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1 16:21:27

스나이퍼 박


이 문서는 토론을 통해 "문서 전체를 서술고정한다. 토론을 통해 추가 서술이 가능하다. 단\, 오타 및 문법적 오류를 수정하는 것이나 나무위키에서 인정되는 제도권 언론사의 보도 내용을 기사 링크와 함께 서술하는 것은 예외로 한다"(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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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아버지 박길보
비판 및 논란 비판 및 논란 (자질 및 행보)
사건 사고 성폭력 사건 · 사망 사건 (논란) · 텔레그램 메시지 공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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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박원순의 별명 중 '스나이퍼 박'에 대한 문서이다.

2. 상세

파일:스나이퍼 박.png
파일:Screenshot_20200512-110233_Gallery.jpg
[1]
(유시민: 박 시장님한테 함부로 고래고래 소리치면 안 되겠구나)
저 인터넷에 보니깐, 저 보고 스나이퍼 박이라고. 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그냥 나 앞에 얼쩡거리는 사람들은 다 가더라구요.
(유: 최근에 황교안 대표가 광화문광장에서 많이 왔다갔다 하셨잖아요)
네, 조금만 기다려보시죠.
자기에게 삿대질하던 정무수석 현기환이 몇 달 있다 감옥 갔다고 말하며. #[2][3]
선거에서 맞붙는 거물 보수 인사들마다 이겨서 타격을 주거나 그의 앞에서 얼쩡거리는 사람들은 다 골로 간다고 하여 지지자들 사이에서 붙은 별명이 '스나이퍼 박'으로, 본인도 이 별명을 알고 있어 유시민과의 대담에서 농담 소재로 삼았다. 민주·진보 진영에서는 '새누리당 킬러'라고 부르면서 칭송하기도 했다. 자세한 내용은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화젯거리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 나경원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때 박원순에게 패배했다. 이때 멀쩡한 의원직만 날린 데 이어 "피부 관리에만 1억 원을 갖다 붓는 사람"이라며 이미지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4] 서울시장 선거 낙선 후 약 3년간 변호사 생활을 하며 야인으로 지내다가,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서울특별시 동작구 을 지역구에 출마해 3년만에 국회로 돌아오며 재기하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노회찬김종철의 야권 단일화 실패로 인해 야권 표가 분산되어 반사이익을 본 것이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며 실제로 노회찬과 1000표가 채 되지 않는 표 차이로 힘겹게 누르며 당선에 성공했다. 이후 2016년 20대 총선에서도 동작구 을에서 다시 당선되는 데 성공했지만 비호감 이미지를 쌓아가다가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오세훈과 마찬가지로 정치신인을 상대로 패배하며 낙선했다.[5]
  • 정몽준 역시 2014년 6회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의 자리를 놓고 박원순에게 도전했으나, 패배했다. 정몽준은 이때 패배한 이후로 탈당하고 사실상 정계를 은퇴한 상태다. 그런데 라디오 스타에서 박원순 본인이 한 말에 따르면 사적으로는 친한 사이라고 하는데, 서로 목욕탕에 같이 갈 정도라고 한다(...). 참고로 박원순은 현대그룹의 자문 변호사를 맡은 적도 있었다. 실제로 토론은 서로 언성조차 높이지 않을 정도로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정몽준은 이후 박원순 사망 후 빈소에 모습을 드러냈다.
  • 강용석[6]은 2011년에 박주신이 병역 비리를 저질렀다고 큰소리쳤다가 박주신이 출석해서 공개 신체 검사를 하자 데꿀멍하고 발언에 대한 책임으로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7] 그리고 2012년 19대 총선 당시 같은 지역구에 무소속 출마했으나, 민주통합당 정청래 후보와 새누리당 김성동 후보에 훨씬 못 미치는 4.29%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했다. 그리고 2018년 불륜 사실이 법원에서 인정되면서 이미지를 구기게 되었다.
  • 김문수와 사실상 보수로 전향한 안철수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 바른미래당 후보로 출마해 박원순과 맞붙었는데, 2배 이상의 격차로 박살난 데 이어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게도 밀려 3위로 낙선했다. 심지어 안철수와 김문수의 표를 합해도 박원순의 표보다 많이 모자란 결과가 나오면서 설령 단일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서울시장 탈환은 무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8][9] 그 이후 안철수는 한동안 정계를 떠났다가 복귀하여 국민의당을 창당했으나,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단 3석만을 획득하는 데 그쳤다.[10]

[1] 위에 있는 제시 리버모어의 발언은 정치인으로서의 시장(市長)이 아닌 경제학에서의 시장(市場)을 의미한다. 일종의 언어유희인 셈.[2] 현기환엘시티 게이트로 2016년 구속되어 다음 해 실형을 선고받았다.(중앙일보)[3] 인터뷰로부터 약 10개월 후 황교안은 21대 총선에 출마해 종로구에서 이낙연에게 대패했고 당의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으로 미래통합당 대표직을 사퇴한 이후 기성 정치권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4] 그러나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나경원/비판 및 논란, 박원순/비판 및 논란/자질 및 행보 문서 참조.[5] 단, 오세훈은 정확히 1년 후에 서울시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경원도 잠시 재정비를 거친 뒤 2024년 22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였던 동작구 을에 재출마, 민주당 후보를 약 9% 차이로 누르고 당선, 국회로 복귀했다.[6] 다만, 이 당시 강용석은 새누리당 소속이 아니었다. 2010년 아나운서 발언 논란으로 인해 한나라당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이다.[7] 다만, 당시 국회의장박희태가 전당대회 돈봉투를 돌린 사건으로 인해 사퇴하여 사직서가 수리되지는 않아 의원직을 유지했다.[8] 다만, 김문수지난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부겸에게 패배했을 때 이미 정치 생명이 끝나 회복이 불가능한 타격을 입었다는 의견이 많고, 이번 서울시장 선거 출마도 당선이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시키고 당을 위해 희생하는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더군다나 당시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에 열린 허니문 선거였다 보니 더불어민주당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선거였고, 반대로 탄핵 여파가 여전히 남아있던 자유한국당에게 매우 불리한 선거였는데 이 상황에서 안철수보다 높은 표를 획득한 건 나름 성과를 보였다고 할 만하다.[9] 만약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가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와 단일화를 했어도, 20대 중 안철수 지지자들 중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로 이탈했을 유권자들이 많았을 것이다.[10] 그러나 2년 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실시된 2022년 6월 재보궐선거에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3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에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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