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1-24 02:50:11

설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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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투스의 수능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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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설민석(偰民錫)
출생 1970년 10월 2일 ([age(1970-10-02)]세)
본관 경주 설씨
신체 168cm
가족 아버지 설송웅, 아내, 아들[1]
직업 역사 강사
학력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 학사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 역사교육[2] 전공
종교 개신교(침례회)[3]
태건(太建)

1. 개요2. 강의 특징3. 저서4. TV 출연
4.1. 수상
5. 논란
5.1. 단편적인 역사 해석5.2. 역사적 사실과 다른 강의 내용
5.2.1. 3.1민족대표 33인 룸살롱 발언
6. 기타

1. 개요

대한민국의 한국사 강사, 작가, 방송인.

작가 겸 이투스의 1위 한국사 강사. 단꿈교육[4]의 대표이사로 방송인으로도 활동 중이다. 대중들에게 딱딱하게 다가올 수 있는 한국사를 재밌고 알기쉽게 풀어주는 강의로 유명하며, 현재 대중에게 가장 영향력있고, 인지도가 가장 높은 역사 강사 중 한명이다. 한국사 필수 세대 3명 중 2명이 설민석 강사의 강의를 듣는다고 할 정도로 설민석은 역사 강사중에서도 압도적인 인지도를 자랑하는 강사다.

단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역사교육학 석사)을 졸업했다.# 이때문에 비판항목에 서술되었듯 전문적인 지식 부분에 있어서는 오개념이 발견된다.

2002년경부터 2006년까지 이투스에서, 2007년에서 2009년까지 메가스터디에서, 그리고 2010년에는 EBSi에도 출강했다가 이투스로 복귀해서 현재까지도 출강중이다. 역사 강의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뮤지컬 명성황후 덕분이었다고. 뮤지컬을 보고 나서 감명을 받아 국사 공부를 시작하였고, 여러 준비 끝에 학원에 입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2. 강의 특징

수능 기준으로 6차 교육과정 시기였던 2003년까지는 한국사뿐만 아니라 윤리, 한국지리, 사회문화, 정치, 경제 등을 포함하는 공통사회 강사였지만 7차 교육과정 수능이 첫 선을 보인 2004년부터는 한국사에만 전념하고 있다. "전국에 계신 수험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신뢰의 이름 태건 설민 석입니다."[5] 라고 한 뒤 강의를 시작한다. 단 인터넷 강의용 인사이고, 영화 해설 강의 등 국민을 대상으로 올리는 영상에서는 "우리 역사를 사랑하시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들 안녕하십니까. 설민석 선생입니다."로 시작한다.

강의스타일은 대체로 막 공부를 시작하거나 흥미가 없는 학생들에게 최적화되어 있다. 다른 인기강사들에 비해 세부사항을 암기하는 방법들을 자주 알려주는 편. 갑자사화를 설명할 때 '엄마의 원수 갚자', 신미양요를 설명할 때 "미미광어"[6](...)로 알려주는 식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사 강사 중에서도 인기가 많고, 유튜브에 올라오는 영상들을 보면 "재밌게 잘 가르친다"는 평이 많다. 타 강사들에 비해 방송출연이 잦은 편이라 대중인지도도 높다. 한국사가 학생들에게 인기있는 과목이 아닌 만큼, 입문자의 흥미유발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다. 괜히 한국사를 대중화시킨 1등 공신으로 뽑히는 게 아닌것.

수업을 위해 직접 해당 지역으로 가서 보충영상을 찍는다. 고려청자를 테마로 도자기 제작 영상을 찍기도 했고 역사적 테마를 정해 백두산, 독도, 제주도강화도를 다녀와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해외동포 자녀들에게 한국사를 알리는 재능 기부활동도 하고 있다. 단꿈교육이나 유튜브, 이투스 홈페이지에 가면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장방문 촬영은 황현필 역시 벤치마킹 했으며, 설민석과 항상 엮이는 강민성 역시 이에 영향을 받아 연말에 직접 현장 답사를 나가 응원영상을 찍어온다. 과거에는 주로 역사과목을 가르칠 때 암기를 중시했으나 현재는 흐름에도 신경을 쓰면서 강의를 가르친다.

3. 저서

  •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2016, 세계사)
  • 버림받은 왕자, 사도 (2015, 휴먼큐브)
  • 설민석의 첫 출발 한국사 (2015, 휴먼큐브)
  • 한 권에 잡히는 한국사 (2015, 진학사)
  • 전쟁의 신, 이순신 (기적의 승리, 명량) (2014, 휴먼큐브)
  • 역적의 아들, 정조 (2014, 휴먼큐브)
  •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 (2014, 휴먼큐브)
  • 설민석의 한국사 대모험

4. TV 출연

TV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왔다. 출연 행적들을 보자면,

4.1. 수상

5. 논란

5.1. 단편적인 역사 해석

설민석이 한국사 대중화에 기여한 공로는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실제로 설민석처럼 강의를 위해 여러 곳을 답사하고 찾아가는 강사도 드물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설민석이 이른바 '국뽕' 또는 아시아 중심주의에 심취해, 역사를 단편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 설민석이 단순히 수능 강사로 머물렀다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대중에게 노출 빈도가 높고 많은 인기를 끄는 인물이 편향적이며 단편적인 역사 해석을 남발하는 것은 대중의 역사 인식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어쩌다 어른'에서 설민석이 콜롬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명나라 정화의 원정을 비교한 적이 있다. 여기서 설민석은 정화가 29년 동안 7회 항해한 반면 콜롬버스는 두 달만 항해했다며, 정화를 콜롬버스를 뛰어넘는 최고의 탐험가라고 주장했다. 역사를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단순화 시켜 바라본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는 발언이다. #

영화 인천상륙작전 개봉 전 홍보 강의에서는 더글라스 맥아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완전히 배제한 강의를 올린적도 있다. 당시 SNS에는 학생들이 맥아더를 마치 위대한 영웅처럼 여기는 게시물들이 다수 올라왔다. 이처럼 대중에 대해 큰 영향력을 가진 [7] 설민석의 단편적인 역사 인식은 일반 대중의 역사 인식에도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한국사를 대중화시킨 설민석의 노력과 공로는 충분히 인정하지만 이런 부분에서는 가장 유명한 한국사 강사인만큼 설민석 강사 본인 스스로도 생각해 봐야 될 부분이다.

5.2. 역사적 사실과 다른 강의 내용

설민석은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역사교육을 전공한 강사다.[8] 따라서 역사를 전문적으로 전공한 강사나 학자에 비해서 크고 작은 오류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다.설민석 강사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역사 전공이 아닌 단국대 연극영화과 출신이다. 이 덕분에 설민석의 강의는 다른 강사들과 차별화된 재밌고 이해하기 쉬운 강의로 많은 대중들에게 한국사를 대중화시켰다. 그러나 이때문에 크고 작은 오개념들이 발견되곤 한다. 딱딱하고 지루한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서 설명하며, 이를 대중화한 설민석의 공은 높이 살만 하지만, 알기 쉽게 전달하려다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거나 엉뚱하게 설명하는 경우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대중에게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역사 강사 중 한명인지라 이러한 크고 작은 오류들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광해군에 대한 지나친 고평가 1 2 3 [9], 간도 영유권 주장, 한국전쟁 당시 중국인민지원군인해전술 운운[10], 안시성 전투양만춘 운운[11][12], 치하포 사건 피해자의 신분을 군인으로 특정하는 등[13] , 온돌의 한민족 기원설[14], 스페인 독재자 프랑코의 레알 마드리드 특혜 등 실제 역사적 사실과 다른 내용들을 논한 사례가 있다.

5.2.1. 3.1민족대표 33인 룸살롱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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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설민석은 저서와 강의 중에서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이 '룸살롱'인 태화관에서 낮술을 마셨고 손병희는 마담 주옥경과 사귀었다."라는 발언을 한 적 있다. 이 일로 인해 민족대표 유족들은 진실을 왜곡했다면서 설민석을 상대로 사자명예훼손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조사 결과 검찰은 "룸살롱과 마담은 현대식 표현으로 말한 것이며, 낮술 운운한 것은 다소 과장되어 말한 것이므로, 고의성이 없다"라는 이유로 고소를 기각했다.[15]

2018년 11월 14일 민족대표 33인 유족회에서 설 강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5부(부장판사 이동욱)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2017가 합 526348). 유족회 측은 "설 씨가 지난 2014년 민족대표 33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했다"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었다.

재판부는 당시 상황을 기술한 일부 역사서 중에선 당시 민족대표들의 처신에 대해 일부 비판적 관점을 가진 경우도 있어서 그런 취지 발언이 설민석만의 독자적 역사 인식이라고 단정 짓기도 어려운 만큼 부득이 허용할 수밖에 없는 범위 내에 있다는 것이라고 판단을 하지만, 민족대표들이 1920년대 대부분 친일로 돌아서게 된다고 언급한 데 대해선 명예훼손이라고 보았다.

당시 33인 중 3명을 제외하곤 3.1운동 가담으로 인해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각자 나름대로 독립운동을 펼쳐 나갔거나 적어도 친일반민족 행위라고 평가할 만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 거사 당일 이완용 단골집인 룸살롱에 갔다고 표현하는 등 새롭게 건설한 대한민국으로부터 건국훈장까지 추서, 수여받은 인물에 대해 심히 모욕적 언사로서 필요 이상으로 경멸, 비하 내지 조롱하는 등 역사에 대한 정당한 비평의 범위를 일탈해 그 후손들이 선조에게 품은 합당한 경외, 추모 감정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지적하였다.

재판부는 설 강사가 손 아들에게는 200만 원, 손자에게 150만 원, 증손자에게 100만 원, 현손자에게 50만 원, 그 밖의 민족대표 유족들에게 위자료를 1인당 25~100만 원으로 해서 총 1,4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였다. 링크 재판부가 특정인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는 사례는 극히 드문데[16], 그만큼 설민석의 발언이 역사적 진실을 뒤로 하고 도를 넘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6. 기타

  • 서울태생으로 종교는 개신교이며, 성씨는 사성 경주 설씨[17]로, 수백년 전에 고려귀화한 위구르족 명신 설순의 후손이다.
  • 이 설민석 문서는 단꿈교육 측의 요구에 의해 2번이나 문서 임시조치 이후 삭제된 적이 있었다. 이 임시조치에 대해 단꿈교육 측은 '불명의 단체가 악의적으로' 내용을 작성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임시조치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내용 전체삭제도 수 차례 있었다.
  •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설송웅의 아들이다.[18] 세간에는 아내가 제자였다는 얘기가 있었으나 이는 전혀 사실무근. 설민석 아내는 설민석의 강의를 들은적이 단 1도 없다. (설민석 가까운 지인에게 직접 확인) 2015년생 아들을 두고 있다.
  •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 당일의 강의에서는 "그런 사유로 대통령이 탄핵될 정도라면, 역대 대통령들은 전부 죽을 죄를 지었다는 얘기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역사 강사들은 정치적 관점이 드러난다는 점 때문에 현대사 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에 굉장히 신중한 편인데, 설민석은 때때로 소신을 밝히곤 한다. 그러나 현재는 이를 의식했는지 한능검 강의 등 강의에서 정치적인 내용이 나오면 그에 대한 판단은 여러분께 맡기겠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자주 한다.
  • 선을 넘는 녀석들 11회 예고에서 나무위키를 언급하는 장면이 나왔다.[19] 숨겨진 위키니트?
  • 고등학생이나 공시생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들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선을 넘는 녀석들에서 부여의 초등생들이 설민석을 알아보고 환호하는 장면이 나온다. 좋아하는 이유는 잘생기고 역사공부에 도움이 되어서라고...방탄역사단 SMS
  • 자기 관리가 매우 철저하다. 식사는 견과류와 고구마,치즈와 과일 등을 자주 먹으며 필라테스로 몸관리를 철저히 하고 이동 중에도 역사 공부를 한다. 또한 담배,술,커피는 안한다고 한다. 특히 체중관리를 소수점까지 관리하는데 고등학교때 100kg대의 비만이였는데 계단도 잘 못올라갔다고 하는데 그 때 '내가 잘못되면 어쩌지...'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이어트를 하고 현재도 철저히 관리한다고 한다. 심지어 짜장면집 가서도 자신이 싸온 도시락만 먹었다. 모델인 배정남조차 놀랄 정도.

[1] 2015년생 ([age(2015-12-31)]세)[2] 역사 전공이 아니다[3] MBC 선을 넘는 녀석들 방송에서 고등학교 시절 침례를 받았다고 밝혔다. 또한 수원중앙침례교회의 한 행사에 축사를 하기도 하여 침례교 출신임이 간접적으로 밝혀진 적도 있다.[4] 구 태건에듀[5] 보통 "설민"을 말하고 잠시 쉬었다 "석"을 말하는 방식이다.[6] 미국의 미, 신미양요의 미, 광성보의 광, 어재연의 어를 딴 암기용 문구이다. 이 문구가 인강으로 나올 때는 항상 CG로 광어가 어디선가 튀어나오는 장면을 넣어준다. 그 질이 갈수록 업그레이드된다.[7] 실제로 이투스 홈페이지에도 수능 한국사 필수 세대의 학생들 3명중 2명이 설민석과 함께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학생들의 대부분이 역사에는 관심이 없어도 설민석 강사는 아는 학생들이 많다. 이렇게 정말 막강한 인지도 덕분에 설 강사의 발언 하나하나가 학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8] 거기에다 학부 과정이 아닌 교육대학원에서 석사과정으로 역사교육학을 전공했다.[9] 중립외교론 운운은 물론 대동법의 선구자와 같은 묘사를 한다. 심지어는 영화 남한산성을 다루면서 "광해군이 중립외교로 인해 반대파들에 의해 실각한 것"이라 논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광해군 문서를 읽으면 알 수 있겠지만 지나친 비약이다.[10] 기존에 한국에서 널리알려진 것과 달리 참전 당시 중국군의 규모는 1제대 26만, 2제대 8만 정도의 규모로 군사의 수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북진작전 시 약 33만 명 규모였던 유엔군에 비해 압도적이지는 않았다. 중국군은 기동우회를 통해 한국군 등 아군의 약한 고리를 습격하는 방식으로 우위를 달성했는데, 중국군의 규모를 6~7만으로 오판한데다가 중국군이 싸움을 피한다고 착각한 유엔군이 중국군의 유인에 말려들어가 우회포위 당하고 각개격파되면서 중국군은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설민석은 원래 중국 하면 삼국지! '지략이 뛰어나다' 생각하기 쉽지만, 그런 것 다 필요없어요. 그냥 전술 하나, '인해전술'입니다라며 유엔군의 패배가 단순히 중국군의 수적우세에서 비롯된 것이고 중국군은 인해전술 왜 다른 전술도 진술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무기 숫자보다 군인 숫자가 더 많았다'는 속설을 인용해 3명 중 1명에게만 소총을 주고 나머지에게는 피리와 꽹과리를 주었다(...)라고 중국군을 숫자만 많은 오합지졸로 묘사했다. 이는 중국군 인해전술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예이다. 당장 대한민국육군협회에서 발간한 우리가 겪은 6.25전쟁에서 미군의 중공군에 대한 평가가 나오는데, 야전축성, 위장 능력이 뛰어나며 산포와 박격포 운용이 인상적이라고 보았다. 보급면 등에 대해선 원시적인 군대를 못 벗어난다는 평가는 덤 물론 엄밀한 의미에서 설민석이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다. 중공군의 전술적 지향점은 확실히 인해전술이 맞았고 적어도 중국에선 대외에 그렇게 인식되도록 열심히 심리전을 했다. 하지만 그보다 상위 차원의 전략적 움직임에 대해선 전혀 이해가 없었던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11] 안시성주의 이름을 대놓고 양만춘이라 말한다. 그러나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것은 명나라 시기로 안시성주의 이름을 정사에서 확인할 길은 없다. 삼국사기에서조차도 안시성주의 이름이 전해지지 않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이 표시되고 있다. 참고로 같은 이투스의 최태성은 양만춘이라는 기록이 있었지만 정확하지 않다고 선을 긋는다.[12] 2020 수능 강의에서는 이를 의식했는지 야사 기록이라고 미리 말해준다.[13] 김구가 일본 상인, 즉 민간인을 살해하고 돈까지 뺏었으나, 설민석은 김구가 육군 중위를 살해한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역사는 교차 검증이 필수인데, 그 일본인이 장교라는 증거 사료는 백범일지 이외에 그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설민석은 김구 이야기를 할 때 자료를 백범일지에서 얻는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생긴 오류인듯 하다.(그나마도 이광수에 의해 왜곡된 것으로 추정) 게다가 피해자 쓰치다 조스케가 상인이라는 건 학계에서 이미 2000년대가 되기 전부터 알려져 있던 사실이다. 대한제국 시절에도 이 일을 우리나라가 배상한 적이 있다. 어디까지나 이미지를 위해 백의사 건도 그렇고 덮으려할 뿐 자세한 사항은 항목 참조.[14] 온돌의 원형은 만주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 그 연대가 고구려대이기 때문에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추정하기로는 고구려'만의' 고유한 문화가 남쪽으로 전파된 것이 아니라 만주에 존재하던 집단들(고구려 포함)이 사용하던 난방방식이 국가를 이룬 고구려에서 크게 보급되고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15] 현행 형법상 사자명예훼손을 포함한 대부분의 법조항은 고의범을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고의가 없으면 원칙적으로 범죄는 성립되지 않는다. 과실치사라는 반례를 들 수 있겠으나, 이는 살인과 상해에 관하여 과실범을 처벌하는 법 조항(형법 266조~268조)이 별도로 있기 때문에 성립하는 것이며, 과실로 인하여 살인죄나 상해죄 자체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과실범의 규정이 따로 없는 대부분의 범죄는 그냥 무죄일 뿐이기에, 검찰 측이 적어도 법리적으로는 타당하게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가령, 과실로 사람의 물건을 훔쳤다고 하더라도 '절도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과실 절도라는 법 조항도 없으니 그냥 무죄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자명예훼손은 고의범이고, 과실범을 처벌하는 별도의 조항이 없으니 당연히 무죄이다. 특히 명예훼손의 경우 공인에 대한 부분은 매우 엄격하게 심사하므로, 사실 법조인 중에 설민석의 위 발언이 유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16] 제국의 위안부나 이덕일 사건 같은 경우를 봐도, 언제나 재판부는 "학술의 범위"라며 뒤로 물러나는 태도를 취해왔다.[17] 설씨 자체도 희성이지만, 설씨의 90% 이상이 순창 설(薛)씨인것과는 달리 그는 楔을 쓴다. 현재 전국에 약 3,000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18] 해당 인물의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한 때는 민주화 운동에 몸 담았으며 민주당계 정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력이 있다.[19] 조선왕조실록을 다름아닌 조선의 나무위키에 비유했다! 나무위키는 21세기의 조선왕조실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