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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벼를 농사짓기 위해 물을 가둬 놓는 곳. 일종의 인공 습지라고 할 수 있다. 아시아에서 계절풍(몬순)의 영향을 많이 받는 국가는 쌀을 주식(主食)으로 하여 벼를 많이 재배하기 때문에 논이 있는 풍경이 전형적인 시골 풍경으로 그려진다.2. 역사
그냥 맨 땅에서 농사를 짓는 밭농사보다 늦게 시작되었다. 전형적인 '물을 대는' 논농사는 청동기 시대부터 시작하였다. 이러한 논농사의 시작으로 식량의 생산량이 많아지고, 사유재산이 생기고, 계급이 생기며, 전쟁이 일어나는 등 많은 변화를 겪게 된다. 청동기 시대의 논농사는 구릉 사이 골짜기와 중소규모 하천의 범람원 등 논농사에 적합한 일부 지형에서만 제한적으로 가능했다.삼국시대 중후반에 들어서 수리 시설의 축조와 관리 능력이 발달해 하천, 계곡의 흐름을 조절할 수 있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논농사가 널리 시행되고 한층 생산력이 늘었다. 대표적인 수리시설 유물로 백제의 저수지 벽골제, 신라의 제방 축조를 기록한 유물 영천 청제비가 있다.
모를 옮겨심는 이앙법이 도입되기 전까지 논 농사는 논에 볍씨를 직접 뿌리는 직파법이 사용되었다. 조선전기 지속적인 물 공급에 크게 의존하여 잘못하면 큰 피해를 본다는 이유로 이앙법은 나라에서 금지하였다. "농사직설"에서 이앙법을 매우 위태로운 재배법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농업에 필요한 인력이 크게 줄어드는 변화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서민층에서도 대규모로 경작하는 부농이 등장했고, 이는 조선후기 상공업이 크게 발달한 것과 더불어 사회의 형태를 바꾸는 데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3. 어형
논을 뜻하는 한자로 '畓(논 답)'이 있고, 대표 낱말로 '논밭'의 동의어인 '전답(田畓)'이 있다. 한민족이 만든 한자로 생김새는 물(水)이 있는 밭(田)이라는 데서 유래했으며, '답'이라는 음은 비슷하게 생긴 '沓(겹칠 답)'에서 따왔다.
한국에서는 6세기 중반 창녕 진흥왕 척경비에도 등장하는 한자지만 중국에서는 '水田'이라고 두 글자로 쓰고 읽는다. 사실 과거에 세로쓰기를 사용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필기체로는 구분하기 힘들 수 있다. 증(㽪)이라고 정말 논을 뜻하는 한자가 따로 있지만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런지 잘 쓰지도 않고, 한국에서도 글자를 따로 만들 만큼 벽자 취급을 받는다.
일본에서는 논을 '田んぼ(たんぼ)'라고 하고, 밭을 '畑(はたけ)'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한자를 보고 '밭'으로 오역하는 경우가 있다. 화전 전(畑) 자는 일본제 한자이다. 논밭의 한자 개념이 정반대임에서 알 수 있듯이 농사문화의 차이점이 반영되었다. 현재도 그렇지만 본디 중국 북부지방에서는 밭농사가 주류였고, 반대로 논농사의 비중이 높은 일본은 화전민이 아니면 밭농사를 거의 짓지 않았다.
별도의 치수나 양수 시설 등이 없이 물 공급을 빗물에만 의지하는 논을 천수답(天水畓)이나 '마른논'이라고 한다.[3] 반대로 물이 나오거나 물을 쉽게 댈 수 있는 논을 '무논'이라고 한다. '물'과 '논'이 합쳐진 단어인데 'ㄹ' 탈락 현상이 일어나 '무논'이 되었다.[4]
영어로는 paddy라 한다. 말레이어로 '벼'를 뜻하는 padi에서 온 말이다. 원래 영어로는 paddy field였는데 현재는 그냥 뒤의 field는 생략한다.
4. 특징
논의 부수적인 기능으로 홍수 방지나 주변 습도 조절 능력이 있다. 논은 얕지만, 거기에 들어가는 물을 합치면 막대한 양이 되기 때문. 또한 물 때문에 과다한 무기물이 씻겨나가서 토지 염화 현상이 약해진다.과거 산악지대에서는 논을 만들기 힘들어서 밭농사를 주로 했지만 아시아 지역에서는 계단식 논을 만들어서 농사를 지었다. 필리핀의 계단식 논은 세계 최대로서, 1995년 유네스코에 세계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논에 있는 물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논에 대는 농수(農水)가 곧 생산력을 결정하고 이 때문에 갈등이 심각했다. 정치(政治)의 어원이 바로 치수, 물을 끌어와 논에 나누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만큼 논농사 지역에서 치수,관개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아전인수라는 고사가 나온 것을 보자) 그때문에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지하던 천수답(天水畓)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을 비축할 저수지를 만들고 물을 끌어올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현재는 농사철이 되면 양수기로 물을 댄다. 논농사만 한다면 무논이 좋지만, 다른 작물과 이모작을 하는 데는 마른논이 물을 조절하기 쉬워 더 유리했다.
자칫하면 병충해가 생기기 쉽다. 한국이나 일본의 경우 그리 따뜻하지 않은 온대기후(혹은 냉대 동계 건조 기후)임에도 기온의 연교차가 매우 심하므로, 여름 한철의 높은 기온을 이용하여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벼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추운 겨울이 오면 논에서 물을 빼는데다 벌레들이 싸그리 얼어 죽으므로 이 문제가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반면 연중 고온다습한 중국 남부나 동남아, 인도 등 아열대기후 지역은 일년 내내 논에 물을 채워서 3~4모작을 했으므로 장구벌레 등 해충이나 병원균이 터를 잡고 안정적으로 서식하기 최적의 장소를 제공했다. 따라서 모기에 의해 전파되는 말라리아나 뇌염 등의 전염병이나 기타 수인성 혹은 곤충에 의한 각종 전염병 등에 시달려야 했다. 현대는 의학의 발전과 농약의 발달로 이러한 전염병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19세기만 해도 밭농사 위주인 서구 문화권에서는 이러한 전염병을 일으키는 아시아의 벼농사 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상당히 컸다.
5. 모내기
벼는 파종하기 전에는 논에서 자라기 힘들기 때문에 일단 다른 곳에서 키운 뒤, 봄이 되면 김매기를 하고 모내기를 해서 벼를 논에 심는다. 이걸 모(秧, 모 앙)를 옮겨(移) 심는다 하여 '이앙법'(移秧法)이라고 한다.[5]
이앙법은 역사가 의외로 짧아서 고려 말기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완전히 자리잡은 것은 조선 중기 이후가 되어서였다.
이앙법은 수확량이 늘어나는 것도 장점이지만 무엇보다도 제초 작업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이점이다. 대부분의 잡초는 산소가 있어야 싹이 틀 수 있다. 또한 모든 식물은 광합성을 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햇빛을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어느 정도 풀이 올라온 상태에서 시작하는 벼와 씨앗에서부터 싹을 틔워야 하는 잡초와의 경쟁에서 벼가 이길 수 있게 하는 큰 원동력이 된다. 일단 물이 채워진 관계로 논에서는 수생식물이 아닌 잡초는 자라기 힘들며 그마저도 이미 자라난 벼로 인한 그늘로 광합성이 힘들어 대개 별로 위협적이지 않게 되는 것. 피가 벼농사에 있을 때 가히 주적으로 여겨지는 것도[6] 같은 벼과인 특성상 이앙법으로 차단하기 힘든 데다 생명력도 질긴 잡초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농업은 제초 작업에 가장 큰 노동력이 들어가는데, 이앙법을 쓰면 직파법보다 노동력이 반의 반도 들어가지 않는다. 조선 후기로 가면 또 이모작까지 가능해지는지는 이점도 생겼다.
반면 단점도 있다. 관개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환경에서 모내기철에 가뭄이 들 경우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쳐버릴 위험이 있다. 때문에 이앙법이 알려진 것은 고려때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에서 금지했으며, 세종 때 지은 농사직설(農事直說)에서도 수확량이 많고 수고를 덜어주긴 하지만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칠 수 없으니 이앙법을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초 작업의 노동력을 절감하는 이점이 커 이앙법이 대세가 되었다.
전체적인 노동력은 줄어들지만 모를 심는 과정에서 노동력 수요가 엄청나게 몰리기 때문에 두레같은 지역사회 조직이 구성되는 요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6. 논을 이용한 양식업(아쿠아포닉스)
또한 물을 많이 넣어 사실상 늪지대 내지는 호수 비슷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서식하는 생물들이 논에서 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추어탕에 쓰는 미꾸라지나 잉어, 붕어, 대농갱이, 가물치, 메기, 드렁허리, 틸라피아 등의 어류[7]나 오리, 거위 같은 조류, 다슬기, 우렁이, 참게, 가재, 민물새우, 투구새우 등의 무척추동물, 개구리[8] 등은 이런 논농사를 지으면서 덤으로 얻게 되는 단백질 공급원이다. 논에 물을 빼는 시기에 잡아 먹는 잉어, 미꾸라지 등의 어류와 참게, 우렁이 등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는 기록은 과거 부터 근현대 까지 많이 남아 있으며,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논농사를 짓는 아시아권 전반에서 흔하게 관찰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농업시설임에도 불구하고 람사르 협약에서 주목하기도 하고 있다.논에서 기른 붕어를 요리해 먹는 중국의 사례(전서소가)
논에서 기른 오리를 요리해 먹는 일본의 사례(리틀 포레스트(영화))
단백질 보충이 원활한 현대에는 아예 '내수면 생태 양식'이라고 해서 논과 양식을 동시에 할 수 있게 농사 겸 양식업을 사용하고 있다. 아쿠아포닉스(Aquaponics)라는 수경재배의 일종으로 동일한 면적에서 식물성 작물과 동물성 가축을 기를 수 있어, 매우 효율적이라 적극 권장되고 있다. 과거에는 먹거나 끽해야 동내 시장에 내다파는 수준이였다면, 현재는 비단잉어, 관상용 새우 등 고부가 가치성을 띈 수산 생물을 양식해 부수입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수생 생물들은 논을 해집고 다니면서 잡초를 발아하지 않게 하고, 각종 해충들과 잡초를 먹이로 삼을 뿐만 아니라 나오는 배설물로 천연 비료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 농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당장 논에 우렁이와 가물치를 함께 기르면 잡초 발생률이 95%나 하락해서 제초제가 필요 없을 정도다.#
동일 면적에서 채소와 가축을 함께 기를 수 있어 농가의 소득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는데다가 이렇게 기른 작물은 소위 유기농 제품이라고 해서 더 비싸게 팔기 때문에 수익률이 좋다. 가령 논에 쌀과 참게를 기를 경우 쌀 수율은 80% 가량이지만 유기농 쌀이라 1.5배 비싼 값으로 매입되며, 추가적으로 참게까지 판매하니 수익률이 일반 논에 비해 압도적으로 좋다.#
또한 살충제나 제초제 사용을 줄여서 친환경적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방법이다. 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는 소위 친환경 농법은 대부분 생산량이 폭락해서 농가나 정부에서 외면했는데, 이 방법은 오히려 생산량을 획기적으로 늘려 버리는데다 단순히 농산물 생산량만 늘어나는것이 아니라 단백질 수급용 가축, 수산물을 한꺼번에 얻을 수 있는 다양화로 인해 훨씬 풍족하다. 당장 우렁이를 사용한 논법을 개발한 농부는 대통령 표창 까지 받았다.#
사실 과거에 논에 서식하는 생물은 그저 부수입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필수적이었다. 그 이유는 바로 논에서 발생하는 곤충을 매개채로 하는 전염병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논에는 항상 물을 채워놓기 때문에 여기서 각종 해충이나 질병이 발생하기 쉽다.
6.1. 단점
이처럼 이기작같은 획기적인 농법이지만 그리 널리 퍼지진 않았다. 살충제나 제초제 등 농약을 뿌릴 수 없기 때문에 노하우가 별로 없으면 논농사와 양식 모두 말아먹게 된다는 게 그 이유. 다시 말해서 일반적인 농법보다 위험도와 난이도가 너무 높다.당장 오리 농법, 우렁이 항목에 들어가봐도, 초기에 획기적인 농법으로 주목받다가 한번 실패하면 타격이 크고, 생각지도 못한 문제점이 줄줄히 발생해서[9] 해당 농법을 포기하는 여러 사례들을 볼 수 있다.관리 실패로 장구벌레가 급속도로 늘었는데 약을 쓰지못해 모기 떼에 시달리는 미국 농민의 예 일반적으로 약이나 비료를 치는 논농사에 비해 어렵고 손이 많이가서 농민들이 기피하는 경향도 크다.
이 때문에 국립수산과학원 등 국가기관에서 노하우를 무료로 배포하고 어떻게든 해당농법을 살리기 위해서 여러가지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7. 온실가스 배출 문제
논농사는 위의 생태적인 장점도 있지만, 강력한 온실가스인 메탄을 대량으로 배출한다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온실가스 배출을 강력하게 규제하려고 하는 상황에서 이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벼는 밀을 비롯한 타 작물에 비해 온실가스를 훨씬 많이 생산한다. 그 이유는 바로 논인데, 바닥에다가 물을 채워 놓기 때문에 물이 찬 이후에는 논 흙 속 산소 농도가 빠르게 감소하고, 혐기성 환경 하에서 흙 속 탄소 성분이 미생물(주로 혐기성 고세균)의해 분해될 때 메탄이 발생하게 된다.이 때문에 한때는 벼농사를 줄이고 밀이나 감자, 옥수수 등 대체 작물을 기르자는 말도 나왔을 정도이며, 특히 인구가 많은 벼농사 국가인 인도와 중국을 대상으로 식량작물 대체를 요구하는 기조가 있었다. 현재는 GMO(유전자조작생물)기술 등을 도입하여 뿌리와 줄기로 보내는 탄소의 양을 최소화시키는 벼 품종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 생산 문제에 대응하려고 하는 기조가 강하다. 단위면적 당 열량 면에서 압도적인 논농사의 이점을 포기하기에는 인구가 너무 많다. 대한민국 정부의 메탄 발생 저감 벼 개발 노력
8. 기타
논에서 벼를 생산하는 건 맞지만 모든 벼를 논에서 생산하는 것은 아니다. '밭벼'라고 해서 마른 밭에서 키우는 품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논이 만성적인 침수가 되는 지역에서는 심수 벼(deepwater rice)를 재배한다. 이 지역의 논은 우기가 되면 논이 아니라 호수가 되는 수준까지 범람하는데, 심수 벼는 물에 잠기면 엄청난 속도로 줄기가 자라며 최대 5m까지도 자란다고 한다.
과거에는 논이 곧 재산이었기에 '문전옥답(門前沃畓)'이라 불렀다.
공간정보의 구축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 제58조 제2호는 "물을 상시적으로 직접 이용하여 벼·연(蓮)·미나리·[10]왕골 등의 식물을 주로 재배하는 토지"라고 하고 있다.
조선 초인 세종 원년만 해도 논과 밭의 비율이 2:3 정도로 밭이 더 많았는데, 조선시대에 보(洑)가 활발하게 건설되면서 조선 말기에는 논밭의 비율이 3:1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남한의 논 면적은 1988년 135만 8천 ha로 최대를 기록했으나, 점점 줄어들어 2022년에는 77만 6천 ha로 크게 감소했다.#[11]
기갑갤에서는 아파트그라드와 더불어 기갑병력을 애먹일 지형이라며 마지논선이라고 부르고 있다. 실제로 6.25 전쟁 당시 UN군 공산군 안 가리고 전차로 논에 잘못 들어갔다가 기동불능에 빠지는 사례가 많았다.
옛날엔 목욕 시설이 발달하지 않았기에 부스럼이 난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럴때 마다 어른들이 여느 흙보다 달리 부드럽고 진흙처럼 끈기있는 논흙을 발라줬다고 한다. 추석 풍습 중 추석 전야제이자 진흙 놀이인 '논고랑 기어가기'가 있는데 진도에선 추석 전날 밤에 아이들이 발가벗고 본인의 나이 수 만큼 논고랑을 기면 전신 건강에 좋고 땅을 긁고 문지르는 역할까지 하게되어 땅의 힘을 북돋아 농사에도 도움이 되며 동시에 피부병을 예방하고 부스럼이 없어져 몸이 건강하게 된다고 한다.[12][13]
9. 관련 문서
[1] 稻는 벼를 뜻한다.[2] 집운에 따르면 이게 논을 뜻하는 글씨다.[3] 이에 빗대 즉각적인 수요에 의존하는 경제 체제를 '천수답 경제'라고 한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한 나라의 경제를 기도메타로 해결하려 드는 것이다.[4] 마찬가지로 '말'과 '소'를 합쳐 마소가 된다.[5] 그냥 볍씨부터 논에서 키우는 방법은 직접 뿌린다고 '직파법'(直播法)이라고 한다. 가장 오래된 기본적인 파종법이지만, 이앙법보다는 생산성이 떨어진다.[6] 피를 뽑는 행위를 이르는 '피사리'라는 말이 따로 있을 정도다.[7] 다만 내수면 양식법이 완벽하게 인정된 종은 미꾸라지, 가물치, 메기, 붕어, 대농갱이다. 이 어류들은 모내기 할 때 치어를 방류하고 물을 뺄 때 출하가 가능할 정도로 성장이 확인 된 종이다. 가물치는 1년만에 크게 자라지는 않지만 물을 빼면 땅으로 파고들어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한다. 틸라피아는 이기작이 가능해 논에 물을 안빼는 동남아쪽에서나 가능하다고 한다.[8] 생소할 수 있으나 전통적인 식재료이다.[9] 가령, 우렁이 농법 자체는 겨울을 나지 못하는 수입산 우렁이 조차 기후변화에 따라 우렁이의 월동이 진행되어 성장한 성체가 잡초 뿐만 아니라 벼 자체나 모의 뿌리까지 갉아먹어 퇴출되는 수순이다.[10] 미나리를 심는 논을 "미나리꽝"이라고 한다.[11] 참고로 2022년의 밭 면적은 75만 3천 헥타르로 논과 거의 1:1 비율이다.[12] 진도의 논밭은 일찍이 갯벌을 간척해서 만든 토지라서 다른 지역의 논밭과 달리 매우 기름지고 부드러우며 찰흙처럼 끈적거리고 끈기있다.[13] 이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로 '잃어버린 자투리 문화를 찾아서'를 주제로 내세운 아동 동화 국시꼬랭이 동네 시리즈 중 '논고랑 기어가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