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3 11:32:26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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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 크래프트 · 스튜디오 지브리(연표)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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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카의 숲 지브리 미술관지브리 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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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장편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1) 천공의 성 라퓨타 반딧불이의 묘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추억은 방울방울 붉은 돼지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귀를 기울이면 모노노케 히메 이웃집 야마다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고양이의 보은 하울의 움직이는 성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벼랑 위의 포뇨
마루 밑 아리에티 코쿠리코 언덕에서 바람이 분다 가구야 공주 이야기
추억의 마니 붉은 거북 아야와 마녀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1)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경우 톱 크래프트에서 제작했으나 미야자키가 저작권을 가지기로 하고 제작한 작품이고 미야자키가 지브리에 저작권 관리를 위탁해 스튜디오 홈페이지 작품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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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와 아기고양이버스 상상속의 비행 기계들 상상의 기계들 중 파괴의 발명 기브리즈 에피소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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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노쿠니 하얀 성회의 여왕 니노쿠니 칠흑의 마도사
(2) 니노쿠니 시리즈 중 1편을 한정으로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을 검수하는 방식으로 참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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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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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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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tablewidth=100%><tablebgcolor=#000000><#2d2f34> 만화 · 그림 동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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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백성
(1969~1970)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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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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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벌레 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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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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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키네마 준보 12월 하순 특별호에 선정된 1980년대 일본 영화 베스트 순위.
1위 가족게임
<colbgcolor=#a0522d> 2위 지고이네르바이젠
3위 천황의 군대는 진군한다
4위 전장의 크리스마스
5위 그 남자 흉폭하다
6위 태풍 클럽
7위 전학생
8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9위 패주겠어
10위 이웃집 토토로
출처
같이 보기: 올타임,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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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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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일본 미디어 예술 100선(만화)
<colcolor=#fff><colbgcolor=#ce0000> 종합 순위
1위 신세기 에반게리온
2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3위 천공의 성 라퓨타
4위 기동전사 건담
5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6위 충사
7위 공각기동대 STAND ALONE COMPLEX
8위 이웃집 토토로
9위 강철의 연금술사
10위 공각기동대
11위 드래곤볼 애니메이션 시리즈
12위 모노노케 히메
13위 AKIRA
14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15위 도라에몽
16위 샴발라를 정복하는 자
17위 붉은 돼지
18위 은하영웅전설
19위 어른제국의 역습
20위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
21위 카드캡터 사쿠라
22위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
23위 카미츄!
24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
25위 기동전사 Z 건담
26위 별의 목소리
27위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극장판
28위 은하철도 999
29위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30위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
31위 태풍을 부르는 장엄한 전설의 전투
32위 반딧불이의 묘
33위 미래소년 코난
34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
35위 우주전함 야마토 시리즈
36위 왕립우주군 - 오네아미스의 날개
37위 슬램덩크
38위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시리즈
공동 39위 기동전사 건담 SEED
개구리 중사 케로로
41위 톱을 노려라!
42위 도라에몽 극장판
43위 용자 시리즈
44위 카우보이 비밥
45위 사무라이 7
46위 기동전함 나데시코
47위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
48위 시끌별 녀석들
49위 철완 아톰
50위 루팡 3세
전문가 순위
1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2위 철완 아톰
3위 AKIRA
4위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
5위 만화 일본 옛날이야기
6위 기동전사 건담
7위 신세기 에반게리온
공동 8위 이웃집 토토로
사자에상
은하철도 999
도라에몽
마운틴 헤드
2006년 발표 /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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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성운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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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부문
제15회
(1984년)
제16회
(1985년)
제17회
(1986년)
다크 크리스탈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백 투 더 퓨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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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風の谷のナウシカ
Nausicaä of the Valley of the Wind
파일:000592p001.gif
<colbgcolor=#3956a0><colcolor=#ffffff> 장르 애니메이션, SF, 판타지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
각본
원작
프로듀서 타카하타 이사오
출연 시마모토 스미, 나야 고로
마츠다 요지, 나가이 이치로
사카키바라 요시코, 카유미 이에마사
음악 히사이시 조, 호소노 하루오미
미술 미츠키 나카무라
작화감독 코마츠바라 카즈오
제작사 파일:일본 국기.svg 톱 크래프트
배급사 파일:일본 국기.svg 토에이
파일:미국 국기.svg 뉴 월드 픽처스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원미디어
개봉일 파일:일본 국기.svg 1984년 3월 11일
파일:미국 국기.svg 1985년 6월 13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년 12월 30일
화면비 1.75:1
상영 시간 116분
제작비 $1,000,000
월드 박스오피스 $8,853,968
북미 박스오피스 $495,770
일본 박스오피스 14.8억 엔
대한민국 총 관객 수 63,551명[1]
국내 스트리밍
[[넷플릭스|
NETFLIX
]]



상영 등급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파일:영등위_전체관람가_2021.svg 전체 관람가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Pg_logo.png

1. 개요
1.1. 저작권
2. 예고편3. 시놉시스4. 등장인물5. 사운드트랙6. 제작 과정7. 영향을 주고 받은 작품8. 평가
8.1. 비판 및 반박8.2. 걸작의 완성
9. 흥행10. 기타

[clearfix]

1. 개요

火の7日間が地球を変えた…
불의 7일간이 지구를 바꾸었다…
- 영화 캐치프레이즈
미야자키 하야오의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원작으로 하는 극장판 애니메이션. 1984년 3월 11일에 개봉하였다. 미래의 인류가 부해라는 유독 물질로 덮인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환경 문제를 다룬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1.1. 저작권

사실은 스튜디오 지브리 제작 작품이 아니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대로 모여서 만든 첫 작품은 천공의 성 라퓨타이다. 그래서 나우시카는 제작진도 다른 지브리 작품과 다른 멤버가 섞여있다. 당시 미야자키 하야오와 친한 애니메이터들은 대부분 미국 애니메이션 하청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제작 스태프를 제로부터 끌어모을 수밖에 없었고 애니메이션 잡지에서 인기를 끌던 코마츠바라 카즈오, 카나다 요시노리, 나카무라 타카시 같은 스타 애니메이터를 영입해 화제성을 늘렸다.

일본에선 '지브리 작품이 아니어서 놀란 애니메이션' 1위로 꼽히기도 했다.[2] 하지만 지금은 지브리에서 저작권 관리를 하고 있어서 딱히 틀린 건 아니기도 하다. 캐릭터 상품이나 영상 매체도 지브리 레이블로 나온다. 저작권자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회사에 위임해 버렸기 때문이다.

2. 예고편

Nausicaä of the Valley of the Wind (Original Japanese Version)

==# 스태프 #==

3. 시놉시스[7]

극한의 과학 문명이 "불의 7일"이라 불린 마지막 전쟁에서 거신병들에 의해 멸망하고 천 년이 지난 시대. 각지에는 부해(腐海)라 불리는 숲과 거기에서 날아오는 유독한 포자로 인해 인류는 점점 쇠퇴해 가고 있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도움으로 부해의 피해를 입지 않고 있던 바람계곡. 그곳에는 바람을 읽고 부해에서 사람들을 돌보며 살아가는 공주 나우시카가 있었다. 어느 날 서쪽의 대왕국 토르메키아[8]의 비행선이 바람계곡 근처에 추락하고 나우시카는 포로로 잡혀있던 페지테 왕국의 공주를 구해내지만 그녀는 "화물을 태워달라"고 부탁하고서 숨을 거둔다. 그리고 얼마 후 토르메키아의 군사들이 바람계곡으로 쳐들어오고 나우시카와 바람계곡 사람들은 거대한 전쟁에 휘말리게 되는데…

4. 등장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문서
번 문단을
등장인물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 사운드트랙

전곡을 히사이시 조가 작곡한 OST 앨범은 1983년 11월 25일에 발매되었다. 한국에서 유명한 노래는 엔딩곡인 '하늘을 나는 사람'(鳥の人, Torino Hito)[9]과 나우시카 진혼곡(ナウシカ·レクイエム, Nausica·Requiem)이다. 특히 엔딩곡인 하늘을 나는 사람은 KBS에서 방영했던 2000년대 도올의 논어 이야기에서도 엔딩곡으로 사용된 바 있다.
엔딩곡: 히사이시 조 - '하늘을 나는 사람'(鳥の人, Torino Hito)
엔딩곡: 히사이시 조 - '하늘을 나는 사람'(鳥の人, Torino Hito) live ver.[10]
삽입곡: 히사이시 조 - '나우시카 진혼곡'(ナウシカ·レクイエム, Nausica·Requiem) live ver.[11]

6. 제작 과정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나우시카 제작 비화 ▼
||그 무렵 미야는 “애니메이션을 관두고 만화가가 될까?”라고 말하면서도, 한편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방법이 없는지 모색했다. 당시 도쿠마 쇼텐에서는 도쿠마 야스요시 사장이 앞장서서 영상과 음악, 활자의 융합을 주장하고 있었다.
“좋은 기획이 있는 사람은 영화기획위원회로 가져와!”
그 말을 듣고 나는 미야에게 의논해서 「하야오 전기」와 「전국마성」이라는 두 개의 기획을 가져갔다. 그런데 그 기획을 보고 기획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Y라는 프로듀서가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이봐, 영화란 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원작도 없는 걸 어떻게 영화로 만들어?”
미야에게 그 말을 전했더니 상당히 열이 받았는지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 원작을 그리면 되겠군. 하지만 영화를 만들 목적으로 만화를 그리는 건 불순하니까 만화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걸 그리겠어!”
당시 미야 감독은 니바리키라는 회사를 만들어 아사가야에 사무실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사무실로 오라고 해서 갔더니 그림이 세 종류 있었다. 하나는 꼼꼼하게 그린 그림이고, 하나는 마츠모토 레이지의 그림처럼 단순한 그림, 또 하나는 그 중간이었다.
“마쓰모토 레이지 방식이라면 하루에 20~30장은 그릴 수 있어. 중간 방식은 하루에 5~6장, 이쪽은 하루에 한 장 그릴까 말까 하고. 스즈키 씨, 원하는 걸 선택하게.”
주사위를 내게 맡긴 것이다.
“애니메이션 잡지에 연재할 거니까 일반적인 그림은 좀 그렇지요. 가장 힘든 걸 합시다.”
“이건 여간 힘든 게 아니야.”
미야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도 도와달라고 말했다. 나도 조금은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스크린 톤(screen tone)을 붙이거나 바탕색을 칠하곤 했다. 그것이 《아니메쥬》에서 연재하기 시작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만화 단행본은 대부분 200쪽 정도로 구성된다. 나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연재 10회째인 120쪽 정도 됐을 때부터 단행본으로 만들고 싶었다. 한시라도 빨리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도라에몽」을 영화로 만들 때, 원작자인 후지코 후지오가 100쪽이 조금 넘는 B5판으로 원작을 출간한 적이 있으므로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 페이지를 얇게 하면 팔릴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무턱대고 7만 부를 발행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5만 부밖에 팔리지 않아서 막심한 손해를 보고 말았다.
지금과 달리 《아사히 예능》이 매주 60만 부, 내가 만들었던 《아니메쥬》가 매달 24~30만 부 팔리던 시대였다. 따라서 5만 부 정도로는 영화화 기획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래서 가메야마와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다.
“우리 둘이 움직여봐야 소용이 없으니까 지원군을 찾아보자.”
우리가 점찍은 사람은 와다 유타카 홍보부장이었다.
“그는 도박을 좋아하니까 '친치로린'을 해서 하룻밤에 5만 엔씩 잃어주자. 그러면 우리를 위해 움직여줄 거야.”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무렵의 출판사 직원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낙오자들이나 마찬가지였다. 도박은 그런 사람들이 배워야 할 일종의 교양으로, 월급날에는 모두 현금을 걸고 친치로린을 했다. 그로 인해 월급을 날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나는 주사위를 산더미처럼 사서, 어떻게 하면 예상한 숫자가 나올지 머리에 쥐가 날 만큼 필사적으로 훈련했다. 어느 정도 지나자 흐름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지는지도 알게 되었다.
와다 부장과 밤 10시부터 아침 6시까지 친치로린을 하면서 나와 가메야마는 정확히 5만 엔씩을 잃어주었다. 그러면서 넌지시 말을 꺼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영화로 만들고 싶은데, 밀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날 아침 출근했더니, 와다 부장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도시오 씨, 영화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그 동안 말하지 못했지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탄생한 계기는 도박이었던 것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도쿄 무비 신사 산하의 실제작 회사인 텔레콤 애니메이션 필름에 근무하면서 미국과의 합작 애니메이션 "리틀 네모"의 기획에 참여했으나, 작품의 방향성에 불만을 품고 도중 하차하고 만다. 그는 1981년 텔레콤 애니메이션을 퇴사하고 프리랜서가 되었다.

이후 여러 작품의 기획안을 만들었고, 그 가운데 하나인 "전국마성(戦国魔城)"이라는 애니메이션의 기획을 도쿠마 쇼텐을 통해 다이에이 영화사에 제안했지만 다이에이 영화사에서도 원작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흥행을 보장할 수 있는 원작이 없다는 이유로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기획안이 문전박대를 당하는 것을 본 아니메쥬의 부편집장 스즈키 토시오는 영화의 원작이 될만한 만화를 그려보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1982년 2월호부터 도쿠마 쇼텐의 애니메이션 월간 잡지 아니메쥬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만화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야 거장의 반열에 오른 미야자키였지만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일반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낱 애니메이터일 뿐이었고,[12] 이런 미야자키 하야오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를 띄우기 시작한 것이 스즈키 토시오였다.

애니메이션 제작의 시작은 아니메쥬의 제1대 편집장이었던 오가타 히데오가 '아니메쥬가 개최하는 이벤트인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특별 단편으로 나우시카를 애니화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라는 제안에서였다. 미야자키도 만화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나우시카가 나오는 이야기라면 단편으로 10분 정도의 프리퀄을 만들고 싶다고 흔쾌히 좋게 받아들였지만 실현되지는 못했다. 이후 나우시카를 60분 정도의 OVA로 제작하자는 기획이 다시 나왔지만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다시 거부되었다. 원래 "나우시카의 애니메이션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미야자키는 일이 그렇게 되자 "이왕 애니화할 거면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해야 한다"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했고 오가타 히데오도 이에 동의하여 도쿠마 쇼텐의 사장을 설득, 마침내 나우시카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이 성사되게 되었다.

제작이 성사된 요인 중에는 미야자키의 동생이 대형 광고 기획사인 하쿠호도의 직원으로 근무 중이었던 것도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스즈키 토시오가 회의석에서 나우시카 만화가 얼마나 팔렸냐는 질문에 단행본 첫 권이 7만 부를 발행해서 5만부가 팔린 것[13]을 5.....0만 부 팔렸다고 뒤에 0을 하나 더 붙여서 뻥을 치면서, 높으신 윗분들이 그 정도로 많이 팔린 만화 원작이라면 이건 돈 좀 벌을 수 있는 작품이라고 영화화해도 될 만하다고 설득당하고 속아서 여차저차해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되었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작은 도쿠마 쇼텐하쿠호도가 제작비를 투자하고 애니메이터들을 모아 제작위원회를 만드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애니메이션의 실제작은 톱 크래프트[14]가 맡았고 이들은 후에, 스튜디오 지브리의 모태가 되었다. 이 스태프진에는 미야자키의 토에이 동화 시절의 동료들과 함께 타카하타 이사오도 참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에게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는 건 타카하타 이사오뿐이라며 타카하타를 프로듀서로 지명하였다. 당초 타카하타는 "이 작품은 나와 방향이 안 맞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프로듀서란 일은 잘 모르겠다."라는 이유로 거절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내가 당신한테 청춘을 바쳤는데[15] 이 부탁 하나 못 들어주냐."라고 술 먹고 울면서 부탁하고, 스즈키 토시오가 끈질기게 부탁해서 프로듀서를 하게 되었다. 타카하타는 여러 실력파 애니메이터들을 불러오고, 히사이시 조와 상담하면서 음악을 주로 관리하였다고 한다. 미야자키가 힘들 땐 조언을 해주기도 했고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아니메쥬 기자들의 지원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 타츠노코 프로덕션에서 활동 중이었던 나카무라 타카시라든지 "OH! 프로덕션"의 코마츠바라 카즈오 등 미야자키와 그전까지 함께하지 않았던 인사들도 이 작품에 참여했다. 여기에는 젊은 안노 히데아키도 있었다. 안노는 거신병의 원화를 맡았지만 미야자키가 전체적으로 다 주도하는 것에 실망한 나머지 제멋대로 출근했다 퇴근했다고 회고했다.[16] 1983년 8월부터 9개월간의 제작 작업이 시작되었고 제작비는 4억 엔 가량이 들었다. 애니메이터들한테 프레임당 임금을 지불하는 방식을 채용했다고 한다.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나우시카 제작 비화 ▼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던 차에 머릿속에 한 회사가 떠올랐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일을 맡아서 하는, 아사가야에 있는 톱 크래프트라는 회사였다. 소박하지만 진지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곳이었다.
나는 재빨리 하라 토오루 사장을 만나러 갔다. 하라 사장도 예전에 도에이동화에 다닌 적이 있고,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의 네 프로듀서 중 한 명이었다.
“미야 씨도, 다카하타 씨도 모르는 사이가 아니니까 두 팔을 걷어붙이고 도와주지.”
그때부터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하라 사장과 같이 모두 모였을 때, 미야가 이렇게 말했다.
“10년 만에 다시 하라 사장님을 만나 작품을 만들게 되다니, 굉장한 인연이군요.”
그러자 다카하타가 재빨리 그 말을 가로막았다.
“미야 씨, 작품과 관계없는 말은 하는 게 아니야. 인연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그런 건 관계가 없어.”
대충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톱 크래프트의 스태프는 60여 명이었다. 인원은 많지 않지만 그림 그리는 것부터 촬영까지 전부 할 수 있는 곳이라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도 잠시, 다카하타가 하라 토오루 사장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미야 씨는 혼자 낙하산을 타고 뛰어내리지. 따라서 아군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네. 여기 스태프들이 미야자키 애니메이션에 맞는 사람인지 테스트를 하게 해주게.”
그가 원하는 대로 테스트를 했는데, 대부분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원화 담당자를 동화로 돌려도 스태프가 모자라는 바람에, 다시 《아니메쥬》에서 알게 된 연줄을 통해 스태프를 구하러 돌아다니게 되었다.
원화를 담당했던 카나다 요시노리는 마침 다카하타의 집 근처에 살기도 해서, 다카하타와 둘이 설득하러 갔다. 그리고 그가 숨은 다카하타·미야자키 팬이라는 사실과 함께, 업계에 들어와 처음으로 관여한 작품이 다카하타가 감독한 「팬더와 친구들의 모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나중에 미야와 굉장히 친해졌다.
타츠노코 프로덕션(현 다츠노코 프로)에 있던 나카무라 타카시는 나우시카가 비행장치인 메베를 타고 휘잉 날아가는 앞부분 등을 그려주었다. 미술감독은 「기동전사 건담」에 관여했던 나카무라 미쓰키에게 부탁하고, 그림 책임자이자 작화감독은 「우주 해적 캡틴 하록」에 관여했던 코마츠바라 카즈오에게 부탁했다. 그런 식으로 한 사람씩 끌어모아 겨우 진용을 갖추고 제작에 들어갔다.
미야는 스태프들 앞에서 하는 첫 연설에서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6개월 만에 만들어야 하니까 여유는 조금도 없다! 작품이 완성될 때까지 한 달에 하루만 쉰다!”
내가 감탄한 점은 굉장한 수다쟁이인 그가 작화에 들어간 순간, 쓸데없는 말을 일절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아침 9시부터 새벽 3~4시까지 책상 앞에 앉아, 가져온 도시락을 젓가락으로 이등분해서 아침과 저녁에 절반씩 먹는다. 그 이외는 오직 일만 했다. 음악도 듣지 않았다. 옆에서 보는 사람이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현장은 가혹하기 이를 데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힘들었다. 그러는 와중에 안노 히데아키가 훌쩍 나타났다. 그는 학창시절에 그린 그림을 들고 톱 크래프트를 찾아왔는데, 미야는 그 그림을 보자마자 바로 채용했다.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는 보통 동화를 그린 다음에 원화를 맡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미야는 안노에게 다짜고짜 원화를 그리게 했다. 그러고는 거신병 장면을 전부 그에게 맡겼다. 당시 가방 하나만 달랑 들고 도쿄에 상경해서 잘 곳이 없었던 그는 그때부터 작품이 끝날 때까지 스튜디오에서 자면서 그림을 그렸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1984년 3월 11일 토에이계 극장들에서 일제히 개봉되었다. 9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14.8억 엔의 흥행 수익을 거두었고 자연과 환경의 문제 등 기존의 애니메이션들과는 다른 진지한 주제를 다룬 덕인지 일반 매체의 평가도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17] 나우시카의 성공으로 미야자키 하야오는 명성을 얻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미야자키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창설한다.[18]

스즈키 토시오가 밝힌 나우시카 제작 비화 ▼
||모두가 작업에 매달려 있던 중 대형사고가 발생했다. 3월 11일 개봉을 앞두고 2월 말이 되어서야 개봉 때까지 완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미야는 내게 관계자들을 모두 모아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상태라면 이 영화는 개봉에 맞출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러분과 의논하고 싶어서 모두 모이라고 했습니다. 일단은 다카하타 프로듀서의 의견을 듣고 싶군요.”
다카하타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고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말했다.
“개봉에 맞출 수 없으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프로듀서가 이렇게 말하는 이상, 계속 의논해봐야 소용없겠지요.”
미야는 그렇게 말하더니 놀라운 행동을 보여주었다. 그림 콘티의 내용을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사실 바꾸기 전의 그림 콘티에는 거신병과 오무의 격돌 장면이 있었다.
한편 다카하타도 최선을 다했다. 배급사인 토에이와 의논해 필름이 완성되는 대로 홋카이도나 규슈처럼 먼 곳부터 보내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효과음을 넣는 작업도 지금이라면 두세 달이 걸리지만,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때는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거의 잠도 자지 않고 일주일 만에 만들었다.
음악을 히사이시 조에게 맡기기로 결정한 사람도 다카하타였다. 그래서 히사이시는 항상 “나를 발견하고 키워준 사람은 다카하타 씨다”라고 말한다.
어쨌든 우리는 이 영화 한 편에 모든 것을 걸었다. 그때는 영화를 만드는 데 열중해서 홍보와 흥행 같은 뒷일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만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다행히 히트했지만, 성공의 뒤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다. 영화 완성과 함께 주력으로 일해준 톱 크래프트의 스태프들이 일제히 사표를 내면서 톱 크래프트는 이름뿐인 회사가 된 것이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완성하고 나서 미야가 다시는 감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은 그런 현실 속에서 친구를 잃는 것이 너무도 괴로웠기 때문이리라. 그때는 모두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이었다. 하지만 외줄을 타듯 아슬아슬하게 태어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모든 것의 출발점이 되었다.||

7. 영향을 주고 받은 작품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후 작품들의 원형들이 되는 작품답게 환경 파괴와 자연과 인간의 대립에 대한 문제, 토르메키아 왕국을 통해 보여지는 제국주의와 패권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 등이 영화 내에서 읽힌다.

환경 오염에 대해서는, 1970년대부터 대두된 일본 기업이 환경을 고려하지 못한 이기심으로 초래한 4대 산업재해 (공해병) 중의 하나인 미나마타병으로 오염된 바다가, 어느덧 시간이 흐르자 자연이 정화 작용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 스스로 수은을 정화) 부해의 아이디어로 이어졌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는 츠츠미 츄나곤 모노가타리(堤中納言物語)에 나온 ‘벌레를 사랑한 아씨(虫めづる姫君, 무시메즈루히메기미)’를 포함한 여러 작품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프랭크 허버트의 SF 소설 듄 시리즈로 여겨진다.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생태계 환경문제를 다룬 것도 비슷하고, 먼 미래를 배경으로 황폐한 모래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며 오무를 연상케 하는 샌드웜이나, 여우다람쥐를 연상케 하는 동물이 등장하고, 외부 활동에는 특수제작한 마스크를 쓰고 미래인데도 칼을 들고 싸우고, 유파를 연상케 하는 스승이 등장하고, 주인공은 메시아적인 존재다. 아무튼 설정이 많이 비슷하다. 나우시카를 만화 연재하기 전에 영화화하고 싶어했던 기획인 '롤프'는 미국의 만화가 리차드 코벤 (Richard Corben)의 만화 "Rowlf"(1971년)를 바탕으로 "소국의 운명을 짊어진 공주'라는 착상을 얻은 작품이다.

그리고, 프랑스 만화가 뫼비우스의 1975년작 "알 자크"를 1980년에 읽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미야자키 하야오 본인이 직접 고백한 적이 있다. # 그 밖에 데즈카 오사무에게서 받은 영향도 있다는 분석이며[19] 부해의 숲에 관한 개념은 카를 마르크스의 진화론에 대한 변증을 숲으로 치환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프랑스의 르네 랄루(René Laloux)의 1973년작 "판타스틱 플래닛"[20]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다.[21] 사막에서의 생활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1969년에 연재한 만화 [사막의 백성(砂漠の民)]과 생택쥐페리의 인간의 대지, 전쟁으로 황폐화 된 미래는 미래소년 코난 등을 연상케 한다. 어스시 연대기에서도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

파멸적인 미래의 상황, 공존의 문제라는 테마는 묘하게 워쇼스키 자매매트릭스를 연상시키게 한다. 매트릭스가 나우시카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언급은 없긴 하지만 나우시카의 가장 하이라이트인 대목과 매트릭스에서 네오의 마지막 장면은 매우 흡사하다. 어쩌면 나우시카의 오마주일지도 모른다.[22]

8.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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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스코어 86 / 100 점수 8.6 / 10 상세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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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 4.2 / 5.0



8.1. 비판 및 반박

오시이 마모루는 작품 마지막 나우시카의 희생에 대해 태평양 전쟁 시절 일본의 자폭 공격에 대한 미화일 뿐이 아니냐며 냉소적인 태도를 취했다. 나아가 "군국주의의 낭만화에 불과하지 않는가"라고도 발언했는데 이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훌륭한 이야기 전개를 보여줌에도 불구하고 그 결말에서는 "한 여자아이의 희생을 통해 이뤄낸 기적"이라는 공허한(즉 존재할 수 없는) 해결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이는 작품 내의 자연에 대한 시선들-이를테면 토르메키아인들의 자연 극복적 사고관-을 작중에선 나우시카로 대변되는 실체 없는 이상론으로 뭉그러뜨리는 결론을 낳았다는 것.

오오츠카 에이지 역시 우주전함 야마토의 자폭공격과 나우시카의 희생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면서 오히려 나우시카를 더 위험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야마토는 아예 실제 군사 무기를 가져와서 팬들이 그 위험성을 인지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할 수 있지만, 나우시카의 경우 그러한 위험이 작품 속 판타지 세계관에 가려져있으며 "오로지 사람만을 생각한다"는 미야자키의 주장이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것"으로 확대되며, 여기에 수준 높은 작품성이 더해져 관객이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기 힘들게 유도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 결말은 타카하타 이사오스즈키 토시오가 생각한 것이라서 미야자키에게 뭐라고 하는 건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미야자키는 늘 군국주의에 반대해왔고 이 작품에서 결말을 카미카제인 양 묘사한 것도 아니다. 공동체를 위한 희생을 무조건 군국주의나 카미카제와 연결시키는 것도 지나친 확대 해석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은 철완 아톰이나 기동전사 건담 같이 군국주의와 거리가 먼 작품들에도 종종 등장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주요 대립은 인간과 대자연 사이에서 일어난다. 즉, 대자연이라는 초월적인 힘에 대립각을 세우기 위해서는 전 인류적 단합, (거신병으로 대표되는) 압도적 무력 또는 '기적'이 일어나야 한다. 거신병은 제대로 된 옵션이 될 수 없으며 전 인류적 단합도 사람들 사이의 각축전 때문에 불가능하다. 결국 다양한 동물들과 아주 쉽게 교감을 하는 나우시카의 마음을 사용하여 그 마음을 오무로 대변되는 대자연이 받아들인다는 형태의 '기적'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면 종교적 거룩함도 보이는 한 인간의 '희생'으로 볼 수도 있다. 결국 '이상론'이라는 비판은 희생에 너무 초점을 맞춘 나머지 더 본질적인 상징을 놓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를 위해 희생하는 왕'은 다수의 신화에서 사용되는 오래된 모티프이다. 이것을 연구한 서적이 황금가지.

이 작품으로부터 13년이 지난 뒤, 미야자키 하야오는 같은 주제를 공유하는 작품인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 상술된 비판 요소들을 완벽하게 메꿔낸다.

한편 맨발의 겐의 작가 나카자와 케이지는 인터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그의 만화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핵전쟁 이후 인류를 그리고 있는데 이것을 보고 굉장히 화가 났다. 핵전쟁이 일단 일어나면 인류는 다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인간이 망한 뒤의 세계를 말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나. 이 작품에는 '리얼리티'가 없다고 생각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타카하타 이사오는 이 영화에 대해 30점이라고 평가했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화가 나서, 그 인터뷰가 실린 A4 사이즈의 180페이지의 잡지책을 찢어발겼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판에서 오무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미야자키한테 오무를 죽이라고 한 것도 타카하타고, 나우시카를 죽게 하고, 또 부활하는 장면을 집어넣게 한 것도 타카하타였다.#출처 미야자키는 그 장면을 넣은 것을 종교 영화가 되어버렸다고 후회했다고 한다. 그래서 만화판에서는 같은 세계관의 다른 이야기가 전개하게 된다.

이에 대해 타카하타는 훗날 인터뷰에서 "모두가 100점이라고 하기에 30점이라고 한 것입니다. 미야자키 씨는 그 작품에 30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100점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비난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하하는 의미에서 30점입니다." 라고 말했다.

8.2. 걸작의 완성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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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흥행

10. 기타

  • 영화판도 지금의 지브리를 있게 한 명작이며 코믹스판도 사실상 완전판이고 큰 호평을 받았다. 지금까지 유일하게 한 작품이 두 부문에서 성운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 장 지로의 만화 'Arzach'와 유사한 점이 많으며 이건 모티브로 했다고 미야자키 하야오도 인정했다. 좀 많이 따라해서 장 지로가 문제를 삼았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는데 장 지로가 나우시카를 보고 대단히 마음에 들어 해 문제 되진 않았다. 심지어 장 지로는 딸 이름을 나우시카로 지었다고 한다.
  • 그야말로 알려지지 않은 게 김형배가 이거 설정을 여럿 베낀 만화도 80년대 초반에 연재했던 것. 주인공이 젊은 남자이고, 극중 미래 배경이 나우시카랑 상당히 비슷한 시대이며 심지어, 오무 비슷한 것도 나오며 극중에 어린 이 벌레를 잡아가 쓰려는 악역이 나와 이 벌레들이 분노하여 무리로 쳐들어오는 부분까지 써버렸다. 하지만, 급하게 마무리지어 그야말로 광속으로 모든 게 처리되어 끝난다.
  • 만화판을 보면 "바다는 모든 오염 물질이 최종적으로 도달하는 곳이며, 인간이 오랫동안 더럽힌 끝에 어떤 생물도 살 수 없게 되었다"든지, "공기를 맨얼굴로 들이마시면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는 등 환경 오염에 대한 섬뜩한 메시지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당시에는 이것이 경고에 지나지 않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는 상당 부분 현실로 다가온 상황.
  • 만화판 세계관이 실제 지구의 어디인가에 대해서 일본에서 꽤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많게 잡으면 20세기에서 1천 8백 년~2천 년 후라고 하지만 실제 지역과 일치하는 작중 지도의 지역이 없기 때문.. 한때 흑해와 지중해 지역을 180도 돌려서 토르메키아가 터키, 도르크가 카프카스 지방, 바람계곡과 에프탈이 시리아 일대로 끼워맞춰진 날조된 지도가 돌았었는데 에프탈이 사막이라는 점과 토르메키아가 유럽 문화권이며 현대적인 도시들이 있다는 점, 지도의 생긴 모습 등이 비슷하긴 하지만 억지로 끼워맞춘 티가 난다. 더군다나 도르크는 아무리 봐도 티베트 문화권이고 바람계곡도 파키스탄이 모티프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애초에 에프탈이라는 국가는 아프가니스탄 일대에 실존했던 국가이다. 직접 한 번 보자.
  • 미야자키의 당대의 라이벌이던 또 한 명의 거장, 토미노 요시유키[23]성전사 단바인이 이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같은 곤충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들이 잔뜩 등장하며 시기적으로도 딱 겹친다. 토미노는 이에 대해 딱히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가 의식하는 감독들의 작품에서 자주 모티브를 가져다 쓰는 것을 보면[24] 아마 맞는 듯하다.
  • 한국에서 정식 개봉하기 훨씬 예전인 1989년, 주한 미군 방송인 AFKN에서 일부 편집본을 The Warriors of Wind란 제목으로 영어 더빙해 방영을 한 적이 있다. 당시 이 작품을 접한 극소수의 학생들이 있었고(그 중 많은 이가 그 퀄리티와 주제에 충격을 먹고 일부에 퍼뜨리기도), 또한 1990년대 초반 올림피아 비디오라는 곳에서 상, 하로 낸 적이 있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고, 1990년 만화왕국 월간지 독자 사은품으로 비디오를 준 적이 있었다. 본 사람도 정말 적은 듯. 천공의 성 라퓨타 해적판 비디오가 이마트에서 새 걸로 싸게 팔리는 통에 꽤 여러 사람이 볼 수 있었던 거와 대조적이다.
  • 만화판 역시 국내에 정발되었다. 학산문화사가 출판했으며 총 7권. 일본 원판과 판형도 똑같고 특전인 포스터도 동일하게 들어있는 등 상당히 야심차게 만들었다. 문제는 그보다 전인 1993년에 "궁기 준" 명의로 한웅출판이란 곳에서 4권짜리 해적판 만화를 벌써 국내에 유통시켰다는 것. A4 크기인 원판 만화와 달리 리더스 다이제스트 크기의 문고판이었다. 의외로 인쇄 상태와 번역은 나쁘지 않았지만 고유명사 발음은 틀린 곳이 많고 특히 페지테의 왕자인 아스펠을 “태풍”으로 개명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지화(?)가 되어 있었다(다른 캐릭터는 전부 원래 이름 그대로 표기).
    파일:C3C59198-0066-4C43-AD7A-7B14D0E91CE7.jpg
  • 2000년 6월 27일이 돼서야 극장용 애니메이션 부분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허용되면서 국내 정식 개봉이 2000년 말에 이루어졌지만 지브리 스튜디오 계열 애니메이션의 국내 첫 정식 개봉작이기도 하다.[25] 전국 관객은 총 23만 정도. 참고로 이때만 해도 지금의 대기업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과는 다르게 동네 군소극장들이 꽤 남아있었고 이들은 영화 본편이 끝나면 스태프롤을 다 틀어주지 않고 중간에 끊어버리고 영사기 필름을 되감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애니메이션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우시카는 스태프롤에 후일담이 들어있는 작품이다.
  • 이 작품은 14년 뒤인 1998년에 발매된 세계적인 대작 게임 스타크래프트에 까지 영향을 미쳤다! 작중에 중요 요소/인물로 등장하는 거대 벌레들인 오무는 후에 프로토스 종족인 리버의 모티브가 된다. 스타크래프트 2에 등장하는 거신(스타크래프트 2) 역시 작중 등장하는 거신병의 공격 방식과도 유사해서, 이 작품에서 상당히 많이 차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애니에서 비행 중인 나우시카의 팬티나 팬티 라인이 보여할 각도에 아무것도 없어서 노팬티냐는 논란이 있었는데, 당연히 바지를 입고 있는 것이다. 실제 원작에 있는 나우시카의 장비 설정을 보면 평범한 흰 바지를 착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다리는 흰색을 띠고 얼굴과 손 색이 다리 색과 다른 것으로 바지를 입었음을 알 수 있다.
  • 애니메이션 망념의 잠드는 설정, 세계관, 등장인물 등 여러 요소에서 나우시카와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어 일부에서는 나우시카 리메이크라고 까이기도 한다. 감독 미야지 마사유키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연출을 배운 인물이고 미야자키와 사상을 공유하는 인물이라 내용이 비슷해진 것으로 보인다.
  • 애니메이션 감독 무라타 카즈야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나우시카를 꼽으며 대부분의 작품이 나우시카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무라타 카즈야도 미야지 마사유키처럼 미야자키 하야오에게 직접 연출을 배운 적이 있다.
  • 애니메이션 감독 타카무라 카즈히로는 이 작품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이 작품이 무의식에 박혀서 캐릭터 메이킹도 왠지 비슷해지고 자신이 소녀가 비행하는 작품을 많이 만드는 것도 이 작품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
  • 밀덕후이기도 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답게 작중 등장하는 병기류가 다양한 편이다. 개중 몇몇은 실존했던 병기와 흡사한데 토르메키아의 대형 수송선 바카가라스는 2차대전 때의 독일군 수송기 Me323 기간트[26]와 전차는 마찬가지로 독일군의 슈투파와 그 외모가 흡사하다. 코믹스에선 전차는 나오지 않으나, 야포 등의 조작이나 참호 내의 모습 등을 리얼하게 그려내기도. 심지어 창작물에선 거의 등장이 전무한 스피곳 박격포까지 등장한다.[27]
  • 건십을 타고 날아다니며 벌레를 사살하는 본작의 주제와 정반대인 이뭐병스러운 내용의 게임이 MSX로 발매된 걸 보고 화가 난 미야자키 하야오가 이후 지브리 제작 애니메이션의 게임화를 꺼리게 되었다는 도시전설이 있다. 실제 게임의 목적은 평화적인 교섭을 하는 것이며 벌레는 피해 다녀야지 죽이면 감점을 받거나 게임이 일찍 끝나게 된다. 다만 게임성이 구린 것은 사실. 현재는 프리미엄이 붙을 대로 붙어 최소 30만 원에서 최고 100만 원까지 호가하는 물건이 되었다.
  • 2012년 11월 17일 에반게리온 신극장판: Q가 일본에서 개봉했을 당시 개봉관에서는 본편에 앞서 거신병 도쿄에 나타나다라는 제목의 특촬 단편을 선행 상영한 바 있다. 불의 7일간을 연상케 하는 거신병의 도심 파괴 장면이 나오지만 나우시카 관련 인물들이 등장하진 않는다. 안노가 미야자키에게 거신병을 소재로 단편을 만들어도 되겠냐고 허락을 구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다만 미야자키는 나우시카는 절대 안 된다라고 농을 쳤다.
  • 안노가 나우시카의 후속작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미야자키에게 밝혔다고 한다. 안노는 만화판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마지막 권, 즉 7권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고 걸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이 7권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싶어 했다. 2013년 8월 10일 모토가리야와 미야자키의 인터뷰에서 미야자키는 "나우시카의 후속작을 만들 생각이 없으며 나로선 할 생각이 없다. 그런데 안노가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니 '하고 싶으면 해 봐라'라고 했다"라는 것. 안노가 이야기를 하기에 생각나서 다시 나우시카를 꺼내 읽어봤더니 역시 만들기는 쉽지 않다면서 '무슨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거냐'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안노가 정말 나우시카 후속작을 만들지는 미지수. 두 사람 사이에 농담처럼 오간 이야기일 수도 있다. 설령 안노가 정말 나우시카의 후속작을 만든다고 쳐도 그것이 나오기까지는 꽤 오랜 뒤에야 가능할 듯.
  • 은혼 애니113화와 실사 영화에서 나우시카를 패러디를 했다.
  • 2019년 5월, 브라질의 Chris Tex라는 사람이 미야자키 하야오에 대한 존경과 오마주를 담은 나우시카 단편 실사 영화 《WIND PRINCESS》를 만들고 있다면서, 트레일러를 공개했다.# 2020년 1월 220만 뷰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고, 기예르모 델 토로 를 비롯한 많은 영화인이 호응을 하고 있다. 아직까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한테서는 연락이 오지 않았는데, 꼭 그와 만나보고 싶다는 메세지를 남겼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 원화로 참여하고 바람이 분다에서 주인공 성우를 맡은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나우시카의 실사화를 원한다고 한다. 후지 TV의 우리의 시대에 출연한 스즈키 토시오는 나우시카의 실사판 제작에 대해서 복수의 저명한 영화 감독으로부터 제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는대데 여기서 안노 히데아키도 만들고 싶다고 밝히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다만 프로듀서 스즈키 토시오는 나우시카의 세계를 실사로 만드는 건 이미지를 파괴할 수 있다며 거부했다고 한다. 원문, 번역
  • 초기의 결말 콘티를 본 사람은 연출 조수였던 카타야마 카즈요시밖에 없다고 한다. 미야자키가 결말을 바꾸면서 초기 콘티는 찢어 버려서 현존하지 않는다. 안노 히데아키는 카타야마에게 그걸 왜 너 혼자만 봤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 2023년 12월 17일 방영 다큐 '프로페셔널'의 마지막 장면이 미야자키가 나우시카를 그리면서 '이 세상으로 돌아오는 거 번거롭네..." 라고 하는 장면이라서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다음 작품이 나우시카 2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지브리, 미야자키 오타쿠 팬 유튜버에 의하면, 그 거신병 그림은 1985년에 미야자키 하야오가 나우시카의 후일담 비슷한 일러스트를 몇 장 그린 적이 있고, 아마도 다음에 개최하는 지브리 미술관 전시전을 위한 것일 거라고 추측했다.


[1] 한국영화연감(1971~2010) 기준 서울 지역 관객 수. 한국에서는 2000년 12월 30일에 개봉하였고, 당시에는 KOFIC 영화권 입장관 통합 전산망이 갖춰지지 않았기에 지금처럼 정확한 전국 관람객 수치가 파악되기 어려웠다.[2] 해당 앙케이트에서 지브리가 아니어서 놀랐다는 애니는 대부분 호소다 마모루 작품이었다. 그 외엔 구름처럼 바람처럼이 뽑히기도 했다. 다만 구름처럼 바람처럼은 기획과 연출만 스튜디오 피에로에서 한 거고 작화는 지브리 하청이라 그렇게 느껴도 이상한 건 아니다.[3] 원래는 핫피엔도, YMO 등으로 유명했던 호소노를 음악 담당으로 하려고 했으나, 관계자의 추천으로 당시 무명이었던 히사이시를 등용하였고, 이것이 지브리와 히사이시와 인연의 시작이 되었다. 호소노는 야스다 나루미가 부른 엔딩곡을 작곡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그래서 엔딩곡의 분위기가 히사이시의 것과는 꽤 다르다.[4] 거신병, 전차나 폭발, 빔에 맞아 붕괴되는 장면 등 전투 신 중요 부분을 대부분 담당했다. 캐릭터 작화도 일부 했으나 미야자키가 다 수정해서 안노의 캐릭터 작화는 찾아볼 수 없다.[5] 논크레딧[6] 논크레딧[7] 애니메이션의 스토리는 코믹스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수준. 나우시카 애니메이션을 재밌게 봤다면 코믹스도 보기를 권장한다. 애니메이션이랑 코믹스랑은 약간의 내용이 다르기도 하기도 하고 애니메이션을 먼저 본 뒤 코믹스를 봐도 무방하다.[8] 어원은 스페인에서 투우 경기를 의미하는 토로마키아(Tauromaquia)인 듯하다.[9] '하늘을 나는 사람'이라는 제목은 2004년 한국에서 정발된 앨범에서의 정발명이다. 한국에서는 '새의 사람'이라는 제목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10]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는 김재원.[11] 해당 영상은 일부이다. 쇼츠 버전.[12] 이때만 해도 미야자키는 실력은 뛰어났지만 타카하타 이사오, 데자키 오사무, 린 타로, 토미노 요시유키, 심지어는 생판 신인이었던 오시이 마모루보다 인기가 떨어지는 비운의 감독이었다. 심지어는 이때만 해도 그를 만화가로 알던 사람들이 상당수였다. 미야자키가 본격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나우시카부터고, 그 이전의 작품들은 나중에 재조명을 받았다.[13] 이것도 알고 보면 미리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일단 많이 팔고 보자는 식으로 다른 만화에 비해 나우시카 단행본은 엄청 매수가 얇다. 대신 다른 만화보다 절반 가량 싼 가격으로 발행을 했다. 한마디로 박리다매 전략으로 1권을 발행한 것이다.[14] 주로 해외 합작 애니메이션의 작화를 담당했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호빗, 공룡아 불을 뿜어라, 라스트 유니콘 등이 있다. 톱 크래프트의 사장이 토에이 시절 미야자키의 선배였고, 해외 합작만 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작품을 일본에서 볼 수 없다는 스탭들의 불만이 있어서 그것을 해소하는 차원도 있었다고 한다.[15] 미야자키는 당시 거의 15년 동안 타카하타 작품의 작화, 연출, 레이아웃 작업을 해줬다.[16] 출처 필요. 안노 히데아키는 출퇴근을 하지 않고 스튜디오에서 자고 생활했다는 본인의 증언과 미야자키 하야오가 그런 안노가 스튜디오 책상 밑에서 이블 깔고 자고 있는 모습을 그린 낙서도 있다. 그리고 아직 일개 아마추어 아르바이터였던 안노가 업계의 대선배이자 베테랑 감독이 작품을 좌지우지하고 주도적이라서 실망한다는 것도 정황상 맞지 않는다. 안노는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를 스승이라고 불렀다.[17] 미야자키의 전작인 미래소년 코난과 흡사한 구석이 있지만 코난과는 다르게 상황이 더 절박해 보인다는 차이가 있다. 또한 나우시카의 분위기나 주제 의식은 후에 모노노케 히메에서 다시 드러난다.[18] 여담으로 나우시카 이후 리틀 네모의 원안은 각각 천공의 성 라퓨타신비한 바다의 나디아로 만들어진다.[19] 당시의 미야자키가 이걸 봤다면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이라거 여겨진다. 어릴 적엔 분명 데즈카의 영향을 받긴 했지만, 업계에 진지하게 투신하기로 결심한 뒤에는 낙서들을 불태우면서까지 데즈카의 영향을 부정하거나 성향 차이로 관심을 끊는 등 철저하게 안티 데즈카적인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 심지어는 장례식에서도 애니메이션 업계를 어렵게 만든 장본인이라고 고인드립을 시전한 적도 있으니...[20] Fantstic Planet. 원제는 La Planete sauvage, 원작은 스테판 울의 SF 소설 "Oms en série". 거인들에게 벌레 취급 당하는 인류의 투쟁을 그린 작품으로 간츠카타스트로피 편 같은 최근작에서도 이런 테이스트를 느낄 수 있다.[21] 헌데 미야자키 감독은 판타스틱 플래닛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남겼다. "그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재미있는 작품이지만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기술적 수준에 감탄했지만 공명은 할 수 없었다. 보기를 아주 잘했지만 두 번 다시 볼 생각은 없다. 아주 잘 만들어졌지만 조잡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토포르의 세계가 먼저 있고 그것을 전개시키기에 적당한 원작을 찾은 것은 아닐까? 그 영화에서 주제가 성공적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단지 토포르의 세계가 명백하게 영화 속에 창출되어 있었다." - 미야자키 하야오, 『출발점 1979~1996』 도쿠마 쇼텐, 1997년, 149쪽. 참고로 언급되는 이름인 토포르는 각본으로 참여한 초현실주의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 실제로 르네 랄루는 일각에선 과대평가된 감독이라는 평이 많은 편이다.[22] 사실 오마주라고 봐야 맞을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나우시카오무들에 의해서 목숨을 구한 반면, 네오는 결국 목숨을 잃었다.[23] 지금의 국내에서는 토미노 요시유키는 애니메이션 팬이 아니면 모르는 반면 미야자키는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정도로 차이가 나지만 나우시카가 나올 당시 일본에선 오히려 토미노가 우세했다. 그의 대표작인 기동전사 건담의 인기가 식지 않았을 때였고 미야자키는 그 당시 토미노급의 초대박을 터뜨리기 이전이었다. 심지어 이때의 미야자키는 타카하타 이사오오시이 마모루보다 인기가 없었다. 미야자키는 나우시카부터 제대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24] 토미노는 누군가의 작품을 가상 라이벌로 정하고, 그것보다 나은 것을 만드는 것으로 작품을 만든다고 한다. 데즈카 오사무가 알려준 창작법이라고 한다.[25] 2번째 국내 개봉 작품은 2001년 이웃집 토토로, 3번째는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4, 5, 6번째는 2003년 모노노케 히메, 고양이의 보은, 붉은 돼지, 7번째는 2004년 4월 천공의 성 라퓨타, 8번째인 2004년 12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와서야 동년 개봉이 이루어졌다.[26] 이 기체는 상당한 수송 능력과 허약한 방어력을 보여줬는데 토르메키아의 수송기도 이와 매우 흡사하다.[27] 이 스피곳 박격포는 주로 토르메키아군이 운용하는 걸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