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13:33:58

청자 오리모양 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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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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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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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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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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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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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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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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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74호
청자 오리모양 연적
靑磁 鴨形 硯滴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북구
분류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청자
수량/면적 1개
지정연도 1962년 12월 20일
제작시기 고려 시대(12세기)
파일:국보74호청자오리모양연적.jpg
<colbgcolor=#315288> 청자 오리모양 연적

1. 개요2. 내용
2.1. 전형필의 손에 들어가기 까지2.2. 상세
3. 기타4. 외부 링크5. 국보 제74호

[clearfix]

1. 개요

靑磁 鴨形 硯滴.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고려 시대인 12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상형(象形) 고려청자 연적으로, 전체적으로 오리 모양이다. 그래서 오리 압(鴨) 자를 써서 청자압형연적(靑磁鴨形硯滴) 또는 청자압형수적(靑瓷鴨形水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연적은 서예를 할 때 쓰는 물을 담아두는 그릇으로 벼루와는 다른 용도다. 벼루는 먹물을 담기 위한 용도이지만 연적은 먹물을 만들기 위한 물을 담아두는 용도다.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에게 팔려가기 전에 간송 전형필이 거액을 주고 사서 가까스로 지켜낸 유물이라, 유감스럽게도 본 연적의 출처나 제작시기와 같은 정보는 현재로썬 정확히 알 길이 없다.

고려시대에 고려청자로 만들어진 오리모양 연적은 본 연적 외에도 내려져 오는 것이 몇 점이 더 있다. 하지만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그 중에서도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제작 수준이 가장 뛰어나며 외형도 세련되어 아름답기로 손꼽힌다.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1962년에 국보 제74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내용

2.1. 전형필의 손에 들어가기 까지[1]

앞서 개요의 설명에서 간송 전형필이 본 연적을 거액을 주고 구매하여 일본인에게 넘어갈 뻔한 것을 막았다고 했는데, 그 자세한 내막은 다음과 같다.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개스비 컬렉션의 일부였는데, 개스비 컬렉션이란 영국 귀족 출신의 변호사 존 개스비(John Gadsby)가 일본 제국 시기 도쿄에 거주하면서 수집한 고려청자 수집품들을 일컫는다. 존 개스비는 일본 제국으로 25살때 이주해와서 변호사 일을 했다고 하는데, 그는 귀족 출신이니만큼 예술품을 보는 안목이 뛰어났다고 한다. 그는 도쿄에서 골동품 수집을 시작했고 처음에는 일본의 유물들을 사모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에 반하게 되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최상급 고려청자들을 하나 둘 사모으기 시작했다.

헌데, 도쿄의 골동품 시장에 풀려있던 고려청자나 일본인 수집가들로부터 구입한 고려청자들은 죄다 도굴로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들이었다. 개스비 컬렉션의 유물들만 해도, 개스비 이전 소장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도굴로 유출된 유물들일 것이라는 정황이 드러난다. 국보 제65호로 지정된 청자 기린형뚜껑 향로는 경성 고등법원 검사 아유카이 후사노신의 소장품이었고, 국보 제66호로 지정된 청자 상감연지원앙문 정병의 경우 조선총독부 재판소 고등법원장인 요코다 고로가 개스비 이전의 소유주였다. 역시 국보 제270호로 지정되어 있는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의 이전 주인은 주 대한제국 일본공사 출신의 하야시 곤스케였다. 어쨌든 개스비 자신의 뛰어난 안목을 토대로 사모은 명품 유물들이니만큼 그의 고려청자 컬렉션은 유명세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193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일본 제국은 제국주의군국주의의 광기에 휩싸여 점차 미쳐돌아가게 되고, 1936년 일본 육군 장병들이 일으킨 군부 쿠데타 시도인 2.26 사건이 일어난 것을 보고 개스비는 사태가 심상치 않으며 곧 전쟁이 터질 것을 직감하고 일본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개스비는 일본을 떠나면서 가지고 있던 소장품을 다 처분하고 돌아가기로 마음 먹고는 1937년에 본인 소유의 유물들을 내놓기로 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예의 고려청자 컬렉션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형필은 개스비의 고려청자 컬렉션에 이미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고 있었기에, 개스비가 고려청자들을 다 처분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로 개스비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는 당시 돈으로 40만원이라는 엄청난 거액을 주고 개스비로부터 본 유물을 포함한 고려청자 20점을 인수한다.[2]

아마 전형필이 본 컬렉션을 사지 않았다면, 귀중한 고려청자 명품들은 다시 일본인들의 손에 넘어가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또한 일본으로 넘어간 우리나라 문화재들의 현황을 고려해보면, 지금에 와서는 그 소재조차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3]

전형필이 구입한 20점의 고려청자들 가운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총 9점으로, 그 목록은 아래와 같다.

2.2. 상세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높이 8cm, 너비 12.5cm의 연적으로, 명확하지는 않지만 제작 시기는 아마도 고려청자 제작 기술이 절정을 이루었던 12세기 무렵일 것으로 추정한다. 본 연적은 일반적으로 고려청자하면 떠오를 특유의 비색과 은은한 광택을 전체적으로 잘 보존하고 있으며, 형상화한 오리의 형체가 뚜렷하고 사실적이며 아주 정교하다.

본 연적의 사용법은 오리의 등에 올라가 있는 연꽃잎에 뚫려 있는 구멍(주입구)으로 물을 넣어 오리의 뱃속에 물을 담아두며, 물을 따를 때는 오리를 기울여서 오리 주둥이 오른편에 작게 뚫린 배출구로 물을 따르는 방식이다. 오리의 등에 달린 주입구를 막기 위한 마개도 같이 전해지는데, 이는 반쯤 핀 연꽃 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다.

연적의 외형은 그야말로 오리 그 자체인데, 물 위를 헤엄치는 오리를 형상화 하고 있다. 실제 오리가 헤엄칠 때처럼 날개는 등에 딱 붙어 있고 두 발은 몸통 밑으로 감추었으며 앞가슴은 빼내밀어서 오리가 헤엄칠 때의 모습이 완연하다. 오리의 몸체는 오동통하여 볼륨감이 있고, 날개에 달린 깃털의 결 뿐만 아니라 꼬리죽지의 깃털까지도 섬세하게 음각으로 묘사했다. 등에는 연꽃잎과 줄기를 얹고 있는데, 줄기들 끝에는 몇 개의 연꽃봉오리가 붙어 있고 줄기는 서로 꼬여 있다. 오리의 머리는 왼쪽 상단을 향해 살짝 기울어져 있는데, 등에서부터 이어져온 꼬인 줄기 한가닥을 왼편 주둥이에 물고 있다. 앞서 언급된 바와 같이 오리 주둥이 오른편에는 배출구가 뚫려 있는데, 이 배출구에는 물을 따르기 위한 장식이 붙어 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장식이 붙어 있던 흔적은 남아 있지만[4] 안타깝게도 떨어져 나가서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
파일:국보74호청자오리모양연적2.jpg
청자 오리모양 연적 오른쪽 모습
청자 오리모양 연적에 대해 더 전해지는 자료는 없어 추정이지만, 전라남도 강진군부안군 일대에 있는 고려청자 도요지[5]에서 본 연적과 같은 오리형 연적 파편들이 출토되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본 연적이 이 도요지들 가운데 하나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파편들을 통해서 본 연적의 제작 과정도 유추할 수 있다. 우선 오리를 흙으로 빚어내고 오리 몸체를 가로로 길게 잘라 나누어서 각각 속을 파내 물을 담을 공간을 만들고 자른 부분을 정교하게 다시 맞대서 붙인 뒤 마무리 장식을 더한 것으로 보인다.[6] 또한 청자의 조형 수준이 높은 것으로 보아, 청자 오리모양 연적의 제작 시기는 고려청자 제작이 전성기를 이루었던 12세기일 것으로 추정한다.

고려시대에 본 연적을 연적의 용도로 실제로 사용했는지 아니면 장식과 감상 용도의 사치품이었을지 지금으로써는 알 수 없지만, 대단히 높은 제작 수준과 디자인 상의 세련됨을 보아서 최소한 고려 귀족 계층의 소유물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약간의 손상을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대단히 좋고, 그 높은 미적인 수준과 절정에 오른 고려의 청자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공예품으로서의 가치를 높게 인정 받아,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4호로 지정되었다.

3. 기타

파일:1970년발행30원청자압형수적.jpg
30원 보통우표[7]
  • 청자 오리모양 연적은 1970년 2월 25일에 발행된 30원권 보통우표의 도안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4. 외부 링크

5. 국보 제74호

오리 모양으로 만든 고려시대의 청자 연적으로 높이 8㎝, 너비 12.5㎝의 크기이다.

물위에 뜬 오리가 연꽃줄기를 물고 있으며 연잎과 봉오리는 오리의 등에 자연스럽게 붙어있다. 오리의 등의 연잎으로 장식된 부분에는 구멍이 있어서 물을 넣도록 되어있고, 연꽃 봉오리 모양의 작은 마개를 꽂아서 덮고 있다. 물을 따르는 부리는 오리 주둥이 오른편에 붙어 있는데, 이 부리가 연줄기에 달린 봉오리 끝으로 통했으리라 짐작되지만, 지금은 그 부분이 부서져 있어 원형을 확실히 알 수 없다.

이 연적은 오리의 깃털까지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정교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알맞은 크기와 세련된 조각기법, 그리고 비색(翡色)의 은은함을 통해 고려 귀족 사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훌륭한 작품이다.


[1] 본 단락은 전적으로 KBS 천상의 컬렉션 가운데 '개스비 컬렉션'의 내용을 주 텍스트로 삼아 작성되었다. 출처: KBS 천상의 컬렉션 - 개스비 컬렉션[2] 일제강점기 시기 돈으로 40만원은 기와집을 400채나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금액으로, 현재 대한민국의 원화로 환산하면 무려 약 1,200억원에 달한다고 한다.[3] 일본은 약탈문화재에 대한 공개를 극히 꺼리는 경향이 있다. 심지어 공립 박물관이 소장한 약탈문화재에 대한 대외 공개도 꺼리는 판인데, 개인이 소장한 약탈문화재라면 더더욱 비밀스럽게 감추려 든다. 이로 인해 일본에 넘어가 있는 우리 문화재들에 대한 실정과 실태 파악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4] 장식은 아마도 연꽃 모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5] 陶窯址=요지 또는 가마터[6]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 청자압형연적, 한국 미의 재발견 도자공예 - 청자 오리모양 연적[7] 1970년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