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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三大汚物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태평양 전쟁에서 구 일본군의 패망을 앞당긴 일본군 장성들 3명을 묶어서 현대 일본에서 일컫는 말이다. 셋 모두 규슈 출신이다.[1]
다만 삼대오물은 현대 일본에서 일컫는 말로 전후 당시에 언급된 단어가 아니며, 매체나 서적 등에서 삼간사우를 언급한 사례는 있지만 삼대오물을 언급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 구글 고급 검색 기준으로 '三大汚物' 을 검색하면 3천여 건 정도만 검색되며 그나마도 한국어 자료, 중국어 자료, 혹은 다른 의미의 삼대오물(헤이세이 게임 3대 오물 등)이 절반 가량의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만들어졌을지 모르겠지만 일본에서도 그다지 유행하는 단어로 보기 어려움이 있으며, 당연히 이들의 존재를 아는 소수를 제외하면 이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일본 국민이 더 많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태평양 전쟁이라고 하는 거대한 전쟁을 말아먹는데 일조하였다는 점, 그리고 그 덕분에 독립과 승전을 맞이한 한국과 중국의 네티즌들 사이에서 어둠의 독립군들 같은 '유머용 자료'로서 삼대오물이라는 단어가 활용되는 경향이 강하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는 무타구치 렌야를 '모전구렴야'라고 하듯이 이들의 이름을 한국 한자 독음으로 바꿔서 부르기도 할 지경이다.
태평양 전쟁을 미화하는 극우들도 버릴 만큼의 업적을 남겼다. 이 밖에도 일본군을 패전으로 이끈 도조 히데키의 측근 7명이 '삼간사우(三奸四愚)'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참고로 삼간사우보다 삼대오물이 더 무능하다고 평가받는다.
일본 육군의 최대 파벌이던 일본육군사관학교 - 육군대학 출신이고, 도조 히데키가 내각을 뒤엎어 전시 수상에 취임한 뒤 능력과 관계 없이 낙하산 인사로 요직에 올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연, 지연이 조직을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
하지만 의외로 이 삼대오물 일원들은 모두 일본군의 야만성과 비인도적 광기만은 철저히 배척하여, 최소한 조직적이고 의도적인 전쟁범죄와는 무관한 자들이었다. 그저 정말로 놀라우리만치 무능한 군인들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전쟁범죄와 관련된 쪽으로는 상식적인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조롱의 대상으로 소비는 될지언정 진심 어린 증오는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2]
독일 국방군의 헤르만 괴링, 빌헬름 카이텔, 페르디난트 쇠르너가 삼대오물과 유사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3] 그러나 최소한 전쟁범죄에 관해선 나름 엄격했던 삼대오물들과 달리 독일군의 삼대오물은 셋 모두 소련군, 정치장교, 민간인, 심지어 같은 독일군을 향해서도 행한 조직적인 전쟁범죄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
2. 업적
무능한 지휘관은 적군보다 무섭다.
오자병법
3명 모두 위에서 언급한 말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지휘관이 무능하면 조직이 어떤 꼴이 나는지를 여실히 대변해 주었다. 세세히 따지면 굉장히 많으나,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오자병법
- 무타구치 렌야(모전구 렴야), - 결과적으로 보면 이 사람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터질 수밖에 없는 전쟁이었지만 중일전쟁을 일으킨 원흉이며, 수만 명의 병사를 굶어 죽게 만든[4][5] 그 유명한 임팔 전투의 지휘관이다. 그것도 모자라 전후 자신의 책임을 "나는 잘못 없어! 부하들이 못한 거야!"라며 자신의 무능함을 끝까지 부정했고, 심지어 이런 내용이 담긴 유인물을 뿌리고 다니기도 했다.
- 스기야마 하지메(삼산 원) - 도조 히데키와 함께 태평양 전쟁을 주도했고, 무타구치의 임팔 전투 기획안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자신과 같은 라인이라는 이유로 넙죽 최종 승인해준 인물이다. 중일전쟁의 건으로 히로히토 천황에게 망언을 해서 질책을 받았다고 고노에 후미마로의 수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후 전쟁의 책임으로 유서를 쓰고 권총 자살을 했다.
- 도미나가 교지(부영 공차) - 위에 적힌 스기야마 하지메조차 포기한 무능 끝판왕. 능력은 없는데 뒤를 봐주는 세력이 워낙 거대해서 이 인간을 어디에 써먹을지 상당히 고심했다고 하며, 남방 작전 전역에 부임시키고 나서는 "드디어 저 딱따구리를 내 눈 앞에서 치웠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1944년 남방 전선에서 필리핀의 제4항공군 사령관으로 취임한 뒤, 62회나 카미카제를 시도하여 별 소득 없이 400여 기의 전투기를 잃었다. 그리고 1945년 1월 미군이 필리핀 공략을 시작하자마자 항공군 총사령관 주제에 적전도주했다. 단순 도주가 아니라 그야말로 탈영의 신 역사를 열었다. 무능했지만 그나마 뭐라도 하려는 의지라도 있던 무타구치와 달리 무능한 주제에 행동력조차 없었던 진정한 무능함의 상징. 하지만 이성은 남아있던지라 전쟁 범죄는 앞장서서 막았다.
2.1. 삼대양심
뜻밖이라면 뜻밖이겠지만, 3명 모두 전쟁범죄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일본군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난징 대학살과 100인 참수 경쟁, 마닐라 대학살, 바탄 죽음의 행진, 치치시마섬 식인 사건, 731 부대 등 민간인에 대한 학살, 약탈, 강간, 폭행, 고문 등의 비상식적 전쟁범죄가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던 인간 말종들의 집단이었으나, 이 삼대오물은 특이하게도 민간인 상대 전쟁범죄는 저지른 바가 없다. 이 정도만 해도 당시 일본군에서는 상당히 '특이한' 경우였으나, 단순히 방관에 그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민간인에 해를 끼치려던 타 부대나 부하 군인에 대해 아군과의 전투까지 불사하며 이들을 적극적으로 뜯어말렸다는 점에서 더욱 특기할 만한 점이다. 실제로 식인이나 비이성적인 고문, 전쟁포로 학살 등의 극단적인 문제가 잘 안 보였을 뿐이지, 연합군 측에서도 민간인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는 커티스 르메이와 아서 해리스 같은 장군이 있었기 때문에 이 3인방의 인성 자체는 꽤나 바른 편이라는 얘기가 된다.[6]- 무타구치 렌야는 노구교 사건으로 중일전쟁의 포문을 연 A급 전범이었지만, 부하가 알렉산드리아 야전 병원에서 멋대로 학살을 벌이자 다음 날 즉시 현장에 나가 주동자를 총살한 뒤 생존한 영국군 포로에게 직접 사과했고 그 외에는 부하들의 전쟁범죄를 철저히 통제해서 전쟁범죄 이력이 0이다. 극심한 기아로 악명 높은 임팔 전투에서는 부하들이 아사하든 말든 피아를 가리지 않고 당시 일본군에 만연하던 인육을 절대 금지시켰으며[7] 점령지 유화 정책을 주장하거나[8] 카미카제를 미친 짓이라고 반대하는 상식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다.[9]
- 스기야마 하지메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개전에 개입한 A급 전범이지만 육군대신 시절까지 포함해서 단 한 번도 전쟁범죄 관련 발언이나 결재를 해준 적이 없어서 자살하지 않고 기소되어도 큰 처벌을 안 받았을 것으로 여겨진다.
- 도미나가 교지는 아군에게는 카미카제, 탈영, 항복 등의 각종 막장 행각으로 악명을 떨쳤지만 중국에서 이시이 시로를 중심으로 세균전 시도가 벌어지자 "민간인들은 사람 아니냐"고 반대해서 저지했고 필리핀에 파견되었을 때는 기본적인 업무 소양도 없는 인간이 부하들이 전쟁범죄를 벌이지 않게 철저히 통제하면서 점령지 주민들에게 대민지원을 했으며 마닐라 대학살에서는 유일하게 주민들을 보호하며 자기 부대로 몰려든 아군의 학살 시도를 저지해 수천 명을 살렸다. 이걸 보면 사실상 완전 무능한 인물은 아닌데, 부하들의 전쟁범죄는 철저히 통제한 걸 보면 민사작전에는 재능이 있었다.[10]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로 인해 오늘날 이들에 대한 평가는 밈으로 소비될 수 있는 단순한 웃음거리 수준에 그친다.[11] 이렇게 무능하고 어리석은 지휘관들이 본질적으로 악독한 놈들이었다면 농담거리로도 쓰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12] 이들은 점령지에서 자체적으로 전쟁범죄를 자제했고[13], 그 덕분에 이 세 사람이 '멍청이'로 기억될 뿐 '개새끼'로 역사에 남지는 않았기에 각종 농담의 주제로 잘 써먹히게 된 것. 또한 이들이 전쟁범죄를 저지르지 않은 점을 참작하여 결국 연합국 측에서도 상당히 가벼운 처벌만 내리고 끝냄으로써 자살한 스기야마[14]를 제외한 나머지 2명은 본인들의 삶까지 유지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적어도 전쟁범죄 관련으로는 대단히 깨끗한 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무타구치와 도미나가가 부하들의 죽음에 무심했고 뻔뻔하게 군 일화가 많지만,[15] 그렇다고 하나야 타다시처럼 노골적인 가혹행위를 저지른 건 아닌 것으로 보이며 임팔 전투의 생존자가 치치지마 식인 사건의 주동자들에게 무타구치도 식인하라는 소리는 안 했다며 화냈다는 일화를 보면 어찌어찌 사람 취급은 받은 모양이다.[16] 일본군에서 직접적인 가혹행위로 프래깅 미수에 시달렸음에도 끝내 살아남은 하나야 같은 타입이 많았다는 걸 생각한다면 묘하게 인간적이었던 이들이 살아남은 건 어떤 의미로는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이 사람들의 출신 배경을 보면 다들 서민에서 중산층 정도의 배경을 가졌고[17], 자수성가를 해서 상류층으로 올라가겠다는 생각으로 장교의 길을 걷게 된 것으로 보인다.[18] 즉 이 3인 다 군인으로서의 사명감이나 애국심, 혹은 전쟁영웅이 되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자신들의 신분 상승과 (후천적으로 얻어낸) 높은 지위를 유지할 생각만 가득 차 있는, 나쁘게 말하면 일확천금을 꿈꾸던 서민에게 아무런 준비 없이 우연히 일확천금이 주어진 상황과 비슷한 느낌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3. 삼대오물이 다가 아니다
사실 이 3명에게 오물이자 멍청이라고 패전 책임을 떠넘길 만큼 일본군의 다른 작자들이 훌륭했던 건 절대로 아니었다. 일본이 결국 전쟁을 일으켰다가 대실패하였고, 마침내는 핵 공격을 당하는 지경까지 가서 참패한 것은 일본군 자체의 문제이다. 되려 삼대오물이나 삼간사우는 최소한 포로나 점령지 민간인에 대한 학살이나 약탈은 금하기라도 했지 다른 일본군 장성들은 "약탈과 학살에는 귀신, 전쟁에는 등신"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무능한 주제에 범죄라는 범죄는 다 저질렀고, 이는 일본군 패망에 크게 기여했다.[19]따라서 전쟁의 참패는 그 일본군의 수뇌들인 고위 장교진과 정치인들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인데, '삼대오물'과 '삼간사우'는 마치 '특정 집단 내에서 꼬투리를 잡아서 처참하게 패전한' 자국 내의 일부 소수에게만 멸칭을 붙이고 조롱함으로서 일본군 전체적으로 비판 받아야 할 점을 가리는, 일종의 책임 회피용 단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삼대오물로 꼽힌 이 3명 모두 군인으로서 계급장을 단 뒤의 행보가 개막장이라서 그렇지, 전후 개전 책임자였던 도조 히데키는 자살쇼를 벌이다가 실패하고, 재판 내내 쇼와 핑계나 대는 등[20] 무타구치 렌야 못지않게 남 탓을 엄청나게 많이 하였고, 그 외 다른 수많은 전범들도 자신의 악행을 부하들에게 뒤집어씌우고 혼자만 살아남는 등 온갖 추태를 다 부렸다.
4. 여담
일본군에는 오카무라 야스지처럼 유능하다 하더라도 도덕성이나 인격은 개막장인 자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무능하기는 삼대오물 못지않게 무능한 주제에 인격마저도 그들 못지 않을 정도로 개차반인 인간 말종이면서 이미 이 삼대오물을 가뿐히 넘어서는 무능함을 지녔다는 악평을 들을 수도 있는 사람들도 숱하게 많았다. 그저 정치적 이유 때문에 취사선택되어 덜 욕 먹거나 더 욕 먹는 차이일 뿐이다.삼대오물은 인간성 면으로는 낫기에 인간 대접을 받는 거지만,[21] 휘하 장병을 극심하게 학대한 탓에 졸장을 넘어서 혹장(酷將)으로까지 불리는 하나야 타다시[22],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개전을 모두 조력한 주제에 영국군의 버마 진공에 겁을 먹고 버마에서 적전도주를 감행해 임팔 작전 이상의 인명피해를 불러오고도 뻔뻔하게 육군 대장으로 승진한 기무라 헤이타로,[23] 치치시마의 식인귀 다치바나 요시오, 마루타로 유명한 수많은 포로들과 민간인들을 동원해 생체실험을 자행한 전쟁범죄의 끝을 보여준 731 부대의 부대장 이시이 시로 등은 악마 그 자체다.
다시 말해 이들은 애초에 그냥 절대로 군인 계급장을 달아서는 안 되었던 무능한 잉여들이었을 뿐이다. 이들은 사람으로서 지극히 정상적인 윤리관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자신들의 그릇에 맞지도 않는 엄청난 중책을 맡아버린 바람에 인생이 꼬어버렸을 뿐이다. 이 당시 전체주의 일제가 얼마나 막 나가고 상부에서도 이런 정신 나간 파시스트스런 잔인함을 오히려 장려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모두가 잔혹하고 악한 일을 당연하게 여길 때 이것을 막기 위해 노력한 이 3명은 군인으로 봤을 때는 실격이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도덕적 용기와 양심은 오히려 평범한 이들보다 뛰어난 편이라 좋게 평가해 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본업인 '군인'으로는 처참하게 실패한 작자들인데, 막상 군인임을 배제하고 '인간'으로서 평가하면 오히려 좋게 평가해 줄 여지가 있는 양반들이라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대단히 복합적인 역사의 모습이다.[24]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었는데, 아돌프 히틀러의 주치의였던 테오도어 모렐이 바로 그 예시. 의사로서는 그야말로 돌팔이에 나치 신봉자였지만, 뇌물 수수 정도의 소소한(?) 비리 외엔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각종 반인륜 전쟁범죄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히틀러의 개인 주치의로서 그의 건강 관리만 담당했다. 체포될 당시 합병증으로 인해 법정에 세우기 힘들 만큼 몸 상태가 온전치 않은 점도 있지만, 반인륜적인 정신 나간 짓거리는 저지르지 않은 덕분에 히틀러의 최측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풀려나 자택에서 편히 누워 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빌헬름 카이텔은 군인으로서는 무능한 인물이었지만 그래도 성격은 좋았다. 다만 삼대오물은 전범 행위가 거의 없어 금방 풀려난 반면, 이 쪽은 독일군의 전범 행위를 방기한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츠지 마사노부는 한국에서 무타구치와 쌍으로 조롱 받지만, 일본 기준으로는 삼간사우보다는 개념인 취급이다. 그러나 해당 문서에 보다시피 일본에서 츠지의 그런 취급은 그저 그가 정치적으로 성공해서 그런 것뿐이지 아주 간사하고 흉악했지만 삼대오물은 걍 멍청하고 무능하며 책임감 없는 전형적인 높으신 분들일 뿐이다. 여담으로 츠지 마사노부는 도미나가 교지와 호형호제할 만큼 친했다고 한다.
[1] 도미나가는 나가사키현, 무타구치는 사가현, 스기야마는 후쿠오카현이다. 게다가 셋 다 서로 붙어있는 이웃 현들이다. 또한 한국과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다.[2] 그나마 이 셋 중에서 진심 어린 증오를 받아본 인물은 삼대오물의 본좌격인 무타구치 렌야로, 휘하 부하들에게 무지막지한 증오를 받았다. 그나마 이쪽도 이런 짓거리는 안 했고, 부하들에 대한 똥군기 등 대우가 매우 나빠서 욕을 먹었던 것이지 학살 등의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잔인한 행위는 하지 않았다.[3] 다만 이 셋은 어느 정도 실적과 능력은 있었다. 헤르만 괴링의 경우, 자신의 능력으로 나치 독일의 공식 2인자이자 제국 원수의 자리에 올라간 인물이었으며, 독일 공군인 루프트바페의 창설 주역이었다. 전쟁 후반에 워낙 트롤짓을 많이 해서 그렇지, 분명히 군사적인 재능과 이를 받쳐줄 능력 또한 있었다. 카이텔은 실전 지휘관으로는 무능했지만 조직 관리자로서는 상당히 유능했으며 인망도 좋았다. 쇠르너도 산악부대 지휘관으로선 나름 유능한 인물이었다.[4] 다만 그 와중에도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인육은 절대로 먹지 못하도록 해서 렌야가 전쟁범죄자에서 벗어나게 하는 데에 한 몫 했다.[5] 오죽했으면 임팔 작전에서 굶어죽을 뻔한 장교가 무타구치의 장례식장에 찾아와서 지휘관이고 나발이고 깽판을 부렸을 정도다.[6] 커티스의 폭격은 일본뿐만 아니라 6.25 전쟁 당시 한국에도 자행해서 현대에는 논란이 되고 쿠바 미사일 사태 때는 그 호전성으로 인해 핵전쟁까지 갈 뻔했으며, 해리스는 폭격 작전에 동원된 12만 중에 5만이 전사했음에도 그들의 죽음에 무심해서 아군에게까지 도살자라 욕을 먹었다.[7] 다만 장병들이 동료의 시체를 먹고 살아남았다는 증언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몇몇 장병들은 식인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무타구치가 전범재판에서 부하들의 식인으로 처벌받지 않은 걸 보면 치치지마 식인 사건처럼 포로나 적을 먹었다거나 살아있는 인간을 죽이고 먹었다거나 하는 수준까지는 안 간 모양이다.[8] 임팔 작전에서 아사자가 속출한 이유 중에 하나가 상부의 약탈 명령을 따르지 않아서였다.그럴 거면 보급 좀 신경 쓸 것이지[9] 사실 무타구치는 육군대학 커리어가 아주 폼은 아니라서 젊었을 때는 시베리아 현지 시찰을 나서거나 전투 지휘를 하는 등 나름 실전적인 모습을 보였다. 계급이 올라갈수록 입만 살게 되어서 그렇지.[10] 육군대학 시절 성적이 엉망이라 그렇지 들어가기 어렵다는 육군대학에 들어는 갈 정도의 공부머리는 있었고(오늘날로 비유하자면 하버드 대학교에도 꼴등은 있듯이) 탈영과 항복 당시 일본군의 상황과 타이밍을 보면 눈앞의 전황이 자신에게 어떤 유불리로 오는지는 파악할 수 있던 것 같다. 그게 자기 생존으로만 머리가 돌아가서 그렇지.[11] 당장에 한국에서 이들을 칭할 때 '어둠의 독립군'이라고까지 하는데, 한국에서 독립군이 의미하는 바를 감안하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다.[12] 물론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희화화 같은 예외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그것에만 특화된 경우이지 다른 의미로는 절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13] 다만 자리를 비운 사이 병사들이 독단적으로 저지른 전쟁범죄까지는 본인들도 능력 밖의 일인지라 막지 못했다. 그래도 이들은 전부터 최대한 병사들에게 전쟁범죄를 자제하라고 당부했고, 무타구치 렌야는 복귀해서 전쟁범죄가 일어났다는 보고를 받자마자 그 즉시 주동자를 끌어내 그 자리에서 총살시킨 뒤 생존자에게 직접 사과했다. 도미나가 교지는 다른 부대가 자기 관할 구역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르려 하자 내전을 각오하면서까지 막았다.[14] 3명중 스기야마에 대한 언급이 적은것은 이러한 이유도 있다. 인지도가 적은것도 있지만 스기야마는 전선에서 뛴 둘과는 다르게 본토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던데다가 최후에는 책임을 지고 자살했기에 건드리기에는 조금 그런 위치가 되어버린 것이다.[15] 무타구치는 부하들에게 각종 망언을 일삼았고 도미나가는 상부가 카미카제 명령을 내리자 부하들에게 죽음을 강요했다.[16] 무타구치는 전후에 부하들에게 뻘소리했다 두들겨 맞기도 하고 부하들이 죽이고 싶다고 이를 갈면서도 결국 장례식에서 깽판칠 때까지 정말 죽이지는 않았고 도미나가도 탈영 사건 때 부하들이 그냥 자살하지 그러냐며 욕하고 기수열외를 시켰지만 죽이려 하지는 않았다. 치치지마 식인 사건의 주동자들이 다른 죄수들에게 린치를 당해 일부가 사망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17] 도미나가 교지는 의사의 아들, 무타구치 렌야는 공무원 집안이나 거의 고아나 다름없이 자랐다고 할 정도로 부모와의 연이 희미했고, 스기야마 하지메는 할아버지는 농민이었으며 아버지는 교사였다.[18] 3명 전부 육군대학교를 졸업했다는 점에서 공부는 잘 했다. 도미나가 교지는 입학 후 성적은 별로였지만 명문가 출신도 아닌 일반인의 신분으로 육군대학교에 입학했다는 걸 보면 입시 자체는 잘 쳤을 것이다.[19] 일본군의 학살에 점령지 원주민을 포함한 민간인들은 연합군의 정보원 역할을 하거나 자체적으로 게릴라를 조직해 저항하였고, 일부 원주민들은 일본군을 골탕 먹일 요량으로 지름길이라고 속이고 독충이나 독초 등이 많거나 혹은 늪지대로 길 안내를 하였으며, 의도적으로 풍토병 치료법을 안 알려주는 등 저항했다.[20] 사실 연합국 측에서는 쇼와 천황도 전범으로 사형을 때리고 천황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맥아더가 일본 통제에 천황제를 유지해야 한다고 해서 나가리.[21] 사실 일본군에 있어 전설적인 존재로 천수를 누린 이시이 시로를 생각한다면 삼대오물이라고 불리는 3명이 당연히 일본군 엘리트들에 비해 낫다.[22] 다만 하나야 타다시 역시 민간인 및 포로 학살 같은 인간 말종이나 하는 짓은 일절 안 했기에 풀려날 수 있었다. 하지만 병영부조리의 화신인지라 당연히 부하들의 거센 증오를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무타구치가 형편없는 졸전으로 부하들을 거하게 날려먹어 생존한 부하들이 무타구치의 장례식에 '거의' (물론 온 사람이 있긴 했는데, 무타구치를 추모하러 온 게 아니라 그의 위패를 때려부수려고 온 것이었다.) 오지 않았듯 이 사람의 장례식에도 어떤 부하들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래도 말아먹은 정도는 작아서 당시 일본 수상이던 기시 노부스케(아베 신조의 외할아버지)가 성대하게 장례식을 열어주었다.[23] 참고로 이 인간은 겉으로는 포로 학대를 인지하고 군인들에게 포로 학대를 자제하라는 명령을 내리긴 했지만, 실제로는 이에 대한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아 포로들이 죽어나가는 것에도 일조했다.[24] 역사적으로도 그렇고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보통 서민으로 살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인심이 괜찮은 동네 아저씨' 정도의 평판이 대부분이다. 아마 일반 병사나 초급장교 정도에서 끝났으면 이렇게까지 대형사고를 치고 욕을 먹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전시 상황의 군 장성 같이 뛰어난 능력과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상류층의 자격은 전혀 없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전쟁을 전혀 치르지 않은 상태로 장성을 달고 전역하였으면 무능하다는 말을 들었어도 이 정도로 일을 말아먹지도, 후대에 까이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