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19:57:33

불타는 그라운드

1. 스포츠 리얼 드라마 방송2. 만화
2.1. 개요2.2. 스토리 전개


불타는 버스와는 무관하다

1. 스포츠 리얼 드라마 방송


문학구장 소요사태제목으로 예언(...)하였다

OBS경인TV에서 선보이고 있는 본격 스포츠 리얼 드라마. 연고구단인 SK 와이번스를 구성하고 있는 선수들과 코칭스탭을 중심으로 한 리얼 다큐다.
2008 시즌 개막을 앞둔 3월 20일부터 방영하였으며, 초기에는 금요일에 방영되다가 월요일 10시로 옮겨서 10월 13일까지 방영하였고, 다음 해 4월 6일부터 OBS에서 시즌2를 방영하였다. 시즌1은 자체제작 시즌2는 외주제작이다. 나레이션은 엑스파일의 멀더 목소리 연기로 유명한 성우 이규화[1]가 맡았다. OBS가 안 나오는 곳이면 OBS on air와 네이버 스포츠 야구면을 통해 볼 수 있다. 곰TV로도 시청할 수 있다.

처음에 방영되었을 때는 다소 불안불안한 모습과, 광고가 하나도 없는 안습함을 보였으나, 프로그램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인 후에는 OBS 내에서도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이 되었으며, 광고도 꽤나 붙었다. 구성 자체도 꽤나 안정되어서 꽤 재밌는 프로가 되었다.

야구 팬들은 그라운드 밖에선 선수들을 직접 만날 수 없기에, 선수들의 개인사나 훈련 모습 등 알 방법이 없었던 것들을 보여주기에 인기가 꽤 높다. 원래 시청 대상인 SK 팬들 뿐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찾아볼 정도. 같은 야구를 다룬 프로인 뭔데이랑은 차원이 다르다.

2008년 8월 25일자에서는 한국야구계 n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빵 사건'이 방영되었다. 하지만 빵재홍이 막판에 직접 언급하였으나 음성변조 & 모자이크 처리로 안타깝게도 진실규명은 또다시 미뤄지다가 결국에는 KBSN 스포츠의 옐로우카드 51회에서 이재국 야구전문 기자가 빵해영임을 폭로(…)하였다.[2][3]
홈구장에 LG롯데, 기아처럼 팬이 많은 원정팀이 찾아오면 원정이 홈 관중보다 많은 사태도 심심찮았는데, 불그와 SK의 고공행진에 힘입어 홈팬 수가 엘롯기와 비슷할 만큼 많이 늘었을 정도. 위에서도 말했듯이 선수, 코치, 감독의 개인사나 훈련 등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러나 친근하고 감동적으로 잘 보여주었기 때문... 허나, 방송에서 보여지는 선수들간의 "매우" 친한 행동과 육체적인 스킨십 때문에 SK 와이번스에스게이, 게이번스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야구 팬들이 많아졌다고 한다.
아무래도 인천 지역 민방에서 만든 SK중심의 편파적인 시각을 담고 있기 때문에 타 구단 팬들에게는 이미지가 매우 나쁘다.

예고편에서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보지 말고 본방사수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 아무래도 안습의 OBS에서 그나마 잘나가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2011년 8월 18일, 김성근 감독의 사임 후, 삼성과의 경기가 끝나고 문학구장 소요 사태가 발생하면서 이것이 정말로불타는 그라운드의 새 시즌이라는 드립이 난무했다. 오오 시즌3

2019년 7월 들어 OBS에서 공식 유튜브를 통해 클립 형태로 끊어서 방송분을 올리고 있다. 여기서 시청가능
문제는 7월에 올린 영상들이 윤길현 욕설 파문, 김성근 혹사 논란, 박재홍 공필성 욕설 논란타구단 팬들 입장에서 매우 민감한 사건들이고 영상이 SK위주의 매우 편파적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다. 더군다나 OBS채널 측에서 부정적인 댓글은 삭제하거나 차단을 먹이고 SK선수들에 호의적인 댓글만 남겨놓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나 박재홍 논란 같은 경우 1회를 풀영상 하나, 1부 2부로 나눠서 또 올리고, 클립 영상을 또 올리고 동일 영상을 여러번 반복해서 올리면서 같은 내용 영상이 6~7개나 올라왔기 때문에 고의적으로 타팀 팬덤을 자극해서 조회수를 올리려는 목적이 아니냐는 말 까지 있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 중간 중간에 소리가 안나온다.

2. 만화

2.1. 개요

파일:attachment/불타는 그라운드/firea.jpg

이원복의 1975년도 작품.

이원복 극화체 만화중 최고의 작품. 근육의 묘사(특히 허벅지)가 굉장히 리얼하다. 그가 먼나라 이웃나라같은 교양만화만 그린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는 지금도 별로 흔치 않은 고교 데뷔를 했던 만화가이고, 한때는 이런 쪽으로 무척 잘 그렸다. 그냥 계속 이 길을 걸었더라도 허영만, 고우영 수준까지 충분히 올랐을 것이다. 다만 그 후로 독일 유학을 가서 공백기가 있었고(하긴 유학가서도 만화는 줄기차게 그렸지만, 나올 때는 독일에서 보내준 원고를 토대로 대필을 거쳐 완성되었다.) 그 후로 그림 공부 과정에서 유럽식 그림체를 의식한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를 단행본으로 정리하여 내놓은 게 그만 초유의 대박을 치는 바람에, 극화체 만화와는 이후 완전 결별하고 말았다[4]. 그의 명랑만화 그림체에도 비슷한 경향이 나타나는데, 1974년작 <푸른 꿈은 가득히>와 1975년작 <유쾌한 호마군>을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다만 현재 시점에서 아쉬운 점을 꼽으라면 일본만화의 영향이 좀 보인다는 것. 특히 치바 테츠야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캐릭터들이 몇 명 나온다. 그러나 당시 아직 신인이었고, 저작권이 지금처럼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였다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이 작품은 여타 반공만화와도 차원이 다른데, 간첩이 나오지는 않지만 남북 분단 상황을 스토리의 중요한 계기로 삼아서 제법 복잡한 인간 관계를 통해 고교 축구부 세 개의 라이벌 구도를 그린 축구 만화이며 최정문과 민영태의 갈등이 주 요소이다.

내용적으로는 반공적인 색채가 상당히 강한데, 이는 이원복 개인이 어렸을 적 한국전쟁을 직접 겪은 피해자인 터라 반공 성향이 있었다는 걸 보여준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원복 만화에는 기본적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가 깔려 있으며, 이것은 사회민주주의 국가를 이상향으로 삼던 독일 유학생 시절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5].

2.2. 스토리 전개

일제 시기 소작인의 아들이던 최정문에게 주인집 아들인 민영태가 나타나 축구를 가르쳐준다. 지주 계급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던 최정문은 인간적인 민영태를 만나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게 된다. 그러다가 최정문은 몇 번의 오해로 스승인 민영태를 사지로 몰아넣게 된다. 특히 가장 첨예한 갈등은 북한군의 서울 점령 시기였다.

사악한 모습의 북한군 장교는 최정문에게 '악질 반동 축구인'으로 찍힌 민영태를 잡아오라고 명령을 했다. 스승을 체포해야 한다는 소리에 최정문을 그럴 수 없다고 말했지만 야비한 북한군 장교는 "너무 걱정할 것 없소. 그를 체포하더라도 결코 죽이지는 않소. 그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친다면 조국을 위해 축구를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기회를 줄 것을 약속하오."라고 하여 최정문을 회유한다. 이를 믿은 최정문은 민영태가 은신한 비밀 장소로 북한군을 안내한다. 그 자리에서 민영태의 체포를 막으려던 아내와 딸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된다.

그럼으로써 최정문은 국가대표 축구선수로 승승장구했지만, 나중에 민영태를 공산당에 밀고한 사실이 폭로되어 국대를 떠난 뒤 일용직 노동자로 전락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난 민영태가 귀국함에 따라 그 둘은 각각 제일고와 청운고 감독으로 새 야망을 불태우는 걸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1] 중간에 한번 엑스파일 컨셉으로 멀더와 스컬리가 나레이션하는 에피소드를 만들었다. 단, 스컬리 역할을 원래 하던 성우 서혜정이 아닌 박희은이 맡았다.[2] 근데 다시 KBS2 방송 두드림에서 이종범에 의해 현역선수 임을 밝혀 용의자에서 벗어났다! 빵 사건 항목 참조.[3] 그런데 결국엔 빵해영이 맞는 걸로 결론이 났다...[4] 하지만, 이후로도 극화체로 된 컷은 후속작에서도 계속 등장한다. 먼나라 이웃나라 프랑스 편만 봐도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시민들에게 봉기할 것을 촉구하는 모습이 나온 장면이 옛날의 극화체로 그려졌으며, 미국 대통령편에서 빌 클린턴 부분의 마지막 컷이 극화체로 그린 클린턴의 얼굴상이다.[5] 독일 사회민주당의 탄생 배경과 냉전 시대 당시의 독일의 현실에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사민당 자체가 독일 공산당과의 분열과 대립 속에서 탄생한 정당이며, 이것이 나아가서 현대 사회민주주의가 탄생하는 배경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서독에 잠깐 존속했던 공산당은 무려 스탈린주의를 지향하고 있었는데, 막 아돌프 히틀러나치 독일의 강압적인 체제에서 벗어난 독일인들에게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진 당이 나왔다는 것이 좌우파 관계없이 충공깽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졌고, 이로 인해 공산당이 강제해산조치까지 받기도 했다. 거기다가 동독과의 대립관계도 있으니, 당시의 독일에서는 아무리 좌파 성향이 강하더라도 공산주의라면 히스테리 수준으로 싫어할 수 밖에 없었다. 이원복은 이 시기의 독일에서 생활하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