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보 國寶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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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ki style="margin: -15px -10px -15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315288> | |
| <colbgcolor=#31528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軍威 阿彌陀如來三尊 石窟 Grotto of Amitabha Buddha Triad, Gunwi | ||
| 소재지 | <colbgcolor=#fff,#1f2023>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1477 | |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불전 | |
| 수량/면적 | 1기 | |
| 지정일 | 1962년 12월 20일 | |
| 시대 | 통일신라시대 초기 | |
| 소유단체 | 국유 | |
| 관리단체 | 군위군 | }}} |
| |
|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
1. 개요
7세기 중엽 ~ 말 경에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지역에서 만든 신라의 석굴사원. 제2석굴암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며, 1962년 12월 국보 제109호로 지정되었다.군위군의 대구광역시 편입 시행으로 인해 대구광역시도 국보를 보유하게 되었다.
현재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만든 계단은 막아놓아 멀리서 봐야하므로 직접 가서 볼 사람들은 이 점을 유의할 것.[1]
2. 내용
| 석굴 소개 영상 | |
| |
| 석굴의 전경 |
이 제2석굴암을 처음 조성한 사찰은 기록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5년(493)에 극달화상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라의 불교 공인(법흥왕) 전 핍박받던 시대에, 숨어서 오로지 불심으로만 수도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제2석굴암은 조각의 수법과 석굴의 구조를 볼 때 정교함이나 아름다움에서 경주 석굴암보다는 떨어진다. 하지만 군위 삼존석굴은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로 넘어가는 과정에 만들어진 과도기적 작품으로 바위에다 그대로 새기는 마애불에서 인공석굴을 만들어 부처의 조각상을 앉히는 과정의 중간 형태라는 데서 의미가 있다. 특히 본존불은 손가락으로 땅을 짚은 항마촉지인을 취하였는데, 이는 석가여래 불상의 전통적인 수인으로 한국의 역대 불상들 중 항마촉지인을 한 최초의 것이라 의미가 매우 크다.
| |
| 협시보살인 대세지보살(左)과 관세음보살(右) |
7세기 군위 지역 신라인들이 제작한 석굴 삼존불상으로, 군위 지역의 고대 불교사 및 석조공예술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다. 또한 경주 토함산 석굴암보다 100여 년 앞서 만들어진, 한국 석굴사원의 모태가 된 작품으로 그 가치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3. 교통
교통편은 산골 치고는 나쁘지 않은 편이며 오히려 사유원, 팔공산하늘정원, 화본역보다 접근성은 더 높다.군위군 마을버스는 용수행이 1일 2회 다니고 둔덕행이 7회 운행한다.
대구 도심에서는 급행9번과 급행9-1번을 타고 올 수 있다. 급행9번은 1일 17회, 급행9-1번은 1일 4회 제2석굴암을 거친다.
4. 외부 링크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 두산백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 한국어 위키백과: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 대한민국 구석구석: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 답사여행의 길잡이 8 - 팔공산 자락: 군위 삼존석굴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군위 삼존석굴
- 미술대사전(용어편): 군위삼존석굴
5. 국보 제109호
경상북도 군위군 팔공산 절벽의 자연동굴에 만들어진 통일신라 초기의 석굴사원으로,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경주 석굴암 석굴(국보 제24호)보다 연대가 앞선다. 이 석굴에는 700년경에 만들어진 삼존석불이 모셔져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다.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3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가운데 본존불은 사각형의 대좌(臺座) 위에 양 발을 무릎 위에 올리고 발바닥이 위로 향한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큼직한 머리(육계)가 있으며, 얼굴은 몸에 비하여 큰 편으로 삼국시대 불상에서 보이던 친근한 미소 대신 위엄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옷은 얇게 걸치고 있어서 당당한 신체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으며, 옷자락은 넓은 무릎을 거쳐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 아래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손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리고 손가락이 땅을 향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좌우의 보살상은 각각의 머리에 작은 불상과 정병이 새겨진 관(冠)을 쓰고 있다. 가슴 앞에는 목걸이를 걸치고 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으며, 옷은 길게 U자형의 주름을 그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이들 보살상은 날씬한 몸매에 어울리는 신체 비례와 목·허리·다리 3부분을 비틀고 있는 모습에서 새롭게 수용된 중국 당나라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삼국시대 조각이 통일신라시대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자연 암벽을 뚫고 그 속에 불상을 배치한 본격적인 석굴사원이라는 점에서 불교 미술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