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6:17:40

한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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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선정했으며,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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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rowcolor=#fff> 2015 2016 2017 2018 2019
반기문 한비야 안진걸 한비야 미조사
같이 보기: 한국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종합) / 여권 정치인 / 야권 정치인 / 법조인 / 경제인 / 언론인 / 문화예술인 / 연예인 / 스포츠 스타 / 종교인 / 국제 인물 / NGO 지도자 / 잠재력 있는 정치인 / 대통령에 영향력 있는 인물 / 언론매체 }}}}}}}}}

한비야
韓飛野|Han Biya
파일:한비야.jpg
<colbgcolor=#000><colcolor=#fff> 초명 한인순
출생 1958년 6월 26일 ([age(1958-06-26)]세)
학력 숭의여자고등학교 (졸업)
홍익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 / 학사)
유타 대학교 대학원 (국제홍보학 / 석사)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 (국제학 / 박사[1])
거주지 서울특별시 은평구[2]
신체 159cm, 47kg, 225mm
직업 탐험가, 저술가, 국제공무원
종교 천주교(세례명: 비아)
배우자 안토니위스 판쥣펀[3](Antonius van Zutphen)(1952년생, 2017년 결혼-현재)

1. 개요2. 생애3. 저서4. 평가
4.1. 긍정적 평가
4.1.1. 도전 정신4.1.2. 난민 구호
4.2. 부정적 평가
4.2.1. 성격 관련4.2.2. 위험하고 왜곡된 정보4.2.3. 진위의 의심 논란이 있는 내용4.2.4. 대중들의 무분별한 옹호 문제4.2.5. 자신에 대한 비판 무시4.2.6. 한비야의 여행기가 위험한 이유
5. 기타6.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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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작가며, 현재는 월드비전 소속 국제구호활동가로 활동 중이다.

초명은 '한인순'이며, 훗날 세례명인 비아(Pia)를 본명으로 삼아 개명하여 한비야가 되었다. 저서로는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4권, '바람의 딸, 우리땅에 서다',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그건 사랑이었네', '1그램의 용기' 등이 있다.

2. 생애

1986년 홍익대학교 문과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미국 유타 대학교에서 국제홍보학 석사 학위를 받고 월드 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이 되었다. 2004년 한국 YMCA 선정 젊은 지도자상을 수상하고 2005년 환경재단이 선정한 세상을 밝게 만든 100인에 선정되었으며, 유학을 가기 전 MBC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했다.

35세가 되던 해, 국제홍보회사인 버슨-마스텔라[4] 한국지사의 일을 그만두고 7년 간의 오지 여행에 올랐다. 이때 돌아다닌 거리를 계산해보니 얼추 지구 3바퀴 반 정도 되더란다. 약 14만 km. 본인 주장으로는 하루에 평균 50km 이상을 ~~40kg 배낭을 메고~돌아다녔다는 소리다.

위의 체험을 바탕으로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시리즈> 4권을 냈다. 비행기를 거의 타지 않고, 호텔에서 숙박하지 않고 대부분 현지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현지문화 체험에 중점을 두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반군에게 총살당할 뻔했다든가, 인도에서 멋모르고 밤늦게 릭샤를 타고가던 중 뒷골목으로 납치될 뻔했으나 가까스로 뛰쳐나왔다든가, 아르헨티나에서 성추행을 당할 뻔했다든가 등등 위험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도 묘사하였다. 그리고 곤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어느 정도 설명하였다.

이 책들이 상당한 인기를 얻은 덕분에 한동안 한국에 배낭여행, 오지여행 붐이 불었고, 여대생들이 존경하는 여성 1위로 선정되기도 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다.

2000년에는 중국 칭화대학 유학을 하였으며 이듬해 2001년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을 발간한다. 중국 유학 중 2000년 8월 월드비전의 제의로 캄보디아케냐에 구호 활동을 다녀왔으며 중국 유학을 마친 2001년 탈레반이 축출된 아프가니스탄으로 구호활동을 떠난다. 1996년에는 탈레반 정권 하의 여행객이었다가 2001년에는 탈레반 축출 후의 구호활동가가 되었으니 격세지감인 셈이다.

2009년 7월까지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일하다 그만두고 미국 터프츠 대학의 플레처 스쿨에서 인도지원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59세가 되던 해에 결혼했다. 남편인 네덜란드인 안토니위스 판쥣펀과는 2002년 아프가니스탄 북부 헤라트의 한 긴급구호 현장에서 동료로 만나 멘토, 친구, 연인 관계를 거쳐 만난 지 15년 만인 2017년에 결혼했다. 결혼소식은 다음해인 2018년 1월에야 알려졌다.

2019년 8월에는 이화여자대학교 국제대학원에서 국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3. 저서

  •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 2, 3, 4 - 세계여행 기행문. 데뷔작이자 여행객으로서의 이미지를 확립한 작품.
  •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 국토대장정 기행문.
  • 한비야의 중국견문록 - 2000년 중국 칭화대학교 유학생활 체험담.
  •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 첫 국제구호 에세이.
  • 그건, 사랑이었네
  • 1그램의 용기 - 2010년대 이후 일상, 경험, 구호, 생각 등을 담은 에세이.
  • 함께 걸어갈 사람이 생겼습니다

4. 평가

4.1. 긍정적 평가

4.1.1. 도전 정신

늦은 나이에 오지 탐험을 한 여성 모험가로 한때 여대생들이 롤모델로 뽑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모험 형식의 여행 방식은 상당히 시대를 앞서갔다. 한국은 1980년대 말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1990년대엔 여행은 관광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일 때 모험 형식의 배낭 여행을 한 것이다. 해외여행 자체도 생소했고 인터넷도 발달하지 않아서 까딱 사고라도 나면 바로 고립될 위험도 높았던 시대, 여성 혼자 세계 구석구석의 나라를 여행한 모험정신 자체는 높이 살만했다. 그러나 세계에 대한 정보 교류가 활발해진 2010년대부터는 그녀의 여행기에 대해 마냥 좋게만 보지 않는 입장도 많아졌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비판"항목 참고.

4.1.2. 난민 구호

여행하면서 난민들을 비롯해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을 계기로 난민 구호 활동에 투신하며 전세계의 수많은 어려운 지역에 도움을 주었다. 2009년까지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으로 있었다.

책 내용은 구호단체로서 월드비전을 다루기 때문에 별 상관 없지만, 월드비전이 개신교 선교단체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점과[5] 월드비전의 구호활동에 관한 비판은 한비야라는 인물과는 별도로 독자 스스로 판단해야 할 문제다.

4.2. 부정적 평가

4.2.1. 성격 관련

가장 큰 비판은 위험하고 심각한 민폐 및 불법 행위들을 마치 여행의 맛인 듯 미화한다는 것이다. 탈레반 정권의 군사작전 지역에서 본인 내키는대로 여행하고 사진을 찍다가 잡혀서 곤욕 치를뻔 하기도 했고[6] 엄연히 불법행위인 밀입국을 본인이 하고 싶다[7]는 이유로 여러번 벌였다.

사실, 이렇게 비자 받고 출입국하는 것이 바람의 딸의 메인 파트 중 하나이며, 그만큼 비정상적인 입국 방법이 자주 보인다. 뇌물을 먹여서 통과하는 건 기본이다.[8] 말라위에서 관광청의 비자 규정 해석 오류로 입국이 막히자,[9] 말라위 출입국 관리소에서 억지를 부려 가까스로 입국하는 등의 모습이 보인다.[10] 팔레스타인에는 당시 남한 입국이 금지라 삼성전자 직원인 것으로 속이고 들어간다.[11] 심지어 타이에 밀입국하다 수갑찰 뻔했다는 에피소드[12]까지 있다. 특히 이건 전술했듯 한비야 혼자 잡혀도 문제인데, 여기선 멋모르고 따라온 외국인 동행자, 그리고 밀입국자를 실어준 보트맨까지 싸그리 붙잡혀 구금될 뻔했다.

또한 마약 체험기와 더불어 그때 느낀 환각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는가 하면,[13] 중국에서는 자기 자전거를 도둑맞았다고 자신도 남의 자전거를 훔쳐가고, 아프리카에서 경비행기를 탈 때 난기류로 비행기가 요동쳐서 미국인 승객들이 심하게 구역질하며 괴로워하자 그들을 약해빠진 미국인이라고 흉보며 환호성을 지르고,[14] 인도에서 남자 마사지사에게 거품 마사지를 받다 기분이 좋아져서 가슴 마사지도 받는 등[15] 상식적으로 이해 및 납득이 불가능한 갖은 행동들을 여행기에 수록하였다.

여행자 한비야의 마음가짐은 '결국에는 여기나 저기나 다 사람 사는 곳이다'로 치안, 위생, 환경, 문화의 차이를 극복하고 직접 그 곳에 사는 사람처럼 여행하는 것을 지향하는 문화 상대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상술한 행적을 보면 문화 상대주의란 명분하에 범죄나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데 거리낌 없는 사람에 가깝다.

전술한 타이 에피소드에서, 타이 밀입국이 어려워보이자, 한비아와의 동행을 포기하려 하는 스위스 커플과의 대화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위스 커플은 아주 지친 얼굴로 자기들은 내일 아침 배로 시아누크빌로 돌아가 비행기를 타겠다고 한다. 어쨌거나 이미 해가 졌으니 일단 오늘 밤 묵을 숙소를 찾아야 한다.
(중략)
"애초에 이 길로 가려던 게 무리였어."
"그건 그래. 그렇지만 시도해보지 않는다면 한번 해볼걸 하고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거야."
"난 무서워. 그런데 너는 하나도 안 무서워하는 것 같아."
"난 밀입국 '전과'[16]가 있거든. 아니, 아니. 이건 농담이고 나도 두렵긴 마찬가지야. 그래도 일단 해보기로 한 거니까 방법이 전혀 없을 때까지 시도해보는 것뿐이야."
바람의 딸 3권, 137 ~ 138p. 대부분이 138p에 있다.

법에 개의치 않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다니고 행동하는 행태를 보면 인격에 문제가 있다(나르시스트). 앞서 언급한 미국인에 대한 조롱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자유주의의 대원칙은 타인에 피해를 끼치지 않는 행동이 허락된다는 것인데, 상기한 한비야의 행동이 그러하던가? 이런 행동들은 자유주의도 뭣도 아닌 그냥 이기주의인 것이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종종 같은 사상을 가지고 있고 19세기 중반의 미국에서도 한때 이런 사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초월주의 문학을 이끌었던 역사가 있음을 생각하면 이런 행동을 하게 된 경위에 대한 대략의 이해는 할 수 있다. 허나 만약 그러하다면 한비야 본인은 법을 어기고서라도 본인의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 되나, 같은 신념을 공유하지 않는 일반인이 보고 따라할 행동은 절대 아니다. 멋지게 포장해줬지만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걸 신념 운운하며 포장할 수 없다.

4.2.2. 위험하고 왜곡된 정보

실제로 그녀를 동경해서 여행 방식을 따라했다가 강도를 당했다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인도에 대한 판타지를 쓴 류시화와 더불어[17] 현지에선 "류시화나 한비야 따라하다가 신세 망친 사람 많이 봤다"는 말이 나오며, 한비야의 책에 기술된 정보 중 실제로는 위험한 것이 많아 비판을 받는다. 한비야는 저서에서 여행 가이드북처럼 각 권 말미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기술하였다.[18] 정보 공유 자체야 나쁜 일이 아니고, 책이 출판되어 나올 당시에는 해당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입수할 방법이 생각보다 적었다. 한비야 자신도 여행 정보는 영문판 론리플래닛을 많이 참조했다고 하지만 가이드 북에도 없는 정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였다. 당장 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해서 탈레반에게 끔살당할 뻔한 이야기도 당연한 이야기에 틀림이 없다. 1996년 첫 책이 발간된 당시에 독자들이 한비야 책을 읽고 외국 여행, 특히 배낭 여행에 관해 환상을 품고 잘못된 인식을 형성하기에 충분했음을 감안하면 문제는 더 심각하다.

책에는 여행 중 돈과 관련된 부분에 편중하여 위험을 경고한다는 문제가 있다. 호신에 관해서는 호신용 스프레이나 가스총 등을 언급하긴 하지만, 본인도 실제 상황에서 딱히 도움이 된다고 하지는 않고, 그저 마음 안정 용도라고 설명하였다. 애초에 이러한 것을 써야 할 상황을 만들지 않고, 그러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제대로 빠져나가는 것이 최고의 호신술이다. 게다가 유사시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만한 화력도 없는 도구를 믿고 위험 속으로 뛰어들면 도리어 범인, 혹은 범인 무리를 자극해서 큰 피해를 본다. 돈만 뜯고 가려던 도둑이 화가 나서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19] 책에 저술된 제3세계 국가 대부분은 범죄율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며, 애초에 완전무결한 호신법이란 없다. 무엇보다 총기를 소지한 강도가 횡행하는 나라에서는 호신용 스프레이같이 약한 무기는 아무런 쓸모가 없다.

제3세계 국가에서 외국인 여행자는 여러 가지 의미로 범죄자들에게 좋은 목표가 된다. 무턱대고 미화된 환상에 젖어 현지인과의 교류를 꿈꾸다가는 큰 상처를 입거나 돈을 잃는 경우가 생기기 십상이고, 성별에 관계 없이(!) 성범죄까지 당할 수 있다. 이 글은 제3세계 국가에서 조심성 없는 행동을 하면 생기는 일을 주로 다룬다.

특히 이슬람 국가들이나 인도 등 여성인권이 낮은 곳에선 동양인 여성이 혼자 다니는 것은 인기있는 성범죄의 표적이다. 일본이나 한국 출신 여성에게 구애해 밑천을 마련한다는 온갖 이야기(물론 과장된 괴담도 있겠지만)가 돌아다님을 생각하면, 한비야 책에서 아름답게만 묘사한, 외국인과의 다양한 로맨스들은 쉬이 꺼낼 이야기가 아니다. 한비야가 현지 지도자급 남자랑 로맨스를 나눴다는 이야기는 허언증 중에서도 최고봉인데, 배낭여행을 해본 여성들은 잘 알겠지만 외국에서 하룻밤 목적으로 감언이설 하는 남자들 만나는 건 부지기수다. 여행자 커뮤니티에서는 로맨스가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거나, 실제라면 하룻밤 사냥거리 하는 현지 청년이 본인을 "지도자"라고 거짓말했거나, 그게 아닌 한 강간이라고 보고 있다.

더불어 한비야는 '여성이여 얼마든지 해외로 나가라'면서 '저런 일 당하면 당당하게 맞서라'라고 썼으나, 실제 저러다간 강간으로도 부족해 살인도 얼마든지 당한다. 저런 나라에서 성추행범이 온갖 범죄조직에 연루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범죄조직과 무관하더라도 저렇게 강간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를 정도의 범죄자라면 수틀리면 살인도 서슴지 않을만큼 막나가는 성향일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즉, 저럴 경우 지극히 위험하다.

멕시코에서는 매직 머쉬룸을 했다는 이야기를 써놓았는데, 속인주의를 택하는 한국임에도 불구하고 한비야가 이 건으로 처벌받은 사례는 없다.[20] 그러나 처벌과 관계없이 위법 소지가 있는 마약을 빤 이야기를 책에 편하게 써도 되냐는 문제제기가 나온다.

특히 남미에서 히치하이킹이나 몰래 국경을 넘는 일은 위험할 수 있다. 의외로 경계가 삼엄하다.

일각에서는 "한비야 책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여행 판타지일 뿐이며, 한비야의 책만 믿고 다른 조사 없이 위험한 지역에 갔다가 재난을 당한 여행자들은 사실상 스스로 위험을 자초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허나 책에서는 이런 내용이 판타지라고, 혹은 각색했다고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그리고 한비야 책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강간과 인신매매 장기매매 등의 위험에 처했다는 카더라 같은(실제로 밝혀진 바는 없다.) 이야기는 '폭력물이나 음란물 때문에 사회범죄가 증가한다'는 말과 동일하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이에 대해서는 후술한다.

4.2.3. 진위의 의심 논란이 있는 내용

위의 논란과 별개로 한비야가 적은 여행담 중 사실이 아니라고 의심받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국가 상황에 맞지 않는 인명이라거나, 해당국의 문화상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거나, 그냥 상황 자체가 웃기지도 않는 판타지인 경우가 많다. 볼리비아 루레나바께 이야기 중 '김밥 에피소드'는 거짓이라는 주장이 있으나 실제로 확인된 바는 없다.[21] 대표적인 예시들은 다음과 같다.
  • 중국 견문록에서 있지도 않은 거리를 이야기한다거나, 군고구마 장수를 이야기했는데 막상 그곳은 아예 그러한 장사를 할 수 없는 곳이라는 지적이 있지만 진위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군고구마장수의 경우 불법으로 장사를 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누구의 말이 진실이고 거짓인지는 실제적으로 판단이 어렵다. 해당 에피소드를 자세히 보면 군고구마를 파는 소녀가 불법으로 장사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합법이라면 공안이나 호텔 경비원들이 대놓고 갈취하지 않았을 것이다.
  • 남미를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했다는 여행기에서는 능숙하게 스페인어로 여행했다고 주장하는데, 한비야는 자신이 쓴 책에서 스페인어 독음이 다를 때가 많다.
    현지 여행에 대해서는, 외국인이 하는 스페인어에 대해 현지사람들이 잘한다고 칭찬을 해줘서 스스로 능숙하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 대충 배워 대충 이야기해도 어쨌든 현지인들이 알아듣긴 하고, 그래서 현지인들이 굳이 고쳐줄 이유도 없으므로 틀린 줄도 모르고 저렇게 되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즉, 한국어영어 빼고는 가볍게 익혔을 가능성도 있다. 책에서도 자기가 중국어로 카이슈웨이를 온종일 카이슈라고만 말했다가 정식으로 배울 때에서야 깨달았다는 일화도 있으며, 중국어를 사투리로 배워버린 사례도 소개하였다.
    하지만 스페인어는 페르시아어처럼 확실히 잘 구사하지 못한다고 제시된 적이 없고, 중국어처럼 실력이 성장하는 에피소드가 있는 것도 아니며, 다수의 국적이 모인 외국인 집단 상대로 간이 통역사 역할을 맡은[22] 언어 중 하나로 제시되어 있는 것은 매우 의심스러운 부분이다.
  • 한비야의 무릎팍도사에서의 발언은 조증, 사무실에서도 길을 잃었다[23] 등등 전반적으로 과장된 주장이 많다. 그 일종으로, '잠을 잘 안 잔다, 이틀에 한 번 잔다' 하는 내용으로 발언한 것도 문제제기가 있었다. 책에서 워낙 죽은 듯이 잤다는 설명이 많음을 감안하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비야 책에도 그런 내용이 존재한다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바람의 딸 제4권(2007년 판) 336쪽 마지막 줄 - "수험 준비나 유학 등 집중적으로 시간이 필요한 때가 되면 '어제 자고 오늘 또 자?'라는 농담을 하면서 이틀에 한 번씩만 자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앞의 문장을 조금 더 보면 이 내용은 무릎팍도사의 증언과 사뭇 다름을 알 수 있다. "그 덕분에 나는 졸음을 쫒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안다. 다행히 커피를 마시면 늦게까지 잠이 안오는데, 이것도 아주 피곤할 때는 소용이 없어서 안티푸라민을 눈에 바르는 등 적극적으로 잠을 쫒아야 한다. (이후 그 문장)" 원래부터 잠이 적은 성격이라면 저렇게 적극적으로 잠을 쫒을 필요가 없다. 한비야는 같은 페이지에서 "(내가) 무슨 공부를 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가장 만만한 게 잠자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라 하고 있다. 이건 자신의 필요 때문에 잠잘 시간을 희생하는 것일 뿐이다.
  • 이름에 대해서도 문제제기가 있었다. 본명은 한인순이고 한비야는 개명한 이름인데, 책에는 한비야가 원래 이름이며 날 비() 들 야()라고 부모님이 지어주셨다고 썼다. 개명은 책을 출판할 때 한 것이 아니라, 유명해지고 난 뒤에 한 것이다. 실제로도 이전 본명과는 상관없이 가족들과 친구들은 비야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 대필 의혹지어낸 내용이라는 의혹도 있다. 전문대필작가가 적었다고 보기에는 문장력이 조악하고 책마다 내용이 비슷해서 대필이 아니라는 시각도 있으나, 현지 지명이나 사람 이름이 전혀 틀린 경우[24]도 있으므로, 현지사정을 잘 아는 배낭여행자나 교민들은 대필작가가 책을 쓰면서 실수했거나 아예 한비야가 지어낸 에피소드로 보기도 한다.
  • 여기에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인문, 지리학적인 지식이 부족해서 생긴 오류가 상당하다. 독재자를 찬양[25]하는 실수도 있었다. 쉽게 말해 넘치는 열정을 뒷받침할 지식이나 전문성이 부족하다. 여행전문가라고 소개하기엔 확실하게 역량 부족이라는 평가도 많고, 심지어 '블로그 여행기 수준으로 책을 낸다'는 악평까지 받았다.
  • 그 밖에 '40kg'짜리 배낭을 메고 '하루종일' 오지탐험을 했다던가, 중동에서 테러리스트 간부와 로맨스(...)를 나눴다던가 허언증이 의심되는 에피소드들이 많다. 당연하지만, 40kg 짜리 배낭은 거의 완전군장 수준인데 절대로 평범한 여자가 하루종일 들고 다닐 수 없는 무게다. 실제로 특수부대 대원들도 완전군장에 총까지 매고 있으면, 빠르게 걷는 강행군은 할 수 있어도 달리기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게릴라전을 할 때는 높은 산도 올라가야 하는데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달리기를 하면 누구든지 무릎이 다 나간다.

이 논란을 의식해서인지, 2007년에 낸 개정판에서는 문제가 되는 몇몇 에피소드를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4.2.4. 대중들의 무분별한 옹호 문제

한비야와 같이 의혹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에서 소개하는 인물이라도 비판 없이 열광하는 대중들도 문제가 있다고 하는 시각도 있다. 한비야에 관한 의혹이 데뷔 초기에 널리 알려졌더라면 현재와 같이 '대학생이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선정되는 해프닝은 없었을 것이다. 의도적인 과장과 거짓이 섞여있는 책들이 시중에 있다고 보았을 때, 책 내용을 어느 선까지 걸러내는가 하는 비판적 읽기는 결국 독자의 몫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소위 속은 사람이 잘못했다는 적반하장의 태도일 뿐이다.

이러한 의혹이 있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한비야가 사기꾼이 아니라 멘토가 될 만한 훌륭한 사람인 줄 착각하곤 한다. 심지어 1그램의 용기라는 심히 자기개발서 느낌이 나는 책을 출판했는데 그걸 추천하는 골때리는 상황을 볼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 때문에 한비야의 책을 귀여니 여행기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정형화된 패턴과 에피소드에 등장한 외국인 남자들이 자기에게 다 반하는 내용을 보면 저런 비꼼도 아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특히 자신의 책을 팔기 위해서 위험한 거짓정보를 넣은 글을 쓰는 것은 개인의 인격에 대한 공적인 의문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지금도 전국을 돌며 유료 강의를 하고 있고 그 강의를 들은 중장년 여성들의 인증샷 및 존경글이 인터넷 상에 올라오고 있다.

4.2.5. 자신에 대한 비판 무시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에 대응하는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본인의 저서인 '1그램의 용기'에 서술된 내용에 따르면,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을 유명세 탓에 치르는 정도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지나가는 KTX 보고 짖는 동네 개' 수준으로 폄하하며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하였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일일이 해명을 하면 진위 검증에 들어가므로 이를 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며 기업, 관공서, 단체 강연, 방송국 등에서도 점점 섭외하지 않는 분위기다.

실제로는 잘못의 유무와 관계없이 아무런 이유 없이 비판을 받는 게 아니라, 본인이 쓴 책의 허위 정보와 불법 행위 등 경우를 모르는 처신 탓에 비판을 받는 것인데, '난 나의 길을 갈테니 너희는 떠들어라' 식의 태도는 상당히 불량한 태도이다. 위험한 국가에 해외여행을 떠나서 너네들이 강간을 당하든지 말든지 그건 개인 책임이라는 뜻이다.

4.2.6. 한비야의 여행기가 위험한 이유

한비야의 책의 거짓 논란과 위험하고 왜곡된 정보가 조합되면 이 책은 여행객을 사지로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에 독자에게 매우 위험하다. 설령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멋진 여행기로 포장한다면 여행자들을 그 내용만 믿고 사지로 내몰 수 있다. 폭력물, 음란물 게임/만화를 플레이하고 읽는다고 범죄나 위험도가 증가하지는 않지만, 현실에서 위험한 여행지가 안전한 것처럼 속이면 실제 피해자가 발생하게 되므로 표현의 자유로 볼 수 없다.

저자가 그런 위험성을 감추는 허풍을 늘어놓아 '이런 일을 해도 멋지게 잘 살고 있다'는 말을 하면 독자는 순진하게 여기 속아서 위험한 여행지에 가는데 이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강연 등으로 돈을 버는 작가로서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나아가 폭력물이나 음란물과은 다르게 한비야의 책은 '청소년 추천 도서'로서 '교육적 의도를 가진 책'으로서 청소년에게 추천된 서적이므로, 단순한 창작물이나 오락물과는 국가에서 인정한 '신뢰도'라는 측면에서 차원이 다르다.

결론적으로 옹호파의 의견과는 달리, 한비야 여행기는 여행 가이드가 아닌 여행기라 더욱 위험하다. 역으로 여행가이드는 숙소정보, 관광지 정보, 가격 정보뿐, 어떤 여행을 해야 한다는 윤리의식이나 바람직한 여행 모델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위험천만하고 세계적으로 여행객이 절대 해야 하지 말아야 할 일로 공인된 일들을 심지어 진실하지 못하게 허풍을 섞어 미화하고, 그것을 '멋진 모험'으로 쓰는 한비야의 책은 잘잘못을 넘어 매우 위험한 책이다. 논픽션에 픽션이 개입됨으로써 '이렇게 여행하는 여자도 있구나' '이렇게 여행해도 괜찮구나' 라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진실성과 안전성 중 하나만 충족되었어도 이렇게 위험한 책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2019년 5월에 한국인 납치 사건으로 인해 댓글을 통해 이를 비판하는 여론이 일었지만 이를 직접 보도한 언론은 없다.

5. 기타

  • 아버지는 조선일보 기자였는데, 해직기자 출신으로 덕분에 한비야도 어렸을 적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26]
  •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그 전에도 그런 성향을 드러내는 편이었지만, 국제구호라는 일이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니 만큼, 종교적 성향이 좀 더 진해진 듯 하다. 간혹 제3세계 현지 종교를 비하하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기도 하지만, 광신도들과 달리 전반적으로는 타 종교에 대한 이해도가 큰 편이다. 일단 월드비전 자체가 개신교 계열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의심의 시선은 있다. 천주교 신자가 개신교 단체에서 활동할 수야 있겠지만,[27] 개신교 간증회에 가서 모금 강연을 수차례 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행동이다.[28] 사람들은 이를 두고 "돈이 필요한 월드비전과 경력+명성이 필요한 한비야가 만들어낸 합작 쇼"라고 비아냥댄다.[29] 더욱이 월드비전이 구호성금으로 받은 돈을 선교활동에 상당수 유용했다는 게 밝혀지면서, 덩달아 같이 까였다. 본인도 이 점은 의식했는지, 2013년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보에 글을 연재하는 등 천주교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 전술했듯 무릎팍도사에서 과장된 말을 많이 했다. 자신이 무시무시한 길치라면서 자기 사무실 내에서 길을 잃는다고 주장했다.[31] 또한 본인이 조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의학용어인 조증의 뜻을 잘 모르고 단순히 다혈질 같은 흥분하는 성향을 과장되게 표현했을 가능성이 높다. 조증은 상식을 넘는 과도한 행동을 할만큼 지나친 흥분상태를 의미하며,[32] 단순히 일반적인 사람이 생각할 만한, 감정이 들뜨거나 그러는 것이 아니다. 진짜 조증이 있었다면, 아프리카 등지에서의 범죄 행위에 비이성적으로 대응했다가 죽었을 확률이 매우 높다. 다만 위협요인을 고려하지 않고 무모한 행동을 보이거나 자기에 대해 과신하는 경향, 활발한 활동량과 범위 등을 고려할 때 경조증의 가능성은 고려할 수 있다.
  • 2020년 2월 21일에 올라온 영상에 의하면, 한비야가 바라나시 여행을 하던 도중 친해진 한 뱃사공에게 철수라는 한국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후 이 뱃사공은 인도 배낭여행을 하는 한국인들에게 유명 인사가 되었고, 어느 정도 돈을 벌어 자식들을 모두 대학교에 보냈다.
  • 별명으로는 이름을 거꾸로 뒤집은 '야비한'이 있다.
  • 숫자 24와 자주 엮인 적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매달 24일을 가장 좋아하며, 저서들도 24일에 출판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중국견문록에 따르면 중국에서 24는 네가 죽는다, 아이가 죽는다 등과 발음이 비슷해서 싫어하는 숫자라고 한다.
  • 월드비전 오재식 회장에게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월드비전이 안경점 이름인가 하고 착각한 적이 있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박사학위 논문은 Impacts of Social Capital on Disaster Risk Reduction : The Case of the Philippines with Typhoons Yolanda and Glenda다.[2] 해외출장 후 자가격리에 들어갔었는데, 은평구보건소에서 관리하는 것이 확인되었다.[3] 네덜란드 출신의 긴급구호 전문가이며, 한비야와 함께 국제구호 활동을 했다.[4] 신입사원이던 시절, 당시 사장이던 조안 리로부터 큰 격려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5] 물론 한비야 본인은 천주교 신자이므로 월드비전 활동에 선교 목적으로 가담한 것은 아닐 것이고, 난민 구호에 있어 소속 단체가 표방하는 종교나 교파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6] 외국에서 한국인이 생포되었다는 건 한비야 개인의 책임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실제로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이 어떤 형식으로 진행되었는지를 고려하면 한국이 국제적인 수치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7] 정확히는 배낭 여행 도중에 비행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신념. 몇몇 국가는 지상 국경과 해상 국경을 입국 목적으로 지날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되며, 밀입국은 이를 뚫기 위해 사용한다.[8] 대놓고 "May I help you?"가 뇌물을 주겠다는 은어로 통한다고 주장한다. 분명 직원들이 뇌물을 유도하는 등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비정상적인 입국을 어거지로 하려고 뇌물을 들이대기도 한다.[9] 30시간에 걸쳐서 온 길을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묘사된다.[10] 바람의 딸 1권 195~197p[11] 1권 339~340p[12] 바람의 딸 3권 133~141p.[13] 속인주의에 의한 국내법상 처벌 대상이며 제 3자의 고발도 성립된다. 다만 처벌받은 적은 없다.[14] 비행기는 분명히 공공장소인데 시끄럽게 구는 것은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짓이다. 철없는 애라면 그나마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40세 넘은 어른이 그런 짓을 하는 건 변명의 여지가 없다. 더구나 비행기 멀미로 힘들어하는 사람들 곁에서 큰소리로 환호하는 것은,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배려가 없는 무례하고 비상식적인 행동이다.[15] 급기야 마사지사에게 "너 밤일 잘해?"라고 물으니, 마사지사가 흥분해서 잠시 있다가 온다고 하니 "저 마사지사 정력도 약해보이는데 뱀술이라도 먹고 오는 거 아냐?"라고 하였다. 참고로 이 대목은 책의 초판에는 분명히 실려있으나 개정판에서 슬그머니 편집되었고 한비야의 옹호자들과 가족들은 이를 비판 측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억지로 주장하기도 하다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16] 바람의 딸 2권 당시 온두라스 밀입국을 말하는 것으로 추정된다.[17] 류시화인도의 정신문화에 대해 쓴 찬양이나 행복에 관해 논하는 내용은 매우 작위적이다. 자세한 내용은 이옥순 저,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 참조.[18] 외국, 특히나 출판사에서 오지라고 광고한 국가를 여행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한비야 책을 읽고 미화된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이기 충분하다. 그녀가 한창 책을 출판하던 당시가 컴퓨터 대중화와 대중적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일반인들이 쉽게 속아 넘어가기가 너무 좋았던 상황이었다.[19] 자신이 도둑에게 잡혔던 적이 있다는 글에서도 호신술을 써서 쫒아냈다는 소리가 없다. 단순히 도둑이 찾기 힘든 곳에 전대(돈주머니)를 숨겨 걸리지 않았고, 결국 돈을 찾지 못한 도둑이 도망갔다고만 쓰여있다.[20] 마약 사건을 돌이켜보면, 단순히 유명해서 검거하지 않았을 리는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물증을 잡기 어렵거나, 너무 잡범이라 실익이 없어 검거하지 않았거나, 혹은 에피소드 자체가 거짓인 것이다. 단, 실제로 대놓고 비슷한 물건을 빨았다는 내용의 영상을 올린 사람들도 잡히지 않았다.[21] 아마 순간의 호의가 관례로 정착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다.[22] 그냥 이런 적이 있다고 넘어간 수준이 아니다. 이런 역할을 해서 칭찬받은 적이 있다고 나온다.[23] 둘 다 실제로 저런다면 일상생활 영위나 여행이 어렵다. 정말로 저런 상태에서 여행을 했다면, 책을 쓰기도 전에 죽었을 것이다.[24] 큰 예로, 스페인어는 1시간만 공부하면 어떻게든 사람 이름은 읽고 쓰기가 가능한 언어인데, 한비야의 아르헨티나 히치하이킹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트럭기사들의 이름은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아르헨티나에서는 인명으로 있을 수 없는 이름이다. 스페인어의 구체적인 사용이야 틀려도 야매로 배운거라 변명할 수 있지만, 남자 이름 '꼰수엘로'를 '컨셀러'로 적는 등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인명이 나온다는 건 심히 의심할 수밖에 없다.[25] 한 예로, 에리트레아의 대통령인 이사야스 아페워키를 대단히 훌륭한 인물로 미화한 적이 있었는데 이 자는 짐바브웨로버트 무가베와 함께 북한에 비견되는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자로 꼽히는 사람이다. 다만, 이는 아페웨르키가 1990년대 초중반에는 전술한 무가베처럼 독립 영웅이라는 이미지가 컸고,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앞으로 잘 하기를!' 이라 썼듯이, 아직 독재자의 본색을 드러내기 전이라 그렇게 썼을 수도 있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무아마르 알 카다피호스니 무바라크 등 아프리카/중동 독재자들 중 일부는 지금보다 평가가 좋았다.[26] 어렸을 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다는 점을 여러 책에서 밝혔다. 초창기 책에서는 아버지가 해직 기자였다고 했으나, 국내 여행기 편에서는 아버지의 그저 갑작스러운 죽음 탓이라고 했다.[27] 월드비전의 전 직원 중 개신교가 아닌 종교를 믿는 경우는 한비야가 유일하다.[28] 기독교는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들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이지만, 성모 마리아에 대한 해석이나 세세한 교리에서 보면 개신교가톨릭에서 갈라져 나온 종교이긴 하지만 종교 분열 이후 5세기에 달하는 시간이 지난 현대에는 사실상 꽤나 차이가 큰 종교들이 되었다. 천주교 신자가 개신교 집회에서 간증을 한다는 것은 개신교 신자에게 고해성사를 시키는 것에 비견될 수 있다. 사실 교단에 따라 다르다.[29] 타인의 종교관을 가지고 왈가왈부 하는 것은 좋지 못한 시선이다. 하지만 이미 천주교에 많은 구호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있고, 적어도 월드비전보다는 투명성이 높은 곳이 있다. 그럼에도 한비야는 특이한 이유 없이 개신교 단체에서 활동한다. 논란이 안 될 수가 없는 것.[30] 공무원도 당연히 꿈이 될 수 있다. 흔히들 아이들한테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요리사, 시인, 우주인 같은 다양한 직업이 나올 뿐이다. 한비야의 오랜 여행 생활과 외국 구호 활동 등으로 한국에 대한 이해는 자신이 본격적으로 여행을 떠나기 전에 고정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실제 한비야가 여행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에는 공무원은 그다지 선호되지 않는 직업이었다. 공무원이 선호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말 IMF 시대 이후이며, 2000년대 중후반부터 크게 강해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구청이나 동사무소 공무원 중에서 대학 졸업자 비율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식으로 행동하면 무례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데 하물며 모르는 사람을 때렸다는 건 충분히 비판받을 소지가 있다. 그 정도의 배짱이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하지만...[31] 진짜로 사무실 내에서도 길을 잃을 수준이라면, 기본적으로 지능에 문제가 있는, 혹은 생긴 것이다. 당연히 실제 지능에 그 정도 문제가 있다면, 배낭 여행을 시도조차 못 한다.[32] 자해하는 사례도 많고 충동적 상해 같은 큰 범죄도 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