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0 00:27:05

구자운

구자운의 수상 이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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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1

두산 베어스 등번호 45번
이용호 (1993~1998) 구자운(1999~2004) 척 스미스 (2005)
다니엘 리오스 (2005~2006) 구자운(2007) 이성열(200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60번
정대욱(2007) 구자운(2008) 임익현(2009~201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52번
이동걸(2007~2008) 구자운(2009~2011) 이동걸(201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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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구자운(具滋雲 / Ja-wun Ku)
생년월일 1980년 6월 19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강남초-강남중-서울고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고졸우선지명 (OB 베어스)
소속팀 두산 베어스(1999~2007)
삼성 라이온즈(2008~2011)

1. 소개2. 프로 선수 시절3. 여담4. 연도별 성적

1. 소개

두산 베어스,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투수.

2. 프로 선수 시절

서울고를 졸업하고 1999년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두산 베어스에 입단했다. 입단 후 중간계투로 등판하다 2000 시즌 후반 선발로 전환해 갑작스레 선발로 전환한 것 치고는 좋은 성적을 기록한다.

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좋은 피칭을 보이지 못했다. 2000년에는, 2차전에서 패전투수, 5차전에서는 5회에 수비진이 무너지자 멘붕이 왔는지 5실점을 했다.

2001년은 그나마 나았는데, 2차전은 5이닝 2실점으로 그나마 잘 막았지만, 5차전에서는 불쇼를 해, 10점차 패배에 일조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새가슴이었다고 봐야할듯.

2003 시즌에는 당시 마무리 투수였던 이리키 사토시가 부진하자 이리키와 보직을 맞바꾸게 되었다. 마무리로 활약하다가 2004 시즌에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시즌이 끝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다. 소집해제 후 복귀해 몇 경기 나오다 어깨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어깨 부상이 심각해 시즌 후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 후 구단과 연봉 때문에 마찰이 있었다. 구단 측에서는 재활로 다음 시즌을 뛸 수 없으니 보류 수당을 받아야 한다고 했고 구자운이 가혹한 처사라며 그에 반발했다. 결국 수술비의 절반을 구자운이 내는 조건으로 자유계약선수로 풀렸고 이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영입했다.

2008 시즌을 재활로 보내고 2009 시즌 후반에야 복귀했다. 2군 경기에 5경기 등판하고 9월 22일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만 마운드에 오르진 못했다.

2010 시즌 들어서는 2군 선발 투수로 나왔는데[1] 5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삼팬들에게 원성을 샀다. 6월 26일에는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려 1경기에 등판하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후반기 들어서는 성적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해 2010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는 들지 못했지만 2010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었다.[2]

구자운은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2⅓이닝 1피안타 3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한국시리즈의 깜짝 활약으로 2011 시즌도 기대하게 했으나, 스프링캠프 중 오른쪽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귀국 후, 6월이나 7월이 돼야 정상적으로 등판할 수 있다고 했지만, 8월 26일 2군 경기에 등판했다. 이후 9월 6일에도 두번째로 등판하고 2011 시즌 경기 출장은 끝. 시즌 종료 후 보류선수 제외명단에 올랐다.

은퇴 후로는 서울 송파구에서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후 사야이 2019년 3월 8일자에서 밝혀지길 5화에서 유영태에게 투수 레슨을 해준 사람이라고.[3]

아마 시절의 활약에 비해서, 프로에서는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3. 여담

  • 동갑내기인 권오준과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다. 특이하게 둘 다 프로에 입단하면서 45번을 달았다.[4]
  • 이름 때문에 축구선수 구자철과 형제가 아닌가 하고 오해를 받았지만 아니다. 항렬자가 같은 것일 뿐.[5] 물론 구자욱과도 상관없다.
  • 청소년대표팀 시절 현재 축구해설가인 김정남과 배터리를 이룬 적이 있다.

4.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1999 두산 베어스 18 25⅔ 1 1 1 - 5.96 21 15 23
2000 42 98⅓ 6 6 3 12
(2위)
2.01 72 42 99
2001 13 54⅓ 6 2 0 0 4.80 56 31 46
2002 32 133 8 8 1 0 3.79 134 65 95
2003 48 95 4 9 18 0 4.17 98 33 64
2004 54 47⅔ 4 5 32
(3위)
1 3.59 45 13 39
2005 군복무(공익근무)
2006
2007 6 17⅓ 2 1 0 0 2.08 13 10 11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8 삼성 라이온즈 1군 기록 없음
2009
2010 1 3 0 0 0 0 6.00 1 3 3
통산 214 474⅓ 31 32 55 13 3.66 440 212 380


[1] 원래 삼성에서 구자운을 영입할 때 계투로서 활용하기 위해 영입했으나 부상 부위가 어깨다 보니 무리시키지 않기 위해 선발로 기용한 것이다.[2] 뜬금없는 발표에 모두 의아했는데, 양일환 2군 투수코치가 선동열 감독에게 추천한 것이었다.[3] 5화 연재 당시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4] 덩치가 큰 구자운이 45번을 단 것을 보고 마른 체격의 권오준도 자신도 45번을 달면 마운드에서 무게감이 있어 보일 것 같아서 그렇게 한 것.[5] 여담이지만 아들대 항렬자는 . 그래서 항렬자를 붙여서 지어진 구자운의 아들 이름은 연기자 이름과 같은 구본승이다. 물론 구자운 말고도 구씨 중에서도 이런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 예로 성우 구자형삼성 라이온즈구자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들 친구들 중에도 구자ㅇ나 구본ㅇ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한 학년에 한두명 정도는 존재한다. 참고로 경제계를 대표하는 야빠로 소문난 한국 굴지의 재벌그룹 회장님이시자 모구단 전 구단주아저씨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