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5 16:20:03

미나마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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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마타병
Minamata disease | [ruby(水俣病, ruby=みなまたびょう)]
<colbgcolor=#3c6,#272727> 이명 <colcolor=#000,#ddd><colbgcolor=#fff,#121212>수은 공해병
국제질병분류기호
(ICD-10)
의학주제표목
(MeSH)
진료과 신경과
질병 원인 수은에 대한 만성적 노출
관련 증상 신경장애, 발달장애, 시각장애
관련 질병 이타이이타이병

1. 개요2. 원인
2.1. 발병 및 확인2.2. 사후대응 및 근황
3. 증상4. 유사한 질병5. 대중매체6. 기타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금속 성분이 인간의 몸에 축적되어 나타나는 유명한 공해병 중 하나.

이타이이타이병 및 후술할 두 건과 더불어 일본 4대 공해병이라고 불린다. 나머지 둘은 1972년까지 발생한 미에현 욧카이치시에 있는 욧카이치 콤비나트(四日市コンビナート)에서 아황산 가스나 이산화질소,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그 지역의 천식의 원인이 된 "욧카이치 천식(四日市ぜんそく)"과 니가타현 카노세마치(鹿瀬町, 현 아가마치(阿賀町))에 있는 형광등을 만드는 쇼와전공(昭和電工)이 아가노강(阿賀野川)에 메틸수은을 무단 방류시켜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와 동일한 병이 발생한다고 하여 "니가타 미나마타병(新潟水俣病)" 또는 "제2미나마타병"이라고 이름 붙은 공해병이다.

2. 원인

수은 중독에 의해 나타나는 질병이다.

2.1. 발병 및 확인

처음 보고된 곳이자 그 명칭의 유래가 된 곳은 1956년, 일본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로, 메틸 수은이 포함된 조개 및 어류를 먹은 고양이들이 미친 듯 발작하다가 바닷물에 빠져 죽는 전조 현상이 있었다.[1]

이후 주민들에게서 이 질환이 집단적으로 발병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었다. 당시 문제가 되었던 메틸 수은은 인근에 있던 신일본질소비료(新日本窒素肥料 New Japan Nitrogenous Fertilizer Company[2][3])에서 운영하는 공장이 야시로해(八代海)라는[4] 바다에 무단으로 방류한 것으로 밝혀졌는데 이 회사는 미나마타병 사후처리 관계로 1970년대 이후에는 사실상 정부와 주거래은행의 관리를 받고 있으며 2011년에는 미나마타병 배상을 제외한 사업을 자회사 JNC로 분리했다.[5]

1965년에는 니가타현에서도 대규모 수은 중독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니가타 미나마타병'이라고 명명되었다.

2.2. 사후대응 및 근황

일본 정부는 이 사건 이후 미나마타시 앞바다(야시로해)의 미나마타만(水俣湾) 전체를 쇠사슬로 봉쇄하고 어획통제 등 관리에 들어갔다가 최초 발병으로부터 50년이 지난 2006년에 오염상태가 충분히 저감되었다고 판단하여 통제를 풀었으며 동년 4월 30일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미나마타병 위령비'가 현지에 건립되었다.

2001년까지 공식적인 환자 수는 총 2,265명으로 확인됐다. [6]

미나마타병에서 이름을 따 온 국제수은협약인 "미나마타 협약"(The Minamata Convention on Mercury 水銀に関する水俣条約)이 발의되었는데 한국 정부는 2014년에 서명했다. 기사

2020년 이후에는 원자재 수은의 교역이 제한되고 협약대상인 수은첨가 제품(전지형광등혈압계‧체온계‧기압계 등)별로 설정된 수은 함량 기준을 초과한 제품에 대해 제조 및 수·출입이 금지되었다.

3. 증상

수은이 체외로 배출되지 않고 신체에 쌓이면서 특히 신경세포에 막대한 피해를 주는데 이 때문에 신체의 마비 증세와 발달장애, 시각장애 등의 각종 신경학적 증세가 발생한다. 수은이 몸에 축적되면 몸에 매우 해로우며 특히 먹이 사슬의 최상층에 있는 인간은 생물 농축 때문에 더더욱 위험하다. 특히 해산물의 경우 이 미나마타병이 아니더라도 상어나 고래 등 먹이 사슬에서 높은 위치인 동물일수록 함부로 먹었다간 수은을 비롯한 유해물질이 몸에 쌓일 위험이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4. 유사한 질병

한국에서도 화학산업단지가 밀집된 여수시울산광역시에서 1970년대에 발병 사례가 다수 있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에서 이 병과 유사한 질병이 발생하여 '온산병'이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5. 대중매체

  • 미나마타의 붉은 바다: 선천성 미나마타병을 밝혀낸 의사 겸 환경운동가인 하라다 마사즈미가 이 사건을 다룬 동화를 썼다. 미나마타병의 기원과 결과, 그 후유증 등에 대해 상당히 잘 다루었다.
  • 미나마타: 조니 뎁 주연의 영화로 일본 구마모토현미나마타시에 후원을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신일본질소비료의 후신인 칫소(チッソ Chisso) • JNC는 현재도 주 사업장이 미나마타시에 있으며 중소도시인 미나마타시는 사실상 경제를 칫소 • JNC에 의존하고 있다.

    조니 뎁은 이 병을 미국에 알린 기자 유진 스미스 역을 맡았는데 유진 스미스는 재혼한 아내 에일린 미요코 스미스와 함께 일본에 가서 미나마타병을 취재했다. 위의 참고 링크의 사진들 중 상당수가 유진 스미스가 촬영한 것으로, 미나마타병의 원흉인 칫소 • JNC가 고용한 깡패들에게 보복 형식으로 폭행당하고, 미나마타시와 시민들은 흑역사이다 보니 철저히 비협조로 일관하였다.

    유진 스미스의 사진 중 제일 유명한 건 1971년 '토모코와 그 어머니의 목욕'(Tomoko and Mother in the Bath)이었는데 이 사진 때문에 미나마타병이 미국에 알려졌다. 그런데 토모코는 1977년에 사망했고 스미스 사후 해당 사진에 대한 권리를 상속받은 에일린 스미스는 토모코의 아버지의 요구에 따라 이 사진의 권리를 그에게 넘겨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토모코의 아버지는 이 사건을 잊고 싶어하는 이들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아카이브 차원으로 현재 인터넷에 여러 장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잘 알려지지 않은 B컷도 존재한다.

    유진 스미스의 일생에서 제일 중요하고 미나마타병에 대해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사진이다 보니 작중에서도 유진 스미스가 해당 사진을 찍게 되는 계기가 나온다.
  • 울트라 Q, 울트라 세븐: 광석인 틸소나이트는 아마 미나마타병을 유발한 원인이 된 칫소 사를 비판하기 위해 나온 게 아닐까 추측된다. 이 틸소나이트가 나온 에피소드는 모두 킨조 테츠오 각본이다.

6. 기타

  • 마사코 황후와 약간의 악연이 있는데 처음 일본 황실에서 심사를 받을 때 여러 가지 사유로 탈락했다. '평민'이라는 이유가 가장 크기는 했지만 외할아버지 에가시라 유타카(江頭豊)가 칫소의 회장을 역임했다는 문제도 있었는데 그는 미나마타병 사건이 터진 후에 수습책으로 칫소에 파견된 것이기 때문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지만 수습 과정에서 '한 주 운동'으로 소란을 일으킨 문제로 이미지가 나쁜 인물이었다.[7]
  • 옴진리교로 악명을 떨친 아사하라 쇼코가 이 병 때문에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다. 아사하라 쇼코의 아버지와 역시 같은 시각장애인이던 쇼코의 형인 만쿄에 따르면 아사하라 쇼코의 시각장애는 미나마타병 때문이었지만 쇼코의 아버지 및 이웃들은 미나마타병 환자로 인정받지 못하였다. 오히려 1950년대에 보상금을 노리는 가짜로 몰려 욕설과 비웃음, 외면을 당해 왔다고 만쿄는 이를 갈았고 아버지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났음은 물론이거니와 이웃들도 세상의 비웃음과 같이 인정도 받지 못하고 일도 못한 채로 보상도 없이 죽어가야 했다며 원망을 담아 말했다.

    만쿄는 "이로 인해 아우가 세상에 대해, 일본에 대해 증오를 품었다고 생각한다."면서 "나야 동생이 저지른 옴진리교에 대해 옹호할 마음은 없으나, 그렇게 만든 게 바로 일본이 아니냐."고 생전에 덤덤하게 인터뷰했다. 결국 30여 년이나 지난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는 쇼코의 고향인 야쓰시로시에 50명이 넘는 미나마타병 환자들이 있었다고 인정했지만 이미 환자들의 대다수가 사망한 뒤였다.
  • 이시하라 신타로가 1977년 환경청장관을 맡고 있었는데 미나마타병 환자의 편지를 두고 "IQ가 낮은 사람이 쓴 것 같다", "가짜 환자도 있다" 등의 망언을 일삼아 문제가 되었고 환자에게 직접 도게자를 했다. #

7. 관련 문서



[1] 수은은 그 형태에 따라 신체로 들어오는 주된 경로가 달라지는 물질로 금속 수은은 수은 증기 형태로 호흡기를 통해 주로 흡수되며 메틸 수은과 같은 유기 수은은 소화기를 통해 주로 흡수된다.[2] 약칭: 신일질(新日窒 しんにっちつ Shin Nichitsu)[3] 현 사명은 칫소(チッソ), JNC.[4] 혹은 "시라누이해"(不知火海)라고도 한다.[5]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조선에 대규모 비료공장을 운영했으며 8.15 광복 후 일본인 자산 청산의 일환으로 북한 정권에 넘어가 현재는 흥남비료연합기업소로 그 흔적이 남아 있다.[6] 다만 약 10,000명 정도는 공식적인 환자로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정부로부터 인과 관계가 일부 인정되어 배상금을 받았다.[7] '한 주 운동'은 사회에 문제를 일으킨 회사에 대한 항의로 최소한의 주식을 사서 주주총회에서 관련 발언으로 도배하는 투쟁 방법이다. 주총꾼 에가시라는 한 주 운동을 차단하기 위해 기습적으로 주권 분할에 터무니없는 수수료를 매겨 물의를 일으키고 사장직에서 물러났지만 회장과 고문까지 지냈고 이에 더불어 한창 일이 터지는 중에는 피해자들에게 "썩은 물고기를 먹어서 그렇다"느니, "서민 주제에 뭘 말하냐"는 등 갖은 폭언까지 일삼았다.#[8] 해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공 공해병 발생 사례인 마츠오 광산이 해당 국립공원에 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