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8 11:58:20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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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31대 32대
성 김 마크 리퍼트 해리 해리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Mark_Lippert_Secretary.jpg
이름 Mark William Lippert
마크 윌리엄 리퍼트
출생 1973년 2월 28일
정당 민주당
직업 보잉 부사장 前 주한 미국 대사
종교 개신교(성공회)
학력 스탠퍼드 대학교 정치학 학사
스탠퍼드 대학교 대학원 국제 정치학 석사
중국 베이징대학 중국어 석사
블로그-리퍼트 가족의 한국 이야기
트위터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공직 입문2.3. 해군 예비역으로 임관2.4. 주한대사 부임2.5. 이임
3. 2015년 피습4. 야빠
4.1. 2015년4.2. 2016년4.3. 2017년4.4. 2018년4.5. 2019년
5. 기타

1. 개요

미국의 정치인, 관료. 주한미국대사관에서 주한미국대사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재직하였다. 미국 민주당 소속.

본래 부임 당시에는 한국에서 그다지 인지도가 높지 못한 편이었지만, 후술할 피습사건, 그리고 다양한 대외활동 덕분에 이제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되었다. 특히 한국의 야구팬, 그 가운데서도 두산 베어스 팬들 사이에서는 아주 유명하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1973년 2월 28일에 미합중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태어났다. 스탠퍼드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 동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석사 학위를 받았고 대학원 재학시절 국제교류프로그램을 통해 베이징대학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기도 하였으며, 당시 중국이름으로 리모카이(李模楷이모계)를 쓰기도 했다.

2.2. 공직 입문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탐 대슐 상원위원과 민주당 상원정책위원회 외교 및 국방정책 보좌관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05년까지 상원세출위원회 산하 국무·외교업무소위원회 전문위원으로서 해외원조와 안보지원에 대해 패트릭 리히 상원위원을 보좌했다.

2005년에 버락 오바마 당시 상원의원의 외교안보 보좌관이 되고, 2008년 오바마 대통령 선거캠프에 참여하여 이라크 미군철군공약등을 기안하는등 외교안보에 대해 오바마 후보를 보좌했다. 오바마 행정부 출범 이후인 2009년 1월부터 NSC 비서실장으로서 오바마 대통령을 보좌하였다.

2012년부터 2014년에는 국방부 아태안보담당부차관(Assistant Secretary of Defense for Asian and Pacific Security Affairs)과 국방장관 비서실장(Chief of Staff to the Secretary of Defense) 등을 지냈다.

2.3. 해군 예비역으로 임관

2005년에는 미합중국 해군 예비역에 등록했고 정보장교로 직접임관했다.[1] 이것은 미국의 특이한 군 제도중 하나인데, 군 생활을 처음부터 예비역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예비군과는 달리 절반쯤은 상비군 개념이라 훈련강도나 일수가 적지 않고, 특수부대나 조종사 같은 전문직도 존재한다. 심지어 꾸준히 진급해서 장군/제독까지 갈 수도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인데 한국에서 이 나이에 장교 지원하려면 간부사관 말고는 거의 방법이 없다.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예비역으로 이라크에 가서 네이비 씰 소속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동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그후 다시 예비역으로 돌아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근무하다가 2009년 10월부터 201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되어 DEVGRU에서 다시 복무했다. 이분 최소 테러리스트 조지러 온 위장요원인 듯

2.4. 주한대사 부임

2014년에 주한미국대사로 부임했다. 주로 주한미국대사에 외교통 출신들이 보임된 것에 비해 그는 거의 첫 국방부 출신 대사이다. 물론 외교업무도 병행해온 사람이다.

리퍼트는 한국 사랑이 각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미국 정가에서 잘 알려진 친한파이다. 자신의 한국 생활을 SNS나 블로그를 통해 자주 공개했고, 한국어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014년 10월 부임 당시 임신 6개월의 부인을 대동하고 입국했는데, 한국에서 태어난 첫 아들에게 '제임스 윌리엄 세준 리퍼트'(James William Sejun Lippert)라는 한국식 미들네임을 붙였다. # 주한 미국대사가 임기중 한국에서 아이를 낳은 것은 처음인데다 아이의 이름이 사주를 봐서 정한 것이라는 것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았다. 세준은 洗俊, 정직하고 깨끗한 삶을 사는 특출난 인물이 되라는 의미이다. 한국에서 태어난 딸에게도 마찬가지로 캐롤라인 "세희" 리퍼트(Caroline Saehee Lippert)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洗希는 세상을 바르고 깨끗하게, 희망을 가지고 살라는 의미라고.

리퍼트 대사는 굉장히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으며, 각종 한미동맹 행사에도 꼭 참석하고서도 미 대사로서 특별한 의전이나 경호도 없이 한국 사람들과 친근하게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친해지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아시아투데이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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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6일 서울 용산 국방부 육군회관에서 한미동맹친선협회가 연 행사에 참석해 전인범 특전사령관(왼쪽 둘째)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리퍼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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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28일에는 서울광장에서 개최된 제 16회 퀴어문화축제를 방문하여 관계자들을 격려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피습 당시 쾌유를 기원하며 부채춤을 추었던 보수 기독교 단체가 근처에서 동성애 반대 집회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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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퀴어문화축제때도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핀란드, 덴마크, 독일 대사관 관계자들과 함께 참석하여 행사 관계자들에게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며 격려하였다. 살이 1년새 좀 빠졌다.

대한민국 해군 제19호 명예 해군으로 위촉했다.#

2.5. 이임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가 취임하면서 주한대사 직위에서 물러났다.

마크 리퍼트는 전임자인 성 김이나 캐슬린 스티븐스, 알렉산더 버시바우 같은 전문 외교관이 아닌 정치인 출신으로, 좋게 말하면 오바마와의 친분 등을 고려한 인사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냥 낙하산이었기 때문이다.낙하산이지만 능력있는 낙하산 이런 정치인 출신 외교관들은 정권이 바뀌면 대부분 자리를 내놓는 것이 관례이다.

1월 6일, 고별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느닷없이 취소했는데, 트럼프가 자기 취임일(1월 20일) 이전에 정무직 외교관들 다 짐싸서 귀국하라는 지시를 내렸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교가는 황당 그 자체의 반응을 보였다. 물론 민주당 계열 정치인 출신 대사들이 물러나야 하는 것도 관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임도 안정해진 상태에서 제대로 된 인수인계나 행정절차 없이 무작정 귀국을 지시하는 것은 반대로 관례를 한참 벗어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임기가 정해진 외교관 출신 대사가 아닌 이런 정무직 대사들은 본국에서 후임이 결정되고, 그 후임에 대하여 주재국의 아그레망 절차가 끝난 후에 이임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후 리퍼트는 다시 일정을 잡은 기자회견에서 한국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고 아들과 딸이 태어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현재 한미동맹은 최상의 관계임을 강조하고, 이후로도 한미관계 개선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힌 후 1월 20일 귀국했다. 귀국 전 마지막 1주일동안에도 열심히 활동하여 후임이 없어서 생길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한편 트럼프는 여전히 후임자를 안 정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정권이 공백상태이고, 조기 대선에서 누가 당선될 지 모르는데 섣불리 대사를 임명할 수 있냐며 대선이 끝난 후에야 후임을 임명할 것이라고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미정상회담까지 끝난 상황인데도 주한미대사관의 업무는 신임 대사 부임 없이 일년 가까이 마크 내퍼 대사대리가 담당하고 있는 상황. 원래 빅터 차 한국계 미국인 미국 전략문제연구소 한국 석좌교수가 신임 대사로 노미네이트되었지만 2018년 1월 31일 별안간 내정을 철회하였다. 내정 철회에 대해서는 명확한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일각에서는 빅터 차 내정자는 북한 문제에 관해서 강경파 이지만 외교부 내에서 더한 강경파 이견으로 인하여 낙마했다는 설을 제기했지만, 사실인지는 불분명하며 이미 빅터 차의 기고문이 있기 이전에 내정 철회가 확실시 되었기 때문에 후보자의 프라이버시를 고려해서 검증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 더 사실에 부합해 보인다. 아무튼 이로 인해서 마크 내퍼 대사 대리가 계속 대사관 역할을 수행한다. 아니 이럴 거면 그냥 유임을 시키지 결국 후임대사는 6월이 되어서야 해리 해리스로 결정되었다.

공직에서 물러난 리퍼트는 같은해 4월 24일 보잉사 외국정부 담당 임원으로 채용되었다.

3. 2015년 피습

2015년 3월 5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강연을 준비하던 중 김기종에 의한 암살기도가 있었다. 자세한건 주한미국대사 피습 사건 항목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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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선거운동, 당선 후 정권인수 등에도 참여하는 등 측근 인사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2014년에 국무부에서 리퍼트가 신임장을 받고 선서를 할 때 이례적으로 동석했다. 피습을 당하자 바로 전화 통화를 하기도 했을 정도. 그런데 그가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되었을 당시, 한국 내 언론에서는 리퍼트가 불과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국회의원, 고위직 외교관이 아닌 보좌관급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 "이런 듣보잡을 대사로 보내다니, 미국이 한국을 무시하나?"는 식의 반응을 나타낸 바 있었다.

이런 반응은 테러범인 김기종발언에서도 드러난다. "작년 10월에 부임한 마흔 갓 넘은 또라이가 어떻게 우리나라 통일정책을 감당할지 안타까워서 그랬다". ...물론 이 말을 한 사람의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또라이 짓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참고로 역대 주한 미국대사 가운데 가장 경력이 화려했던 인물은 러시아 대사를 지냈던 알렉산더 버시바우(2004~2008년 재임)다.

하지만 이젠 역대 주한 미국대사들 중에 가장 유명한 인물이 될 듯하다. 그 뿐만 아니라 평소의 친한파 이미지와 피습에 대한 의연한 대처, 그리고 오바마의 최측근이라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한국인에게 가장 호감도 높은 주한미국대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이 사고는 리퍼트 개인으로서는 목숨이 위태로웠던 불행한 사고이지만, 정치인 리퍼트로서는 동맹국내에서 일어난 돌발적 적색테러에 의연히 대처한 미국 대사라는 스토리가 생기면서 오히려 정치적 입지가 더욱 굳건해지게 되었다. 아직 창창한 젊은 나이의 한국외교 전문가라는 포지션인 만큼 향후 유력한 시나리오인 힐러리 클린턴의 당선을 통한 민주당 정권 계승이 성공하게 되면 이 사람의 한국에서의 영향력은 더 증대될 것이다. 이런 친한파 거물급 정치인을 계속 잡아두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도 중요하다.그러나 힐러리는 장렬하게 낙선했다

피습 직후에도 어떠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주변인들에게 "나는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라고 하면서 이성적인 대응을 보여줬다. 손가락에 작은 상처만 입어도 아프고 짜증나는게 사람인데, 심지어 칼로 얼굴에 자상을 입고 피를 흘리면서도 병원에 가는 순찰차에 오르는 순간까지도 침착한 모습을 보여줬고, 수술을 받으러 도착한 세브란스 병원에서 취재를 위해 모여든 기자들에게도 자기는 괜찮다면서 여유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언론에 노출된 모습 그어디에서도 짜증스럽다거나 감정적인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또한 수술을 받고난 이후에도 "같이 갑시다"라는 트윗을 올려 네티즌들로부터 대인배란 찬사를 받았다. 3월 10일 퇴원하는 자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밝게 웃는 모습으로 인터뷰를 했으며, 한국인들이 보여준 성원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동네 아저씨이자 세준이 아빠라는 문장을 한국어로 말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자신의 한국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졌다고 말했다.

피습사건 이후 마크 리퍼트는 미 대사관 관계자들을 모두 소환해 책임을 엄중 문책하였다. 이 자리에는 배석한 모든 인원은 사건 발생에 대해 당시 본인의 보직과 연관지어 해명하는 자리를 가졌고 당시 보안 총책임자 였던 신원불상의 인물은 자신의 저지른 과오에 대해 자아비판의 형식으로 책임졌다는 소문이 있다.

4. 야빠

취미로 대사 하셨던 어느 야버지.

지방 출장때도 그 지방의 야구경기가 있으면, 대부분 직관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포스트시즌에도 지방에 보러 간다.

사실 두산 베어스 명예팬이란다.
(SBS 뉴스) '치맥'에 뜨거운 응원까지…한국 야구에 빠진 美대사
(KBS 뉴스) ‘별난 美대사’ 리퍼트의 특별한 야구사랑
(중앙일보 인터뷰) "나도 한국 야구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의 한국 야구 사랑
(채널A)|리퍼트 美 대사의 못 말리는 야구사랑

야구를 상당히 좋아한다. 스탠포드 대학교 시절에는 야구선수[2]로 활동했었다고 한다. 응원하는 팀은 신시내티 레즈고, 한국에서는 두산 베어스를 응원한다고 한다. 다만 굳이 두산 경기가 아니더라도 지방 출장갔다가 그대로 직관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럴때마다 그 팀 유니폼을 입고 직관하는 모습이 포착되며 디씨 팀갤 일각에서는 세탁트(...)등으로 불리기도 하는 편.

워낙 야구를 좋아하는 양반이다 보니 한국에서도 자주 야구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시구를 하거나 관람을 하는데, 이 때문에 언론에 공개되는 소탈한 모습들은 대부분 야구장을 찾은 모습일 정도다. 참고로 아들인 제임스 윌리엄 세준을 삼성 라이온즈 팬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하는데 2016년 5월 28일 대사관저를 개방했을때 아들에게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히고 등장했다.

4.1. 2015년

  • 2015년 5월 27일에는 마산 야구장을 방문해서 야구를 관람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하필이면 그날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그리고 그전에 또 다른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리퍼트 대사는 NC 다이노스에서 활약중인 에릭 테임즈를 만나고 싶다며 요청했지만 대사가 경기 시작 시간에 임박해서 도착을 했고 때문에 테임즈는 "나만의 루틴이 있다. 경기 준비를 할 시간이라 어렵겠다"고 정중히 사양하면서 "나도 대사(Ambassador)인데"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3] 후에 인터뷰에서 테임즈는 이에 대해서 묻자 "경기 시작 전에 만나자고 하면 안 된다.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누가 와도 난 훈련을 해야 한다"고 대답을 했다고... 이것이 천조국 마인드
  • 2015년 7월 11일, 목동구장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NC 다이노스의 경기를 관람하였다. 제법 유창한 한국어로 인터뷰에 응하였다. MBC 스포츠 플러스의 박지영 아나운서는 따로 영어로 질문할 필요가 없다고 말할 정도다.
  • 2015년 7월 18일, 수원구장에서 열린 KBO 올스타전에서 KBO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되었다.
  • 이전에 '야구 볼때 치맥 좋다'라는 요지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대구에서 열리는 치맥 페스티벌에 초대 받아서 2015년 7월 22일에 페스티벌에도 참가했다. 대구 온김에 대구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 모자를 쓰고 나타나 관중들의 많은 관심을 받으며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를 관람하였다.
  • 2015년 10월 31일 한국시리즈 5차전을 관람하러 왔다.
  • 2015년 12월 8일 골든글러브 시상식에 지명타자 부분 시상자로 참석했다.

4.2. 2016년

  • 2016년 시즌 들어서는 서울은 물론 별다른 스케줄이 없는 주말에 지방 경기장도 자주 찾는 것으로 보인다. 이 항목에서 이 팀들이 언급 안된건 기분 탓이다
  • 4월 23일에는 한화와의 홈경기에서 두산 유니폼을 입고 관전했다.
  • 10월 29일 두산 VS NC 한국시리즈 1차 경기에 두산 올드 유니폼입고 직관하면서 응원하러 먹을때 치맥+김밥+오징어를 좋아하는데 그 중에 치맥을 좋아한다.링크 니퍼트야 힘내라!!!
  • 11월 5일에는 두산이 한국시리즈를 우승하며 시즌이 끝난 마당에 백남기 농민 영결식, 박근혜 하야 촉구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 일대에서 개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는데 정계와 언론계에서는 이를 두고 미국이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런데 산책에 나선 옷차림이 흔한 돡빠 아재[5]의 형상이라 많은 이들은 다른 의미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참고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반응에서 나온 것처럼 미국 정부에선 "강력한 동맹의 특징은 지도자가 누구인지에 관계없이 오래 지속된다는 점"이라는 일반론적인 반응을 보였다.

4.3. 2017년

  • 8월 30일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 롯데의 경기를 관람하였다.#
  • 9월 2일 두산삼성의 경기를 관전하는게 중계방송 화면에 잡혔다.
  • 10월 18일 두산NC의 플레이오프 2차전 경기를 관전하는게 중계방송 화면에 잡혔다. 하루 전 NC 응원에 나선 에릭 테임즈와 함께, 플레이오프에서 양팀의 승리요정(?)으로 경쟁 중이라는 평을 받았다.
  • 10월 29일 KIA두산의 한국시리즈 4차전 경기를 관전하는게 중계방송 화면에 잡혔다. 미국에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 계속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11월 2일 트위터에 자녀들과 함께 찍은 할로윈 데이 산진을 올렸는데, 한화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었다. 그래도 자신은 아직 두산 팬이라는 말을 함께 올렸다.
  • 11월 28일 보우덴이 두산을 떠날 것임을 발표하자, 트위터에 지난 2년간의 활약에 응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쯤되면 두산 구단의 명예 홍보대사

4.4. 2018년

  • 3월 24~25일 주말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 삼성의 개막 2연전을 관전하였다. #
  • 4월 22일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 KIA의 경기를 관전하였다.
  • 10월 23일 고척돔에서 한화와 넥센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관전하였다.

4.5. 2019년

  • 3월 23일 주말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 한화의 개막전을 관전하였다.
  • 3월 24일 두산이 지고 있던 중에 고통받는 모습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 5월 14일 경기를 직관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관련 기사
  • 한국시간 6월 16일 오전, 조 마우어의 영구결번식이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미네소타 트윈스 경기에 두산 베어스 모자를 쓰고 직관하러 갔다는 트윗을 올렸다. 아내의 출장 일정에 따라왔다고.

5. 기타

  • 2015년 11월 27일 스탠퍼드 대학교 한국 총동문회에 참석을 하였다. 왼쪽부터 허세홍[7], 타블로, 마크 리퍼트, 김재열[8]
    파일:타블로리퍼트.jpg
  •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바나나맨의 히무라 유키를 닮았다는 말이 있다.
  •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이 타임지의 세계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는데, 리퍼트 전 대사가 '위대한 협상가'(The Great Negotiator)라는 이름으로 추천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 촛불시위 당시 마크 리퍼트 대사는 2016년말 부터 촛불시위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다든지, 애완견을 동반하고 시위 현장을 지나친다든지 하는 행적을 보인 바 있다. 피습까지 당했던 사람이 별도 수행원 없이 두산 유니폼 한장만 입고외출했었는데 이로인해 정치권 일부에서는 미국이 예의주시 하고 있다라고 추측하기도 했었다.
  • 이미 전직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한국을 자주 찾는다. 웃자고 이야기하지면 그의 돡빠 성향이라고 하겠지만 야구는 그냥 취미일 뿐이고 실제로는 퇴직 후 보잉 외국정부 담당 임원으로 영입된 것이 이유인 듯 하다. 즉, 보잉 물건을 한국 정부에 판매하려는 교섭 루트 역할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다.


[1] 한국으로 따지면 군의관, 법무장교, 통역장교 처럼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전문사관으로 임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2] 대학시절에는 3루수였다고 한다.[3] 메이저 리그에선 1루수를 Ambassador라고 부른다[4] 민훈기해설위원이 어떤 팀이 이번 시즌 KBO리그 우승할 것 같냐고 물어보자 심장으론 두산(My Heart with doosan)이지만 머리로는 삼성과 NC또한 강할 것이기에 매우 재미있는 시즌이 될 것같다고 대답했다. 맥주가 싸다고 립서비스해준 건 덤[5] 허경민 선수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6] 2017년 4월이 되어도 미국대사 자리는 여전히 공석이다. 수만명의 주한미군이 체류하고 있고 중국과 사드배치로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에 대사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고 있다는건 상식을 한참 벗어난 상황이다. 그간 산책이나 야구관람 가는 길 등을 이유로 이런저런 장소에 출몰하며 외교적 메세지를 보내왔던 것처럼 개막식 관전을 핑계로 야빠의 취미와 정치적 실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개막식 관전을 위한 입국 이후 한국에 머물며 여러 언론과 한국 대선과 이후 한미관계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7] 당시 GS칼텍스 부사장이었고 현재는 GS글로벌 대표이사[8] 김병관 전 동아일보 회장의 차남이자 삼성 이건희의 둘째 사위.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의 남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