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アニメージュ
Animage
공식 사이트 : http://animage.jp/
도쿠마 쇼텐이 발행하는 애니메이션 잡지. 1975년 무렵부터 불기 시작한 애니메이션 붐을 타고 1978년부터 발행하여 현존하는 애니메이션 잡지의 최고참. 매월 10일에 발행하는 월간 뉴타입, 아니메디아와 함께 3대 잡지로 꼽히고 있다. 1979년부터 매년 애니메이션 그랑프리라는 인기 투표 이벤트를 열고 있다.[1]
카도카와 쇼텐이 발행하는 뉴타입이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 특화되어 있다면 아니메쥬는 편집장이었던 스즈키 토시오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적인 친분관계로 스튜디오 지브리의 작품에 특화되어있다.[2] 그리고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의 원작 만화가 연재된 잡지이기 때문에 나우시카의 인기가 아직도 상당히 높다. 최근 수년간은 시들해진 감이 있긴 하나, 나우시카가 1982년부터 1994년까지 연재되었고 극장판은 1984년에 나온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도 인기 순위 100위 안에 들 정도라는 건 상당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뉴타입에 지브리 애니 관련 기사가 없고, 아니메쥬에 건담 관련 기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비주얼적인 성향이 강하고 일러스트 중심으로 구성한 뉴타입에 비해서 주로 아니메쥬는 작품에 어떤 사람들이 참여하는가에 대한 데이터를 중심으로 하고 제작자들의 인터뷰 기사가 많다는 것이 차이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는 1대 편집장인 오카다 히데오나 2대 편집장인 스즈키 토시오가 예능부 기자 출신이라는 점도 많이 작용했다.
한국 내의 작화 관련 지식이 엉망으로 왜곡된 것도[3] 아니메쥬 같은 잡지는 하나도 없었고 뉴타입만 소개된 것도 영향이 크다. 2010년 후반까지 한국에선 애니메이션의 스태프나 제작진의 연구 같은 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아니메쥬를 중심으로 1980년대부터 그런 것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른 두 잡지인 뉴타입, 아니메디아에 비해 여성향적인 성격이 강해 표지도 여성향 작품이 강세이며 당연히 특집 기사도 여성향 작품 위주이다. 인기 캐릭터도 주로 남성 캐릭터가 상위를 차지한다.
2. 역사
1978년 5월 16일 창간되었으며 잡지명은 영어「animation」과 프랑스어「image」의 일본식 발음인 아니메이숀+이마쥬 = 아니메쥬. 작명가는 1대 편집장이었던 오가타 히데오(尾形英夫)이다. 남들이 착상을 하지 않는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으로 전부터 회사의 명물 괴짜 편집자'로 유명했는데, 아들이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회사 돈으로 애니메이션 전문잡지 창간을 결행한다. 6개월 동안 잡지의 창간 준비를 하던 중 부하직원과 대판 싸우고 그를 홧김에 짤라버렸다. 그리고 전부터 친분이 있던 아사히 예능부 기자로 일한 경력이 있는 스즈키 토시오를 부편집장으로 불러온다. 당시 오카다는 《아사히 예능》편집장도 겸임한 상태여서 스즈키 토시오가 실질적인 잡지의 편집장 역할과 잡지의 운영을 맡게된다. 초창기 편집부 직원은 스즈키를 포함한 6명. <테레비랜드>라는 저학년층을 대상으로 하는 잡지에서 별책 우주전함 야마토 특집을 편집한 직원들이 모체가 되었다.[테레비 랜드]라는 잡지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던 어느 날이었다. 《아사히 예능》의 기획부장을 지내고 《아니메주》라는 애니메이션 잡지의 창간을 준비하던 오가타 히데오라는 사람이 회사 옆에 있는 커피숍으로 나를 불러냈다. 편집자는 모두 셋집에 살던 시대에 일찌감치 자기 집을 사는 등 여러모로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아니메주》를 맡으라고 말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외부 프로덕션과 함께 준비해왔는데 결국 싸우고 갈라섰어.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야 하는 날까지 이제 2주밖에 안 남았네…….”
애니메이션의 ‘애’자도 모르는 내게 애니메이션 잡지를 만들라니. 더구나 직원도 없다고 한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애원하며 쉽게 놔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의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원고는 어떻게 하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여고생을 세 명 소개해줄 테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게.”
며칠 뒤 그가 소개해준 여고생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듣는 사이에 조금씩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우주소년 아톰」이나 「에이트맨」을 보지 않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특정 캐릭터에 열광하고 그 캐릭터를 그린 만화가를 만나러 가기도 한다. 즉,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이돌이 된 것이다. 창간호는 118쪽이었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아니메주》를 맡으라고 말했다.
“지난 6개월 동안 외부 프로덕션과 함께 준비해왔는데 결국 싸우고 갈라섰어. 원고를 인쇄소에 넘겨야 하는 날까지 이제 2주밖에 안 남았네…….”
애니메이션의 ‘애’자도 모르는 내게 애니메이션 잡지를 만들라니. 더구나 직원도 없다고 한다. 당연히 거절했지만 그는 몇 시간 동안이나 애원하며 쉽게 놔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의 제안을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원고는 어떻게 하죠?”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여고생을 세 명 소개해줄 테니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게.”
며칠 뒤 그가 소개해준 여고생들을 만났다.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듣는 사이에 조금씩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우주소년 아톰」이나 「에이트맨」을 보지 않는 친구들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특정 캐릭터에 열광하고 그 캐릭터를 그린 만화가를 만나러 가기도 한다. 즉,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아이돌이 된 것이다. 창간호는 118쪽이었다.
창간호의 발행이 성사되었지만 스즈키도 오가타도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라 잡지에 어떤 기사를 실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애니메이션에 대해 잘 아는 것은 편집부에 찾아와서 드나들던 아니메팬들이었다.
어느 날 학생 한 명이 찾아왔다. 참신한 로봇 아니메가 시작한다. 취재를 하고 싶다고. 그에게 맡긴 취재 기사 초고를 보고 스즈키는 놀랐다. 애니메이터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와 전개될 스토리 예고, 각종 알찬 정보로 가득했다. 스즈키는 열정만 있다면 누구나 기사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고, 아니메쥬는 이런 식으로 아니메팬이 직접 취재를 해서 아니메팬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맞춤형 정보를 담은 잡지가 되었다.
창간호을 만들 때도, 기획 회의에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여고생 3명을 불러서, 창간호에 어떤 기사를 싣는게 좋을지 물어보면서 잡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리즈 기획으로 '지난 애니메이션 다시보기'라는 제목의 과거의 아니메를 재조명 하는 코너를 만들었는데 이 여고생들이 비범하게도 그 첫 대상으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을 입을 모아 추천했다. 해당 기획의 취재를 위해 스즈키 토시오는 이 작품을 만든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후일담은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의 여담 항목 참고)
창간호의 가격은 대부분의 잡지가 200엔 하던 시절 580엔의 고가였음에도 7만 부가 3일 만에 완판되었다. 곧 《아니메쥬》는 인기 잡지가 되어 월 15만 부에서 30만 부 씩 발행하는 잡지로 성장했고 전성기에는 40만 부씩 찍었다. #
그런데 스즈키 토시오가 개인적인 친분으로 이토록 대단한 애니메이터이자 감독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미야자키 하야오 특집 기사로 31페이지를 실은 1981년 8월호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 했고 40만부를 찍어 발행해서 20만 부가 반품되어 돌아왔다. 일반 대중은 물론 애니메이션 팬들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그가 누군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던 때의 일이다. 지금처럼 모든 정보가 공개되어 어떤 작품에 누가 참여하고 어떤 장면을 그렸는지까지 알 수 있던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의 미야자키 하야오는 애니메이터로는 여러 번 잡지에서 소개되었지만 감독으로서는 기껏해야 1978년에 미래소년 코난과 1979년에 루팡 3세 칼리오스트로의 성을 감독한 무명의 감독이었다. [4] 그런데도 잡지 특집을 꾸린 것은 당시 독자가 느끼기로는 잘 나가는 잡지에서 갑자기 신인 영화 감독을 두고 이 사람은 거장이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뜬금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만화영화의 마술사 미야자키 하야오 모험과 로망의 세계>
스즈키 토시오 외에 유명한 인물로는 오구로 유이치로, 데이터 하라구치가 있다.
3. 발매된 작품
아니메쥬에서 연재됐거나 발매된 작품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야자키 하야오)
- 슈나의 여행 (미야자키 하야오)
- 바다가 들린다 (히무로 사에코)
- 야다몽 (SUEZEN)
- 영원의 휘레나 (슈도 타케시)
- 은하영웅전설 황금의 날개 (미치하라 카츠미)
[1] 일본에서 최초로 애니메이션을 다룬 잡지는 《OUT》이라는 잡지였다. 그러나 《OUT》지는 어디까지나 SF, 서브컬쳐 전반을 다룬 잡지였지 애니메이션만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는 아니었다. 다만, 《OUT》지에서 특집 기사로 우주전함 야마토를 내보낸 호가 엄청난 호평과 함께 잘 나가자 애니메이션 잡지로 전향했다. 다만 애니메이션 회사와 연줄이 깊어 일러스틀 제공받는 뉴타입, 분석이 뛰어난 아니메쥬, 필력으로 승부하는 아니메디아 라는 특징이 있었는데 OUT은 그 어느 쪽에도 경쟁력을 갖추지 못해 사라졌다.[2] 애초에 스튜디오 지브리 자체가 도쿠마 쇼텐의 출자를 받아 설립된 회사이다. 2005년에 도쿠마 산하에서 독립했지만 지금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3] 작화가 좋은 애니메이션은 돈을 많이 들여서 그렇다는 것, 애니메이션은 프레임을 30 이상으로 쓴다 같은 게 대표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아니메쥬는 이런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꾸준히 부정해왔다.[4] 미야자키 하야오가 애니메이션 팬들에게 큰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이후였다. 그 이전에는 토미노 요시유키와 오시이 마모루보다 인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