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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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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영그룹 창업 회장 윤세영 尹世榮 | Yoon Se-young | |
<colbgcolor=#AB2457>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33년 5월 22일 ([age(1933-05-22)]세) |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 오지리 (現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오지리) | |
본관 | 해평 윤씨 |
재임기간 | 초대 SBS 대표이사 사장 |
1990년 11월 14일 ~ 1994년 3월 8일 | |
학력 | 서울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 학사) |
부모 | 아버지 윤현구, 어머니 임복희[1] |
형제자매 | 2남 2녀 중 차남 |
배우자 | 변금옥[2] |
자녀 | 장녀 윤수연 장남 윤석민 차녀 윤재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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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태영그룹 창업주. 본관은 해평(海平 尹氏)[3], 호는 서암(瑞岩)이다.2. 생애
강원도 철원군 동송면(현 동송읍) 오지리에서 아버지 윤현구와 어머니 임복희 사이의 2남 2녀 중 차남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8.15 광복 후 삼팔선이 그어지고 38선 이북이 북한 치하에 들어가자 월남하여 포천군을 거쳐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 터를 잡았다.[4] 6.25 전쟁으로 아버지를 잃었으나 학업에 매진해 서울고등학교를 거쳐 195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닌 이들이 최동규, 정해창, 이수성이다.1961년 대학을 졸업하고 민주공화당 이동녕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이동녕이 경영하던 봉명그룹에서 근무했다. 1971년 동부건설의 전신인 미륭건설으로 옮겨 상무이사를 지내다가, 1973년에 퇴사하고 태영건설을 창업했다. 이후 각종 관급공사를 수의계약으로 따내면서 회사를 키웠다.
1990년 민영방송사인 SBS를 창립하고 초대 사장에 취임하였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후배로서 당시 공보처(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었던 최병렬의 도움이 컸다는 평가가 있다. 게다가 최병렬의 아들인 최희준은 SBS에 기자로 입사한 바 있다.
2015년 초, 윤세영 회장은 SBS 보도본부장 이상 보도국 보직자 전원을 소집한 오찬 자리에서 "박근혜 정권을 비판하지 말라", "대통령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박근혜 정부를 좀 도와줘야 한다"는 내용의 자체 보도지침을 내렸고, 이를 공식 문건화 시켰다. 또 몇달 뒤에는 보도본부 간부들에게 "(박근혜) 대통령에게 빚을 졌다", "혜택을 받았다"는 발언도 했다.# 해당 사실과 보도지침 문건들이 훗날 2017년 언론노조 SBS 본부에 의해 폭로되었는데,[5] # 이 이슈가 결국 큰 사회적 문제로 확산되었고, 2017년 9월 11일 아들 윤석민 부회장과 함께 SBS 회장 직을 사임했다.[6] #
2019년 3월 25일, 아들인 윤석민 부회장에게 태영그룹 회장직을 물려주고 명예회장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런데 아들에게 회장직을 승계한지 얼마 되지 않아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SBS 미디어홀딩스와 모기업인 TY 홀딩스 합병을 통해 지배 체제 강화를 추진하는 등의 문제로 다시금 비판을 받고 있다.
2023년 12월 TY홀딩스 대표이사에 선임되어 5년만에 경영에 복귀했다. #
부도 위기로 인해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한 뒤, 2024년 1월 3일 채권단 앞에 직접 나서서 눈물까지 짜내며 워크아웃을 받아줄 것을 호소했다. 그러나 정작 사재 출연이나 SBS 매각 등은 자구계획에 포함되지 않은데다가 기존에 밝힌 자구계획도 불이행해 채권단의 반응은 매우 싸늘했다. # 결국 TY홀딩스 및 SBS 지분 담보 제공 등 추가적인 자구계획을 밝힌 뒤에서야 채권단이 입장을 변경해 워크아웃이 개시되었다.
3. 여담
- 대한골프협회장을 지냈을 정도로 상당한 골프 마니아라고 한다. 젊은 시절부터 골프에 심취했고, 1991년에 자신이 만든 지상파 TV 방송국이 탄생하자 방송 편성 책임자들에게 골프 관련 TV 프로그램의 정규 편성을 제안했을 정도. 결국 1992년에 국내 지상파 방송 사상 최초의 골프 전문 정규 프로그램인 '금요 골프'가 탄생했다. 또 남녀 골프 최강전 대회를 직접 만들었는데, 1996년 대회 우승자가 박세리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대한골프협회 회장을 지냈다. 춘천문화방송을 거쳐 SBS에 입사한 배기완은 골프광 오너가 있는 방송사에 입사한 영향으로, SBS의 골프 중계에 꽤 투입됐다.[7]
- 아호가 서암(瑞岩)인데, 이 호를 딴 장학재단인 서암 윤세영 재단을 설립했고,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도 그의 기부로 도서관 건물을 증축하면서 '서암법학관'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 서울고등학교 7회 졸업생이다. 2006년 개교 60돌을 맞은 모교에 5억원을 발전기금으로 기탁했다. 그는 1998년에 서울고 총동창회장을 맡은 바 있다.
- 본인 이름을 딴 언론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윤세영 저널리즘 스쿨.
4. 가족관계
자세한 내용은 한국의 기업 가문 문서 참고하십시오.[1] 평택 임씨로 임선준 조선귀족 자작의 친척 후손이다.[2] 초계 변씨이다.[3] 24세손 영(榮) 항렬로 윤치호 조선귀족 남작의 증손자 격, 윤보선 전 대통령의 손자 격 항렬이다.[4] 이후 철원군 동송면 오지리는 6.25 전쟁 이후 수복하여 현재는 대한민국의 영토이다.[5] 해당 폭로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 때는 윤세영 회장 지시로 'SBS 8뉴스' 보도가 박근혜 정부 띄워주기로 일관되게 제작되었다는 증언까지 확인됐다. 당시 다수 정치부 기자가 윗선에 항의하자, 정치부장이 "윤 회장이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로 '합의가 잘 된 것 아니냐'며 보도 방향을 지시했고, 위안부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해설성 리포트 제작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했다"고 답했다고.[6] 아무리 본인이 민영방송사의 주인이라고 해도 절대 해서는 안될 행동이다. 특히 SBS는 국가와 국민의 중요 재산인 주파수를 활용하는 지상파 방송사이므로 그 중요성이 공영방송 KBS, MBC보다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7] 실제로 배기완이 SBS로 이직했을 때 면접관 중 한 명이 윤세영 회장이었다. 그리고 SBS와 SBS Golf가 중계하는 골프 경기 캐스터는 대부분 배기완이 맡았다. 배기완이 2019년에 정년퇴임한 후 이 몫은 최기환에게 돌아갔으나, 최기환은 불과 2년 만에 프리를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