 일으킨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해당 독서회는 진보적인 내용의 서적들을 둘려보는 독서모임에 불과했다. 검찰이 이러한 독서모임을 반국가단체로 과장하여 조작했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