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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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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유진 스미스
William Eugene Smith
파일:유진 스미스.jpg
<colbgcolor=#fff,#191919> 본명 윌리엄 유진 스미스
(William Eugene Smith)
출생 1918년 12월 30일
캔자스주 위치타
사망 1978년 10월 15일 (향년 59세)
애리조나주 투손
가족 아버지 윌리엄 H. 스미스
어머니 네티 스미스[1]
배우자 에일린 미오코 스미스[2] (1971년 결혼)
직업 사진가, 저널리스트
활동 1934년 ~ 1978년
1. 개요2. 생애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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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사진 저널리스트.

2. 생애

미국 캔자스 주 위치타에서 출생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비행기 따위의 항공기에 관심이 많아 부모님께 항공기 사진을 사 달라고 졸랐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사진기를 주며 비행기 사진을 사는 대신 집 근처에 있는 비행장에서 직접 찍어보지 않겠냐고 하여 사진 촬영에 흥미를 가지게 된다.

10대 시기부터 지역 잡지에 자신이 찍은 사진이 실리는 등 사진에 조예가 깊었으며, 아칸소 강이 말라붙은 사진을 촬영해 중남부의 가뭄 문제에 대해 고발하는 등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대학교에 진학해 잠깐 공부를 하다 중퇴한 뒤, 다양한 잡지사에서 일하다 라이프 사에 입사했다. 라이프에서 일하던 중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종군작가의 신분으로 1943년부터 사이판, , 이오지마, 오키나와태평양 전쟁의 주요 격전지를 돌아다니며 미국 해병대와 일본군 포로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남기며 활약하여 명성을 얻었다.

일본의 미나마타병을 고발하여 세상에 알리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나, 1972년 기업범죄로 인해 공해를 일으킨 책임을 져야할 회사인 칫소(チッソ Chisso) • JNC[3][4]가 고용한 폭력배에게 그 회사가 사주한 보복 폭행당하여 척추 손상 및 한쪽 눈 실명을 당하는 중상을 입었다.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이후 1978년 뇌출혈로 사망한다.

3. 기타

  • 조니 뎁이 유진 스미스를 맡으며, 미나마타병을 고발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나마타가 있다.
  • 대체역사소설인 격랑의 바다에서 기자의 감으로 따라 다니기로 결정한 한국군[5]에 거의 종군하는 수준으로 등장한다.

[1] 결혼 전 성씨는 (Lee)[2] 혼전 성씨는 "스프레이그"(Spraig).[3] 당시 사명은 "신일본질소비료"(新日本窒素肥料 New Japan Nitrogenous Fertilizer Company)였다.[4] 게다가 당시 신일본질소비료 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요시오카 키이치(吉岡喜一)와 미나마타시장인 하시모토 히코시치(橋本彦七)[6] • 나카무라 토도무(中村 止)랑 정경유착 관계라서 그런 기업범죄 행위를 미나마타시가 눈감아 주었다.[5] 유진 본인을 포함, 대외적으로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은 조선인 무장단체로 공표되어 있으나 실제론 21세기 필리핀 파병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