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27 17:10:29

2017 타이베이 하계 유니버시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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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九屆夏季世界大學生運動會
XXIX Summer Universiade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017_Taipei.png
대회기간 2017년 8월 19일 ~ 8월 30일
개최국가/도시 중화 타이베이(대만)/타이베이
참가국 142개국
경기종목
개회 선언자 차이잉원
대만 총통
주경기장 타이베이 시립경기장

1. 개요2. 유치과정3. 중국의 반응4. 사건사고5. 기타

1. 개요

2017년 중화 타이베이(대만) 타이베이시에서 개최된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대만 입장에서는 최대 규모로 유치한 국제 체육대회였지만, 각종 운영상의 문제로 얼룩진 대회로 기록되었다.

2. 유치과정

후보 도시로는 중화 타이베이(대만)의 타이베이시, 브라질브라질리아, 터키의 코자엘리였다. 그런데 코자엘리는 2011년 유치 투표 직전에 후보지 지위를 사퇴했는데 이미 터키 에르주룸이 2011 에르주룸 동계 유니버시아드를 개최하는 터라 가장 불리했기에 알아서 물러선 것이었다. 그래서 타이베이와 브라질리아 둘로 압축되어 유치 투표를 하게 되었고, 최종적으로 타이베이로 결정되었다.

대만중국하나의 중국 정책 때문에 국제 스포츠 대회를 마음대로 유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2009 가오슝 월드 게임에 이어 2번째로 국제 스포츠 대회를 유치하게 되었다.[1]

3. 중국의 반응

이미 개최지를 결정하기 위한 투표에서부터 중국이 공개적으로 반대에 나섰다. 일단 대회 전체를 보이콧하지는 않지만, 여러 방법으로 재를 뿌리는 중이다. 먼저 이전 대회들보다 선수단 참가 규모를 대폭 축소했고[2], 그나마 모두 개인전 출전 선수들로 구기종목 등의 단체전은 아예 없다. 이에 대해 중국측은 "8월 말에 열리는 중국 내 전국체육대회(한국의 전국체전에 해당) 일정과 겹쳐 참가 안하는 것"이라고 변명했지만, 그동안 하나의 중국 원칙을 내세워 대만을 괴롭히는 데 골몰해 온 중국의 전례들을 생각할 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반응은 드문 상황.

덤으로 개회식에도 중국 선수단이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친독립 성향인 민진당 소속의 차이잉원 현 총통이 개회식에 참석하여 개회사를 한다는 것이 이유. 이에 대해 대만 정부측은 "개회식 참석 여부는 각 선수단의 선택 사항"이라며 개의치 않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데 2009 월드 게임 때도 어차피 개회식에 참석 안 했다.

차라리 불참을 했으면 모르겠는데 일부 선수들이 참가하는 바람에 참가국이 되어버린 바람에 메달 수에서 대만(3위)이 대륙(9위)을 압도해버렸다. 아마도 종합 경기 대회에서 대만이 대륙을 압도하는 일은 다시 나오기 힘들 듯.

4. 사건사고

  • 2017년 8월 19일 저녁, 개회식이 열렸다. 그런데 이날 경기장 주위에는 차이잉원 총통, 민진당 정부가 추진하는 연금개혁 정책에 대한 반대, 친중-반중 성향의 시위대가 몰려들어 대회에 참가한 각국 선수들의 입장을 가로막는 소동을 빚었다. 이 사건으로 각국 선수단의 입장 과정에서 국가별 기수들만 먼저 입장하고, 이후 상황이 정리된 후에야 참가 선수들이 겨우 입장하는 촌극이 벌어졌다.[3] 이 일로 차이잉원 총통의 대만 정부, 주최측인 타이베이 시측은 대회 시작부터 곤욕을 치렀다.[4]
  • 원래는 개폐회식 주경기장으로 타이베이돔에서 하기로 결정하였고 개최에 맞춰 완공될 예정이었으나, 마잉주 총통이 타이베이 시장 시절에 시공을 맡은 위엔슝그룹 사이의 비리가 폭로되면서 공사가 전면 중단되어버렸다. 당연히 하계유니버시아드가 개최되는 2017년까지는 완공이 무리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타이베이 시립경기장으로 주경기장을 변경하였다.
  • 폭염으로 선수들의 집단 식중독일사병 사태가 속출했다. 선수들과 운영요원 등 이 도시락을 먹고 식중독 증상을 보였고, 도시락을 공급한 타이베이 쑹산(松山)구의 식당에 대해 조사를 벌인 결과 종업원들이 위생 모자를 착용하지 않고 쓰레기통 덮개가 없는 등 5개 항목이 위생기준에 부합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

5. 기타

  • 국기국가문제는 2009 가오슝 월드 게임과 비슷하게 진행되었다.
  • 일부 종목은 타이베이 이외 지역에서 분산 개최되었다.
  • 태릉선수촌에서 훈련한 선수들이 출전한 마지막 종합 국제대회이다. 태릉선수촌은 그 다음 달인 2017년 9월에 모든 기능을 진천선수촌으로 이전하고 그 역사를 마감했다.
  • 대한민국은 종합 2위를 달성하며 원정 유니버시아드 사상 최고 성적을 올렸다. 참고로 대회 종합 1위는 일본이 차지했다. 대만 역시 홈팀의 잇점을 등에 업고 3위를 차지했다.
  • 메달 순위는 아래와 같다.
    • 1위: 일본(금 37, 은 27, 동 37, 총 101)
    • 2위: 한국(금 30, 은 22, 동 30, 총 82)
    • 3위: 대만(금 26, 은 34, 동 30, 총 90)
    • 4위: 러시아(금 25, 은 31, 동 38, 총 94)
    • 5위: 미국(금 16, 은 19, 동 16, 총 51)
    • 6위: 우크라이나(금 12, 은 11, 동 13, 총 36)
    • 7위: 북한(금 12, 은 5, 동 6, 총 23)
    • 8위: 이탈리아(금 9, 은 6, 동 17, 총 32)
    • 9위: 중국(금 9, 은 6, 동 2 총 17)
    • 10위: 이란(금 8, 은 4, 동 11, 총 23)


[1] 이어 2018년 아시안 게임 유치도 노렸으나 좌절되었고, 2024년 올림픽 유치는 프랑스 파리에게 넘어갔다.[2] 바로 직전 대회인 광주 유니버시아드 대회의 20% 수준인 100여명 정도가 참가할 예정이다. 광주 대회가 열렸던 2015년 여름 한국에서의 메르스 사태 와중에도 상당 규모를 출전시켰던 중국의 사례를 고려하면, 누가 봐도 의도적인 축소 참가다. 메르스보다 대만 독립파가 더 싫다![3] 모 신문 칼럼에서는 이 장면을 두고 "여러 국가 선수들이 국경을 초월하여 함께 입장하는 모습도 나름 괜찮게 보였다"고 평했지만, 보통 그런 모습은 폐회식에서 주로 나온다. 무엇보다도 당초 개회식 계획과는 동 떨어진, 우발적 사고에 의한 광경이었다는 점에서, 미화될 여지가 거의 없다.[4] 특히 대회가 열리기 불과 4일 전에 대규모 정전 사태로 인해 차이잉원 행정부에 대한 대만 국민들의 반감은 극에 달한 상황이였고, 결국 이듬해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이 참패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