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05:58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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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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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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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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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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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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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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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png 진흥왕 순수비
眞興王巡狩碑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 창녕 진흥왕 척경비 황초령 진흥왕 순수비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
파주 감악산비는 진흥왕 순수비 중 하나로 추정되나 확실하지 않음.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33호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 Changnyeong Monument
소재지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번지
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수량/면적 1기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신라 개국 11년(562)
파일:2016012709020000.jpg
<colbgcolor=#315288>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1. 개요2. 역사
2.1. 해석
3. 국보 제33호

[clearfix]

1. 개요

신라 제24대 임금 진흥왕이 재위 22년(561)에 가야 각국을 물리치고 새로 정복한 창녕군 지역을 직접 순시한 뒤 설치한 비석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진흥왕 순수비 4기 중 하나이다.

다른 순수비 3기와 달리 정식 명칭을 순수비가 아닌 척경비라 하는 이유는 북한산비·황초령비·마운령비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순수관경(巡狩管境)'이란 제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용을 읽으면 다른 순수비처럼 진흥왕이 직접 행차(=순수)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뿐더러 왕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을 직관, 직위, 소속 순서대로 나열하는 등 다른 순수비와 형식이 매우 비슷하므로, 창녕비도 이름만 '척경비'라고 할 뿐 '순수비'로 분류한다.[1] 이 때문에 한 1990-2000년대에는 '창녕 진흥왕 순수비'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주로 그 당시 출판된 어린이 역사 만화 등에 자주 보이는 표현이다. 현재는 척경비라고 명확히 구분한다.

2. 역사

경상남도 창녕군 지역을 비롯한 인근 낙동강 유역 일대는 본래 가야비화가야의 영역이었다. 선대 법흥왕에 이어 진흥왕 때 가야 각국을 신라에 병합하기 시작했고, 창녕 비화가야 역시 관산성 전투로 백제의 견제능력이 사라진 554년부터 창녕 척경비를 건설한 561년 사이 어느 때에 신라에게 멸망해 합병되었을 것이다. 창녕 척경비는 신라의 정복사업이 거의 완료되어가던 시기에 만들었고, 이듬해 562년 인근 대가야를 대대적으로 공격해 정복하면서 비로소 신라가 영남 전체를 차지했다.

다른 순수비가 조선 후기에 다시 알려진 것과 달리 창녕 척경비는 존재와 위치가 완전히 잊혔다가 일제강점기던 1914년에야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원래 비석이 있던 위치는 살짝 더 동쪽의 화왕산 아랫자락이었지만, 지금은 창녕 읍내의 만옥정 공원 안으로 위치를 조금 옮겼다.[2] 그리고 원래 척경비 비석이 있었던 위치도 표지판으로 안내한다. 1500년 가까이 야외에서 풍화되다보니 육안으로 글자를 읽기가 어렵지만, 바로 앞 안내판에 해석문이 있다. 주소는 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1. 해석

비문은 오랜 세월이 흐르며 심하게 마모되어 판독이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후반부는 비교적 선명한 편이다. 그 내용은 주로 진흥왕이 창녕 지방을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사실, 왕의 통치이념 및 포부를 간단히 밝히고, 그 뒤 대부분은 진흥왕의 순수(巡狩)를 옆에서 보좌하며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을 직관, 직위, 소속 순서대로 나열하였다. 이는 고대 한국의 지방행정조직, 신분제, 사회조직을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 출처 : 『譯註 韓國古代金石文』II(1992)
신사년(561년) 2월 1일에 세웠다. 과인은 어려서 왕위에 올라 정사를 보필하는 신하에게 맡겼다. … 일의 끝에 … 사방으로 … 토지가 협소하였으나, … 널리 … 이득을 취하고 수풀을 제거하여 … 토지와 강역과 산림은 … 대등(大等), 군주(軍主)와 당주(幢主), 도사(道使)와 외촌주(外村主)는 살핀다. … 고로 … 우리나라의 논밭▨▨과 산림, 소금, 하천은 … 비록 … 그 나머지 사소한 일들은 … 상대등(上大等)과 고나말전(古奈末典), 법선▨인(法選▨人)과 상(上) … 이로써 … 몸이 벌을 받는다.

이때 ▨▨대등(大等)은 ▨▨▨▨▨지(智) 갈문왕(葛文王)이다. ▨▨▨▨자(者)는 한지벌부(漢只伐部)의 굴진지(屈珎智) 대일벌간(大一伐干), 사탁(沙喙)의 ▨▨지(▨▨智) 일벌간(一伐干), ▨▨의 절부지(折夫智) 일척간(一尺干), ▨▨▨▨지(智) 일척간(一尺干), 탁(喙)의 ▨▨부지(▨▨夫智) 잡간(迊干), 사탁(沙喙)의 모력지(另力智) 잡간(迊干), 탁(喙)의 소리부지(小里夫智) ▨▨간(▨▨干), 사탁(沙喙)의 도설지(都設智) 사척간(沙尺干), 사탁(沙喙)의 벌부지(伐夫智) 일길간(一吉干), 사탁(沙喙)의 홀리지(忽利智) 일▨▨(一▨▨), ▨진리▨차공(▨珍利▨次公) 사척간(沙尺干), 탁(喙)의 이망지(尒亡智) 사척(沙尺), 탁(喙)의 소술지(所述智) 사척간(沙尺干), 탁(喙)의 ▨▨▨▨ 사척간(沙尺干), 탁(喙)의 비질▨▨지(比叱▨▨智) 사척간(沙尺干), 본피(本彼)의 말▨지(末▨智) 급척간(及尺干), 탁(喙)의 ▨▨지(▨▨智) ▨▨▨, 사탁(沙喙)의 도하지(刀下智) 급척간(及尺干), 사탁(沙喙)의 ▨▨지(▨▨智) 급척간(及尺干), 탁(喙)의 봉안지(鳳安智) ▨▨▨이다.

▨대등(▨大等)은 탁(喙)의 거칠부지(居七夫智) 일척간(一尺干), ▨▨부지(▨▨夫智) 일척간(一尺干), 사탁(沙喙)의 감력지(甘力智) ▨▨간(▨▨干)이다. ▨대등(▨大等)은 탁(喙)의 말득지(末得智) ▨척간(▨尺干), 사탁(沙喙)의 칠총지(七聰智) 급척간(及尺干)이다.

사방군주(四方軍主)로서 비자벌군주(比子伐軍主)는 사탁(沙喙)의 등▨▨지(登▨▨智) 사척간(沙尺干)이고, 한성군주(漢城軍主)는 탁(喙)의 죽부지(竹夫智) 사척간(沙尺干)이고, 비리성군주(碑利城軍主)는 탁(喙)의 복등지(福登智) 사척간(沙尺干)이고, 감문군주(甘文軍主)는 사탁(沙喙)의 심맥부지(心麥夫智) 급척간(及尺干)이다. 상주(上州) 행사대등(行使大等)은 사탁(沙喙)의 숙흔지(宿欣智) 급척간(及尺干), 탁(喙)의 차질지(次叱智) 나말(奈末)이다. 하주(下州) 행사대등(行使大等)은 사탁(沙喙)의 춘부지(春夫智) 대나말(大奈末), 탁(喙)의 취순지(就舜智) 대사(大舍)이다. 우추·실지·하서아군(于抽悉支河西阿郡) 사대등(使大等)은 탁(喙)의 북시지(北尸智) 대나말(大奈末), 사탁(沙喙)의 수정부지(須仃夫智) 나말(奈末)이다. ▨위인(▨爲人)은 탁(喙)의 덕문형(德文兄) 나말(奈末)이다. 비자벌정(比子伐停) 조인(助人)은 탁(喙)의 멱살지(覓薩智) 대나말(大奈末)이다. 서인(書人)은 사탁(沙喙)의 도지(導智) 대사(大舍)이다. 촌주(村主)는 혁총지(奕聰智) 술간(述干), 마질지(麻叱智) 술간(述干)이다.

3. 국보 제33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 (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
빛벌가야(지금의 창녕군)를 신라 영토로 편입한 진흥왕이 이곳을 순시하면서 민심을 살핀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당시 창녕군은 신라가 서쪽으로 진출하는데 있어 마치 부채살의 꼭지와 같은 중요한 길목이었는데, 진흥왕 16년(555) 신라에 병합되었고, 565년에는 대야주(지금의 합천군)와 합쳐져 비사벌군(比斯伐郡) 또는 비자화군(比自化郡)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비는 목마산성 기슭에 있던 것을 192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비각안에 모셔 둔 것으로, 자연석의 앞면을 평평하게 다듬어 비문을 새기고, 그 둘레에 선으로 윤곽을 돌려놓은 모습이다. 다른 순수비와 달리 ‘순수관경(巡狩管境)’이라는 제목이 보이지 않아 척경비(영토 편입을 기념하여 세운 비)라 일컫고 있으나, 임금을 수행한 신하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순수비에 속한다 할 수 있다.

비문은 심하게 닳아 있어 판독하기가 힘든 상태이나, 후반부는 명확히 읽어낼 수 있을 만큼 선명하다. 다른 순수비의 내용을 참고할 때 대략 진흥왕이 빛벌가야를 점령하여 영토를 확장한 사실과 왕의 통치이념, 포부 등이 실려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후반부에 당시 왕을 수행하던 신하들의 명단이 직관, 직위, 소속의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어 당시 지방행정조직, 신분제 및 사회조직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대가야가 멸망하기 1년 전인 신라 진흥왕 22년(561)으로, 이 지역을 가야진출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 왕의 정치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또한 진흥왕 당시의 사실을 기록해 놓아『삼국사기』의 내용을 보완해줌으로써, 이 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고 이해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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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반면, 진흥왕 시대에 세운 또다른 대표적 비석인 단양 신라 적성비는 내용상 순수와 전혀 관계가 없다. 단양 적성비에 대해서는 해당 문서 참조.[2] 만옥정공원은 창녕군의 이런저런 문화재를 모아놓은 곳이다. 이곳에 창녕 객사, 척화비, 창녕 퇴천리 삼층석탑, 역대 창녕군수 선정비, 6.25 전쟁 창녕지구 전승비 등을 모아두어서 작은 야외 박물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