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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00호 | |
금동보살입상(1979) 金銅菩薩立像(1979) | |
소재지 |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63, 부산시립박물관 (대연동, 부산광역시시립박물관) |
분류 | 유물 / 불교조각 / 금속조 / 보살상 |
수량/면적 | 1구 |
지정연도 | 1979년 4월 30일 |
건축시기 | 통일신라 |
1. 개요
金銅菩薩立像. 통일신라 초기에 만들어진 한국의 금동보살입상. 현재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00호로 지정되었다.2. 내용
높이 34㎝.
통일신라 초창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조성 연대는 8세기(서기 700년대)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기존 적국이었던 백제, 고구려 문화를 배척하거나 파괴한 것이 아니라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거기에 동시에 중국 당나라 및 인도, 서역과의 문화교류를 활발히 진행하면서 예술계 전반에 걸쳐 중흥기를 이룩하였다. 특히 불교미술은 기존 삼국의 문화를 조화롭게 유지하는 한편 해외 각국과 교류하면서 국제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불교조각의 경우 이전 고신라 시대에 비하여 더욱 신체 비례에 균형이 잡히고 얼굴의 세부 표현이나 몸체의 양감 및 옷주름 처리 등에서 한층 뛰어난 작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보살상 또한 당시 삼국의 문화 통합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비록 1,300년의 오랜 세월이 지나며 대좌(臺座)와 광배(光背)가 없어지고 일부분은 도금이 벗겨지기도 했으나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금동보살입상의 우수한 조형 기술을 담고 있다.
훗날 통일신라가 멸망한 후 한반도에서는 금동불 제작이 줄어들고 금속 조각수법이 이전 시기보다 쇠퇴하면서 대신 석불, 마애불, 철조불상의 조성이 증가하기 때문에 현존하는 금동불의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불상은 사실에 충실하면서도 육체의 관능적인 미에 흐르지 않고 자비와 위엄을 갖추고 있는 작품으로서, 통일신라 초기 신라인들의 정신력과 완숙한 기법을 보여 준다.
1979년 4월 30일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금동보살입상
- 두산백과 : 금동보살입상
- 한국어 위키백과 : 금동보살입상 (국보 제200호)
- 향토문화전자대전 : 금동보살입상
- e뮤지엄 : 금동보살입상
- 미술백과 : 금동보살입상
- 부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 부산의 문화유산 : 국보 제200호 금동보살입상(金銅菩薩立像)
4. 국보 제200호
부산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이 불상은 정면을 향해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서 있는 금동보살상으로, 대좌(臺座)와 광배(光背)는 없어졌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작품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육계)이 높이 솟아 있으며, 이마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예전에 관(冠)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이마의 머리카락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뒤에는 머리카락 표현이 없다. 풍만한 얼굴에는 반쯤 뜬 눈, 반달모양 눈썹, 오똑한 코가 새겨져 있으며, 잔잔한 미소가 번져 아름답고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으며, 목에는 굵은 3줄의 삼도(三道)가 있다.
신체는 탄력성있게 묘사되었으며, 풍만한 가슴에서 가는 허리로 이어지는 곡선이 아름답다. 상체는 옷자락이 양 어깨에 걸쳐 발 아래까지 늘어져 있는데 왼쪽 일부가 끊어져 없고, 하체의 옷은 U자형 주름을 좌우대칭으로 표현하였다. 양 팔 아래위로 팔찌를 하고 있을 뿐 신체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다. 오른손은 옆으로 올려 손바닥을 위로 하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데, 손모양으로 보아 정병(淨甁)을 들고 있었던 듯하다.
당당한 신체표현에 품위와 자비를 갖추고 있는 이 불상은 통일신라 초기의 아름다운 작품이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육계)이 높이 솟아 있으며, 이마에는 작은 구멍이 있어 예전에 관(冠)을 쓰고 있었던 것 같다. 이마의 머리카락은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뒤에는 머리카락 표현이 없다. 풍만한 얼굴에는 반쯤 뜬 눈, 반달모양 눈썹, 오똑한 코가 새겨져 있으며, 잔잔한 미소가 번져 아름답고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으며, 목에는 굵은 3줄의 삼도(三道)가 있다.
신체는 탄력성있게 묘사되었으며, 풍만한 가슴에서 가는 허리로 이어지는 곡선이 아름답다. 상체는 옷자락이 양 어깨에 걸쳐 발 아래까지 늘어져 있는데 왼쪽 일부가 끊어져 없고, 하체의 옷은 U자형 주름을 좌우대칭으로 표현하였다. 양 팔 아래위로 팔찌를 하고 있을 뿐 신체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다. 오른손은 옆으로 올려 손바닥을 위로 하고, 왼손은 아래로 내려 가운데 손가락을 구부리고 있는데, 손모양으로 보아 정병(淨甁)을 들고 있었던 듯하다.
당당한 신체표현에 품위와 자비를 갖추고 있는 이 불상은 통일신라 초기의 아름다운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