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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 서동요 |
대한민국 국보 제159호 | |
<colbgcolor=#315288> 무령왕 금제 뒤꽂이 武寧王 金製 釵 | |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장신구 |
수량/면적 | 1개 |
지정연도 | 1974년 7월 9일 |
제작시기 | 백제시대 |
1. 개요
武寧王 金製 釵.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에서 1971년 여러 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무령왕의 금제 뒤꽂이 1점.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국보 제159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길이 18.4㎝, 상단 폭 6.8㎝.
1971년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의 금제 뒤꽂이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6세기 경이다. 두드려 편 얇은 금판을 오려내어 만든 삼각부와 약간 두꺼운 세 개의 꼬챙이로 구성된 뒤꽂이로, 뒤에서 정으로 두드려 문양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타출기법으로 장식한 것이다.
본래 뒤꽂이는 중국 문화에서 여성들이 머리를 풍성하게 올린 다음 장식하는 전통 비녀로, 이보다 앞선 동진시기 구이저우성(貴州) 평패마장동진묘(平壩馬場東晋墓)에서 이와 거의 비슷한 형태의 꽃봉오리가 장식된 뒤꽂이 2개를 교차하여 꼽은 가채 머리수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백제의 경우 머리에 꼽는 부분이 2가닥이 아닌 3가닥으로 되어 있어 동시대 중국의 예와는 다소 다르며, 여성이 아닌 남성 왕이 착용한 채로 발견되어 더욱 주목받았다.
매우 미려하고 호사스러운 형식을 보여주는 유물로, 6세기 경 백제의 순황금 유물 중 최고의 화려함과 예술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된다. 특히 백제의 장신구는 무령왕릉 출토품을 제외하면 그 예를 찾기 어렵기 때문에 백제의 장신구 형태와 문양, 제작 상황 등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무령왕 금제 뒤꽂이
- 두산백과 : 무령왕릉 금뒤꽂이
- 향토문화전자대전 : 무령왕 금제 뒤꽂이
- 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 금제 뒤꽂이
- e뮤지엄 : 무령왕 금제 뒤꽂이
- 죽음의 전통의례와 상징세계 : 금제뒤꽂이
- 이미지 라이브러리 : 무령왕금제뒤꽂이
- 한국어 위키백과 : 무령왕 금제 뒤꽂이
4. 국보 제159호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발견된 백제 때 금으로 만든 뒤꽂이 일종의 머리 장신구이다. 무령왕릉 나무널(목관) 안 왕의 머리에서 발견되었으며, 길이는 18.4㎝, 상단의 폭은 6.8㎝이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역삼각형 모양이며, 밑은 세가닥의 핀 모양을 이루고 있어 머리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삼각형의 윗부분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고, 3가닥으로 갈라진 꽂이 부분은 긴 꼬리처럼 되어 있어 마치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 날개쪽 좌우에는 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찍었고, 그 아래는 서로 대칭으로 덩굴무늬를 빈틈없이 메꿔 놓았다. 새의 머리와 날개 부분의 테두리는 끌 끝으로 찍은 작은 점들이 열지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문양은 모두 뒤에서 두들겨 솟아 나오게 한 타출법(打出法)을 사용하였고 ,세부 표현에는 선으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왕의 머리부분에서 발견되었고, 끝이 3개로 갈라진 점으로 보아 의례 때 쓰인 머리 장식품으로 보인다.
위가 넓고 아래가 좁은 역삼각형 모양이며, 밑은 세가닥의 핀 모양을 이루고 있어 머리에 꽂았던 것으로 보인다. 역삼각형의 윗부분은 새가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고, 3가닥으로 갈라진 꽂이 부분은 긴 꼬리처럼 되어 있어 마치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양 날개쪽 좌우에는 꽃무늬를 도드라지게 찍었고, 그 아래는 서로 대칭으로 덩굴무늬를 빈틈없이 메꿔 놓았다. 새의 머리와 날개 부분의 테두리는 끌 끝으로 찍은 작은 점들이 열지어 있다. 여기서 사용된 문양은 모두 뒤에서 두들겨 솟아 나오게 한 타출법(打出法)을 사용하였고 ,세부 표현에는 선으로 새기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왕의 머리부분에서 발견되었고, 끝이 3개로 갈라진 점으로 보아 의례 때 쓰인 머리 장식품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