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7 00:33:56

최채박

1. 개요2. 역사
2.1. 등장 배경2.2. 2008~2010 시즌2.3. 2011 시즌2.4. 2012 시즌2.5. 2013 시즌2.6. 2014 시즌2.7. 2015 시즌2.8. 해체
3. 이후4. 성적5. VS 놀이6. 트리비아7. 관련 문서


파일:최채박.jpg

1. 개요

2008년부터 2015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한 최형우-채태인-박석민으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이었다. 이후 이승엽나바로도 여기에 합류해 클린업 펜타를 이루기도 하였다.

2. 역사

2.1. 등장 배경

최형우는 2002년 신인드래프트에서 2차 6라운드 지명을 받았던 포수로 타격에 비해 수비에 약점을 보였고 결국 2005시즌 후 팀에서 방출당하고 만다. 방출된 뒤 경찰청의 창단 멤버로 합류해 2년차엮던 2007년에는 2군 북부리그 타격부문 7관왕을 기록하며 완벽하게 씹어먹었고, 이때 마침 경찰청 경기를 보러 간 덩치 큰 왼손잡이를 대단히 좋아하는 김응용 사장이 "쟤 아직 우리 소속이지?"하고 같이 간 삼성 프런트 직원에게 물었고 깜짝 놀란 프런트 직원이 부랴부랴 계약에 나섰다. 최형우는 예전에 같이 뛰던 친구들 생각에 삼성과 계약했다. 방출된 팀에 다시 입단한 드문 케이스.[1]

채태인은 원래 투수로 메이저리그 팀과도 계약했던 유망주[2]였지만 타자로 전향한 뒤 1군에서는 선풍기질만 반복하던 타자였다. 반전의 계기가 되었던 것은 2007년에 처음 열린 2군 올스타전에서 MVP를 받게 된 것. 그 뒤 시즌 후반 1군에 다시 올라와 8월 2일 대구 LG전 8회에 대타출전해 우규민에게 1군 데뷔 첫 홈런을 때려내면서 선동열 감독의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3][4]

박석민은 대구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정상급 타자로 주목을 받았으며, 2004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게 된다.[5] 당시 삼성이 박석민에게 기대했던 것은 공격보다 수비였으며 실제로 대수비요원으로서 1군 생활을 시작하게 되고 2004년 한국시리즈, 2005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도 들기도 했지만 기대만큼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2005년 시즌 종료 후 군복무를 위해 상무에 입대했으며 2007 시즌 종료 뒤 삼성 라이온즈에 복귀하였다.[6]

2003 시즌까지 이마양이라는 역대 최고의 클린업을 보유했던 삼성 라이온즈는 2003 시즌 후 이승엽이 일본 진출, 마해영은 FA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는 바람에 클린업에 공백이 생겼고 이를 외국인 타자와 심정수의 영입 등으로 메울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08시즌 전 선동열 당시 삼성 라이온즈 감독은 양준혁-심정수-제이콥 크루즈로 클린업 트리오를 구성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셋 다 네임벨류면에서 최고였기 때문에[7] 팬들은 제 2의 이마양을 기대했다. 그렇기에 유망주이기는 했어도 최채박은 1군에 올라와도 자리가 없을 것으로 보였으나...

먹튀 심정수는 다시 무릎 부상을 당해서 또 수술을 받게 되었고[8], 아킬레스건 통증이 있던 제이콥 크루즈는 우익수가 아닌 1루수로 뛰게 되었는데 20홈런을 넘긴 전년도에 비해 장타력이 급감하면서 결국 5월 중순에 퇴출됐다.그리고 대체 용병은... 양준혁도 노쇠화 기미를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가는 등 결국 개막한지 한 달도 안되어 양심크는 해체되어 버린다.[9] 이 때 선동열 감독은 과감하게 최형우, 채태인, 박석민을 클린업 트리오로 기용하기 시작했고, 전설이 시작된다.

2.2. 2008~2010 시즌

세 명은 선동열감독이 의욕적으로 밀어주면서 1군 경험을 많이 쌓아나갔고 세 명 모두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하면서 삼성의 새로운 클린업 트리오로 자리잡았다. 특히 좌타 대타 및 백업 외야수로 시즌을 시작한 최형우는 주전 우익수로 자리 잡고 전 경기에 출장하면서 홈런 5위에 올라 신인상까지 수상했다.[10] 박석민도 현재의 유리몸 이미지와는 달리 전 경기에 출장했다.

불과 전년도까지만 하더라도 주축 타자들의 노쇠화로 노인정 타선이란 말을 들었고[11], 또한 시즌 초반부터 김한수의 은퇴, 심정수의 두번째 무릎 수술, 제이콥 크루즈의 퇴출, 양준혁의 부진 등 부정적 요인이 부각됐지만 그러한 분위기를 일신했다. 이러한 타선의 세대교체가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팀의 오랜 가을잔치의 역사가 단절될 수도 있었다.

이듬해인 2009년, 세 명 모두 전년대비 성적이 향상되었고 신명철강봉규20-20클럽 가입과 양준혁의 부활로 팀 공격력이 강해졌으나... 진갑용의 부상과 투수진의 붕괴로 결국 팀은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했다. 특히 최형우는 가을 야구 싸움이 한창이던 9월에 타율 1할대로 심각한 부진을 겪어 잉여라는 부정적인 별명을 얻기도 했다.

2.3. 2011 시즌

2011년 각성한 최형우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클린업이 망했기 때문에 이를 까는 용도로 만들어 졌다. 특히나 3할 아니면 20홈런은 기본으로 치던 박석민도 망했다.

2.4. 2012 시즌

2012년에는 박석민이 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 이번엔 최형우가 폭망했다. 그리고 고통받는 채태인

2.5. 2013 시즌

그리고 2013년 채태인이 천재로 돌아오면서 셋이 타율 0.328, 58홈런, 227타점을 합작해내 이마양의 아성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당년도 리그 전체에서는 최강 클린업 트리오로 통하는 등 드디어 문제가 해결 됐다 했더니 이번에는 이마양의 ""를 책임지는 분이 멸망하고 말았다(...)

2.6. 2014 시즌

하지만 2014년, 2015년 드디어 채최박과 이승엽이 모두 터지며 팀타율 .301, .302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12]

2.7. 2015 시즌

파일:클린업 펜타.png

2.8. 해체


박석민은 2015 시즌 이후 FA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최형우는 2016 시즌 이후 FA로 KIA 타이거즈로 이적했고, 채태인은 2016 시즌 중에 넥센 히어로즈김대우와 트레이드 되었다가 2018 시즌 전에 사인 앤 트레이드 형식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여담이지만 2014~2015 시즌에 채최박과 함께 클린업 퀸텟을 이루던 이승엽은 2017 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고, 나바로는 2015 시즌 이후 팀을 떠났다. 이로써 채최박을 이루던 뿔뿔이 흩어지면서 채최박은 해체되었다.

3. 이후

최형우는 이적 첫 해 리그 정상급 성적을 기록하면서 KIA 타이거즈의 통합우승을 견인하자 KIA 팬들에게 '국밥' 대신 '이맛현'이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나 그 다음해였던 2018년 노쇠화 기미를 보이며 부진하자[13] 다시 국밥이라며 까이는 중이다. 그나마 시즌 중반부터 장타가 잘 나오고 있지만 최근 몇 년보다는 확실하게 성적이 하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막상 시즌이 끝나고 보니 2017년과 2018년의 성적은 거의 차이가 없었다.

채태인은 2016년에는 2할 후반대의 타율로 그저 그랬으나 2017년 전반기에 엄청난 몰아치기를 하며 20홈런도 가능할 것이라며 기대를 모았으나 시즌 후반 부상과 부진으로 달성에 실패하였다. 그리고 사인 앤 트레이드 방식으로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뒤 2018년에는 이대호와 1루를 같이 맡으며 쏠쏠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롯데 팬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박석민은 이적 첫 해였던 2016년에는 본인 최초로 3할 30홈런 100타점을 기록하며 NC 다이노스의 첫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쾌거를 만들어 냈다.[14] 그러나 그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2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하고 홈런도 20개도 기록하지 못하자 NC 팬들에게 먹튀로 까이는 중이다. 2019년 팀의 4번타자를 맡기도 하는등 타격성적이 확실히 좋아졌다.

4. 성적

4.1. 최형우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삼성 라이온즈 126 384 .276 106 24 0 19
(5위)
71 68 3 54 .487 .364
2009113 415 .284 118 24 0 23 83 70 1 62 .508 .375
2010121 420 .279 117 29
(4위)
1 24 97
(4위)
71 4 79 .524 .389
2011133 480 .340
(2위)
163
(3위)
37
(2위)
3 30
(1위)
118
(1위)
80
(4위)
4 81 .617
(1위)
.427
(3위)
2012125 461 .271 125 27 1 14 77 51 2 60 .425 .348
2013128 511 .305 156
(2위)
28
(3위)
0 29
(2위)
98
(2위)
80
(4위)
2 54 .530
(3위)
.366
2014113 430 .356
(5위)
153 33
(4위)
0 31
(5위)
100 92 4 57 .649
(4위)
.426
2015144 547 .318 174
(5위)
33 1 33
(5위)
123
(5위)
94 2 82 .563 .402
통산
(8시즌)

4.2. 채태인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삼성 라이온즈 68 248 .266 66 12 1 10 42 32 1 21 .444 .322
2009 118 368 .293 108 26 2 17 72 58 0 54 .514 .382
2010 102 356 .292 104 13 0 14 54 48 0 35 .447 .353
2011 53 182 .220 40 7 1 5 28 25 1 34 .352 .339
2012 54 135 .207 28 7 0 1 9 15 1 23 .281 .321
2013 94 299 .381 114 15 0 11 53 52 4 43 .542 .459
2014 124 492 .317 156 38
(2위)
1 14 99 69 1 43 .484 .368
2015 104 333 .348 116 19 0 8 49 35 0 36 .477 .408
통산
(8시즌)

4.3. 박석민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8 삼성 라이온즈 126 416 .279 116 27
(2위)
1 14 64 65 2 73 .385 .450
2009 97 295 .285 84 17 0 24 62 63 0 71 .416 .586
2010 112 356 .303 108 18 0 15 64 58 3 91 .440
(2위)
.480
2011 128 457 .278 127 24 3 15 86
(4위)
74 3 72 .374 .442
2012 127 443 .312
(4위)
138 19 3 23
(4위)
91
(2위)
79
(5위)
2 99 .433
(2위)
.524
(5위)
2013 117 396 .318 126 24 0 18 76 61 4 75 .425
(4위)
.515
(4위)
2014 110 356 .315 112 21 0 27 72 77 0 66 .419 .601
(5위)
2015 134 448 .321 144 25 0 26 116 90 3 102 .441
(3위)
.551
통산
(8시즌)

4.4. 이승엽

  • 2012~2015 시즌만 기재.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루타 타점 득점 도루 사사구 장타율 출루율
2012삼성 126 556 488 .307150
(4위)
28 2 21
(5위)
245 85
(5위)
84
(3위)
6 63 .502 .384
2013111 483 443 .253 112 24 0 13 175 69 62 3 32 .395 .298
2014127 548 506 .308 156 30 0 32
(4위)
282 101
(5위)
83 5 40 .557 .358
2015122 522 470 .332 156 28 1 26 264 90 87 2 46 .562 .387
통산
(4시즌)

5. VS 놀이

KBO 역대 최고의 클린업이었던 이마양이나 우동수에는 밀리는 편이지만 2년 정도만 활약했던 앞의 둘과는 다르게 이쪽은 무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존속했었다. 채태인이 부진했던 2011[15], 2012 시즌[16]을 제외하더라도 6년이다. 거기에 2014 시즌부터는 이승엽나바로도 앞뒤를 받쳐주며 무려 5명이 클린업 역할을 소화한 무시무시한 타선이었다.
2011년, 2012년은 두 명씩 말아먹었었고 2013년에는 셋 다 잘했으나 채태인의 포텐이 터질듯 하나 부상으로 주저 앉았다. 결국, 제대로 가동이 된 시기는 2014 시즌과 2015 시즌 두시즌에 불과 하였고 2008년부터 ~ 2010시즌 까지의 최채박 타선은 타팀에 비해서 평타였고 최형우박석민만 채태인에 비해서 타격이 더 좋았었다.

최채박과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넥센 히어로즈이택근-박병호-강정호의 일명 LPG 트리오는 2014 시즌에 최채박보다 더 훌륭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강정호가 곧바로 해외진출을 해버리면서 1년만에 해체되었고, NC 다이노스나성범-이호준-에릭 테임즈로 이어지는 일명 나이테 트리오는 2014 시즌 셋 다 골고루 잘해주었지만 2015 시즌에는 테임즈가 사기캐로 진화했지만 나머지 둘은 전년에 비해 부진했다. 그리고 이후 2016 시즌 후 테임즈가 메이저리그로 가버리며 4년만에 해체되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최채박 세 명만의 임팩트는 다른 클린업에 밀릴지라도 8년 동안이나 이어졌을 정도로 꾸준함이 있었고, 이승엽[17]과 나바로[18] 등 최채박을 받쳐주는 거포 타자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파괴력은 상당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이들은 2011년부터 2015년 까지 이어진 삼성 라이온즈 왕조(스포츠)의 주역들이다.[19] 그러기에 우승 횟수만큼은 다른 클린업과의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이기에 역대급 클린업으로 불릴 이유는 충분하다.

6. 트리비아

2012년에 이승엽이 복귀하면서 2년 전에 은퇴한 양준혁에 대해 아쉬워하는 삼성팬들이 많았다. 이유는 단 몇 개월만 더 버텼으면 노장도 우대해주는 류중일 감독이 부임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양준혁도 저런 아쉬운 은퇴는 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 또는 일부 팬들은 선동열이 재계약 실패하고 2009년 가을야구 진출 실패를 이유로 잘렸더라면 하고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렇게 되었다면 2010년에 양준혁이 은퇴하진 않았을 것이고, 그리고 이승엽이 2011년에 복귀하면 양준혁-이승엽이라는 97년도 라인업을 다시 볼 수 있었기 때문. 덧붙여서 2010년에 한국시리즈에서도 0:4 관광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었기도 했고[20] 이게 다 선동열 때문이다 게다가 선동열은 당시 '"이승엽 삼성 와도 자리없다."'는 희대의 어그로를 끌면서 이승엽이 삼성으로 못 돌아올 뻔하게 만든 원흉이 되기도 했다. 때문에 LG 트윈스 팬들이 인맥드립을 치면서 이승엽이 정떨어진 삼성에 안 갈 거라는 소리를 하고 다니기도 했다. 일명 엘승엽. 때문에 이승엽은 2010 시즌 후 삼성 복귀를 계획하다 그 계획을 한해 늦춰야만 했고 결국 이승엽과 양준혁이 현역으로 재회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7. 관련 문서



[1] 여담으로 이 때 삼성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것에 대한 최형우의 답변은 "날 버린 팀을 후회하게 해 주려고."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본인을 영입하려다가 그만둔 팀들로 표적을 바꾼 듯 하다.[2] 이것도 위에 최형우 처럼 김응용님께서 영입... 역시 사람 보는 눈은 다르시다.[3] 채태인은 시즌 후 인터뷰에서 "노리고 들어간것이 아니라 그냥 나다가가 띵~ 하고 맞은거라 맞는 순간 평범한 플라이겠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상대 우익수 정의윤이 계속 뒤로 가길래 설마설마 했는데 넘어가더라"라고 밝혔다[4] 이전까지 1승 0패 24세이브, ERA 1.20에 WHIP가 1도 되지 않는, 오승환과 세이브왕 경쟁을 하고 있던 우규민이 이 한 방 이후 블론 세이브의 왕이 되었다.[5] 당시 포철공고 포수 강민호와 저울질하다가 김한수의 대체재로 뽑았다고 한다.[6] 야빠들이라면 지금의 박석민의 몸매를 생각하면 안된다. 과거 안지만처럼 마른 선수였다.[7] 심정수는 2007시즌 홈런왕, 양준혁과 크루즈는 모두 20홈런을 남겼다.[8] 결국 이로 인해 33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은퇴를 선언해버린다. 현재, 미국에서 두 아들을 뒷바라지 하고 있다. 지금은 KBO에서 지도자를 할 생각은 없는 듯하다[9] 이 타선이 해체되고 뒤를 이은 최채박 타선이 가동되기 까지 무리한 불펜 야구를 하다가 이듬해 안지만오승환이 나란히 박살이 나고 윤성환, 권혁, 정현욱등이 고생을 하였고 얘네 빼면 뒤에 있던 조원수박차가 또 말썽을 부려 팬들의 뒷목을 부여잡게 만들어줬다.[10] 당시 최고령 신인왕 기록이었으며 이 타이틀은 2016년 신재영에 의해 경신되었다.[11] 2007년 당시 2001년에 데뷔한 대졸신인 박한이가 야수조 막내였을 정도였다.[12] 여담으로 삼성은 최채박 세명의 타격을 믿고 2014년부터 반드시 1명 이상을 뽑아야 하는 타자 용병을 타격은 다소 아쉽지만 수비에 강점이 있고 준족 스타일인 선수로 뽑았다. 그런데 수비형 용병이라고 뽑았는데 수비도 잘 하고 타격은 더 잘하는 괴물이 되어버려 통합 4연패에 크나큰 공헌을 했다.[13] 타율, 출루율은 거의 그대로였으나 장타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14] 다만 세이버 스탯으로는 별로 좋지 못한 성적이었다.[15] 이때는 박석민도 부진했다. 전반기 까지는 그럭저럭 좋았으나 체력의 문제인지 2할 8푼 언저리에 20개 미만의 홈런을 기록했었다. 세이버로 평가하면 박석민은 평균아래였고 채태인이 심각한편.[16] 최형우는 활약을 했었지만, 전년도에 비하면 대폭 까인 성적이였다. 팀에서 가장 빛난 타자는 박석민이였다.[17] 삼성 2기의 이승엽은 1기 시절과 달리 하위타순 또는 상위타순 멤버였다.[18] 2014년도는 주로 1번타자로 출전했으나 1번타자로서 30홈런을 기록하는 등 엄청난 파괴력을 보여주면서 2015 시즌에는 클린업 트리오로 이동하였고 홈런 48개와 137타점을 기록했다. 홈런 48개는 KBO 역대 한 시즌 2루수 최다 홈런이자 역대 외국인 타자 최다 홈런기록이기도 하다.[19] 공교롭게도 최채박이 해체된 직후인 2016년부터 삼성 라이온즈는 암흑기에 빠졌다.[20] 다만 셧아웃 관광도 중요도는 있지만 이승엽의 복귀와는 주제가 살짝 맞지 않는다. 어차피 2010년까지 이승엽은 요미우리와 계약된 상태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