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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94호 | |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白磁 靑畵鐵彩銅彩草蟲文 甁 | |
소재지 |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성북구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
수량/면적 | 1점 |
지정연도 | 1997년 1월 1일 |
제작시기 | 조선 시대 |
1. 개요
白磁 靑畵鐵彩銅彩草蟲文 甁. 조선 후기, 1700년대 전반에 만들어진 한국의 청화백자. 현재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94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높이 42.3㎝, 입지름 4.1㎝, 밑지름 13.3㎝.
1700년대 초에 만들어진 청화백자로, 양인각(陽印刻)으로 시문된 문양 위에 청화·철사·진사를 함께 곁들여 장식한 예는 조선 도자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이다.
병의 앞뒤 양면에는 국화와 난초가 회화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벌과 나비들의 노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무늬는 돋을무늬로 양인각한 뒤 난초는 청화, 국화는 진사, 국화 줄기와 잎은 철사, 벌과 나비는 철사 또는 진사로 채색하였다.
18세기 경기도 광주 분원리 가마에서 특별히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되며, 개성 지방에서 대를 이어 전해온 것으로 그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진고개의 일본인 골동상이 참기름 장수에게서 단돈 5원에 구매하였다가 여러 사람을 거쳐 1936년 경성미술구락부 경매에서 14,580원[1]에 낙찰되어 간송 전형필이 주인이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3. 외부 링크
- 간송미술문화재단 공식 홈페이지 :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 한국어 위키백과 :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 두산백과 :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
4. 국보 제294호
조선시대 백자들은 대개 단순한 형태와 문양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을 절제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높이 42.3㎝, 아가리 지름 4.1㎝, 밑 지름 13.3㎝인 이 병처럼 하나의 작품에 붉은색 안료인 진사, 검은색 안료인 철사, 푸른색 안료인 청화를 함께 장식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형태는 가늘고 긴 목에 풍만한 몸통과 약간 낮은 굽을 하고 있다. 굽은 선을 그은 듯이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아가리는 그대로 끊어내어 날카로운 맛이 있다. 18세기 전반경의 백자 병은 아가리 끝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거나 말린 것이 많은 것에 비해 드물게 보이는 형태이다.
병의 앞뒤 면에는 국화와 난초를 그렸으며, 벌과 나비들이 노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무늬는 돋을무늬로 난초는 청화, 국화는 진사, 국화줄기와 잎은 철사, 벌과 나비는 철사 또는 진사로 채색하였다.
이 병은 같은 종류의 조선 백자 중 크기가 큰 편에 속하며 유약의 질, 형태의 적절한 비례감, 세련된 문양표현으로 보아 18세기 전반경 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는 가늘고 긴 목에 풍만한 몸통과 약간 낮은 굽을 하고 있다. 굽은 선을 그은 듯이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아가리는 그대로 끊어내어 날카로운 맛이 있다. 18세기 전반경의 백자 병은 아가리 끝이 밖으로 살짝 벌어지거나 말린 것이 많은 것에 비해 드물게 보이는 형태이다.
병의 앞뒤 면에는 국화와 난초를 그렸으며, 벌과 나비들이 노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무늬는 돋을무늬로 난초는 청화, 국화는 진사, 국화줄기와 잎은 철사, 벌과 나비는 철사 또는 진사로 채색하였다.
이 병은 같은 종류의 조선 백자 중 크기가 큰 편에 속하며 유약의 질, 형태의 적절한 비례감, 세련된 문양표현으로 보아 18세기 전반경 경기도 광주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1] KBS 역사저널 그날에서 '전형필' 편을 시작하면서 이 유물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당시 시세를 알게 되면 간송이 구입한 저 가격이 엄청 놀랄 정도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1930년대 당시 경성(지금의 서울)의 8칸짜리 기와집 1채의 가격이 1,000원인데, 간송이 구입한 가격은 기와집 15채에 가까운 가격이다. 즉, 현재로 보면 간송은 20평대 중형 아파트 15채 정도의 가격으로 저 백자 병을 구입한 것인데, 이게 얼마나 충격적이면 경매 다음날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경성일보에 백자 사진과 함께 '대서특필'을 할 정도였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