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8:59:03

대전차 견

1. 개요2. 설명3. 실전4. 기타

1. 개요

러시아어: собаки-истребители танков, 사바키-이스뜨리비찔리 땅코브[1] 혹은 противотанковые собаки, 쁘로찌바땅코븨 사바키[2]
독일어: Panzerabwehrhunde, 판처압베어 훈트 - 대전차 견 혹은 Hundeminen, 훈트 마이넨 - 지뢰개

파일:Qemlww.jpg

가짜 포신을 장착한 T-34-85를 향해 달려가는 개. 1952년 훈련중.

파일:soviet training session for the infamous dog bombs using a panzer II.jpg

소련군이 노획한 2호 전차를 향해 달려가는 개.

2. 설명

대전차 견(Anti-tank dog)은 개의 몸에 폭발물을 주렁주렁 매달고 적군 기갑차량의 하부로 달려가 자폭하게 만드는 소련군의 전술이었는데 소련군에서 1930년대에 창안하고 소련 붕괴 후에도 러시아군이 1996년까지 사용했지만 실제로는 독소전쟁 시기인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단 4년만 사용했다. 1943년 초 미군도 이 자폭견 전술을 고안했으나 문제가 많아서 바로 폐기시켰다.

1924년 소련군 수뇌부는 개를 군용으로 쓰자는 안건을 승인하였다. 군견 운용의 목적은 구조, 지뢰탐지, 경비는 물론 개썰매를 이용한 부상자•의약품•탄약•식량•문서와 편지의 수송 등이었는데 이는 현대에 군견을 운용하는 목적과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다. 군견의 양성을 위해 특수견 훈련소와 군견병 학교가 모스크바에 설립되었으며 12개 군견 지역대가 편성되었다.

훈련소 창설 직전 노동자와 농민의 붉은 군대에는 개 조련사가 없었다. 그래서 붉은 군대는 사냥꾼, 경찰 출신 경찰견 훈련사, 서커스 개 훈련사 등 여러 곳에서 온 개 조련사를 입대시키거나 파견와서 군견병/개들을 훈련시켰다. 보르조이, 마스티프, 포인터, 리트리버, 알래스칸 말라뮤트, 시베리안 허스키 등 다양한 견종을 대상으로 훈련이 진행되었으나 지능이 높고 훈련을 잘 따르며 체력이 좋은 저먼 셰퍼드가 주요 군견으로 선정되었다.

여기까지는 정상적인 군견의 운용 시도였다고 볼 수 있으나 소련군의 누군가는 1930년대부터 개에게 지뢰를 달아 공격용으로 써먹을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소련군은 1935년에 공식적으로 대전차 견이라는 전술을 채택했다.

원래 첫 아이디어는 이러했다.
1. 군견에게 폭탄을 두른다.
2. 특정한 목표물에 달려가도록 한다.
3. 군견은 이빨에 물고 있던 자동 풀림 버튼을 주둥이를 벌림으로써 버튼이 해제되고 풀림 버튼도 입에서 떨어진다. 그와 동시에 폭탄도 몸에서 떨어진다.
4. 아군이 있던 곳으로 호다닥 도망친다.

이게 가능했으면 잘 훈련시킨 개 한 마리로 적군의 전차를 계속 파괴할 수 있으니 매우 가성비가 뛰어났겠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군견이 적군의 전차 밑에 떨어뜨린 폭탄은 타이머가 달린 시한폭탄이었거나 사람이 원격으로 조작해 터뜨릴 수 있는 폭발물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는데 1930년대에도 시한폭탄 기술은 제법 괜찮았으나 유선이든 무선이든 폭발물의 원격 조작 기술은 부실했으며 단순한 폭발물이 아닌 만큼 가격도 낮지 않았다.

거기에 더한 문제가 있었는데 개 훈련사와 군견은 이 훈련을 6달 동안 반복했으나 보고서에 따르면 어떠한 개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폭탄견은 단일 목표물에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었으나 그 성공률이 높다고는 볼 수 없었다. 목표물과 지형을 외우지 못해 혼동하여 애먼 지형지물이나 목표물에 가거나 목표물에 가더라도 자동풀림버튼을 풀지 않고 주둥이를 꾹 닫은 채 다시 아군에게로 달려오는 식이었다. 실전 상황이었다면 개와 아군 다 몰살당할 수 있던 상황이었다. 개의 지능으로는 너무 복잡한 명령이었는데 '폭발 가치가 있는 목표'라는 것을 인지하기 어려웠을 뿐더러 폭발물을 저런 동작으로 투하하는 것은 더욱 어려웠다.

계속되는 실패 속에 소련군은 결국 전술계획을 단순하게 하기로 변경했는데 폭탄을 확실히 군견에게 묶은 다음 목표물에 가도록 한 뒤 자폭하도록 했다. 초기에는 개를 굶긴 후 전차 하부에 개사료가 놓여 있는 곳을 찾도록 하는 식으로 군견에게 적군 전차를 찾도록 훈련하였다. 처음에는 정지한 전차를 이용해 훈련하였으나 군견의 훈련도가 쌓였다 싶으면 전차 시동을 켜서 엔진이 돌아가게 하고 주변에서 공포탄 사격을 하며 고함을 지르는 등 전장 상황을 조성하여 훈련을 진행했다. 이 훈련은 군견이 전투 상황에 익숙해지게 하여 더욱 목표물에 집중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파일:070500.jpg

나무 레버가 폭탄주머니 위에 20cm 정도 뻗어나와 있는데 그것이 기폭장치다.

각 군견의 몸에 10~12kg 정도의 밟지 않아도 바로 터지게끔 개조한 대전차 지뢰나 TNT 폭발물을 넣은 캔버스 재질의 주머니를 묶었다. 자세한 전술은 아래와 같았다.
1. 대전차 지뢰 혹은 TNT를 군견의 몸에 묶어 두고 안전핀을 뺀다. 비상시가 아닌 한 해체를 하면 안 되었는데 적이 군견을 사로잡아 폭발물을 해체하여 무력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2. 군견이 전차 아래로 들어간다.
3. 폭탄주머니 위에 삐죽 튀어나온 나무 레버가 전차 하부의 철판에 긁혀서 아래로 접히게 되면 신관이 작동하여 폭발한다.

이러한 전술이 설정된 이유는 일단 군견이 들어갈만한 곳이 전차 하부 밖에 없었던 데다 전차 하부는 장갑이 제일 취약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만 된다면 전차를 무리 없이 격파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실전

1941년 독소전쟁이 발발한 후 모스크바에 있는 군견 훈련소에 있는 개들의 대부분이 대전차견으로 강제 편성되었고 대전차견으로 훈련받았다. 기록에 따르면 약 4만 마리의 개들이 대전차 견으로 훈련받았다. 다만 4만 마리 모두가 희생된 것은 아니었는데 이 전술이 쓸모없다고 판단된 후에는 대전차 견들은 다시 일반 군견으로 재편되었기 때문이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공병부대 장교였던 비포라스키 대위는 1941년 10월 16일에 대전차견의 전투 보고서를 토대로 이 일지를 작성했다. 이것이 대전차 견의 첫 실전이었다.
1. 대부분의 개들이 포성과 총성,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환경에 놀라 참호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함. 설사 참호 밖으로 나갔더라도 이내 다시 참호로 도망쳐 돌아오는 바람에 나무막대(기폭장치)가 참호 벽이나 사람에게 걸려 오폭하는 등 아군에게 사상자 피해를 입힌 것이 6건이나 됨.
2. 9마리의 개는 처음에는 독일군 전차가 있는 곳으로 잘 뛰어가다가 기관총 탄막 사례와 박격포 포탄이 주변에 떨어지자 무서워서 이리저리 뛰어다님. 포탄 구덩이나 웅덩이 같은 곳으로 숨어서 나오질 않았음. 3마리는 총에 맞아 목표물에 가기도 전에 폭발해 버렸고 2마리는 실종되었으며 4마리는 다시 아군 참호로 도망쳐오는 바람에 아군측에서 개들을 사살해야 했음.
3. 독일군이 소총으로 전선으로 돌격하는 3마리를 쏴죽였다. 알 수 없는 개체는 자폭하지 못하였고 독일군에 생포되기도 했다.
4. 아마도 4마리의 대전차 견은 독일군 전차로 다가가 자폭에 성공하였다. 하지만 해당 전차의 파괴 여부와 어떠한 수준의 피해를 입혔는지는 정확히 확인되지 못했다.

파일:2891603.jpg

이렇듯 실전에서는 큰 문제가 많았다. 훈련 중에도 전차의 엔진을 켜 놓긴 했지만 크게 기동하지는 않았고 전차포나 기관총을 쏘지도 않았다.[3] 그래서인지 군견들도 전차에 크게 겁을 먹지 않고 훈련을 완수할 수 있었지만 막상 실전 투입된 대다수의 군견들은 적 전차에 달려들긴커녕 아예 참호에서 나가기조차 거부했거나 전차에 접근하더라도 전차가 움직이는 걸 신기해하며 가만히 구경만 하다가 전차에서 쏜 기관총이나 적 보병의 총에 맞아 죽기도 했다. 그나마 몇몇 용감한 군견은 전차를 향해 뛰어들었으나 그럼에도 계획대로 폭발하여 적 전차를 격파한 횟수는 매우 적었다. 여기에 더해 작전 수행에 차질을 준 큰 문제가 하나 더 있었는데 소련제 전차는 경유로 작동하는 디젤 엔진인 데 반해 독일의 전차는 휘발유를 사용하는 가솔린 엔진이었다. 훈련 때 주구장창 접해 왔던 디젤 엔진에 익숙해진 개들은 디젤 엔진 소리와 경유 냄새에 더 친숙하게 반응하였고 따라서 적 전차가 아니라 아군 전차를 향해 다가가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공식 기록에 따르면 대전차 견으로 인한 아군 전차의 피해는 일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파일:2891601.jpg

2차대전 시기의 대전차견과 소련 군견병.

심지어 적진으로 달려가던 군견이 적 전차가 쏘는 기관총에 놀라 다시 아군 참호로 도망쳐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기폭장치인 나무막대가 참호나 사람에게 걸려 오폭하는 바람에 아군 사상자도 나오기도 했다. 때문에 아군 참호로 돌아오는 군견들은 불가피하게 사살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대전차견을 담당하던 군인 개인에게도 큰 부담이 되어 도망쳐 오는 군견을 사살한 조련사가 심적으로 충격을 받아 새로운 군견을 훈련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심지어 군견을 사살하라는 상관의 명령을 거부했다가 군법회의에 회부되어 굴라크로 직행한 조련사도 있었다.

이렇듯 문제가 많은 전술이었지만 전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흘루키프 주변에 주둔하고 있던 제160보병사단 소속 대전차 견 6마리는 독일군 전차 5대를 파괴했으며 스탈린그라드 주변의 공항 전투에선 13대의 적군 전차를 파괴했다.[4]

이 꼴을 보던 독일군은 소련군이 전투를 무서워하는 겁쟁이라 개를 대신 전투에 내보낸다는 프로파간다 선전 방송을 하기도 했다. 애당초 독일군은 첩보를 통해 대전차 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장에서 보이는 개는 전부 쏴 죽이려 들었는데 이 상황은 대전차 견들이 더욱 겁먹게 만들었으며 작전 수행은 더욱 어려워졌다.

결국 1942년 중반 들어서 소련군은 대전차 견이 비윤리적인데다 쓸모도 없다고 판단해 대전차견 전술을 취소했다. 다만 취소했지만 전선에서는 극소수로 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주석 문헌과 여기에 따르면 1943년 쿠르스크 전투에서 우크라이나 타마로프카 주의 부코보 전투에서 16마리의 대전차 견이 투입되어 독일군 전차 12대를 격파했다고 나오는데 이것은 대조가 불가능하여 믿을 수 없고 소련의 과장된 선전이라고 보면 될 듯 싶다. 그렇지만 대전차 견이 사용되었다는 기록은 확실히 존재한다.[5] 아무튼 전술을 취소한 후에는 대전차 견들은 모두 일반 군견으로 편제가 변경되었지만 소련군은 대전차 견 전술을 아주 버리지는 않아 훈련을 1966년까지 계속했으며 1966년 이후에는 대전차 견을 아예 없애 버렸고 군견 훈련소에서 "이런 훈련과 전술이 있다." 정도만 간단히 언급하는 정도가 되었다.

대전차 견 전술을 완전히 없애 버린 날은 1996년 6월인데 러시아군이 치장물자로 창고에 박혀 있던 T-10 중전차, T-34-76, T-34-85, IS-2 등등 여러 옛날 전차와 옛날 자주포들을 폐기처분하기로 결정했을 때 대전차 견 전술과 교범도 이때 모두 다 폐기했다.[6]

4. 기타

소련만 대전차 견을 운용한 것이 아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베트남 게릴라가 프랑스군을 상대로 써먹은 적이 있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군도 정글에서 연합군을 상대로 써먹었던 전적이 있다. 단 이들이 운용했던 개체는 대전차 폭탄이 아니라 대인용 폭탄을 묶은 개였다.

당연하겠지만 현재는 최악의 동물 학대라고 평가한다.

한국 TV 프로그램 M16에서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실패팀 16위로 비인도적이고 인과응보라고 신나게 까인다.

영화 '탱크 독(Red Dog, Pyos Ryzhiy, 2016년작)'의 주제가 대전차 견인데 마지막 부분에서 실전에 투입된다. 위에서 설명한 아군 팀킬은 물론 나오고 자폭에 성공하긴 했지만 하필 격발을 다른 개들 다 보고 있을 때 하는 바람에 개들이 겁먹기도 한다. 심지어 차마 자식 같은 개를 희생시킬 순 없어서 군견병이 군견에게서 폭탄을 벗기고 직접 폭탄을 들고 돌격하는 장면까지 나온다. 주인공이 그토록 아끼던 군견은 주인공이 3호 돌격포의 기관총에 맞고 중상을 입자 주인을 지키기 위해 돌격해서 돌격포와 함께 산화한다.

즈베즈다에서 모형까지 발매했다.

커맨드 앤 컨커 레드얼럿 2과 그 확장팩인 유리의 복수에서는 크레이지 이반을 사용하여 군견에게 폭탄을 붙여 비슷한 짓을 할 수 있는데 여기에서도 전차 상대로 효율이 나쁜 건 마찬가지고 대 전차 전술을 구사하겠다면 차라리 라이노 탱크 부대를 운용하는 게 낫다.


[1] 대전차(Tank Destroyer)견[2] 대전차(Anti-tank)견[3] 전차의 연료와 탄약을 아끼기 위해서였다.[4] The Red Army of the Great Patriotic War, 1941–45 / Борьба с танками[5] The Red Army of the Great Patriotic War, 1941–45 그리고 Борьба с танками[6] Zaloga, Steven J.; Jim Kinnear; Andrey Aksenov & Aleksandr Koshchavtsev (1997). Soviet Tanks in Combat 1941–45. 전차에 관한 책이지만 대전차 견의 운용역사에 대해서 짤막하게 설명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