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10-13 00:28:33

SK하이닉스

파일:ci.jpg
{{{#!folding [ 펼치기 · 접기 ] 계열사
지주 회사 SK주식회사
에너지 · 화학 SK에너지 | SK이노베이션 | SK E&S | SK케미칼 | SK종합화학 | SKC | SK가스 | SK루브리컨츠
통신 · 반도체 SK텔레콤 | SK브로드밴드 | SK네트웍스 | SK플래닛 | SK하이닉스 | SK머티리얼즈
기타 SK건설 | SK해운 | SK매직 | NSOK | 아이리버
재단 행복나눔재단 | 한국고등교육재단 | SK미소금융재단
스포츠단
SK 와이번스 | 제주 유나이티드 | 서울 SK 나이츠 | SK텔레콤 T1 | SK 호크스 | SK 슈가글라이더즈
}}} ||

파일:attachment/29173151315_61400020.jpg
사명변경 전 로고.Иииіх
SK 하이닉스
SK hynix Inc.
파일:attachment/SK_Hynix_k.jpg
파일:attachment/SK_Hynix_e.jpg
사명변경 후 로고.
정식명칭 에스케이하이닉스 주식회사
영문명칭 SK hynix Inc.
설립일 1949년 10월 15일[1]
본사위치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2091
업종명 다이오드, 트랜지스터 및 유사반도체 제조업
상장여부 상장기업
기업규모 대기업
상장시장 유가증권시장 (1996년 ~ 현재)
시가총액 67조 9,954억원[2]
편입지수 코스피지수
KRX100
KOSPI200
종목코드 KS: 000660
자본금 3조 6576억원 (2016)
매출액 30조 1094억원 (2017)
영업이익 13조 7213억원 (2017)
자산총액 32조 2160 억원 (2016)
홈페이지 홈페이지

1. 개요2. 역사
2.1. 설립부터 IMF 전까지2.2. IMF 이후2.3. SK그룹 편입2.4. DRAM 및 NAND 호황기
3. 주식4. 광고5. 사업장6. 계열사7. 기타
7.1. 현대 컴퓨터7.2. 게임 사업7.3. 휴대폰7.4. 국산 CPU 개발7.5. 인터넷 사업7.6. 프로야구7.7. 핸드볼

1. 개요

애플AMD의 참 좋은 친구[3][4]

한국의 대표적인 반도체 제조회사.

본사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2091[5]에 위치해 있다. 청주시에도 어마어마한 공장이 있다.

반도체를 만드는 기업 중에서는 매출액 기준 세계 3위(2017년 1분기 기준)이다. 또 반도체 중 메모리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기준으로는 매출액 세계 2위이다. (1위: 삼성전자)

대한민국에서는 삼성전자가 아예 독점하다시피 한 상황이라 의외일 수 있는데, 하이닉스의 매출이 높은 이유 중 하나는 중국 시장에서 1위이기 때문이다. 애플과 중국의 스마트폰 제조업체가 주요 고객사이다. 화이트박스 태블릿 안을 열어보면 매우 자주 등장한다. 또한 보드에 납땜되지 않고 메모리 모듈을 쓰던 시절의 맥북들의 경우 뒤뚜껑을 열면 하이닉스 스티커가 붙어있는 메모리 모듈을 종종 볼 수 있다.
워크아웃으로 경영권이 채권단에 넘어가면서 현대그룹과의 관계는 끊어졌으나, SK 인수 이전까지 현대전자의 후신으로서 범현대가의 일부로 여겨지고 있었다. Hynix라는 이름도 Hyundai Electronix(nics)에서 따왔다는 걸 알 수 있다.

2. 역사

2.1. 설립부터 IMF 전까지

1949년 국도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어 건설업체로 영업을 하다가 1983년 설립된 현대전자역합병하였다. 우회상장 의도도 있었겠지만 국도건설이 경기도 이천시에 30만 평 정도의 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1988년 현대전자 기업 PR 광고 황금 거북선편. 우주 거북선?

당시 전자제품 시장 상황은 금성사, 삼성전자, 대우전자의 3강 체제로 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미 전자제품으로 파고 들어갈 여지가 많지는 않았다. 때문에 현대전자에서 채택한 길은 당시에는 최신 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현대 멀티캡) 및 반도체 산업이었다. 삼성전자가 이미 진출하기는 했지만 아직 신생 산업에 가까웠기 때문에 이쪽으로 진출하기로 한 듯 하다.

하지만 자체 기술이 빈약한 현대전자가 대단한 물건을 만들 수 있을 리 만무하니 일단 그나마 간단한 TV와 모니터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한다. 1995년에는 CRT로 HD 수준의 화질을 구현하는 정도의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ADSL 사업이나 LCD모니터나 컴퓨터나 휴대폰 등 당시 돈이 될 것 같고 좀 투자가 필요해 보이는 사업에 과감하게 배팅투자 하면서 진출했다.

1985년부터 메모리 양산 체제에 들어갔고 1986년에는 반도체 연구소를 설립하고, 1993년에는 유명 하드 업체인 맥스터를 인수하는 등 초창기부터 반도체 부분을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이 부분이 나중에 이어져 하이닉스가 된다.
파일:external/img.g2b.go.kr:7070/CD_Vision_2000.jpg
▲ 당시 현대전자에서 만들었던 CD플레이어

파일:external/stjarchive.cafe24.com/dc1179f32345b8fdc2367ed9c56d091c.jpg
▲바로 서태지를 기용했던 광고

1995년 현대전자 연수단 26명이 러시아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테러범에게 버스가 점거되어 인질로 잡히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러시아는 자랑하는 대테러부대 알파 그룹을 투입해 9시간만에 범인을 사살해 버렸다. 버스에 타고 있었던 28명 중 연수단 단장인 박연주 부장과 여직원 1명은 혼란을 틈타 탈출했다.

이런 투자 결정은 호경기가 계속되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겠지만 불행하게도 1997년 하반기에 IMF가 터지는 바람에 망했어요. 이미 반도체 산업이라는 돈이 무지하게 들어가는 분야를 시작한 데다 여기저기 벌려 놓은 사업이 너무 많아 그룹이 휘청대기 시작했다.

2.2. IMF 이후

이후에 흔히 말하는 '빅딜' 정책의 일환으로 세계 시장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 5위였던 현대전자가 4위였던 LG반도체 사업부를 합병했다.

이 합병 당시에는 김대중 정부의 대북사업에 매우 협조적인 현대그룹에 준 특혜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 이를 두고 LG 구자경 명예회장은 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인터뷰 기사에 쓰인 표현은 “반도체를 잘하고 있는데 누가 욕심을 부려서 빼앗아갔어요. 자기 욕심 때문에 우리 반도체를 한번 먹어보겠다고 나선 겁니다. 소떼를 몰고 북으로 가고 돈을 쓰더니…. 우린 안 된다고 버티다가 결국 포기했어요. 그래서 정치적으로 얻어맞지는 않았지요.”

하지만 뒤에 밝혀진 바로는 당시 빅딜 평가기관이었던 ADL가 현대를 고평가를 하면서 LG반도체가 현대전자로 넘어갔다고 한다.
1996년 DRAM 시장 점유율은 근소한 차이로 현대전자 4위, LG반도체 6위였다. #

그것보다도 당시 LG반도체는 삼성과 현대에 비해 역사가 짧아 3위였던 히타치 팹을 그대로 들여와 생산하고 있었다. 때문에 삼성, 현대 두 회사에 비해 저용량 DRAM이 주였다. 자료에 보면 당시 고용량이던 128Mbit DRAM 이상의 업체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았고, 그것이 심사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되었을 듯. IMF가 몇 년만 늦게 왔어도 당시 공격적으로 투자하던 LG반도체가 현대전자를 기술에서 따라 잡았을지도 모른다. 근데 그것도 사실 별 의미 없는게 애초에 LG는 D램보다 RD램 밀어주기 하고 있었는데 알다시피 RD램은...

(그 당시 ADL 부사장의 이름은 다름아닌 이장석. 우리가 아는 비리장석 맞다.)

그런데 이것도 수 년 뒤에 나온 르뽀 보도들을 보면 말이 많은데, 고위층에서 "LG가 현대에게 팔도록" 보고서를 만들어올리라 했다고. 당시와 뒷날 민자사업에서 큰 잘못을 저지른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사업타당성용역이 발주처 입맛에 따라 작성되는 건 드물지 않았기 때문에 개연성은 높다.

이렇게 LG반도체를 강제로 현대에 매각해 버린 덕분에 LG전경련에서 거의 탈퇴하다시피 했다. 당시 LG그룹 회장이었던 구본무는 빅딜 안을 낸 전경련에 반발하여 1999년부터 2013년 11월까지 무려 14년 가까이를 그룹 사옥과 5분밖에 안 떨어진 전경련에 발길 한 번 안 딛었었다.

그러다가 2013년 말에 박근혜 대통령이 전경련 신축 회관에 방문하자 그때서야 전경련을 방문, 사진 촬영을 했었다. 새옹지마라고, 그런 덕에 이 기간동안의 정경유착 의혹이 터질 때 엘지그룹은 예외처럼 여겨졌다.

이후 하이닉스는 SK가 인수하기 전까지 거대부채기업이 된다.

2001년에는 현대전자에서 하이닉스 반도체로 사명을 바꾸면서 메모리 사업을 제외한 나머지 사업부를 전부 분사 시켰다. 이 때 독립한 자회사의 수만 35개이다. 아래는 그 중 일부이다. 2001년 8월 하이닉스는 현대그룹에서 분리가 된다.
이 시기의 하이닉스는 그야말로 증권 시장의 핵폭탄이었다!! 위기 이전 4만원대였던 주가가 최저 135원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특히 투기 세력이 하이닉스 주식을 갖고 쥐락펴락하던 시기였다. 이미 2001년 초부터(정확히는 2월 14일 이후부터) 주가가 액면가 밑으로 떨어졌고, 그 상태에서 1년이 지나자 주식이 무려 42억주나 추가 발행되면서 주식시장은 완전히 난리가 났다.

2002년 7월 23일에는 하루 거래량이 무려 18억 주를 넘었으며 유가증권시장 거래량(코스닥 제외)만 해도 23억 주를 넘었다. 기사 정확히 18억 3279만 4260주로 "단일 종목 하루 거래량 사상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이 기록은 2018년 현재에도 깨지지 않고 있다.

심지어 거래량 분석이나 주식 관련 학술 논문에서도 2003년 3월 21대 1 감자 이전의 거래량에서는 하이닉스를 뺀 통계를 사용할 정도로, 하이닉스의 증권 시장 왜곡은 심각한 상황이었다[6]. 실제로 어떤 논문에서 밝힌 내용 중에는, 하이닉스 거래량을 뺐더니 기존 알려진 결과와 잘 일치한다는 흠좀무한 문장도 있었다. 이런 거래량은 나스닥, 런던, 홍콩 등 세계 유수의 증권 시장에서도 없던 기록이라고 한다!

이후에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마저 매그나칩 반도체로 분사 시키고 메모리 생산에만 주력한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에 이은 메모리 제조회사의 이미지를 달고 있다. 메모리계의 AMD

2003년쯤 사내외적으로 자금이 너무 모자라 엄청난 위기가 있었다. 자금이 모자라 신형 메모리 생산기계도 구입 하기도 힘든 실정이고, 수주 따내 오기도 힘든 실정에 생산주기율도 제대로 못맞추던 시절이 있었다.

여기서 하이닉스는 불량품, 수율에 항상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는 반도체 업계에서는 금기 중의 금기였던 기존에 팔거나 버리려고 했던 반도체 생산 기계를 재사용 할 수 있도록 하여 생산 수율을 올린다는 판도를 뒤엎는 전략을 세웠다.

전세계 반도체 관련 물리학자와 산업 현장에 있는 연구원들에게 비상한 관심조롱을 받았고, 연구 성과 등을 공유하면서 결국 이를 이루어냈고, 2005년도에는 사내 위기를 극복해 낼 수 있었다.

다만 D램 시장에 집중한 덕에 D램 시장 가격 상승과 다른 차세대 메모리 시장 투자 및 개발에 약간 소홀한 점이 문제로 2008년 이후 실적이 감소하고 있는 상태. 2009년부터 해외 인수 이야기가 나오고 있으나 번번이 실패했다. 동일하게 D램을 주력으로 하는 미국의 마이크론이 대표적 인수 후보자였다.

HBM 메모리를 전세계 최초로 개발, 양산한 업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AMD에 이어 엔비디아도 파스칼에 HBM2세대 메모리를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이 때문에 그래픽 메모리 부분을 SK하이닉스가 독식한다는 말이 있었지만 문제는 가격 때문에 하이엔드 제품군에만 적용되고 있는 추세이다.

2.3. SK그룹 편입

2011년 6월 즈음 현대중공업이 인수에 나선다는 애기가 나왔었다. 하이닉스는 현대그룹 재건의 마지막 단추인데다, 고 정주영 회장의 10주기가 다가오고 있는 만큼 인수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현대증공업은 2011년 7월 6일 조회공시를 통해 하이닉스 인수 의사가 없다고 발표하였다.

또 다른 모기업이었던 LG는 인수 의향 자체를 보이지 않았다. 사업 연관성을 따진다면 전자 제품을 만드는 LG그룹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게 훨씬 더 어울리지만, 남용 부회장이 LG전자를 대차게 말아먹으면서[7] 그 오물들을 치우기 위해 LG전자 유상증자라는 초강수를 썼기 때문에 자금이나 경영권 방어적인 면에서 여유가 없었다. 대한민국 상법 상 비금융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 주식의 최소 30%를 보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LG그룹, 특히 지주회사 LG나 LG전자, LG화학에 현금이 충분했다면 그룹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설욕한다는 명분과 전후방사업 상승효과라는 실리를 위해 기를 쓰고 인수전에 나섰을 것이다. 아니면 지주회사에 대한 오너가의 지분이 감소하는 걸 감수하고 유상증자나 회사채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 직접 인수에 나섰어도 큰 문제는 없었을 것이다. 지주회사 LG의 부채비율은 겨우 33%대에 불과하여 대한민국의 지주회사들 중에서도 가장 낮기 때문.[8]뉴클런이 망하고 나서 더욱 아쉬워 지고 있다

최종적으로 SKSTX가 인수 경쟁에 참여하였다. 이 중 STX는자기 하나 가누는 것도 어려워서 인수 의사를 철회하였고 SK텔레콤이 3조4267억원[9]에 단독 입찰했다. SK텔레콤이 이 거대한 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있다. 통신 산업은 주파수만 잘 갖고 있으면 매월 현금이 수천억씩 들어오는 알짜배기 산업 중 하나다. LG도 U+ (당시 LG텔레콤)가 있었던 것 같지만 넘어가자[10] 사업 특성상 제법 큰 액수의 현금이 꾸준히 들어온다는 걸 이용하여 지금까지 쌓아둔 사내유보현금에 금융권 융자까지 융통해 인수한 것이다.

결국 2012년 3월 23일 주주총회를 통해 정식으로 SK그룹에 편입되었으며, 정관 변경을 통해 사명까지 SK하이닉스로 바꿨다.

SK 그룹에서는 SKT와의 시너지는 적을 지 몰라도 10년동안 완만한 하락세인 SKT 주가를 보면서 성장동력에 대하여 나름 고심한 듯. 시너지 또한 벌 땐 화끈하게 버는 하이닉스 vs 안정적인 SKT, 넓게 보면 수출의 하이닉스 vs 수입의 SK에너지의 상보적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면 반도체 대량 생산 기술을 응용하여 태양전지를 찍어내서 SK에너지에 납품한다거나...

게다가 SK 그룹은 재계 3위의 서열에 어울리지 않게 내수 산업으로 인식되는 통신과 석유 산업에 의존한다는 안 좋은 이미지까지 불식시켰다. SK 그룹 석유산업 부분은 수출이 53퍼센트 이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수출 역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 50퍼센트에 가까운 독과점 업체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은 'SK 석유사업=내수 산업'인 게 일반적이다.

SK그룹에 편입된 이후에는 뭔가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는 모양이다. SK 날개 단 하이닉스, 2분기 매출·영업이익 사상 최대 그리고 하이닉스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의 영업 이익률을 추월할 것이라는 보도가 있었다.삼성 반도체 '빨간불'…SK하이닉스에 영업이익률 추월당하나 2013년 연간 매출액이 사상 최대인 14조에 영업이익률 24%를 기록하며 성장하고 있다.

SK그룹을 등에 업고 대대적인 투자를 한 성과도 있지만, 2013년에 일본의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가 파산한 걸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경쟁자가 줄어들어 공급자 중심으로 변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된 걸 무시할 수 없다.

덕분에 수천억 단위의 배당이 가능해지면서 이 돈으로 차입금을 갚거나, SK텔레콤에서 먼저 지출하는 융자 상환비용을 메우면 SK그룹은 사실상 1조 7천억이라는 SK텔레콤 보유현금으로 14~15년 연간 영업활동 현금흐름(=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이 4조 원을 넘는 하이닉스를 인수한 게 되니 엄청나게 수지맞는 베팅을 한 셈이다. ~특히나, 2017년에는 결산 영업이익 10조를 예상하고 있어서 SK그룹 입장에선 신의 한 수가 됐다.

이후 2017년 8월 LG실트론 (사명변경 후 SK실트론) 을 인수하면서 LG그룹의 반도체 사업을 완전히 다 가져왔다는 평을 받았다. 또한 SK실트론(단결정 실리콘) - SK머티리얼즈/SK가스(특수가스) - SK하이닉스(소자 제조) 에 이르는 SK그룹의 반도체 사업 수직 계열화도 어느 정도 완성해 가는 모양새.

2.4. DRAM 및 NAND 호황기

2014년에는 연간매출 17조1천억, 영업이익 5조1천억으로 약 30%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 2015년에는 연간 매출 18조 7천억, 영업이익 5조 3천억. 2016년에는 연간매출 17조 2천억, 영업이익 3조 2천억을 기록하면서 3년 연속 수조원대 영업이익을 달성하고 있다.

한편 이런 호실적 덕분에 SK그룹에서 하이닉스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2016년에는 청주테크노폴리스에 15조원을 투자하였고, 2017년 1월에는 반도체 소재 기업인 LG실트론의 지분 51%를 6200억을 주고 인수하였다.출처

2017년 2월에는 도시바 메모리부문의 주식 20%를 매입 검토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출처. 도시바는 원전으로 인한 손실이 메모리사업에까지 영향을 끼치면서, 도시바는 메모리사업을 분리하고 주식을 매각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상태이다.

2017년 1Q 뿐만 아니라, 2Q에도 사상 최대 규모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출처 2Q의 경우엔, 삼성전자 메모리 사업부의 영업이익률(추청치 40% 후반)과 비슷한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했다.(47%) 즉, 제품을 만들면 절반 정도는 남는다는 뜻인데, 물건을 팔아서 절반 넘게 남기는 사업은 제약사업과 메모리반도체 사업이 유일할 것이다.

결국 2017년에 총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13조원을 돌파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출처
영업이익률을 높이는 방법은 간단하다. 같은 웨이퍼안에서 많은 제품을 만들어 내면 된다. 만약 A회사가 1웨이퍼에서 100개를 만들고, B회사에선 200개를 만든다면 B회사는 A회사에 비해 물건을 싸게 팔 수 있다.(반도체 DRAM 치킨게임의 원리도 이와 비슷하다. TECH SHRINK을 통해 '남보다 작게, 남보다 많이' 경쟁력을 갖춘 회사 삼성전자 / SK하이닉스 / 마이크론 이 3회사만 살아남은 것이다.)

참고지만 내부에서는 이번 호황을 끝으로 다음 호황은 없을거라는 말이 나오는데 압도적으로 1위인 삼성에 비하면 2위인 sk하이닉스와 3위인 마이크론은 그리 큰 격차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격차를 2~3년까지 무섭게 따라붙은 중국이 치고들어와버리면 중국 매출액 비중이 다소 높은 sk하이닉스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자칫 잘못했다가 일본 반도체 회사들과 같은 길을 걷게 될 수도 있어서 폭풍전야 호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내부에선 위기감이 존재한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내년까지 낸드플래시와 DRAM 양산을 마친다는 계획이니 길게 잡아도 5년 안에는 새로운 성장동력, 비전을 찾아야만하는 위치에 놓여있다.

3. 주식

파일:d352c47e82f0119daf962a0892f86af7.jpg
회사 별명을 나타내는 짤방(...)

주식시장에서는 손꼽히는 개잡주 취급을 받으며, 이를 대표하는 것은 1997년부터의 주식동향. 16년동안의 평균 기울기가 마이너스다. 대기업중에서는 말도 안되는 경우인 것. 심지어 중간에 있었던 감자비율은 계산도 안 했다!! 틀렸어 이제 꿈이고 희망이고 없어 그래서 공인된 별명하락닉스. 못 믿겠으면 하락닉스라고 검색 창에 쳐 보자.그러나 2012년 SK그룹 편입 이후부턴 쭉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반도체 호황에 따른 반사 이익일 듯. 2014년 6월 5일 장종료가가 46450원이다. 2014년 6월 19일에는 장중 최고가인 5만700원으로 마감하였다. 관련 기사 2014년 11월 4일 현대차를 꺾고 시가총액 2위에 등극하였다. 관련기사 그리고 대망의 2015년 SK하이닉스 역사상 최고의 실적을 뽑아내고 있으나 중국발 반도체 리스크로 인해 주가는 지지부진하다. 2016년 2/4분기 들어서 3만원 언저리로 떨어졌으나 3/4분기에 들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2017년 6월 27일 69,200원으로 최고가로 마감했으며, 2017년 9월 20일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이 도시바 인수전 승자로 보도되면서 8만원을 돌파했다!!![11]2017년 10월10일 장중 9만원을 터치했다!!

4. 광고


SK그룹 차원에서 2014년에 이런 기업광고를 내놨다. 내레이션은 지성. SK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되기
한참 이전인 1997년부터의 일을 광고에 포함시켰다.


2015년 밀고 있는 광고.


2018년 테네시티 증후군.
최근 가장 참신하다고 평가받는 광고.


약을 빤 듯한 광고도 있다.

5. 사업장

이천캠퍼스(본사):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경충대로 2091
청주제1공장: 충정북도 청주시 흥덕구 대신로 215 (향정동)
청주제2공장: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2순환로 959 (향정동)
분당캠퍼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331번길 8(정자동)

6. 계열사

파일:prCi01.png
SK하이스텍
파일:news31_01.png
SK하이이엔지

7. 기타

7.1. 현대 컴퓨터

개그맨 김국진을 광고모델로 써서 "밤새지 마란 말이야~!"란 말을 하게 하던 방송광고를 내보낸 적이 있다. 80년대 후반 사무자동화(OA)바람이 불 때 거의 모든 대기업집단들이 자체 OA기기 회사를 만들어 사내 하드웨어와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자체 조달했다. 자체수요말고도 당시 공공, 기업, 소비자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고 소프트웨어의 복잡도가 낮았던 시절이라 그런 시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7.2. 게임 사업

현대전자 시절이던 1980년대 후반부터 북미판 패미컴(NES)를 '현대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출시 후, 게임보이, 슈퍼패미컴, 닌텐도 64(현대전자 발매명은 각각 미니컴보이, 슈퍼컴보이, 컴보이64)까지 닌텐도의 하드웨어를 정식 수입했다. 패미컴은 북미판 베이스, 슈퍼패미컴은 일본판(정확하게는 일본판과 모양이 동일한 유럽판), 닌텐도 64는 확인바람. 게임소프트웨어는 패미컴부터 닌텐도 64까지 나온 시절에 나온 게임소프트인데, 슈퍼 마리오닌자 거북이,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을 수입했다. 드래곤볼Z 초무투전은 한글화까지 해 주었다!

게임보이용 게임 중 포켓몬스터 적·녹은 현대전자가 닌텐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수입하던 시절인 1996년(북미판은 1998년)에 나왔는데, 정식발매는 하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 현대전자에서 발매한 닌텐도 관련 상품 판매가 부진해지고, IMF 외환위기가 터진 이후 게임사업을 철수했는데, 현대전자가 게임 사업 철수를 몇 년 더 늦게 했다면 포켓몬스터 게임도 현대전자에서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포켓몬 게임이 일찍 발매 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도 괜찮을 듯.

참고로 당시 현대전자에서 업무시간에 슬리퍼신고 다니다 욕먹는거말고는 진득하게 일하던 청년이 있으니 그가 바로 리니지의 김택진이다. 당시 현대전자 입사 권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게임 좋아서 게임만든다고 하면서 만든 것이 리니지이다.

7.3. 휴대폰

삼성, LG와 더불어 휴대폰 생산, 판매에도 뛰어들었던 전력이 있다. 90년대 중반에 '시티맨'이란 휴대폰을 내놓았다가 얼마후 '걸리버'란 이름의 휴대폰을 내놓았다. 당시 CF에서 하일이 걸리버로 분장하여 출연을 했다. '걸면 걸리니까 걸리버지예'란 대사로 유명했다. 훗날 한 뚝배기 하실래예의 임팩트로 인해 CF가 재발굴된다

이후 현대큐리텔로 분리되었다가 훗날 팬택에 인수.

7.4. 국산 CPU 개발

1990년대즈음에 국산 CPU 개발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당시에 K-DOS라는 것도 나왔을 무렵인데다가 삼성전자도 참여했다. 그러나 IMF가 터지고 나서 삼성전자는 시장성이 없을 것이라 예언하여 빠지고 DEC Alpha 생산 계약을 맺었다. 혼자 남은 현대전자가 독립적으로 연구하다가 결국 CPU 개발은 포기하고 그냥 메모리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컴퓨터에 들어가는 x86 호환 CPU이며 연구 중단 전까진 500MHz급 CPU를 개발하는데 성공한 모양.

7.5. 인터넷 사업

PC통신이 대중화되던 시절인 1995년에 대기업으로써 처음으로 '아미넷'이라는 이름으로 PC통신 시장에 뛰어들었다. 아직 인터넷조차 우리나라에 생소했던 시절에 최초로 인터넷 기반 PC통신 서비스를 개발했다. 당시 개발팀장이 바로 김택진이었다. 이 서비스는 1996년 3월부터 서울을 중심으로 상용서비스를 시작하여 5월 27일부터 전국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그해 8월부터 현대정보기술(주)로 넘어가면서 1997년부터 신비로로 이어지게 된다.

90년대 후반 아직 ADSL시대가 열리지 않고 코랜과 ISDN정도가 최고속일 때, 당시 현대정보기술이 전화선을 통한 SLIP/PPP 인터넷 연결을 무료로 개방해서(물론 전화요금은 개인부담이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7.6. 프로야구

현대 유니콘스를 해체하게 만든 주범이기도 하다. 1995년에 현대그룹 차원에서 프로야구단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하여 현대 유니콘스를 창단하여 야구단의 지분 76% 가량을 보유한 최대주주로 있었다. 문제는 현대그룹이 창단과정에서 대주주를 정하는 것부터 실수를 저질렀다. 스포츠단은 운영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드는 탓에 최대의 수익을 올리는 기업이 운영을 맡아야 한다. 그래서 당시에 대주주로 현대자동차현대백화점이 이를 운영했어야 했다. 그런데 대주주를 적자투성이에 부실한 기업인 현대전자가 운영을 했으니 처음은 그룹차원에서도 지원이 있었다고지만 곧 IMF 사태로 현대그룹에 위기가 오자 현대전자는 점점 휘청대기 시작했고, SK 와이번스로부터 받았던 현대 유니콘스의 서울 입성금 54억을 회사 지원금으로 사용하였고 운영비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현대자동차그룹에서 2001년에 인수하려 했지만 900억 드립을 치며 해태 타이거즈 인수로 방향을 돌리게 했다.이 짓만 안했어도

소유만 했지 말 그대로 방치하고 있었고, 당시 2군 경기장이었던 원당야구장(당시 현대전자 연수원 내 야구장)마저 하이닉스의 소유임에도 전혀 수리하지 않았었다. 설립 당시에는 최신식 시설이었지만 보수를 전혀 하지 않아 실내 연습장 지붕에 구멍이 나 있었다. 그 와중에 경기장 임대료는 매년 꼬박꼬박 걷어갔다. 이로 인해 현대 팬들에겐 안 좋은 취급을 받는다. 현대전자 연수원 자체는 하이닉스를 거쳐 현재는 NH투자증권 산하 NH인재원 소속이 되었다.

다만 2000년대 초반 '자금난으로 워크아웃 중'이며 인수기업을 찾아야 하는 상태인 모기업의 입장에서 보유 당시 만성적자 분야인데다가 사양산업 취급을 받았던 프로야구에서도 가장 인기가 적은 팀이었던 현대 유니콘스는 애물단지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현대 유니콘스가 인천을 떠나 서울로 가려고 했던 이유도 구단이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내용은 삼청태 항목을 참조 바람.

또한 당시 야구단 운영에 대해 채권단과 주주들의 항의도 계속 이어진 바 있다. 하지만 프로야구단에 쓰라고 있던 돈을 제멋대로 가져간 것은 까임을 피하기 어렵다. 당시 재무제표 상에서는 야구단 운영 자금을 충분히 댈 수 있을 만큼의 순이익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워크아웃 중인 기업에서 (채권단과 주주들의 항의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순이익을 야구단에 대기에는 좀... 아무리 사정이 어려웠다 해도 야구단의 자금을 멋대로 사용한 것은 모기업으로서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이다.

당시 천덕꾸러기이던 하이닉스가 SK에 인수되어 결과적으로는 사필귀정이 됐지만, 꼬일 대로 꼬인 실타래를 풀기에는 늦어도 너무 늦었다. SK 인수 이후 SK하이닉스의 광고가 SK 와이번스의 홈구장인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 걸리게 된다.[12]

7.7. 핸드볼

2016년 2월 남자 핸드볼팀을 창단했다. SK 호크스 참고.


[1] 실제 현대전자가 창립된 건 1983년이다. 주식시장 상장을 위해서 1949년에 설립된 국도건설과 합병했다.[2] 2018년 6월 1일 기준[3] 농담이 아니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애플에 꾸준히 RAM을 포함한 메모리 반도체류를 공급하는 벤더인데다가, 품질이 꽤 괜찮은 편이라 소위 "뽑기"라 불리는 아이폰/아이패드/맥북류 낸드 부품(SSD/RAM 등) 에서 하이닉스제 부품이 많이 채워질 수록 양품이라는 속설이 많았다. 게다가 도시바 인수전 당시 같이 컨소시엄 (이른바 한미일연합이라 하는)을 구성해서 인수를 했을 정도로 좋은 관계. 괜히 아이맥 안에 하이닉스 램 + 도시바 HDD 조합이 들어있길 바라는 맥빠들이 있는게 아니다.[4] AMD의 경우 둘 다 같은 2인자(...) 이미지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라데온 제품군 중 HBM 사용 제품의 HBM VRAM은 하이닉스제밖에 없다. 이유는 HBM을 먼저 상용화 시킨 곳이 삼성이 아닌 SK하이닉스이기 때문. 그리고 이어서 엔비디아도 HBM 채용 그래픽카드를 쓰기 시작하면서 VRAM의 슈퍼 갑은 이쪽이 되었다.[5] 지번주소로는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 아미리 산 136-1.[6] 당시 주식시장 그래프는 하이닉스 거래를 그대로 따라갈 정도였다.[7] 스마트폰 시장 경시 및 피처폰 집중으로 인한 경영 실패. 그 똥들 중에 하나가 하이닉스 인수 시기를 놓친 것인데, 휴대전화 사업이 폭망하면서 LG전자 자체만으로 인수할 여력이 안 됐다.[8] 하지만, 카더라에 의하면 재계 내에서 하이닉스를 인수하는 게 이미 SK그룹으로 합의됐다는 말도 있다. 더군다나 이 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했다면 더더욱.....[9] 2018년 10월 현재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은 51조로 국내 2위 기업이다[10] 앞에 언급된 대로 유상증자 규모가 워낙 컸고, U+자체의 점유율이 SKT에 비해서...[11] 재미있는 사실은 이 연합에 현금왕애플이 참여한 게 결정적이라는 평이 있다. 상대 진영에 폭스콘이 있던 걸 생각해보면...[12] 공교롭게도 현대 유니콘스숭의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시절 전광판 아래에 걸린 광고는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였다. 대를 이어서 인천 연고 프로야구팀 홈구장 전광판에 광고를 새기게 된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