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8 12:13:42

구황작물

1. 개요2. 특징3. 현실적인 문제와 대응책4. 한국의 구황작물5. 관련 문서

1. 개요

구황작물()은 가뭄이나 장마 같은 기후의 영향을 적게 받고 비교적 척박한 땅에서도 가꿀 수 있어 흉년 등으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으로 대용할 수 있는 작물을 말한다. '구황'이란 말의 뜻이 곧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빈민들을 굶주림에서 벗어나도록 도움"[1]이기 때문이다. 비황작물(荒作物)이라고도 한다. , , 기장, 메밀, 감자, 돼지감자, , 옥수수, 순무, 토란, 등이 이에 속한다. 비상 상황이 닥쳤을 때 대개는 어쩔 수 없이 먹는 성격이 강하므로 평소의 주식과는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책을 펼치기만 해도 시도때도 없이 기근이 일어난지라 이에 대해 정리한 책들만 해도 구황본초, 구황작물, 구황절요, 구황촬요, 황정대개 등등 잔뜩 존재한다.

2. 특징

모든 조건을 다 떠나서 다양한 작물 중 수확하기까지의 재배기간이 상당히 짧은 것이 무조건적으로 선택된다. 보통 60일 내외, 길어도 90일을 초과하지 않거나 인간이 굳이 수고하지 않아도 자라고 있다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2]

보통 주식으로 삼는 작물의 흉작이 예상될 때 닥쳐올 파급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배한다. # 이모작을 하는 한국을 예로 들면 2월 초쯤 보리농사가 흉작이 될 것을 예상한다고 하자. 그럼 바로 보리밭을 갈아엎고 그 자리에 자운영을 심어 지력을 돋운 후 바로 감자농사를 지어 하지쯤에 수확하고 모내기에 들어가는 식이다. 혹은 8월 말쯤에 여러 가지 이유로 벼농사가 망할 것 같으면 논을 갈아엎고 메밀이나 콩을 심어 겨우내 굶어죽는 사태를 막아보려는 것들이 구황작물의 운용법이다.

즉, 구황작물을 일반작물과 병행생산하는 건 아니다. 통상의 구황작물은 주식으로 삼는 작물의 실패가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그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급하게 심는 작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일반 작물보다 재배기간이 짧아야 한다는 거다.

이렇듯 '구황작물'이란 일반 작물이 나지 않는 경우의 임시조치일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바꿔 말하자면 일반 작물이 어느정도 생산되는 일반적인 경우에는 구황작물로 분류되는 작물도 기호식품이나 부식, 사료용으로 일정량이 재배되는 일반작물이라는 의미다.

구황작물 중에서 주식으로 사용해도 당장은 무방할 정도로 수확량도 많은 감자 같은 경우에는 구황작물의 차원을 넘어가서 평시에도 많이 재배하는 일반작물의 위치를 확보했다. 특히 아일랜드에서는 아일랜드 대기근 등 여러 이유가 겹쳐서 감자가 사실상 주식의 위치에 오르기도 했다. 여기에 더해서 메밀처럼 건강미용상이나 특수하게 먹을 수 있는 조리법이 개발되어 일반작물까지는 아니더라도 특수작물의 위상까지는 올라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저런 경우는 일부 예외에 불과하며 상당수의 구황작물은 일반작물에 비해 맛이 떨어지거나 수확량이 적다. 이때문에 평상시에는 상품가치가 없으므로 취급이 좋지 못하며 심하면 일반작물의 수확을 방해하는 잡초로 간주된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인데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는 점에서 구황작물로서는 안성맞춤이지만 '맛이 없다'는 단점이 너무 커서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는 보는 족족 없애 버려야 할 주적이다.

작물이라는 명칭이 붙었으므로 인위적으로 재배하지 않고 자연적으로 자생하는 것만 이용하려고 하면 의외로 수량도 적고 품도 많이 들어간다. 그렇다고 일반작물 재배하기도 모자란 땅에 상품가치가 평시에는 0에 가까운 구황작물을 재배하기도 힘들다. 그런 이유로 인해 평상시에는 두렁이나 하천변 같은 자투리땅에 씨앗을 뿌려놓고 가끔씩 관리하는 방식으로 일정 수량을 확보해서 기근에 대비하도록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평소 국가에서 기근에 관심이 많아서 적극적으로 구황작물을 심으라고 압박을 가하는 경우며 평소에는 자투리땅까지 일반작물을 기르기 때문에 기근이 닥치기 전까지는 구황작물을 인위적으로 기르는 경우는 별로 없다.

3. 현실적인 문제와 대응책

전술한 이유 덕분에 정작 구황작물이 기근시에는 수량이 부족한 사례가 많다. 당장 자투리땅에서 반쯤 방치 상태로 기른 작물의 수확량이 일반작물만큼 많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딱 도둑놈 심보이며 진짜로 지독한 기근이 들면 구황작물도 잘 자라지 않는 막장사태가 전개된다.

따라서 당연한 일이지만 이런 비상시를 위해서 다른 먹거리를 찾는 노력이 많았다. 당장 구황작물만으로 식량이 해결이 안 되면 도토리, , 고사리, 소나무 껍질과 잎, 얼레지 비늘줄기, 야생 열매, 기타 나물 등을 먹었고 해안지방에서는 해초 등이나 상품가치 없는 해산물 등을 먹기도 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면 들개길고양이[3] 같은 흔한 동물들, 그리고 개미메뚜기, 물방개[4], 지렁이 같은 벌레고기, 개구리, 도롱뇽 등의 소동물을 먹게 된다. 그 중에서 일부는 대중화되기도 한다. 번데기도 전후부터 부산물로 많이 남아돌았는데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이 괜찮아서 먹기 시작한 것이 대중화된 것이다. 원래 이런 종류의 소동물이나 벌레를 먹는 것은 세계 각지에서 나타나는 일이므로 그렇게까지 특별하지는 않다. 다만 주식을 대체할 정도로 양을 구하기 힘들고 양에 비해 채집하는 노력이 많이 들며 먹기에 혐오감을 가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식량이 부족할 때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식단에 오르는 것이다.

정말 먹을 것이 없을 때는 까지 먹는 경우도 등장한다. 배가 고프니 배나 채우고자 먹어 봤자 칼로리가 없으니 허기는 전혀 가시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흙은 운모의 일종으로 백색토라고도 부른다. 산화 실리콘을 비롯한 무기질이 주성분으로 먹을 때는 물에 풀어서 돌가루 같은 큰 입자를 가라앉힌 다음 중간의 미세질을 밀가루처럼 가공하여 먹는다. 이를 토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기질이므로 칼로리가 전혀 없고 소화 효소에 반응하지 않으므로 결국 복통, 장폐색을 일으킨다. 한편, 중생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따 이런 흙을 관음토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과거 호기심 천국에서도 다룬 적이 있다. 엄청난 가난에 시달려서 진흙쿠키를 먹기로 유명한 아이티는 정말 극한의 상황이다.

극한에 몰린 마지막 경우에는 인육을 먹는 식인이 발생하는데 실제 역사를 살펴보면 근대 이전 기근이 들었을 때 각국에서 공통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굶어 죽은 시신을 먹는 경우도 있고 입을 줄이기 위해 살인을 한 뒤 인육을 먹는 경우도 존재한다.

4. 한국의 구황작물

동북아시아 환경 한정이라면 순무, , , 기장, 메밀, 밤(열매), [5] 등이 구황작물이 될 수 있다. 옥수수도 여름에 수확 가능한 작물이라는 점 때문에 구황작물에 속하지만 지력 소모가 크다는 게 문제다.[6]

신대륙 출신인 옥수수, 감자, 고구마는 모두 조선 후기에 들어온 구황작물이며 이전까지 대표적인 구황작물은 메밀, 도토리[7] 등이 있다.

민들레나 콩나물도 알아서 잘 자라 주었기 때문에 구황작물로 애용되었다. 물론 주식보다는 부식용이기는 했다.

고구마는 1763년 일본에 조선통신사로 다녀온 조엄이 들여왔으며 감자는 1825년 청나라를 거쳐서 조선에 들어왔고 옥수수는 18세기 초엽 청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만 재배법까지 제대로 들여온 것은 아니라서 이 작물들은 조선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지 못해 구황작물로서의 역할은 미미한 수준이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일본이 쌀을 가차없이 수탈하면서 생존을 위해 주민들이 대체 식량의 필요성이 생기면서 옥수수, 고구마, 감자가 비로소 자리 잡게 되었다.

5. 관련 문서


[1] 출처: 표준국어대사전[2] 카사바, 야콘, 돼지감자도토리가 이에 해당된다. 카사바와 야콘, 돼지감자는 땅만 파면 열려 있는 걸 손쉽게 따낼 수 있으며 도토리의 경우 도토리를 맺는 일부 참나무과 나무가 커서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인간 입장에서는 굳이 재배할 필요없이 그냥 산에 가서 있는 걸 따오기만 하면 된다.[3] 그래서 고난의 행군을 거친 북한에서는 도시를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찾아보기 힘들고 북한이탈주민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도 한국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고양이가 많다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북한에서도 고양이고기가 일상적인 음식인 건 아니며 먹을 게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이다.[4] 한 때는 이 곤충을 쌀먹듯이 했다고 쌀방개라고 부르기도 했다. 태국에도 물방개를 튀겨서 먹는 지역이 있다. 물론 이 쪽에서도 맛으로 먹는 게 아니라 구황식품으로써 먹기 시작했다.[5] 가뭄만 아니라면 재배기간이 최소 75일(올콩, 즉 하대두), 보통 90~120일 정도에 불과하다.[6] 당장은 먹고살 수 있겠지만 미래에 더한 기근이 찾아오게 된다. 소련처녀지 개간 운동이 잘 보여준다.[7] 고려시대 의서 《향약구급방》에 기근시 사용 가능한 구황작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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