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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 서동요 |
대한민국 국보 제154호 | |
<colbgcolor=#315288> 무령왕 금제 관식 武寧王 金製 冠飾 | |
소재지 | 충청남도 공주시 관광단지길 34, 국립공주박물관 (웅진동)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금속공예 / 장신구 |
수량/면적 | 1쌍 |
지정연도 | 1974년 7월 9일 |
제작시기 | 백제시대 |
1. 개요
武寧王 金製 冠飾.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송산리 고분군에 위치한 무령왕릉에서 1971년 여러 유물들과 함께 출토된 무령왕의 순금 관식 1쌍. 현재 국립공주박물관에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국보 제154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무령왕 금제 관식의 장식 중 가장 화려하다고 평가받는 불꽃이 타오르는 형상 부분.[1] |
왼쪽 관식 높이 30.7㎝, 너비 14㎝.
오른쪽 관식 높이 29.2㎝, 너비 13.6㎝.
1971년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의 금제 관식으로, 유물의 제작 연대는 6세기경이다. 당시 왕릉에서 관 꾸미개는 모두 4점이 출토되었는데 왕과 왕비의 머리부분에서 각각 2점씩 쌍을 이룬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왕비의 것은 무령왕비 금제 관식이란 명칭으로 국보 제155호로 따로 지정되었다.
금을 두드려 만든 2㎜의 얇은 금판에 인동당초무늬와 불꽃무늬를 기본 문양으로 하여 정교하게 오려낸 것으로, 그 전면에는 둥근 모양의 작은 달개를 매달아 장식성을 더했다. 맨 아래에는 줄기가 있는데 아래위로 2, 3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무엇인가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중국 구당서(舊唐書)의 기록에 나오는, 백제의 왕은 검은 비단관을 쓰고 작은 금꽃으로 장식하였으며, 신하들은 은꽃을 사용하였다고 하는 기록과 일치한다.
이보다 1세기 정도 앞서 만들어진 신라의 금관총 금제 관식, 천마총 금제 관식 등과 함께 한국의 고대 금제 관 꾸미개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특히 매우 미려하고 호사스러운 형식을 보여주는 유물로, 무령왕비 금제 관식과 함께 백제의 순황금 유물 중 최고의 예술성을 갖추었다고 평가되므로, 신라의 각종 금관(금관총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천마총 금관, 서봉총 금관, 금령총 금관 등) 및 황남대총 비단벌레 장식 금동 말안장 뒷가리개 등의 최고 위세품들과 함께 한국 고대사에 있어 최상위 예술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6세기경 백제의 화려한 금 공예술을 보여주는 왕의 유물로, 그 화려함은 가히 으뜸이라 할 만하다. 이에 1974년 7월 9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재 공주시의 마스코트인 고마(GOMA)곰이 차고 있는 허리띠가 이 무령왕 금제 관식의 문양을 따 만들어진 것이며 시내버스 디자인을 개정하면서 무령왕 금제 관식의 문양을 사용할 정도로 공주시 곳곳에 많이 사용되고 있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무령왕 금제관식
- 국립중앙박물관 선정 우리 유물 100선 : 무령왕릉 관 꾸미개
- 두산백과 : 무령왕릉 왕금관식
- e뮤지엄 : 무령왕 금제관식
- 향토문화전자대전 : 무령왕 금제관식
- 한국어 위키백과 : 무령왕 금제관식
- 영어 위키백과 : Crown of Baekje
- 네이버 이미지 라이브러리 : 무령왕금제관식
4. 국보 제154호
공주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의 금으로 만든 왕관(王冠) 꾸미개(장식) 한쌍이다.
높이는 각각 30.7㎝, 29.2㎝이고, 너비는 각각 14㎝, 13.6㎝이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조사되었을 때, 왕의 널(관) 안쪽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금판을 뚫어서 덩굴 무늬를 장식했으며, 밑으로는 줄기가 있는데 아래위로 2~3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무엇인가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좌우로 벌어진 줄기 중간에는 꽃 무늬를 배치하였으며, 줄기가 길게 연장되면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두 가닥은 아래로 향하게 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앞면에는 전체에 걸쳐 구슬모양 꾸미개를 금실로 꼬아서 달았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2)과 왕비의 무덤으로, 벽돌을 이용해서 만든 벽돌무덤(전축분)이다. 출토된 유물들은 6세기 전반 백제 문화의 수준과 묘제,사장 등의 일면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중 지석(誌石)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최초로 무덤에 묻힌 주인과 만든 시기를 확실히 밝혀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
높이는 각각 30.7㎝, 29.2㎝이고, 너비는 각각 14㎝, 13.6㎝이다. 1971년 무령왕릉이 발견·조사되었을 때, 왕의 널(관) 안쪽 머리 부근에서 포개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금판을 뚫어서 덩굴 무늬를 장식했으며, 밑으로는 줄기가 있는데 아래위로 2~3개의 작은 구멍이 있어 무엇인가에 부착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좌우로 벌어진 줄기 중간에는 꽃 무늬를 배치하였으며, 줄기가 길게 연장되면서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모양새를 보여준다. 두 가닥은 아래로 향하게 하여 변화를 주고 있다. 앞면에는 전체에 걸쳐 구슬모양 꾸미개를 금실로 꼬아서 달았다.
무령왕릉은 백제 25대 무령왕(재위 501∼522)과 왕비의 무덤으로, 벽돌을 이용해서 만든 벽돌무덤(전축분)이다. 출토된 유물들은 6세기 전반 백제 문화의 수준과 묘제,사장 등의 일면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중 지석(誌石)은 삼국시대 고분 가운데 최초로 무덤에 묻힌 주인과 만든 시기를 확실히 밝혀주는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