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3-17 21:33:44

보릿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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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여담4. 같이보기

1. 개요

춘궁기(春窮期)·맥령기(麥嶺期)라고도 한다. 한국기근을 가리키는 말. 이를 고개에 빗대어 보릿고개라 부른 것.

2. 내용

한국의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9월~10월에 을 추수한 뒤 보리를 심는 이모작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보리가 제대로 맺힐 때까지 딜레이가 좀 길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추수한 쌀이 바닥나는 5~6월에는 아직 보리가 제대로 여물지 않아 보리를 수확할 수 없었다. 쌀도, 보리도 없다보니 사람들은 자연히 허기를 채울 작물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내용은 구황작물 문서 참고.

다만 구황 작물로도 커버가 힘든 경우도 많아서, 나무 껍질 그 가운데에서도 주로 소나무 껍질을 많이 먹었다고 하는데 이 소나무 껍질을 송피라고 불렀다. 게다가 진흙까지도 보릿고개의 먹거리 중 하나였다. 나무 껍질은 주로 소나무의 연한 속껍질을 벗겨 삶거나 하여 부드럽게 만들어 먹었고, 진흙은 백토라고 하는 입자가 매우 고운 흙을 물에 개어 가라앉은 부분을 쪄 먹는데, 나무 껍질이나 흙 모두 인간이 소화할 수 없는 성분이 대부분이기에 당연히 탈이 나고 심각한 변비를 일으켰다.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라는 말은 이 심한 변비로 보릿고개때 항문이 찢어지던 것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 외에 나무 껍질을 너무 많이 벗겨서 수많은 나무들이 말라 죽는 등의 부작용도 많았다. 그래서 보릿고개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로 식량을 넉넉하게 비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상당한 부유층으로 인정받았다.

오로지 하늘에 맡겨 농사를 짓던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역사를 보면 보릿고개로 인해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기아역병이 겹쳐 전염병과 아사로 죽는 백성들이 수두룩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고 가만히 앉아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라에서는 보릿고개를 대비하는 수단을 마련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의창, 사창 등을 설치하고, 이 시기에 나라에서 쌀을 빌려주고, 추수 때 갚게 하는 환곡이라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문제는 기근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나라에서도 버틸 수가 없었고, 조선 후기에는 이와 관련된 비리가 끊이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도 보릿고개는 있었다. 그 당시 신문 상에서도 보릿고개로 인해 굶주리는 지역 주민들 이야기가 심심찮게 등장했다.

보릿고개는 1960년대까지 존재했다. 그나마 6.25 전쟁 전후로 계속 원조로 받은 밀가루 덕에, 50년대 이후에는 기근이라 해도 나무 껍질에 흙을 먹을 정도로 굶는 사람은 크게 줄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서야 사라지게 되었다.[1]

유사한 사례로 순무의 겨울이 있다. 단, 순무의 겨울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을 단기전으로 끝내는 것에 실패해 참호전의 수렁에 빠진 독일 제국이 전쟁 중 겪은 고작 3번의 겨울에 발생한 기근을 일컫는 말이라 수천 년간 존재한 자연재해인 보릿고개와는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다. 순무의 겨울은 고작 3년 후 1918년 겨울을 끝으로 사라졌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식량자원이 바닥나기도 전에 항복해서 후방의 민간인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의 독일 제국 민간인들 보다는 덜 굶주릴 수 있었다. 물론 2차 세계대전 말에는 독일군의 보급체계가 완전히 망가져 다시금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긴 했지만, 그래도 1차 때보다는 상황이 훨씬 나았다.

보릿고개까지 쌀을 비축하지 못하는 이유가 한국인들이 밥을 워낙 많이 먹기 때문이라는 농담 같은데 일리 있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의외로 꽤나 설득력을 얻고 있는 주장인 데, 현대의 공기밥 한 그릇의 밥량이 200g 정도인 것에 비해 조선시대의 한끼 식사량이 대략 700g 정도로 현대인의 3배가 넘는 수준이었다. 그나마 이것도 고려 때의 900g에서 줄인 것이다. 옛날 밥상을 보면 밥그릇이 지금의 국 그릇보다도 크다. 생산량은 부족한데, 쌀을 이렇게나 많이 먹으니 남는 게 이상하긴 하다. 보릿고개의 원인에 관한 논쟁은 한민족의 식사량 문서 참조.

물론 현대의 기준에 마냥 똑같이 맞출 수는 없는 게, 이때의 농업 기술은 현재의 농업 기술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이고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했으니, 그것을 감안하면 그렇게 이상한 것은 아니지만 과도한 식사량은 임진왜란 당시 명군, 왜군 모두 경악했고, 구한말 선교사들까지 경악했다. 거기에 조선 학자들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논한 글들이 많다. 명성황후의 밥상을 사진 찍은 것을 봐도, 여성의 밥상인데도 밥그릇이 무식하게 큰 걸 볼 수 있다. 절대 돌쇠용 밥그릇 같은 게 아니다.

사실 제일 큰 원인은 운송망의 부재다. 지금도 북한이 허구한 날 식량난으로 고생하는 이유다. 이전에도 식량 생산량은 이미 전국민을 먹이고도 남을 정도였으나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포장도로를 전혀 확보하지 않았다. 도로망이 중요한 건 다른 교통수단은 빠른 수송이 어렵다. 수운은 대량 수송에는 적합하지만 배가 다닐 만큼 큰 강이 없고 소량이라면 비용 문제로 되려 식량 수송에 방해된다. 더구나 한반도의 경우 겨울에 강이나 호수가 꽁꽁 얼 정도의 혹한을 자랑한다. 그리고 철도는 특성상 공사비와 운영비 문제로 대도시권만 연결해서 수출입품 등의 대량 운송에 적합한 운송 체계다.

다만 조선이 도로 확보에 대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조선도 영남대로 등 주요 간선도로의 확충은 노력을 기울였다. 문제는 연교차가 크고 강수량이 여름에 집중되는 한반도의 지랄맞은 기후였다. 이런 기후에서 전근대 기술력으로 포장 도로는 언감생심이었다. 현대에 와서도 우리나라 도로들은 매년 보수를 거친다. 몇 년만 지나도 아스팔트들이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는 것이 한반도 기후다.

물품과 식품들이 풍족한 지역에서 부족한 지역들로 제대로 유통이 잘 되어야 적어도 식량난을 겪지 않는데, 보릿고개가 사라진 시기는 경인고속도로(1969년), 경부고속도로(1970년), 호남고속도로(1973년), 영동고속도로(1975년)가 연달아 개통되고 유통망이 갖춰지던 시기다.

3. 여담

야사에 의하면 정순왕후 김씨영조의 눈에 들게 된 계기란다. 영조가 간택령에 뽑혀 모여진 규수들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고개가 무엇인가?"라고 묻자 규수들이 저마다 높은 고개 이름을 댈 때 정순왕후 김씨는 "보릿고개야 말로 제일 높은 고개인 줄로 아뢰옵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방석 위에 여식의 몸으로 앉을 수 없다고 하고, 가장 좋은 꽃은 백성들의 옷이 되는 목화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보릿고개 현상이 없어진 지금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가령 월급 3일 전이라거나... 여기서 아예 '월급고개'라는 신조어까지도 파생되었다.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한 지금 세대들 중에서는 보릿고개라는 말의 뜻은 대충 알지만, 그 어원을 먹을 게 없어서 대신 보리로 끼니를 떼울 정도로 힘든 시기라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많다. 부모님 세대가 쌀을 마음껏 먹지 못하고 잡곡을 섞어서 먹던 것을 혼동하는 경우이다.

검정고무신 3기 에피소드 중 막판에 보릿고개 시련기라는 3부작으로 제작된 에피소드가 있다. 다만, 진짜 의미의 보릿고개를 겪은 게 아니다. 배경 또한 추운 겨울이었고, 아버지의 실직 했다. 어머니가 이기철/이기영 형제에게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망해서 실직했다고 말하는 것에서 다니던 회사가 경영난으로 부도가 난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때문에 학교에 사친회비도 못 가져다 줄 정도로 가세가 기울면서 온 가족이 힘들던 시기를 할머니가 보릿고개에 빗대어 표현했다. 마지막에 아버지는 기철이가 신문배달하면서 알게 된 어떤 아저씨의 도움으로 재취업에 성공한다. 그 아저씨는 알고 보니 대한물산이라는 큰 회사를 운영하는 기업의 사장이었다.

4. 같이보기



[1] 박정희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확산된 중공업 사업이 국내 총생산을 늘리면서 국민 소득도 자연스레 늘어났고, 그 결과 쌀은 겨울에도 살 수 있게 되어 보릿고개는 사라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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