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3-30 17:31:24

이두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한국의 래퍼이자 가수에 대한 내용은 팻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external/pds.joins.com/htm_20121221195859593.jpg
거포 유망주로서 촉망받던 두산 베어스 시절.[1]
이름 이두환(李斗煥 / Doo-hwan Lee)
생몰년도 1988년 3월 16일~2012년 12월 21일
출신지 서울특별시
학력 서울수유초 - 이수중 - 장충고
포지션 1루수, 3루수[2]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7년 2차 2라운드 (전체 10번, 두산)
소속 팀 두산 베어스 (2007~2011)
KIA 타이거즈 (2012)

1. 개요2. 프로 시절
2.1. 2008 시즌 ~ 2011 시즌
3. 요절

1. 개요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의 내야수. 등번호는 44번(두산) - 98번(KIA)[3].

고교시절 차세대 거포로 인정받으며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에도 차출 되었고 2006년 U18 야구 월드컵 때에는 필요한 순간마다 홈런을 때려내며 팀 우승에 일조, 대회 1루수 부분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후 두산에서도 퓨처스를 폭격하는 등 1군에서도 종종 기회를 받고 있던 거포 유망주였다.

2. 프로 시절

2.1. 2008 시즌 ~ 2011 시즌

윤석민, 최주환 등과 함께 두산의 차세대 거포 유망주로 꼽혔으며, 입단 후 두산 2군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며 기대를 모았다. 2군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연도 타수 타율 출루율 장타율 홈런
2008년 317 .293 .359 .493 12
2009년 198 .258 .327 .414 7
2010년 271 .362 .394 .646 21

2010년 2군리그 퓨처스 올스타전 이전까지는 2군 홈런 선두였으나, 그 후 1군으로 승격되면서 2군 홈런왕 타이틀을 최주환에게 내주었다. 1군 승격 후 13경기에서 타율 .320 1홈런 6타점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0년 준 플레이오프에서 1, 4차전에 대타로 출장하여 2타수 1안타, 타율&장타율&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2연패 뒤 3연승으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2011년에는 부상(봉와직염) 등으로 인하여 1군에 오르지 못해 큰 활약은 보이지 못하였으나, 2군에서는 타율 .314 3홈런의 기록을 남겼다.

문제는 그놈의 멘탈. 멘탈이 강하다 못해 너무 오만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다. 인터뷰에서 지나친 자신감을 표출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 두산 시절에는 전임 두산 2군 감독이 박종훈이었을 때 분위기가 살벌했다는 말로 박 감독을 살짝 디스하기도 했고, KIA로 이적했을 때는 바로 친정 팀 두산을 후회하게 해 주겠다는 뉘앙스의 감상을 날렸다. 또한 두산 시절 2군 경기를 직관한 두산 팬들은 그의 불성실한 태도를 지적하기도 하였다.

또한 장충고 시절부터 잦은 부상에 시달렸다는 점도 발목을 잡았고, 이 때문인지 병역 문제 해결에도 골머리를 앓아야 했다. 2010년과 2011년 상무에 지원하였지만 2년 연속으로 탈락.

2011년 11월 22일 KBO 2차 드래프트KIA 타이거즈로 이적했다. 두산 팬들 중 일부는 40인 보호선수 명단에 왜 이두환을 넣지 않았냐고 의아해하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두환의 멘탈유리몸을 문제로 삼으며 갈 선수가 갔다는 반응을 보였다. KIA 팬들은 팀 내에 거포 유망주가 많지 않았던 터라 환영을 했고, 본인도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기에 그렇게 KIA에서 자신의 기량을 만개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3. 요절

암(골육종)이 발견되었다. 골육종이 그의 발목을 잡았고, 기량을 터뜨리지 못한 채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012년 1월 서울특별시 노원구 공릉동 원자력병원에 몇 주씩 입원하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KIA 타이거즈 관계자는 한동안 사유에 대해서 함구하고 있었다가, 선수 본인이 대퇴골두육종 진단 판정을 받고 입원 치료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자신의 상태를 공개했다.[4] 쉽게 말해서 뼈에 암이 생긴 것. 이에 홍보 팀에서는 초기에는 본인이 병명 공개를 꺼려하여 공개하기 어려웠다가 치료를 받은 뒤에 자신의 상태를 공개한 뒤 팬들의 격려를 받겠다고 나서면서 공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양현종과 함께 병원에서 찍은 사진 이후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 재활을 하기로 계획, 이로 인하여 병역면제 처리를 받았다.

수술을 받은 후 전망은 밝았다고 한다. 수술 직후 호사방지기의 말은 이랬다.
"수술 담당의는 대퇴골두 부위에만 종양이 있으며, 종양이 전이된 곳은 없다면서 수술 후 상태가 매우 좋고, 나이가 젊어 회복 속도도 빠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증상이 악화되어 결국 다리 절단수술을 받았다. 이로써 선수로서의 생명은 완전히 끝났다. 더군다나 전 소속 팀인 두산 베어스에서나 사실상 신고선수로 전환해 버린 KIA 타이거즈에서도 그에게 지원을 거의 해 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타까움을 더하였다. 이 사실을 안 야구 팬들은 팀을 불문하고 이두환 선수를 돕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였다. 2012년 12월 12일, 두산 선수단에서 자선행사를 개최한다는 사실이 발표되었다. 15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쿼터백'에서 일일카페 개최

암세포가 다리뿐만 아니라 폐에도 전이되면서 이젠 생명 자체가 위험해진 상황이라고 기사에서 알려졌으나, 이두환 선수의 친구라는 한 네티즌이 생명이 위독한 건 아니며, 대화, 전화도 무리없이 가능한 상태라는 반박 댓글을 달면서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그 이후 여러 기사가 나면서 암 세포가 남아있긴 하지만 생명이 위독할 정도는 아니라는 주장도 나왔지만, 이후 비교적 경미했던 폐 전이 암세포가 점점 악화되고, 양쪽 폐 모두에 전이되면서 인공호흡기를 써야하는 상황까지 간 끝에 결국 2012년 12월 21일 향년 2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마침 이 날은 이두환과 동기였던 야구 선수들이 모여 자선 경기를 치르기로 한 날이었는데, 마침 내린 눈 때문에 경기는 하지 못하고 기념 사진만 촬영했다. 그 와중에 임태훈은 이두환을 잊지 말자는 글을 싸질러 고 송지선 아나운서는 잊어버렸냐며 까였다.


2차 드래프트로 KIA에 옮겼으나, 안타깝게도 오랜 투병 기간으로 KIA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 적이 없기 때문에 KIA 공식 홈페이지에는 합성사진으로 올라와 있었고 결국 기아 유니폼을 입지 못한 채 그라운드를 등지게 되었다. KIA 팬들은 공식 홈페이지에 있었던 이두환의 합성 사진으로 KIA 유니폼을 입고 필드 위에 서는 이두환 선수를 추억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두환이 떠난 이후, 그의 동료였던 선수들이 이두환을 기억하며 일일카페를 열거나 경기에 등장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대표를 같이 지냈던 양현종이재곤, 그리고 1년 선배 황재균의 경우에는 모자에 이두환의 이니셜 'DH'를 새기고 마운드에 오르면서 이두환을 추억한다고 한다.#

이후 2014년 초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인 노진규가 같은 병으로 투병하면서 골육종이 다시 한 번 알려지게 된다. 노진규 선수도 몸 속의 암덩어리를 다 긁어 냈으며, 수술도 잘 된 편이었으나 그도 2016년 4월 3일에 끝내 숨지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 다 24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2017년 골든글러브 시상식 이후 양현종이 인스타에 친구 이두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올렸는데, 무려 9개월만의 인스타 활동이었다. 그리고 2019 시즌 개막을 앞두고 다시 한번 메시지를 남겼다.


[1] 오랜 투병 기간으로 KIA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선 적이 없기 때문에 결국 기아 유니폼을 입지 못한 채 그라운드를 등지게 되었다.[2] 고교 시절에는 포수 마스크를 쓰기도 했다.[3] 하지만 암 치료로 인하여 실제로 98번을 달고 경기에 나선 적은 없었고, 결국 호라시오 라미레즈의 대체 외국인 선수였던 헨리 소사가 98번을 가져가게 된다.[4] 육종으로 진단받았다는 시점에서 악성 종양으로 확정되었다고 보면 된다. 상피세포의 악성 종양은 암종이고 비상피세포에 발생한 악성 종양이 육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