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fd3e3><colcolor=#000> 하야시바라 메구미 [ruby(林, ruby=はやし)][ruby(原, ruby=ばら)]めぐみ[1] | Megumi Hayashibara | |
출생 | 1967년 3월 30일 ([age(1967-03-30)]세) |
도쿄도 키타구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성우, 가수, 라디오DJ, 내레이터 |
신체 | 155cm|O형 |
가족 | 양친, 오빠(1958년생) 남편(1970년생, 1998년 결혼) 딸(2004년생) |
학력 | 세이가쿠인 소학교 (졸업) 죠시세이가쿠인 중학교 (졸업) 죠시세이가쿠인 고등학교 (졸업) 간호 전문학교 (졸업) |
양성소 | 일본 나레이션 연기연구소(제1기) |
소속사 | 아트비전(1986~1999) 우드파크 오피스(1999~현재) |
활동 시기 | 성우 | 1986년 ~ 현재 가수 | 1989년 ~ 현재 |
별명 | 메구상(めぐさん), 각하(閣下) |
링크 | [2]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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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인 시절 | 90년대 전성기 시절 | '2015년 12월 라디오 출연 사진 |
2. 데뷔 이전
중학교 1학년 때 친구 아버지가 신문사에 다녀서 얻은 표로 친구와 같이 호텔 디너쇼에 갔는데, 전설적인 성우 노자와 마사코가 이벤트 진행을 했다고 한다. 이벤트의 일환으로 《은하철도 999》에서 철이 역할을 했던 노자와가 당시 현장에 없던 이케다 마사코의 메텔 연기를 해줄 사람을 찾았고 여기에 하야시바라가 자원했다. 같이 연기를 한 노자와는 하야시바라에게 연기를 잘한다고 칭찬했고 하야시바라는 이 경험이 매우 인상 깊게 남아 이후에 성우를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데뷔한 이후 노자와 마사코와 같이 녹음하게 되었을 때 이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매우 감사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간호학교 시절의 하야시바라 메구미. 가장 맨 뒤 오른쪽에 있다. |
안정적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간호사를 포기하고 당시 인식이 안 좋고 미래가 불안정한 성우의 길을 선택하는 것을 집안에서는 매우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오랜 설득 끝에 간호대를 졸업하고, 국가고시를 합격해 면허를 따고, 졸업 후 3년 안에 생계가 안정되지 않으면 성우를 포기한다는 조건으로 성우 활동을 겨우 허락받는다. 1985년부터 1988년 졸업할 때까지 학업과 성우 활동을 병행했고, 졸업 후 적은 성우 출연료로 생활이 어려워 병원에서 파트타임 간호사로 1년간 일한 경험이 있다.[10] 간호대를 다니며 성우활동을 하는 것이 특이했는지 선배들은 신인이었던 하야시바라를 '간호학교를 동시에 다니는 성실한 애'로 기억했고, 카미야 아키라는 주위 성우들에게 "간호사인 애가 있어"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3. 활동
3.1. 성우
1986년 성우양성소 2년차에 《메종일각》 1화에서 유치원생B로 애니메이션 데뷔[11]했고 최종화까지 이런저런 단역으로 출연한다. 양성소를 다닌지 1년밖에 안된 생초짜여서 선배들에게 이리저리 깨지고 혼나는 상황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성우도 아니라는 악평까지 들을 정도였는데 잠도 자지 않고 인간이길 포기할 정도로 연습에 매진했고 지금의 연기력을 쌓게 된다. 한마디로 독종. 당시 성우 양성소 선생님이었고 메종일각 출연진이었던 치바 시게루는 하야시바라에게 발성, 발음, 연기 모두 하나하나 가르쳐줬고 부모님의 반대로 진로를 고민하던 하야시바라와 진지하게 상담을 해준 선배이자 은사로 하야시바라는 치바 시게루를 성우계의 스승님이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있다.학업과 병행하며 여러 작품에서 단역으로 출연하다가 1988년 4월 간호대 졸업 직후 《마신영웅전 와타루》에서 자신의 첫 레귤러 캐릭터 시노비베 히미코와 《오소마츠 군》의 마츠노 토도마츠를 연기하며 주목받기 시작하고, 1989년 4월 《란마 1/2》의 여자 란마로 발탁되며 하야시바라의 전설이 시작된다. 최고의 인기 캐릭터인 여자 란마를 데뷔 4년차에 완벽히 소화했고 이후 다른 작품들에서 주연이나 레귤러로 캐스팅되기 시작한다. 덧붙여 당시 신인이 많았던 《란마 1/2》의 성우진은 시간이 흐른 지금에는 전설의 성우진으로 회자되는데[12] 성우들끼리 사이가 매우 좋아 종영한지 20년이 넘은 현재까지도 자주 모이고 회식을 한다고 한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줬고 기라성 같은 선배들에게 배우고 같은 나이 또래의 성우들과 교류를 한 '란마'를 하야시바라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들 중 하나로 항상 꼽는다.
2013년 헬로 키티 X フコク生命 TV CM [13] |
그러나 헬로 키티 50주년인 2023년 11월 1일 부로 헬로 키티 성우를 졸업했다는 중대 발표를 올리게 되면서, 결국 33년을 끝으로 5대째 성우에게 바톤터치를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연기한 헬로키티 관련 매체들을 산리오 측이 졸업 발표 당일에 갑작스럽게 전부 비공개하고 말았다. 헬로키티 공식 유튜브 채널 영상을 전부 비공개 처리하거나, 여러 매체의 키티 목소리를 교체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며 많은 팬들이 갑작스럽게 사전 고지 없이 영상을 내려버린 산리오를 비판하는 해프닝이 일어나기도 했다. 최장수 키티 성우였던 만큼,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키티의 이미지에 기여한 바가 커서인지 일본에서 굉장히 큰 이슈가 되었다.
란마 이후 최정상의 위치에 오르고 10년 넘게 전무후무한 전성기를 누렸는데 90년대 출연작들과 인기를 일일이 나열하면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 90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은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출연한 것과 출연하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고 말 할 정도로 다작을 했는데, 일주일에 출연하는 레귤러 캐릭터가 기본 11개(...)였다고 한다.[14] 본인도 힘들었는지 소속사에 쉬고 싶으니 제발 일을 줄여달라고 부탁할 정도였다고. 인기 역시 넘사벽으로 애니메이션 잡지 아니메쥬의 연간 독자 인기투표인 애니메이션 그랑프리에서 1994년 2위[15]를 제외하고 1989년부터 2001년까지 12년 동안 1위, 2006년까지 18년 동안 TOP 10, 2009년까지 21년 동안 TOP 20이라는 말도 안 되는 기록을 남겼다.[16][17][18]
이렇게 인기를 얻고 캐스팅된 데에는 성우 덕후들도 까지 않을 정도로 연기력이 좋으면서 동시에 할머니, 아줌마, 아가씨, 소녀, 소년, 동물
[nicovideo(sm5924545)] |
하야시바라 메구미 TVA 캐릭터 모음집[20] |
스스로를 무녀(イタコ)[21] 성우라고 말할 정도로 캐릭터에 몰입해서 연기하기로 유명하다. '왜 이 캐릭터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일까', '이 대사를 말하는 캐릭터의 심정은 어떨까' 등 캐릭터를 철저히 연구하고 스튜디오에 들어서면 연기하는 캐릭터에 빠져들어 실제 행동이 변한다고 한다. 《명탐정 코난》 스튜디오에서는 모리 란 성우 야마자키 와카나에게 퉁명스럽게 군다든가, 《카우보이 비밥》에서는 줄리아 성우 타카시마 가라와 눈도 안 마주쳐서 버릇없다고 혼난 일화도 있다. 작품의 설정이나 다른 캐릭터들의 뒷이야기 등을 상세히 파악하는 것 보다 자신의 캐릭터가 아는 만큼만 알고 연기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때도 라쿠고를 싫어하는 본인의 배역 미요키치 때문에 수록이 끝나고 원작과 라쿠고에 대해 알아봤다는 모양이다.
한국에서는 아야나미 레이 계열의 쿨뷰티 캐릭터의 목소리로 많이 알려졌는데, 원래 하야시바라는 히미코, 여자 란마, 리나 인버스 같은 활기찬 소녀 목소리로 정평이 나 있다. 90년대 후반 국내에 일본문화가 알려졌던 시기가 에바 신드롬이 절정이었고, 에반게리온 이후 과묵한 캐릭터의 캐스팅이 늘어나서 이런 인식이 생긴 것. 실제로 하야시바라 본인도 에반게리온 오디션에 참가할 당시 아스카나 미사토 역을 맡게 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으나 생각치도 못하게 레이 역에 캐스팅 돼서 당황했다고 한다. 소녀 캐릭터 이외에 커리어 초반에는 소년 캐릭터가 많았으나 현재에는 기존 레귤러를 제외하고는 소년연기를 듣기가 힘들어 졌고, 나이가 들면서 성인 여성 캐릭터가 늘어났다.
하야시바라의 연기에 대해 오오츠카 아키오는 자신의 책 『성우혼(声優魂)』에서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타카야마 미나미는 천재. 범인이 따라해서는 안되는 사람들."라고 평하였고, 야마데라 코이치는 자서전에서 "메구짱이 여자로 태어나서 다행이다. 만약 남자였다면 오디션에서 경쟁할 자신이 없다."고 적었으며, 음향감독 미마 마사후미는 인터뷰에서 "어떤 역할을 부탁해도 연기가 언제나 완벽해서 인간미가 없는 사람이라고 오해했었다."고 말하였다.
1998년 5월호 《아니메쥬》 |
1999년 14년간 소속되었던 아트비전을 퇴사하고 '우드파크 오피스'에 들어갔다. 우드파크 오피스 사무실의 주소는 킹 레코드 스타차일드 사무실로 되어 있는데 성우 기획사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개인 스케줄만 관리해 주는 형식으로 사실상 프리랜서. 이후 예전보다 활동이 줄었지만 꾸준히 신작 애니메이션(《건방진 천사》, 《러브히나》, 《디지캐럿》, 《샤먼킹 (2001)》 등)에 출연했는데, 2003년 임신과 2004년 출산 이후에는 육아에 집중하기 위해서 제작진에서 강력히 배역을 오퍼하지 않는 이상 신작출연을 자제하였다. 전성기시절 얼마나 빡세게 활동했는지 출산 휴가가 88년 이후 15년만의 제대로 된 휴식이었다고 한다.
많은 국내 애니메이션 팬들은 신작(심야) 애니에 관심이 쏠리는 경향이 있어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요즘 은퇴했나요? 활동 안 하나요?'라는 글이 종종 나오지만 여전히 현역이다.
2014년 1월, 《원피스》에 레베카로 출연이 결정되며 오랜만에 2쿨이 넘는 레귤러를 맡았다. 지난 출연작들의 감독들과의 인연인지 《감독부적격》, 《스페이스 댄디》, 《낙원추방》에도 출연했고 게임이나 TV 내레이션도 새롭게 맡았다. 2014년 들어서 활동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중. 11월 야마데라 코이치와 같이 스튜디오 카라의 《일본 애니(메이터) 견본시장》의 성우로 발탁되어 모든 여성 캐릭터, 소년 등을 소화했다. 커리어에서 매우 보기 드문 야애니 수위의 연기, 1인 3역으로 여중생 백합 연기, 오랜만의 소년 연기를 들을 수 있는 희귀한 작품이다.
성우 데뷔 30주년 & 가수 데뷔 25주년을 맞이하는 2015년, 하야시바라 재기동이라고 말하면서 다시 성우와 가수 활동 모두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 당시 십수년간 해온 레귤러들이 없었다면 성우일을 그만둘 생각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가정에 치중을 했었는데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후 다시 활동할 여유가 생긴 듯 하다. 4분기 《우시오와 토라》에서는 토와코와 백면인로 출연하며 오랜만에 악역다운 악역 연기를 보여주며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말을 입증했다.
2016년 10월 개봉될 스튜디오 카라 제작,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기동경찰 패트레이버 REBOOT에 야마데라 코이치와 같이 캐스팅 되었다. 일본 애니(메이터) 견본 시장과 동일한 제작진과 캐스팅으로, 하야시바라는 신인시절 조연 사쿠라야마 모모코로 패트레이버 시리즈에 출연한적이 있다.
또한 조연이기는 했지만 소드 아트 온라인에서 유우키 아스나의 어머니 유우키 쿄코를 맡기도 했다.
2017년에는 성우 데뷔 이래로 처음으로 10대 중반 소년 캐릭터에 도전했다! 사이하라 슈이치가 바로 그 주인공.
2018년에는 드디어 애니화된 꼭두각시 서커스의 히로인 시로가네를 맡았다.
그리고 2020년 4월에는 자신의 초창기 데뷔작인 마신영웅전 와타루 시리즈의 신작인 마신영웅전 와타루 칠혼의 류진마루에서 와타루 시리즈의 히로인인 시노비베 히미코를 다시 담당하였고, 2021년 샤먼킹 신작에서도 쿄우야마 안나를 다시 담당했다.
3.2. 가수
성우 최초로 레코드 회사와 전속계약을 맺고 음반을 발매한 가수이다. 이전에도 성우활동을 하면서 음반을 내는 경우들이 있었으나 이는 가수 출신 성우거나 이벤트성 음반 발매였다.[25] [26] 처음부터 성우로 데뷔한 성우 출신으로는 최초이다. 당연하지만, 가창력도 굉장히 좋은 편이다.1989년 4월 《건담 0080》의 히로인 크리스티나 맥켄지역을 맡았는데 건담 이벤트에서 당시 킹 레코드 소속가수 '시이나 메구미'의 주제곡을 부르게 되어 이벤트 준비로 킹 레코드에 방문하였다. 당시 킹 레코드의 프로듀서였던 오오츠키 토시미치(大月俊倫)[27]를 만나고 가수로서 하야시바라의 재능을 발견한 오오츠키의 권유로 크리스의 이미지송 "夜明けのShooting Star"을 부르게 된다. 이후 킹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가수 데뷔를 준비하는데 하야시바라 본인, 소속사 아트비전, 음반사 킹 레코드 그리고 애니메이션 제작진들 모두 성우의 음반활동이 처음이라 계약관계, 활동 등 시행착오가 매우 많아 데뷔가 늦어졌다고 한다.
1991년 3월 5일 싱글 <虹色のSneaker>을 킹 레코드에서 발매하며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한다.[28] 80년대까지 성우는 무대 뒤의 사람으로 가끔씩 캐릭터 송을 부르는 경우는 있었지만 성우의 이름을 걸고 활동을 하는 것은 하야시바라가 최초로 지금의 성우들이 애니메이션의 OP/ED을 부르고 음반을 발매하는 것 모두 하야시바라가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킹 레코드 레이블을 현재 애니메이션/성우 업계에서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현재까지도 킹 레코드 소속 아티스트로 회사 임원급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2019년 3월 31일자로 킹 레코드를 퇴사하게 되었다. 하야시바라는 그 이유로 자신이 나이가 들며 하고 싶을 때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고 싶었지만 킹 레코드 소속으로 있으면서 계약에 묶여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활동할 수 밖에 없었고 그나마 자신이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줬던 사람들도 남아있지 않은 상황에서 계약 상 활동이 아닌 좀 더 자유롭게 가수활동을 하기 위해 킹 레코드를 퇴사하기로 했던 것. 그러나 킹 레코드를 나오더라도 협력관계는 그대로 유지하며 활동에도 제약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다만 이제 프리랜서 가수이므로 이와 관련된 활동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29]
지금의 성우들과 달리 하야시바라는 원래 가수를 염두에 두지 않았고 성우는 연기로서만 승부해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적극적으로 가수 활동을 하지 않았다. 콘서트를 하면 일주일에 녹음이 10개가 넘는 성우로서의 본업에 방해되기에 전성기 시절 단 한 번도 콘서트를 한 적이 없고, 라디오의 공개 방송이나 킹 레코드의 합동 콘서트 같은 이벤트의 경우에만 가끔씩 라이브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성우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 "테츠코의 방" 같은 유명 TV프로그램이나 "오리콘 스타일" 같은 非애니메이션 계열 잡지 인터뷰를 하며 성우라는 직업을 대중들에게 알렸고, 많은 80년대생 성우들은 하야시바라를 통해 성우를 알게 되고 성우의 꿈을 키웠다고 말하게 되었다.
음반 활동, 다양한 미디어 활동 모두 성우로서는 최초로 후배 성우들의 활동 방식을 바꿨고 오쿠이 마사미는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성우계의 미소라 히바리 같은 인물"이라며 그 영향력을 말하기도 했다. 성우 아티스트 선구자로 남긴 기록들이 화려하고, 최초 타이틀도 많은데, 중요한 기록들은 아래와 같다.
- 성우 아티스트 최초 오리콘 앨범 차트 TOP 10 진입 (1994.07.02 앨범 『SPHERE』 주간 8위)
- 성우 아티스트 최초 오리콘 싱글 차트 TOP 10 진입 (1996.04.24 싱글 「Give a reason」 주간 9위)
- 성우 아티스트 최초 오리콘 앨범 차트 TOP 3 진입 (1996.11.01 앨범 『bertemu』 주간 3위)
- 성우 아티스트 최초 앨범 초동 10만장 이상 기록과 역대 최다 초동 기록 [30]
- 성우 아티스트 최초이자 유일한 싱글 초동 10만장 (1997.04.23 싱글 「do not be discouraged」 초동 105,590장)
- 성우 아티스트 역대 최다 단일앨범 판매 (1997.08.06 앨범 『Iravati』 오리콘 277,060장 / 출하량 40만장)
- 성우 아티스트 최초 싱글 다운로드 10만/25만/50만 인증 (2009.04.22 싱글 「集結の園へ」 일본 레코드 협회 인증)[31]
- 성우 아티스트 역대 최다 판매량 기록 (약 395만장[32])
90년대 중후반은 일본 음반 시장의 전성기로 B'z, ZARD의 BEING 사단, 아무로 나미에, globe의 코무로 테츠야 사단, Mr.Children, GLAY 등 쟁쟁한 아티스트들의 밀리언셀러가 수두룩한 시절이었다. 성우가 노래를 부른 다는 개념이 생소했던 시기에 전성기 오리콘 차트의 상위권에 오른 것 자체가 일본 대중문화계에 큰 충격이었고 일반인들에게 성우라는 직업을 인식시킨 하나의 사건이었다. 참고로 당시 오리콘 차트는 애니메이트 같은 애니메이션 계열 상점의 음반 판매량이 집계되지 않고 오직 J-POP 음반점의 판매량만 집계되었다.
하야시바라 메구미 이후 동시대의 타카야마 미나미와 후배 시이나 헤키루, 코우다 마리코 같은 성우들이 음반활동을 시작했고 소위 제3차 성우붐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90년대 TV 애니메이션의 부흥과 성우들의 개별적인 활동이 시너지를 일으켜 성우들이 주목받고 열광적인 인기를 얻게 만든 최초의 성우로 "성우의 아이돌화"는 하야시바라 메구미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현재 성우들의 음반 활동, 라디오 활동 등을 개척한 선구자이지만 하야시바라는 연기 본업을 소홀히 하는 일부 성우들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이며 본인이 일으킨 성우계의 변화에 대해 복잡한 감정이 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서는 음악 활동이 이전보다 드물어졌으나 본인이 출연하는 작품(《슬레이어즈 Revolution》, 《마르두크 스크램블》, 《에반게리온: 파》들의 주제곡이나 삽입곡을 부르고 있으며 본인의 라디오 공개 방송에서 라이브를 하고 있다.
여담이지만 《에반게리온: 파》 삽입곡 날개를 주세요가 공개되고 한일 양국에서 노래 실력으로 대차게 까였다. 듣는 것만으로도 불안하다, 한물 갔다는 평. 알고 보니 에바 감독인 안노 히데아키가 부탁해서 라디오 부스에서 데모로 불러본 걸 '어설픈 느낌이 레이와 적합하다'며 그대로 영화에 데모 버전 삽입. 본인은 제대로 녹음하길 원했지만 안노가 거절한 것이라고.
2011년에는 니코니코 동화에 노래를 업로드하기도 했다. (자세한 것은 오소레잔 르 보와르 참조.)
2015년 가수 데뷔 25주년을 기념해 킹 레코드 이외의 음반사에서 녹음한 노래들을 모은 컴필레이션 앨범 《타임캡슐》을 발매하고, 3X3 EYES 영상이 PV로 사용된 싱글 《サンハーラ〜聖なる力〜》을 발매했으며, 이례적으로 사이타마 슈퍼아레나에서 열린 KING SUPER LIVE 2015에 출연해 흰 티에 청바지 차림으로 명곡을 열창하며 팬들에게 감동의 순간을 선사했다. 2016년 시이나 링고가 프로듀스한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의 주제곡 「薄ら氷心中」을 발매하는데, 시이나 링고는 "천하의 하야시바라 여사. 그 일곱 빛깔 무지개색의 목소리에 접근한 것은 작가로서 꿈만 같은 일."라고 코멘트 했다.
2017년 6월 11일에 나카노 썬플라자홀[33]에서 생애 첫 단독 라이브 공연을 개최했다.[34] 일례로 2017년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는데 당시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오카자키 리츠코의 헌정앨범 with you를 발매했었을 때였고 킹 레코드에서 "오랜만에 풀프라이스 음반도 냈으니 콘서트도 한 번은 해야하지 않겠나? 마침 공개방송 하는 날 오후시간대가 비었다고 하니 공개녹음 기세를 살려서 라이브를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 어차피 공개녹음과 라이브 공연의 차이는 관객에게 비용을 받냐, 안받냐 밖에 없다."라는 권유를 받았었다. 처음에는 이에대해 고민을 했으나 이번에 오카자키 리츠코 헌정앨범도 발표하는 만큼 이번 기회에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추모의 의미를 제대로 담기 위해 생애 첫 단독 콘서트를 결정했다. 그래서 해당 콘서트의 구성을 보면 오카자키 리츠코의 헌정이 라이브의 주요 컨셉으로 이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해당 콘서트에서 하야시바라는 오카자키가 만든 곡만 7곡을 열창했으며 특히 라이브 첫 곡의 "夢を抱きしめて"의 경우 오카자키 리츠코의 코러스로 시작하고 앙코르 전 마지막 곡인 "青空"의 경우 오카자키 리츠코가 직접 부르는 노래로 마무리 하는데 이는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오카자키 리츠코와 처음부터 끝까지 생애 첫 라이브를 함께하고 싶다는 본인의 의도가 반영된 것. 참고로 앙코르 전 부른 마지막 곡 푸른하늘에서 하야시바라가 노래를 부르다 반주가 나오자 뒤돌아서서 오른 손을 쭉 뻗으며 갑자기 퇴장한 후 노랫소리만 흘러나오는데 이는 원곡자인 오카자키 리츠코와의 하이파이브 및 바톤터치를 의미한다. 즉, "青空"의 처음부터 중간 부분까지는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부른 뒤 라이브를 다 한 것 처럼 정중하게 인사를 한 후 갑자기 퇴장하고 클라이막스 부분은 뮤직비디오 영상과 함께 무대 위에서 벚꽃이 떨어지며 노랫소리만 나오는데 노랫소리의 주인공은 원곡자인 오카자키 리츠코. 즉 "青空"은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음성으로 시작하여 오카자키 리츠코의 음성으로 마무리 하는 것이며 이는 의도된 것이었다는 의미. 이러한 콘서트 연출을 볼 때 그녀가 자신의 첫 라이브를 어떠한 마음으로 준비했는지 알 수 있다.
친애하는 오카자키 리츠코님,
그때부터 13년이란 시간이 지났어요.
슬프다는 것조차 언급하기 싫었던 그때부터
시간도 흐르고 이렇게 고향에서
당신에 대한 걸 말하고, 노래하고, 풀어내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그리고 죽어간단 건 어떤 걸까.
천천히, 제대로, 그러면서도 긍정적으로
그런 걸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당신과 만나지 못하게 되어
당신의 곡을 기다리지 못하게 됐을 때,
그건 억울하고 너무나 슬펐어요.
그래도 반복하고 반복하며 또 반복하여
당신의 곡을 들으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들을 때마다 거기에 있는 에너지 같은 게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지금이 되어서야 겨우 실감하고 있어요.
지금 없지만 살아 있어.
당신이 제 마음에서 살아 있어요.
계속 살아요. 막 이래요.
티비나 영화나 장례식 장면 등으로
몇 번이나 반복되어
반쯤 너무 많이 사용된 것 같은
그런 말도 실감할 수 있게 됐어요.
깨닫고 보니 13년 지나 있었어요.
긴 건지 짧은 건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에게 있어서 소중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결코 차례가 아닌 너무나 갑작스런
친구나 가족,
어제까지 같이 있던 반려동물 등
죽음이라는 것이 보내주는
그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을
완화시키지 않고 얼버무리지 않고
제대로 마음에 표시하면
진실된 의미로 자기 안에서
그냥 슬픈 게 아니라,
그러면서 반복하며 자신의 구원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가는 거야.
힘이 생겨나는 제대로 된 빛 같은 게 있다는 걸,
그게 마음 속에서 살아간다는 걸 이해했어요.
모두에게 당신이 남겨준
온화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제 나름대로 전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울고 싶어질 때는 제대로 울게요.
눈물은 소중히 사용할게요.
그리고 오늘 저는 무리하지 않는 미소로
거기에 서있을 거예요.
메구쨩답네 라며 미소짓는
당신 을 생각하며, 즐길게요.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하야시바라 메구미 2017.06.11. 생애 첫 단독 라이브 공연 -당신을 만나러 와서- 오카자키 리츠코 파트 시작 전 소개 영상 Dear. 岡崎律子 에서...
그때부터 13년이란 시간이 지났어요.
슬프다는 것조차 언급하기 싫었던 그때부터
시간도 흐르고 이렇게 고향에서
당신에 대한 걸 말하고, 노래하고, 풀어내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게 됐어요.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걸까.
그리고 죽어간단 건 어떤 걸까.
천천히, 제대로, 그러면서도 긍정적으로
그런 걸 생각할 수 있게 됐어요.
당신과 만나지 못하게 되어
당신의 곡을 기다리지 못하게 됐을 때,
그건 억울하고 너무나 슬펐어요.
그래도 반복하고 반복하며 또 반복하여
당신의 곡을 들으며 마음으로 받아들이며
들을 때마다 거기에 있는 에너지 같은 게
결코 끊어지지 않았다는 걸
지금이 되어서야 겨우 실감하고 있어요.
지금 없지만 살아 있어.
당신이 제 마음에서 살아 있어요.
계속 살아요. 막 이래요.
티비나 영화나 장례식 장면 등으로
몇 번이나 반복되어
반쯤 너무 많이 사용된 것 같은
그런 말도 실감할 수 있게 됐어요.
깨닫고 보니 13년 지나 있었어요.
긴 건지 짧은 건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누군가에게 있어서 소중한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결코 차례가 아닌 너무나 갑작스런
친구나 가족,
어제까지 같이 있던 반려동물 등
죽음이라는 것이 보내주는
그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을
완화시키지 않고 얼버무리지 않고
제대로 마음에 표시하면
진실된 의미로 자기 안에서
그냥 슬픈 게 아니라,
그러면서 반복하며 자신의 구원이 되고
버팀목이 되어 가는 거야.
힘이 생겨나는 제대로 된 빛 같은 게 있다는 걸,
그게 마음 속에서 살아간다는 걸 이해했어요.
모두에게 당신이 남겨준
온화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제 나름대로 전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울고 싶어질 때는 제대로 울게요.
눈물은 소중히 사용할게요.
그리고 오늘 저는 무리하지 않는 미소로
거기에 서있을 거예요.
메구쨩답네 라며 미소짓는
당신 을 생각하며, 즐길게요.
그럼, 이만 실례할게요.
하야시바라 메구미 2017.06.11. 생애 첫 단독 라이브 공연 -당신을 만나러 와서- 오카자키 리츠코 파트 시작 전 소개 영상 Dear. 岡崎律子 에서...
또한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규모가 크든 작든 간에 라이브를 참가하게 될 경우, 세트리스트에 오카자키 리츠코가 만든 곡이 반드시 한 곡은 들어간다. 가장 최근의 라이브는 2018년 9월의 KING SUPER LIVE 2018으로 당시 부른 오카자키의 곡은 러브히나의 오프닝곡인 사쿠라사쿠.[35]
3.3. 라디오
신인시절부터 라디오를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고 다닐 정도였다고 한다. 본인의 염원대로 1991년 4월에 RF 라디오 일본에서 최초의 단독진행 라디오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Heartful Station》(약칭 HS)을 시작했지만 '사회의 목탁'이란 악명 높은 방송사 방침으로 8월에 폐지되고 10월 라디오 간사이에서 다시 재개하여 2015년 3월 종영까지 24년간 1200회가 넘는 장수방송이 되었다. 하트풀 스테이션은 간사이(관서)지방에만 방송되므로 1992년 4월에 간토 지방의 TBS라디오에서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Tokyo Boogie Night》(약칭 TBN)를 시작해서 HS를 뛰어넘어 27년째 방송하고 있다. 두 라디오는 성우들의 애니메이션 라디오(애니라지)가 활성화되는 기폭제 역할을 했고, 청취율도 높아 TBN는 골든마우스를 수상하고 TBS 라디오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애니라지가 되었다.하야시바라는 성우활동에 집중하기 위해서 CD는 발매하지만 라이브는 전혀 안하는데 팬서비스의 일환으로 라디오가 100회를 기록할 때마다 공개방송을 열어 팬들을 무료로 초대하며 라이브도 한다. 블로그나 트위터 등을 전혀 안하기에 라디오에서 가끔씩 말해주는 일상과 사연이 팬들과의 유일한 통로였다. 20년이 넘는 장수방송인지라 라디오 프로 자체가 유명해져서 애니메이션 관련된 게스트에 한정되지 않고 일반 연예인들도 가끔씩 출연하기도 한다. 청취자들 역시 공개방송에서 만나 팬끼리 결혼을 하다던가, 부모와 자식이 같이 라디오를 듣는다 거나, 라디오를 통해서 팬이 되었던 청취자가 성우가 되어서 나타나기도 했다.
토크 능력이 뛰어나서 어지간한 성우/업계 선후배들과 대화를 주도하며(특히 후배들은 하야시바라의 손바닥 위...) 《포켓몬 라디오 쇼! 로켓단 비밀제국》에서는 거물 엔카가수 코바야시 사치코를 게스트로 자연스럽게 라디오를 진행할 정도. 이런 그녀가 약한 게스트는 혼다 치에코 같이 어려워하는 선배들이나 17세교 교주님 같은 마이페이스인 사람. 이노우에 키쿠코가 게스트로 나왔을 때는 방송에서 '난 이런 타입에 약해...'라고 말하며 17세교 교주님에게 말리는 보기 드문 모습을 보여줬다.[36][37]
라디오를 1회부터 대본 없이 진행하고 있다. 각 코너명만 써져있는 종이와 청취자 엽서만 가지고 스튜디오에 들어간다고. 자신의 라디오에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담당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청취자 사연정리(모두 읽는다고 한다.), 라디오 코너, 게스트 섭외, 이벤트 개최 진행 등을 모두 한다고 한다. 하트풀 스테이션은 어시스턴트와 같이 진행하는데 3번째 어시스턴트로 당시(1999년) 유명해지기 전이었던 호시 소이치로를 발탁한 것도 하야시바라라고 한다. 하야시바라가 DJ 겸 구성작가, 프로듀서로 그만큼 라디오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고.
2015년 2월 28일 방송에서 24년간 진행해온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Heartful Station》을 3월 28일 방송을 마지막으로 폐지한다고 밝혔다. 3월 21일 1225회에서 16년간 함께해온 어시스턴트 호시 소이치로와 마지막으로 공동 진행을 했고, 3월 28일 1226회 하야시바라의 단독진행으로 24년의 역사에 막을 내렸다. 마지막 회에서 라디오가 끝나고 뭘 할까 생각하다가 '하트풀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으로 인생최초의 SNS인 블로그를 시작한다고 밝혔고, 청취자 엽서 주제가 최종회일 뿐 밝고 유쾌한 평소다운 분위기로 하야시바라 메구미답게 방송을 마쳤다.
《하야시바라의 Tokyo Boogie Night》은 여전히 방송중이며 하트풀 스테이션이 송출되던 시간을 물려받아 라디오 칸사이에서 송출되며 전국 방송으로 확대되었다. 2015년 10월 25일 TBN 1226회를 돌파하며 HS를 넘어 하야시바라가 가장 오래 진행한 라디오 겸 역대 3번째로 오래 방송된 애니라지가 되었다. 2019년 5월 1400회를 방송하며 역대 2번째로 오래 방송된 라디오가 되었다.
4. 별명과 성격
가장 유명한 별명은 각하. 인터넷에 하야시바라 관련 글이 올라오면 90% 이상의 확률로 '각... 각하!' 등의 댓글이 달린다.정말 먹는 것을 좋아하고 대식가로 유명해서 후배인 호리에 유이가 '(하야시바라가) 먹을 걸로 전설을 만들었는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선배 히다카 노리코가 어떤 여자 신인 성우에게 '넌 하야시바라 메구미를 닮았네.'라고 말해서 그 성우가 기뻐했는데 이유가 회식에서 먹기 전에 벨트를 풀러서인 걸 알고 실망했다는 일화도 있다. 안노 히데아키의 증언에 의하면 에반게리온의 녹음을 하던 시기에는 회식에서 '고기~ 고기~'하고 노래를 불렀고, 《슬레이어즈》 성우들과 스텝들과 10명 정도가 고기집에 가서 가게의 모든 고기와 술을 동냈다는 전설을 만들기도 했다.
건망증이 매우 심해 항상 무언가를 놓고다니고 잃어버리기 일쑤다. 햄을 세탁기 위에 놓고 잊어버렸다가 남편이 발견했다는 일화나, 지갑을 하도 자주 잊어버려서 체인이 달린 지갑을 사서 가방에 매달고 다니는데 그 가방도 잊어버렸다는 일화, 녹음 스튜디오에 말고기 육회를 놓고 가서 성우들과 스텝들이 폭소했다는 일화 등 하야시바라의 건망증에 대한 일화가 수두룩하다. 심지어 신발을 갈아 신는 것을 잊어버리고 스튜디오의 실내용 슬리퍼채로 집에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로켓단 로이역의 미키 신이치로는 항상 하야시바라가 집에 가기 전에 "메구짱 열쇠는? 지갑은?"라고 물어보면서 챙겨준다고 하는데 그럼에도 매번 무언가를 놓고 간다고.
특유의 괄괄한 성격도 유명하다. 신인시절 란마 1/2와 시끌별 녀석들 합동 이벤트에서 시끌별 녀석들 팬들이 란마 성우들에게 야유를 보내자[39] 불같이 화를 내고 직접 찾아가서 따진 적도 있다. 거의 싸우기 직전까지 갔지만 친언니처럼 따르는 히다카 노리코가 겨우겨우 뜯어 말려서 진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많이 부드러워져서 "(악플을 보면) 그런 사람들조차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젊었을 때라면 화가 나서 따지려고 했겠지만 이 나이가 되니 그런 생각도 안 든다."[40]고 말하기도. 2002년의 「니시카와 타카노리의 올 나잇 닛폰 SUPER! ~가을의 애니메이션 축제~」 편에 초대 받아 이케다 슈이치, 이시다 아키라와 함께 두시간 동안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한 적이 있다. 낯을 가리는 니시카와에게 "내 눈을 쳐다봐!!!" 라고 말하면서 니시카와를 매우 당황하게 했다. 지금 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게스트 라인업.
완벽주의자 성향이 짙어서, 일할 때에는 엄격하면서도 심혈을 기울인다. 스텝들도 하야시바라가 NG를 안 낼 줄 알고 놓치고 넘어간 부분을, 이쪽이 스스로 지적하고 다시 녹음할 때도 많다고. 녹음 현장에서 군기반장으로 후배들이 무서워하는 선배로 꼽힌다. 상습적인 지각으로 악명이 높았던 타카기 와타루는 건방진 천사 스튜디오에서 된통 당한 계기로 지각 습관을 고쳤다. 당시 신인 성우들이 많았던 샤먼킹 (2001) 현장에서는 후배들이 NG를 내면 음향감독보다 먼저 그녀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한 적도 있다. 쉽게 말해서 허투루 일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그러나 그 정도가 똥군기라고 절대 볼 수는 없는 것이 그녀는 후배들이 노력하고 기본적인 예의만 지키면 자신에게 장난치거나 놀려도 잘 받아주고 사적으로는 별로 격식을 차리지 않는 성격이다.
일할 때 한정해서 엄격하고 무서워질 뿐 평소에는 유들유들하고 주변 사람들을 잘 챙겨서 대인관계가 좋은 편이다. 하야시바라는 80년대 기준으로 어릴 때(18-19세) 데뷔해서 연상인 후배가 매우 많은데,[41] 이들과 호칭도 편하게 하고 서로 반말하면서 격의 없이 지내고 있다. 후배에게 간식과 밥도 잘 사주는 선배다. 이를 몰랐던 어떤 신인 성우는 음료수를 사주려고 자신을 불렀는데도, '연기를 못하는 자신을 혼내려고 부르는 줄 알았다.'고 털어놨다. 스스로도 스튜디오에 들어선 순간 인격이 바뀐다고 얘기할 만큼, 공사구분이 확고한 사람이다.
팬 서비스 역시 일본 성우 중에서는 최상위에 있는 성우라 팬들을 만나면 언제나 호의를 베풀고 화기애애한 소통을 나눌 정도다. 성우로써의 위상이 엄청난 것은 본인의 역량이 타고난 것도 있지만 이러한 매너와 마음가짐도 훌륭한 것도 있다.
5. 대인관계
동기[42]인 히라마츠 아키코, 사사키 노조무, 와타나베 쿠미코와 친한데, 특히 히라마츠 아키코와 절친한 사이로 신인시절 서로의 집에 자러가거나 하야시바라가 출산으로 일을 쉬었을 때 히라마츠가 대타로 포켓몬스터에 출연해주기도 했다. 사사키 노조무와는 자신의 남자친구라 불릴 정도로 친했고 옛날부터 그가 같이 나오면 기뻐할 정도. 커리어로는 후배 성우들이지만 본인과 67년생 동갑내기 성우들인 야지마 아키코와 미츠이시 코토노와도 사이가 좋은 편이다.[43]오랫동안 출연해온 《란마 1/2》, 《명탐정 코난》, 《포켓몬스터》 성우들과 돈독한 관계로 동년배인 야마구치 캇페이, 사쿠마 레이, 오오타니 이쿠에, 미키 신이치로, 이누야마 이누코, 카나이 미카, 아이카와 리카코와는 사적으로도 친하고 미도리카와 히카루, 유사 코지, 칸나 노부토시, 쿠사오 타케시, 치바 스스무와도 깊은 인연이 있을 정도로 친하다. 특히 아이카와 리카코와는 가족끼리 교류하는 사이로 아이카와의 남편 이와타 미츠오의 고향(나가노)에 매년 딸을 데리고 자주 놀러가서 모내기와 추수를 돕고, 아이들을 데리고 후지큐 하이랜드에 놀러간다고 한다.
《란마 1/2》 텐도 아카네 역으로 만난 히다카 노리코를 친언니처럼 따르며 '논코상에게는 모든 것을 터놓을 수 있다.'고 말 할 정도로 막역한 사이이다. 히다카는 20대 초반 다혈질이던 하야시바라를 보고 '재능은 빛나지만 너무 직설적이어서 미움 받기 쉬운 아이'라고 생각해서
타카야마 미나미와는 부부로 불리는데 《샤먼킹》 출연 당시 신인 성우였던 박로미와 사토 유우코가 대선배인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타카야마 미나미에게 연기조언을 받으며 존경의 의미를 담아 두 사람을 각각 어머니, 아버지라고 부른 것에서 기인했다. 두 사람은 신인시절 란마에서 여자 란마와 텐도 나비키로 공동출연하며 친해졌고 《가라! 우주전함 야마모토 요코》, 《명탐정 코난》 등 많은 작품들에서 30년 가까이 같이 일하면서 사적으로도 가까워진 관계이다. 서로를 표현하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관계, 옆에 있는 게 당연한 존재라고.
타나카 마유미, 이쿠라 카즈에 등 《마신영웅전 와타루》 성우진 선배들이 막내였던 하야시바라를 많이 예뻐했다고 한다. 간호대 졸업식과 와타루 1화 녹음일이 겹친 하야시바라를 위해 선배 성우들과 스텝들이 작게 파티를 해주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간호사 아르바이트를 했던 하야시바라에게 밥을 사주고, 교통비를 주고, 포기하지 말라고 격려해주는 등 많이 도와줬다고. 특히 다나카 마유미는 매주 밥을 사주고, 집에도 초대하고, 술자리에서도 챙겨줬는데 하야시바라의 어머니는 야구선수 마유미 아키노부처럼 성이 마유미인 남자 성우인줄 알고 매우 걱정했다고 한다.
오가타 켄이치와 30년 가까이 부녀(같은) 관계로 연기하는 배역이 매우 많아, 실제로 아버지처럼 따르며 성우계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첫 레귤러였던 《마신영웅전 와타루》에서 시노비베 히미코-시노비베 겐류사이, 출세작 《란마 1/2》의 여자 란마-사오토메 겐마, 《요술공주 밍키(1991년 애니메이션)》에서 밍키모모-임금님(밍키모모의 아빠), 《명탐정 코난》의 하이바라 아이-아가사 히로시 등 신인 시절부터 베테랑이 된 지금까지 매년 부녀(같은) 관계를 연기해오고 있다. 오가타 켄이치는 1942년생이기 때문에, 1967년생인 하야시바라 메구미에게는 아버지뻘인 선배다.
일본에서 제일 존경받는 남성 성우 1위 야마데라 코이치와도 사이좋은데 야마데라와는 신인 시절부터 지금까지 함께한 작품이 많다. 마신영웅전 와타루나 마동왕 그랑조트, 란마 1/2, 카우보이 비밥, 크로스 앙쥬 천사와 용의 윤무, 쇼와 겐로쿠 라쿠고 심중, 뉴 단간론파 V3 -모두의 살인 신학기- 등등. 이런 에피소드도 있는데 TBN 505회(2001년 12월 방송) 때 말하길 예~옛날 4월 1일에 마신영웅전 와타루 녹음 현장에서 하야시바라는(와타루 당시엔 신인이었다) 만우절이고 와타루의 녹음 현장은 좋은 분위기니까 해도 모를 거 같다는 생각을 하고 "들어주세요 복권 1천만엔 당첨됐어요!" 라고 거짓말 했다고 한다. 주위에선 그걸 진짜로 믿고는 놀라면서 대단하다고 막 그러는데 그 당시엔 하야시바라처럼 신인이었고 같이 구석 쪽에 앉던 야마데라가 자기 팔을 꽉 잡더니 어디로 데려가선[44] 그런 건 너무 큰소리로 안 말하는 게 좋다는 말과 이것저것 어드바이스를 해줬다고...[45] 그리고 거짓말이라고 밝혔을 때 당연히 다들 화내긴 했지만 분위기 자체는 화기애애 했다는 모양. 다만 야마데라는 진짜 화냈다고 한다(...).
모리카와 토시유키와 히야마 노부유키는 옛날에 하야시바라의 라디오 Heartful Station과 Tokyo Boogie Night에 게스트로 자주 왔었는데 따로따로 온 적도 있지만 둘이 같이 왔을 때가 많은 데다 HS의 코너 징글 중에 둘의 미니 콩트도 있었다. 라디오에서 셋이 즐겁게 얘기하는 걸 보면 정말 친하다는 게 잘 느껴진다. 그리고 모리카와랑 히야마가 하는 토크 이벤트의 제10탄(1999년 개최) 때부터 현재까지 쭉 장내 아나운스도(아나운스만) 해주고 있다.
모리카와 토시유키와는 데뷔 초기 시절부터 같은 아트비전 소속에 나이도 또래인데다가 테카맨 블레이드에서도 주연 역할을 맡으면서 인연이 누구보다 깊다. 하야시바라 본인이 아트비전을 퇴사하고 모리카와 역시 아트비전을 퇴사하고 엑셀원을 창립하여 대표 자리에 오른 이후에도 여전히 둘은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츠모토 야스노리와도 친분이 깊은데 천공전기 슈라토를 시작으로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 슬레이어즈 등 많은 작품에 함께 출연하였다. 마츠모토가 방송 관계로 배에 탑승했을 때 코를 다쳤는데 하야시바라도 이때 같이 배에 탑승했던 사람이라 마츠모토의 부상당한 코를 직접 치료해줬다.
자신과 비슷한 시기에 아트비전에 입사한 요코야마 치사도 본인처럼 괄괄한 성격이지만 이쪽은 너무 불같은 성미라 대인관계까지 좋지 않고 제작진과도 불화설이 있었을 정도지만 요코야마와는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혼다 치에코와 하야시바라는 1988년 《燃える!お兄さん》에서 처음 만났는데, 작은 체구와 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군기반장으로 유명했던 혼다에게 엄청난 질책과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성우로서 성공했지만 데뷔 연차가 10년, 20년이 넘었음에도 혼다 치에코만 만나면 쩔쩔매며 무서워했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선배로서 혼다 치에코를 존경했으며 사적으로도 친한 편이어서 라디오 《하야시바라의 Tokyo Boogie Night》 타이틀은 혼다 치에코와 듀엣 곡의 제목에서 따왔고, 오키나와 여행도 같이 간 적 있으며, 라디오에도 여러 번 게스트로 초대했다. 2013년 혼다 치에코가 사망하자 라디오에서 애도를 표하며 존경하는 선배와 함께한 추억을 이야기했다. 당시 방송
혼다 치에코 외에도 미즈타니 유코와도 친분이 있는 사이였고 나이는 미즈타니가 3살 위지만 데뷔 시기는 비슷하다. 실제로도 그와 같이 출연한 작품이 꽤 많았고 미즈타니 유코 역시 혼다 치에코에 이어 2016년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노우에 요우와의 인연도 유명한데, 하야시바라가 이노우에 요우가 사망한 뒤 올린 추모글에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마츠모토 리카[46]와 함께 신인이던 시절인 1988년 《오소마츠 군》에서 마츠노 오소마츠와 마츠노 토도마츠 역으로 처음 만났다. 지금의 《오소마츠 상》과는 달리 당시 여섯 쌍둥이들은 목소리로 구별을 해야 해서 담당 성우들이 많이 헷갈려 했을 때, 당시 여섯 쌍둥이 역 중 제일 선배이자 오소마츠 역이었던 이노우에 요우가 "자기 차례가 오면 눈치 보지 말고 마이크 앞으로 나오세요. 다른 사람 밀쳐도 좋으니까."라며 당시 하야시바라를 포함한 신인들을 독려해줬다고 한다.
스자키 아야와는 라디오를 통해 사연을 보내고 진로를 상담했던 열혈 팬이 꿈을 이뤄 성우가 돼서 자신의 라디오에 게스트로 출연했다는 만화에 나올법한 인연로 유명하다. 라디오 게스트 출연 후 꾸준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스자키 아야의 항목을 참조.
5.1. 오카자키 리츠코와의 관계
지금은 고인이 된 그녀에 대한 마음이 매우 각별하다 못해 넘어서는 수준이다.그녀가 여주인공 다테 미즈키 역으로 목소리 연기를 한 OVA <1월에는 크리스마스>에서 오카자키 리츠코가 본명으로 데뷔해 노래를 불렀는데 그녀가 부른 겨울이 없는 캘린더 에서의 애절한 음악과 보이스에 한 귀에 반한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그 길로 킹레코드의 음악 프로듀서인 오오츠키 토시미치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노래가 있어! 당장 이 아티스트랑 계약해! 라고 강권하고 우리는 이런 사람이랑 일하지 않으면 안돼! 들어! 라고 강압적으로 노래를 계속 들려주며 채용을 요청한 끝에 결국 다음 작품인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 꿈을 껴안고 에서 재회를 성사시켰을 정도로 오카자키 리츠코와의 만남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47][48]
당시 최고의 성우로 떠오르고 있던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당시 검증되지 않았던 무명 싱어송라이터의 열성팬이 되었다는 의미. 하야시바라 메구미 자신도 당시 그녀와의 조우를 위해 왜 그렇게 적극적인 행동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 했고 이는 운명적인 만남이 아닐까? 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 이후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오카자키 리츠코는 가수와 작사 · 작곡자로서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하였지만 이는 2004년 5월 5일 오카자키 리츠코가 세상을 떠나면서 끝나게 된다. 하야시바라는 업계내에서 오카자키의 사망 당시 가족 외의 인물 중에 가장 큰 충격을 받았었던 인물 중의 하나이다.[49] 어느정도 였냐면 오카자키가 사망한 직후 그 소식을 알게된 하야시바라는 그녀의 죽음을 인정하기 두려웠던 나머지 장례식장에도 가지 않았었다. 장례식에 참석해 그녀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 영원히 자신의 곁을 떠났다는 것을 확인해 버리는 꼴이 되므로 이를 두려워 한 것. 그러나 이로 인해 그녀에 대한 마음의 정리를 할 기회를 놓친 하야시바라는 외적으로는 자신의 라디오에서 그녀의 추모방송을 진행하는 등 오카자키의 죽음을 인정한 듯이 행동했었지만 내적으로는 2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오카자키의 죽음에 대해 인정하지 못하고 단지 그녀는 죽지 않았으며 단지 프랑스와 같은 먼 나라로 떠나서 오랫동안 떨어져 있을 뿐이라고 현실부정을 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이후 시간이 지나며 그녀의 사망으로 인한 정신적 데미지를 치유하기 위해 했던 활동이 오카자키의 곡을 자신이 부르는 것이었다. 그럼으로서 그녀에 대한 현실부정적인 마음을 정리하고 추모의 의미로 받아들이려고 한 것.#
이와 관련된 비화가 있는데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2007년 방영됐던 애니메이션 학원 유토피아 마나비 스트레이트!의 주인공 아마미야 마나미 역으로 캐스팅 됐었으나 캐스팅 당시 그녀는 당시 아직 딸이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가정에 충실하기 위해서 해당 작품을 고사했었다. 그래서 해당 주인공역은 호리에 유이에게 돌아갔는데 이와 함께 OP곡과 ED곡도 호리에 유이가 부르는 걸로 합의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연찮게도 해당 애니메이션의 음악 프로듀서가 작품에 쓰려고 했던 곡이 오카자키 리츠코의 곡을 리메이크한 노래였고 이를 알게된 하야시바라는 다른 건 몰라도 주제가 만큼은 자신이 부르고 싶다고 제안했다. 이에 응한 음악감독이 정식으로 그녀에게 요청을 했고 이로인해 해당 애니메이션의 주제곡들은 주인공역을 맡은 호리에 유이가 아닌 해당 작품에 단역으로 출연하는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성우가 아닌 가수 자격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출연도 하야시바라가 해당 작품의 주제곡을 부르게 되자 제작팀이 이에 대한 구색을 맞추기 위해 단역으로 캐스팅한 경우였다.
그녀가 학원 유토피아 마나비 스트레이트!의 주제곡들을 강력하게 부르고자 했던 것은 오카자키 리츠코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는 현실부정적인 마음을 정리하고 추모의 의미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함이었다. 호리에 유이 또한 대선배의 마음을 알고 흔쾌히 OP와 ED 주제가를 양보했다.[50] 그런 마음으로 하야시바라는 OP 'A Happy life'와 ED 'Lucky & Happy'를 노래한다.
그리고 함께 교제하는 동안 그녀를 진심으로 존경했던 하야시바라는 이후, 그녀에 대한 추모곡을 직접 작사·작곡 해서 발표했고[51] 현재까지도 지속적으로 오카자키 리츠코 의 노래를 리메이크 해서 부르고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에 그녀의 음악들을 간간이 선곡하며 틈이 날 때마다 언급하면서 그녀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계속 각인시키고자 하고 있다. 심지어 2017년 5월에는 오카자키 리츠코의 노래를 베이스로 하여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노래를 부른 헌정앨범 "with you"를 발표했고 같은 해 가수 데뷔 후 대망의 첫 라이브 콘서트를 오카자키 리츠코 특집으로 열 정도로 그녀에 대해 열성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다.[52] 오카자키 리츠코가 2004년 사망 전까지 속했던 유닛 멜로큐어의 다른 멤버 히나타 메구미와 더불어 대중들에게 그녀가 잊혀지지 않도록 알리는데 가장 열성을 기울이는 사람 중의 한 명이며 현재 그녀의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앞으로도 잊지않고 오카자키 리츠코의 노래를 불러서, 그녀를 잊혀지게 하지 않게하는 것 이다.[53]
하야시바라의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감정을 알고 싶다면 여기 참조. 그녀가 2006년 2월 26일 뉴타입 잡지의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빰바라 생활' 코너에 기고한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글인데 말미에 매듭을 짓지 못한 내 마음은 실은 아직도 헤매고 있다. 하늘에서 올 리도 없는 데모 테이프를 마음 한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아직은 그래도 괜찮겠지… 하고 내 멋대로 결론 짓곤 한다.라는 내용을 적었었다. 그런데 그 이후 그녀에게 12년에 걸쳐 그 하늘에서 올 리도 없는 오카자키 리츠코 작사/작곡의 미발표곡 데모 테이프가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그녀의 손에 오게 된다. (첫 번째는 2010년 13집 CHOICE에 수록된 雨の小犬. 두 번째는 2018년 14집 Fifty~Fifty에 수록된 mint) 그야말로 이미 고인이 된 오카자키 리츠코가 사망 이후에도 그녀의 노래를 갈망하는 하야시바라의 소원을 들어준 셈.[54][55]
2022년 1월, 2021년 12월 29일 오카자키 리츠코의 62번째 생일을 맞아 개시한 그녀의 전 앨범 디지털 음반 15초 광고 나레이션을 담당하며 오카자키에 대한 마음과 존경에 대한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기고하여 역시 오카자키 리츠코 바라기는 어디 안간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그리고 2023년 5월, 오카자키 리츠코가 세상을 떠난 달에 그녀에 대한 마음을 담아 올해도 어김없이 그녀에 대한 사랑과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2024년 5월 TBN 방송에서는 오카자키 리츠코 20주기를 맞아 후반부를 그녀의 추모방송으로 꾸몄고 그녀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노래를 하고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오카자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여지없이 보여줬다.#
6. 기타
- 한국에서는 리나 인버스, 여자 란마 등 배역이 겹치는 최덕희와 비슷하다는 평이 많기 때문에 활동시기와 음색도 상당히 비슷한 편이어서 둘 다 시대를 휩쓴 최고의 레전드 성우로 인정받고 있지만, 정미숙과 우정신[56]도 주로 겹치는 역할을 많이 맡고 있다.[57]
실제 교과서 사진 |
- 1997년 성우 최초로 고액 납세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일본은 2005년까지 고액 납세자들의 납세액을 공개했는데 납세액을 역산하면 연간 추정 소득을 구할 수 있었다. 97년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납세액은 3295.1만 엔, 추정소득은 7796.2만 엔이었다. 2ch, 마토메나 SHIROBAKO에서 초인기 성우 연수입 7000만 엔의 출처는 다 여기서 나온 것. 당시 하야시바라의 출연료가 이미 업계 최고였고 TV에 안 나오는 날이 없을 정도로 많이 출연했지만 소득의 대부분은 저작권료로 추측한다. 97년 오리콘 기준 싱글 약 35만장/앨범 약 30만장을 팔았는데 작사를 하야시바라가 직접 했고, 96년 발매한 자서전이 20만부가 팔려 들어올 저작권료가 어마어마했다. [58]
- 1994년에 코에이에서 개발한 영어학습용 교육 프로그램인 EMIT 에서 주인공인 다나카 유리역을 맡았었는데, 이게 1996년에 국내에도 정발된 적이 있다. 원래 일본에서 영어학습용으로 만든 물건이지만 국내에 들어올 때는 자막만 한글로 바꾸고 음성은 그대로 놔둬서 일본어 교재로서의 기능도 하게 되었는데, 덕분에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뤄지기 전인 시기였음에도 합법적으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일본성우 중 한명이었다.
- 90년대 당시 본인을 비롯해서 미츠이시 코토노, 히사카와 아야, 야지마 아키코와 더불어 주연 전문이자 실력파 여자 성우인 20대 나이의 여자 성우들로 손꼽혔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쪽이 여기 있는 성우들 중에서는 가장 정점에 있는 위상과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사람에 따라서는 시라토리 유리, 아마노 유리, 요코야마 치사, 오카모토 마야 등도 저 라인에 들어갈만하다는 평가를 받지만 여기 있는 성우들은 언급한 성우들에 비해 인지도가 좀 밀린다.
- 간호사를 했던 경험으로 지방 이벤트에서 한밤중에 병에 걸린 소녀 팬을 구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간호한 적도 있다고 한다. 마츠모토 야스노리가 유람선에서 다치자 치료해준 적도 있다. 《포켓몬스터》의 무사시(로사)가 포켓몬 간호학교를 다녔다는 설정은 담당성우인 하야시바라가 간호사 출신인 것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명탐정 코난에서 하이바라가 약에 대해 설명을 하는 장면을 연기할 때도 꽤 도움이 된다고.
간호사인걸 이용해 다나카 마유미를 속여 엄청 쓴 사탕을 먹이기도 했다.
- 2003년 일본 아사히TV의 방송 「전국 일제 테스트」에서 '결정! 이것이 일본의 성우 베스트 100'에서 11위에 랭크되었다.# 상위를 차지한 성우들은 오오야마 노부요를 비롯하여 노자와 마사코, 카미야 아키라 등 정말로 전설적인 성우들. 동시대 성우들 중에선 히다카 노리코, 야마데라 코이치, 타카야마 미나미, 이시다 아키라, 야마구치 캇페이, 야지마 아키코 등.
- 2011년 8월 아사히TV 프로그램에서 실시한 성우 100명이 뽑은 대단한 성우 25명 순위에서 8위를 했다. 윗 순위들은 노자와 마사코, 다나카 마유미, 나가이 이치로 등 선배들로 동시대 성우들 중에서는 1위 야마데라 코이치 다음으로 최고 순위. 하야시바라 본인도 투표에 참여했는데 존경하는 선배 3명에 쿄다 히사코, 치바 시게루, 카토 세이조을 꼽았다.
- 타카다 유조의 영상화된 대부분의 작품(《3X3 EYES》, 《BLUE SEED》, 《만능문화묘랑》)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건담 0080》을 인상 깊게 본 타카다가 《3X3 EYES》 주인공에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츠지타니 코지를 캐스팅할 것을 애니메이션 제작진에 요구했고, 하야시바라의 파이 연기에 만족한 타카다는 이후 자신의 작품 여주인공에 하야시바라를 계속 지목했다.
- 출산 휴가 당시 라디오 《Heartful Station》는 어시스턴트 호시 소이치로를 메인DJ로 하고 일일 게스트를 초청해서 진행되었는데, 휴가 첫 번째 방송(663화)에서 킹레코드 담당자와 라디오의 코너를 맡고 있는 세가 직원을 시작으로 타카하시 나오즈미, 호리에 유이, 코야마 키미코, 시미즈 아이, 나카하라 마이, 이시다 아키라, 히다카 노리코가 대신 진행을 해주었다. 《Tokyo Boogie Night》는 처음 4주는 역대 방송 하이라이트로, 나머지 4주는 히다카 노리코가 대신 진행해주었다.
- 《슬레이어즈》녹음 현장에서 포키가 옥수수맛이 난다고 감동해서 주변 성우들에게 나눠줬는데 편식이 심한 이시다 아키라는 한번 먹고 “됐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후 하야시바라는 이시다에게 아침인사를 안하는 등 가볍게 복수를 했다고. 출산 휴가 당시 《Heartful Station》에 게스트로 온 이시다에게 하야시바라가 이 에피소드를 메시지를 보내거나, 《슬레이어즈》 인터뷰에서 자주 거론되는 등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일화인 듯. 이시다 본인은 당황하며 자기는 그런 적 없다며 부정하면서 말하길 "심기를 건드렸다."
역시 각하...
- 요리를 잘해서 녹음이 끝나고 자신의 집으로 동료 성우들을 초대하는 일이 꽤 많다. 1995년 8월 16일 《저녁밥만세》[59]라는 요리 프로그램에 돼지고기 말이 튀김으로 출연해 출연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출연 전 후지TV 상품연구부의 감수를 받기 때문에 일단 출연이 확정되었다는 이야기는 요리 실력을 입증 받았다는 이야기.
- 2007~2009년까지 뉴타입에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빰빠라 생활>을 연재했다. 번역본은 여기서 확인 가능.
- 어느 날 집에 돌아왔더니 뜬금없이 한 케이코가 "6월이야, 올해 6월은 12년에 한번 오는 행운의 시기야. 6월, 6월."이라는 자동응답기 메시지만 덜렁 남겨놓았다고 한다. 어안이 벙벙해서 이게 뭘까 고민을 하다가 '그럼 6월에 결혼할까?'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식 날짜를 6월로 잡았다고 한다. 나중에 한 케이코에게 결과 보고를 하자 한 케이코는 한참을 폭소를 했다고.[60]
- 90년대를 명실공히 휩쓸어버린 성우인데도 슈퍼로봇대전에서 쉽게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히로인 키사라기 아키를 맡은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는 음성이 없는 슈로대 작품에만 나왔고 기동전사 건담 0080의 크리스티나 맥켄지마저 참전작이 줄어들자 아야나미 레이 딱 1명만 남았다. 슈퍼로봇대전 X에서는 마신영웅전 와타루가 참가함에 따라서 오랜만에 시노비베 히미코를 연기했는데 작품 상영으로부터 20년이 넘어가는 지금도 히미코 목소리를 연기할 수 있음을 보여주며 팬들을 놀라게 했다. 슈퍼로봇대전 T에서는 위에 언급된 작품들이 아닌 카우보이 비밥의 페이 발렌타인을 연기. 본인도 '0080 의 크리스역을 하라고 부른게 아니냐' 라며 놀라기도 했다. #블로그 #번역
- 감독인 츠지타니 코지에게 미요키치 답지 않다는 디렉션을 받았을 때 풀이 죽었는데, 작중의 스케로쿠와 키쿠히코랑 똑같이 야마데라 코이치는 농담을 해주며 기분을 풀어줬지만 이시다 아키라는 두 사람을 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면서 캐릭터랑 판박이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수록 때는 항상 구석 자리에 앉는 이시다를 시선으로 제압해 양쪽 팔짱에 야마데라와 이시다를 끼고 녹음했다고 한다.
- 2020년 5월 12일자 블로그에서 한국 음식 먹방을 보고 짜장라볶이 를 사서 먹고 맛있다고 한국음식을 극찬하였다.# 그리고 2020년 6월 7일자 블로그에서도 닭 소보로를 요리하는 내용을 적었는데 반찬 재료로 한국 김을 언급하며 그 맛을 칭찬하였다.#
- 미즈타니 유코와도 천공전기 슈라토, 우주의 기사 테카맨 블레이드, 폭렬헌터 등 수많은 작품에서 같이 출연했지만 안타깝게도 미즈타니 유코가 2016년 5월 17일에 유방암으로 별세하면서 소중했던 선배를 잃고 말았다.
- 성우로써 한창 전성기였던 1995년에 크레용 신짱과 황금용자 골드런같은 작품에서도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당연히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단역으로 출연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 자신이 맡은 캐릭터들에 대한 자서전도 쓴바 있다. #
7. 출연작
자세한 내용은 하야시바라 메구미/출연작 문서 참고하십시오.8. 디스코그래피
하야시바라 메구미 단독 명의로 발매된 음반만 표기되었습니다. 성우 유닛, 캐릭터 송이나 듀엣 음반 등은 아래에 기록되지 않았습니다.8.1. 싱글
# | 발매일 | 제목 | 최고순위 | 판매량 | 비고 |
― | 1989.05.25 | 約束だよ | 51위 | 13,800장 | 폴리그램 발매[61] |
1 | 1991.03.05 | 虹色のSneaker | 43위 | 11,000장 | |
2 | 1992.06.24 | 夢を抱きしめて | 90위 | 2,550장 | [62] |
3 | 1992.08.05 | 春猫不思議月夜 -おしえてHappiness- | 49위 | 8,740장 | |
4 | 1993.03.24 | OUR GOOD DAY... 僕らのGOOD DAY | 54위 | 7,940장 | |
5 | 1993.11.26 | 夢 Hurry Up | 58위 | 6,980장 | |
6 | 1994.05.25 | Until Strawberry Sherbet | 42위 | 15,320장 | |
7 | 1994.11.03 | Touch and Go!! | 37위 | 16,450장 | |
8 | 1995.07.21 | MIDNIGHT BLUE | 27위 | 71,550장 | |
9 | 1995.12.06 | Going History | 25위 | 62,560장 | |
10 | 1996.04.24 | Give a reason | 9위 | 232,850장 | 성우 최초 오리콘 TOP 10 |
11 | 1996.05.22 | 限りない欲望の中に | 20위 | 69,510장 | |
12 | 1996.07.05 | Just be conscious | 11위 | 175,110장 | |
13 | 1996.10.23 | Successful Mission | 7위 | 139,120장 | |
14 | 1997.04.23 | don’t be discouraged | 4위 | 211,340장 | 역대 성우 초동 1위 (10.6만장) |
15 | 1997.07.02 | Reflection | 7위 | 136,170장 | 역대 성우 초동 2위 (8.0만장) |
16 | 1998.02.24 | Fine colorday | 9위 | 91,720장 | |
17 | 1998.04.24 | ~infinity~∞ | 8위 | 141,510장 | |
18 | 1998.07.03 | raging waves | 8위 | 111,970장 | |
19 | 1998.09.04 | A HOUSE CAT | 6위 | 87,220장 | |
20 | 1998.10.23 | Proof of Myself | 9위 | 91,750장 | |
21 | 1999.05.28 | question at me | 13위 | 72,570장 | [63] |
22 | 1999.12.03 | ブースカ!ブースカ!! | 50위 | 8,400장 | |
23 | 2000.05.24 | サクラサク | 7위 | 104,500장 | |
24 | 2000.10.25 | unsteady | 14위 | 40,880장 | |
25 | 2001.08.29 | Over Soul | 7위 | 110,570장 | 다운로드 10만 인증 |
26 | 2001.12.05 | feel well | 11위 | 38,720장 | |
27 | 2001.12.29 | brave heart | 11위 | 63,800장 | |
28 | 2002.03.27 | Northern lights | 3위 | 93,080장 | 단독명의 최초 오리콘 TOP 3[64] 다운로드 10만 인증 |
29 | 2002.04.24 | Treat or Goblins | 19위 | 30,970장 | |
30 | 2002.09.25 | KOIBUMI | 7위 | 63,300장 | |
31 | 2003.09.26 | 負けないで、負けないで... | 8위 | 25,041장 | |
32 | 2006.07.26 | Meet again | 12위 | 24,393장 | |
33 | 2007.02.07 | A Happy Life | 12위 | 20,108장 | |
34 | 2008.07.23 | Plenty of grit | 6위 | 25,931장 | |
35 | 2009.02.18 | Front breaking | 15위 | 13,782장 | |
36 | 2009.04.22 | 集結の園へ | 7위 | 43,588장 | 성우 최초 50만 다운로드 |
37 | 2010.07.21 | 集結の運命 | 5위 | 21,633장 | 다운로드 10만 인증 |
38 | 2012.09.29 | つばさ | 36위 | 3,940장 | |
39 | 2015.10.21 | サンハーラ ~聖なる力~ | 17위 | 6,088장 | |
40 | 2016.02.03 | 薄ら氷心中 | 13위 | 8,659장 | 시이나 링고 프로듀스 |
41 | 2017.02.22 | 今際の死神 | 31위 | 4,646장 |
8.2. 앨범
8.2.1. 정규 앨범
# | 발매일 | 제목 | 최고순위 | 판매량 | 비고 |
1 | 1991.03.21 | Half and, Half | 43위 | 20,180장 | |
2 | 1992.03.05 | WHATEVER | 18위 | 22,180장 | |
3 | 1992.08.05 | Perfume | 13위 | 27,090장 | |
4 | 1993.08.21 | SHAMROCK | 12위 | 42,510장 | |
5 | 1994.07.02 | SPHERE | 8위 | 70,810장 | 성우 최초 오리콘 TOP 10 |
6 | 1995.03.03 | Enfleurage | 6위 | 97,260장 | |
7 | 1996.11.01 | bertemu | 3위 | 222,860장 | 성우 최초 오리콘 TOP 3 역대 성우 초동 2위 (10.1만장) |
8 | 1997.08.06 | Iravati | 5위 | 277,060장 | 역대 성우 아티스트 최다 판매 앨범 역대 성우 초동 1위 (16.3만장) |
9 | 1999.10.27 | ふわり | 5위 | 117,820장 | |
10 | 2002.06.26 | feel well | 7위 | 101,410장 | |
11 | 2004.01.07 | center color | 10위 | 50,025장 | |
12 | 2007.04.21 | Plain | 18위 | 19,694장 | |
13 | 2010.07.21 | CHOICE | 6위 | 18,926장 | |
14 | 2018.03.30 | Fifty~Fifty | 18위 | -장 |
8.2.2. 베스트 앨범
# | 발매일 | 제목 | 최고순위 | 판매량 | 비고 |
1 | 2000.04.26 | VINTAGE S | 6위 | 141,390장 | |
2 | 2000.06.21 | VINTAGE A | 4위 | 101,910장 | |
3 | 2008.06.25 | スレイヤーズMEGUMIX | 14위 | 35,744장 | 슬레이어즈 OST 모음집 |
4 | 2011.06.11 | VINTAGE White | 8위 | 25,785장 | |
5 | 2015.06.17 | タイムカプセル | 10위 | 11,468장 | 초기 캐릭터송 모음집 |
6 | 2016.02.03 | DUO | 12위 | 6,874장 | 콜라보레이션 베스트 |
7 | 2017.05.03 | with you | 11위 | 8,885장 | 오카자키 리츠코 트리뷰트 앨범 |
8.2.3. 그 외 앨범
# | 발매일 | 제목 | 최고순위 | 판매량 | 비고 |
1 | 1990.02.28 | PULSE | 84위 | 7,670장 | 토시바 EMI 발매 / 미니앨범[65] |
2 | 2007.04.21 | 林原めぐみ たのしいどうよう | 70위 | 3,281장 | 동요 앨범[66] |
3 | 2009.10.04 | 萌えふぁいやー | 한정 판매 / 미니 앨범[67] |
9. 관련 문서
[1] 중화권에서는 林原惠(린웬훼이)로 나온다.[2] 2023년 3월 30일부터 시작했다. 구 블로그는 2017년 5월 18일 글을 마지막으로 삭제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또한 LINE Blog 서비스 콘텐츠가 2023년 3월 30일을 끝으로 종료되어 갱신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폐쇄되었다.[3] Ameba 블로그로 옮기는 과정에서 개설했으며 주로 블로그 포스트 알림 용도로 사용한다.[4] 일본에서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출세작이자 대표 캐릭터는 마신영웅전 와타루 시리즈의 시노비베 히미코다. 마동왕 그랑조트는 와타루의 성공으로 나온 후속작 개념인데 한국에서는 와타루보단 그랑죠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국내 한정으로 히미코보다 구리구리가 인지도가 높다. 그랑조트에서 구리구리와 정반대의 섹시 누님 캐릭터인 에느마도 같이 맡았었다.[5] 모리카와 토시유키, 히야마 노부유키, 야지마 아키코, 미츠이시 코토노, 이시다 아키라, 코야스 타케히토 등 쟁쟁한 동시대의 성우들과 동갑이다.[6] 세이가쿠인 초등학교(聖学院小学校)는 1960년에 개교한 남녀공학 학교이고, 죠시세이가쿠인(女子聖学院)은 1905년에 개교한 에스컬레이터식 학교로 1년 학비가 100만엔이 넘는 아가씨(お嬢様=오죠사마) 학교로 유명하며 어머니도 같은 학교를 졸업한 동문이라고 한다.[7] 일본은 3년제 특수대학 간호학교에서 간호사를 양성해오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서 4년제가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아직까진 3년제가 대부분이다.[8] 이 때 오디션에서 한 말은 전화로 "간호사 언니 바보"[9] 1960년생이니 동기 중 최연장자. 사실 성우보다 토에이 3대 특촬물의 주제가를 모두 부른 것으로 유명하다.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Heartful Station》 16회에서 발언.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보컬 스승을 해주었다고 한다.[10] 졸업 후 집에서 지원을 끊었다고 한다.[11] 1985년 양성소 1년차 때부터 놀이공원 안내방송 아르바이트, 지역방송 버라이어티 내레이션 등 애니메이션 외의 성우일을 했다고 한다.[12] 야마구치 캇페이, 히다카 노리코, 이노우에 키쿠코, 타카야마 미나미, 사쿠마 레이, 코야스 타케히토(다양한 단역을 했다. 위에 거론한 메종일각에서 그녀가 단역들을 오고갔던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세키 토시히코, 야마데라 코이치, 나가이 이치로 등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라인업.[13] 처음에 나오는 키티 목소리가 하야시바라의 목소리. 2000년대 이후 헬로키티 콜라보가 많아지면서 여러가지 약빤 광고들이 많다. 이런거나 요런거 본인曰 : 키티짱은 일을 가리지 않네요[14] 2010년대 기준으로 밑에 있는 출연작들을 보면 출연작이 적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80-90년대 애니메이션들은 기본 4쿨 짧으면 2쿨이었고 1년이 넘는 장기 방영작품도 많았다. 즉, 1쿨이 끝나고 새로운 작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4쿨 작품에 출연하는 도중에 또다시 4쿨 작품에 들어가는 스케줄. 애니메이션 이외에도 장기간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인형 목소리를 담당했고, 내레이션이나 외화 더빙도 있었다.[15] 참고로 1위는 유유백서의 쿠라마,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S의 텐오 하루카 역의 오가타 메구미였다.[16] 이 인기에 약간이라도 비견될만한 성우는 80년대 카미야 아키라 밖에 없다.[17] 2000년대에 들어 국내 팬덤에서도 넘사벽급 인기를 구가한 이시다 아키라의 경우도 9년 동안 TOP 10, 22년 동안 TOP 20에 랭크되어 2017년 39회엔 하야시바라를 제쳐 애니메쥬 성우 부문 최장 랭크를 하게 되었고 이것마저 현재진행형이지만 하야시바라처럼 10년 이상 쭉 1위에 랭크되지는 않았다. 90년대는 정말로 하야시바라가 주름을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8] 또한 성우 그랑프리에 랭크된 횟수로 따지자면 1위 하야시바라 메구미(20회), 2위 이시다 아키라(18회), 3위 카미야 아키라(15회). 랭크 횟수가 이시다 아키라보다 하야시바라가 많은 이유는 2010년대 들어 실시하지 않았던 년도가 있기 때문.[19] 사실 목소리 폭은 넓지만 워낙 특징적인 목소리여서 알아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다만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엄청난 만큼 말투나 느낌은 천지차이.이와 비슷한 유형의 성우로는 사쿠라이 타카히로가 있다.[20] 처음에 나오는 메종일각이 하야시바라의 애니메이션 데뷔작. 동영상에 없는 유명 캐릭터로 바카본, 토도마츠, 왕도라, 주먹밥동자, 헬로 키티 등이 있다.[21] 일반적으로 말하는 무녀(미코)는 세습무이지만 이타코는 한국의 강신무당처럼 신내림을 받는다.[22] 발표에는 회사원이라고 했으나 업계 관계자(각본가)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알려져 있다. 일웹을 조금만 검색해보면 남편(으로 팬들이 확신하는 사람과 추측한 근거들)을 알 수 있다. 라디오나 블로그 등에서 남편을 언급할 때는 짝(相方)이라고 칭한다.[23] 일본 애니메이션이 국제 3대 영화제 경쟁에 출품하는 건 매우 희귀한 일이기에 나름 값진 경력이다. 그나마 자주 초청되는 스튜디오 지브리는 캐스팅이 배우 위주인지라 2024년 시점에서 국제 3대 영화제 경쟁 진출작 주연을 맡은 일본 전문 성우는 칸 영화제에 진출한 공각기동대 이노센스의 다나카 아츠코와 오오츠카 아키오 정도.[24] 덕후들 사이에서 유명한 심야 애니메이션이 아무리 흥행에 성공해도 웬만한 국민 애니메이션의 수익은 뛰어넘지 못하기 때문.[25] 한국판 개구리 중사 케로로처럼 애니 OST를 음원으로 내는 것 같은 방식.[26] 가수 출신이 일회성으로 성우도 한 대표적인 경우로는 린 민메이 역의 이이지마 마리가 있다. 사쿠라이 토모는 1987년에 걸그룹 '레몬 엔젤'로 데뷔하면서 같은 이름의 애니메이션에서 성우도 하면서 주제곡 제1급연예죄를 부르기도 했는데 사쿠라이 토모의 본격적인 성우 활동은 1993년부터이므로 이 역시 가수 출신이 성우도 한 케이스에 가깝다. 카사하라 히로코의 경우 1989년에 가수 데뷔를 하기 이전에 성우로서 활동하고 있었고 1990년에 마법의 엔젤 스위트민트에서 주역과 주제가를 담당했으며 이후에도 가수 및 성우 활동을 지속적으로 했으나, 가수로서의 활동에 비해 성우로서의 활동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은데다 레코드 회사와의 계약관계도 애매하긴 했다.[27] 전 킹 레코드의 전무 이사이자 스튜디오 카라의 프로듀서 (현재는 고령으로 인해 현업에서 은퇴). 쓰러져가던 스타차일드 레이블을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계약하고 《슬레이어즈》,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의 음악을 프로듀서 하면서 현재의 위치로 성장시킨 전설적인 프로듀서. 킹 레코드가 애니메이션/성우 업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만들었고 2016년 은퇴할 때 까지 애니음악 부분 총 책임자였다. 참고로 오오츠키 프로듀서는 1991년 오카자키 리츠코의 노래를 듣고 감동한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그녀의 계약을 요청했을 때 당시 검증이 된 뮤지션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없이 이를 수용하기도 했다. 어찌보면 또 다른 전설을 만든 인물.[28] 1989년 5월 하야시바라 메구미 명의 최초의 싱글 <約束だよ>을 발매하였는데 이는 출연 작품과 연계한 이벤트성 발매로 본격적인 가수활동은 아니었다. 1990년 2월 EMI에서 발매된 미니앨범 《PULSE》는 가수로서의 음반이지만 킹 레코드와 계약이 꼬인 상태로 발매한 것이라 실질적인 데뷔는 1991년으로 여긴다.[29] 이에 대해서는 2018년 정규 앨범 Fifty~fifty 발매 인터뷰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원래 2017년 생애 첫 콘서트를 마친 후 해냈다고 생각하며 다음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스스로의 음악활동을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오카자키 리츠코의 미발표곡 Mint 를 입수하게 돼 새로운 행선지로 나아갈 표를 얻게되어 음악활동을 연장해서 할 수 있었다고 밝혔었다. 그리고 다음 음악활동에 대해서는 mint와 같은 특별한 표가 없는 한 미정이라고 밝혔었다. # (일본어, 번역기를 통해 읽어볼 것). 그리고 이번에 킹 레코드를 퇴사한 것으로 볼 때, 특별한 건이 생기지 않는 한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가수활동을 하지 않거나 극히 줄일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므로 오카자키 리츠코씨, 본인의 미발표곡이 메구상에게 자주 입수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취소선을 쳐놓았지만 사실 하야시바라 메구미가 2010년 정규앨범 CHOICE의 지지부진한 작업에 박차를 가하도록 만든 중요한 계기가 바로 오카자키 리츠코의 미발표곡 雨の小犬 의 발견이었고 2018년 8년만에 정규앨범을 발표하기로 마음먹은 계기 중의 하나 또한 미발표곡 mint의 입수였다. 게다가 하야시바라가 항상 "비록 세상을 떠나긴 했지만 나는 오카자키 리츠코씨의 곡에 굶주려있다." 고 밝혀왔던 것 처럼 다시 그녀의 미발표곡이 하야시바라 메구미에게 입수된다면 그녀의 성향상 다시 적극적으로 가수 활동에 임할 것으로 보인다.[30] 1996.11.01 앨범 『bertemu』 초동 101,280장 & 1997.08.06 앨범 『Iravati』 초동 163,410장[31] 2009년 5월 10만 다운로드 골드 인증/ 2010년 6월 25만 다운로드 플래티넘 인증/ 2015년 1월 50만 다운로드 더블 플래티넘 인증[32] 2015년 오리콘 연간 차트까지 1위 하야시바라 메구미 3,948,170장, 2위 TWO-MIX 3,708,957장, 3위 미즈키 나나 2,550,333장[33] Tokyo Boogie Night 1300회 기념 공개녹음도 이 곳에서 했다. 그것도 같은 날에... 즉, 6월 11일 낮 타임에는 공개녹음을 하고 같은 날 오후타임에는 라이브 공연을 한 것.[34] 참고로 이 생애 첫 라이브 공연이란 타이틀이 왜 대단하냐면 2017년 3월 하야시바라의 첫 라이브 공연이 발표됐을 때 일본 언론에서는 이 라이브 콘서트를 비틀즈가 일본 라이브를 최초로 발표했을 때와 같은 급의 충격 이라고 평가했을 정도였다.#[35] 당시의 재밌는 에피소드 중 하나로 당시 하야시바라는 저 곡을 부르며 중간에 가사를 놓치는 실수를 저질렀었다. 그런데 그녀는 2017년 5월 5일 호리에 유이가 진행하는 호리에 유이의 천사의 알 762회 오카자키 리츠코 트리뷰트 앨범 발매 특집 방송에 출연하여 사쿠라사쿠 관련 에피소드를 말하는 과정에서 당시의 오카자키가 사쿠라사쿠를 녹음하고 "아! 이 노래 어려웠어~"라고 하야시바라에게 이야기 했는데 하야시바라는 "자기가 만들었잖아! 이 노래가 뭐가 어려워." 라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그래도 하야시바라 본인만큼은 나름 그 노래를 자신있게 부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모양. 그런데 그 발언 이후 처음으로 부른 그 곡에서 바로 실수를 한 셈.[36] 실제로는 이노우에와 《란마 1/2》에 공동 출연해서 DoCo라는 성우 유닛으로 활동했고 약 30년간 이런저런 작품에서 쌓은 친분이 있는 사이로, 라디오에서 보여준 모습은 설정이다. 애초에 하야시바라가 아닌 무사시가 퍼스널리티인 방송[37] 참고로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이노우에 키쿠코 둘 다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비공식(?)적인 오카자키 리츠코 사단이라는 점. 두 성우 다 생전 오카자키와 가까이 지냈고 가수로서도 많은 음악작업을 그녀와 같이 했다. 그래서 이노우에 키쿠코 또한 하야시바라 메구미 처럼 대놓고는 아니지만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대단하다. 심지어 이노우에 키쿠코는 자신의 콘서트에서 오카자키 리츠코가 작곡한 곡을 불렀을 때, 울면서 가창했던 적도 있을 정도.[38] 우리나라로 치면 (식료품)장관이라는 뜻.[39] 90년대 《시끌별 녀석들》 팬덤과 《란마 1/2》 팬덤은 사이가 나빴다. 자세한 사항은 각 작품들이나 타카하시 루미코 항목을 참조.[40]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Heartful Station 1226회(최종회). 인터넷의 악플들이나 터무니없는 비방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말함.[41] 타카야마 미나미, 이노우에 키쿠코, 카나이 미카, 타카기 와타루, 오가타 메구미, 야마구치 유리코, 야스이 쿠니히코처럼 연배가 비슷하거나 높은 성우 대부분이 그녀보다 늦게 데뷔했음으로 엄연히 후배다. 80-90년대에는 20대 초중반에 데뷔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2000년대 들어 데뷔연령이 급격히 낮아졌다.[42] 정확히 말하면 와타나베 쿠미코는 85년 양성소 동기지만 데뷔는 와타나베가 85년, 하야시바라가 86년이다. 사사키 노조무는 86년 데뷔 동기지만 양성소는 햐야시바라는 1기생(85년)이고, 사사키 노조무는 2기생(86년)이다. 히라마츠와는 다른 양성소 출신이지만 《메종일각》에서 같이 데뷔한 동기.[43] 다만 미츠이시 코토노는 술에 취할 경우 간혹 본인에게 튀는 행동을 하였다. 야지마 아키코는 이렇다할 논란이 없이 무난한 사이.[44] 이때 속으로 한 생각이 '뭐지 고백인가!' (...). 물론 농담이지만.[45] 하야시바라는 해주는 말들을 듣고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지만 이 사람은 당첨되면 말 안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고(...).[46] 당시 여섯 쌍둥이 중 셋째인 마츠노 쵸로마츠 역을 맡았다.[47] 그래서 해당 노래 겨울이 없는 캘린더는 현재의 하야시바라는 물론이고 생전의 오카자키 리츠코 또한 자신이 작사 및 작곡을 한 음악이 아니었음에도 남다른 마음이었다.[48] 그러나 하야시바라 메구미는 그렇게나 노력해서 오카자키 리츠코를 영입했으나 바로 그녀와 함께 음악활동을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 밍키모모의 음악감독이었던 하세가와 토모키는 난데없이 밍키모모의 음악에 참가하게 된 오카자키를 탐탁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1쿨에는 하야시바라와는 달리 제한적으로만 참가를 시키는데 오카자키는 그 상황에서 1기 OP 꿈을 찾아서 (작사 : 森野 律 - 모리노 리츠 명의)와 ED 다바다바 Falling Love (작곡 : 오카자키 리츠코 명의)를 히트시키게 된다. 그리고 작업을 하며 그녀의 능력과 인성을 파악하게 된 음악감독과 1쿨 OP와 ED를 부른 여가수는 큰 감화를 받게되고 이후에 오카자키 리츠코의 중요한 관계의 조력자 및 절친이 된다. 참고로 해당 작품을 통해 만나 이후 음악적, 개인적으로 떨어질 수 없는 절친이 된 해당 여가수의 이름은 바로 코모리 마나미였다. 그리고 2쿨에서는 오히려 1쿨에서 오카자키에게 냉담했던 음악감독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인해 2쿨 OP 꿈을 껴안고와 ED 좋아하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밍키 스마일!을 부르며 드디어 오카자키 리츠코와 함께 일을 하게된다. 그리고 처음에 오카자키를 잠시 냉담하게 대했던 음악감독 하세가와 토모키는 이후 오카자키 리츠코 최고의 음악적 동지로써 맹활약을 하게된다. 그야말로 오카자키 리츠코의 언급대로 그녀의 러블리한 마스코트.[49] 하야시바라와 함께 성우 아티스트 중에서 오카자키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었던 호리에 유이 또한 그녀가 사망한 이후 큰 충격을 받았었다. 호리에 또한 그녀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아 오카자키 리츠코의 사망에 대한 언론의 취재에 노코멘트로 일관했고 이로 인해 안팎으로 논란을 낳기도 했다.[50] 어떻게 보면 이것도 대단한 일인데 호리에 또한 오카자키 리츠코가 만들어 준 노래를 부르며 그녀에 대한 존경심과 애정이 극에 달해있던 상황에서 자신이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의 곡을 부를 기회를 대선배에게 양보한 것이다. 물론 애니메이션 최종화에서 그녀도 메인 출연진들과 함께 OP A Happy life를 부르긴 했다.[51] 해당곡은 하야시바라 메구미 12집 Plain에 수록된 10번 트랙 旋律이다. 이 곡이 수록됐을 당시 오랜만에 그녀가 직접 작사·작곡한 음악이라는 점 때문에 화제가 되었으나 당시에는 해당 노래에 대해 코멘트를 피하고 한참이 지난 후 사실 해당 곡은 오카자키 리츠코를 추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실 노래의 면면을 조금만 봐도 그녀를 추모하는 곡임을 알 수 있는데 일단 가사 내용 일부는 그녀가 2006년 기고했던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추억을 담은 글에서 가져온 것이다. 또한 旋律의 편곡자는 하야시바라의 음악에는 거의 참여가 없었으나 오카자키의 음악에는 대부분의 곡들을 편곡했던 일생의 음악적 동지이자 마법의 프린세스 밍키모모 꿈을 껴안고 등의 음악감독이었던 하세가와 토모키였으며, 코러스는 meg rock. 즉, 오카자키 리츠코가 리더였던 유닛 멜로큐어의 멤버 히나타 메구미였다. 그야말로 바로 밝히지만 않았었지 해당 곡이 오카자키와 관련된 곡이라는 티를 팍팍낸 셈.[52] 하야시바라가 진행하는 라디오인 TBN에서도 틈만나면 오카자키의 노래를 선곡해서 방송한다. 2019년 5월 5일 TBN 에서는 후반부를 아예 오카자키 리츠코 기일 15주년 추모방송으로 진행했다. 게다가 2023년 5월 초 TBN에서는 오카자키 리츠코 트리뷰트 앨범 with you에서 자신이 부른 靑空을 선곡하며 오카자키를 추모했고 블로그에도 이에 대한 소감을 남길 정도로 그녀에 대해서 누구보다 진심을 보이고 있다.#[53] 이는 멜로큐어의 멤버 히나타 메구미의 공통된 목표이기도 하다. 다만 이 두 명이 가지고 있는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공동 목표의 차이점은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경우, 솔로 뮤지션으로 활동했을 때의 오카자키의 음악이나 히나타 메구미의 경우, 멜로큐어 멤버로서 활동했을 때의 음악이다.[54] 오카자키 리츠코의 mint가 하야시바라의 손에 들어온 계기는 더 극적인데 원래 그 데모 테이프는 일본의 인기 듀오였던 angela KATSU의 음악적 스승 중 하나인 하스누마 겐스케가 가지고 있었다. 원래 이 곡은 오카자키 리츠코의 앨범에 실으려 데모 버전까지 만들었다 싣지 못하게 된 음악인데 이를 아까워했던 하스누마 겐스케는 이 데모 테이프를 한 번 활용해 보라는 의미로 KATSU에게 전달하고 그는 이 테이프를 보관하고 있던 중이었다. 이후 그는 하야시바라의 초대로 하야시바라 메구미 생애 첫 1st 콘서트 - 당신을 만나러와서 를 관람하게 되고 그 공연을 보며 하야시바라의 오카자키 리츠코에 대한 마음을 파악한 KATSU는 이후 오카자키 리츠코의 미발표곡 mint가 수록되어 있는 데모테이프를 하야시바라에게 전해주게 됨으로써 돌고 돌아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이 곡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참고로 하야시바라에게 KATSU 가 이 테이프를 건네주며 한 말이 걸작인데 이 음악은 애초에 내가 아닌 하야시바라 메구미에게 가야하는 노래였다.[55] 참고로 해당 글의 내용 중 일부가 이후 2007년에 발표한 12집 Plain의 하야시바라 메구미 작사·작곡인 노래 旋律에 그대로 차용된다. 번역가사는 여기서 확인 가능.[56] 우정신과 겹치는 배역으로는 캐널 볼피드, 무사시(로사), 하이바라 아이(홍장미), 아야나미 레이가 있다.[57] 음색은 최덕희가 제일 비슷하지만, 겹치는 배역이 가장 많은 건 5개가 겹치는 정미숙이다. 경력상으로 1~2년 앞선 정미숙은 리나 인버스를 연기할 때 옵티컬을 들으면서 하야시바라를 연기가 대단한 성우라고 칭찬한 적이 있다.[58] 98년 결혼으로 성이 바뀌어서 98년 이후 납세액은 오직 추정일 뿐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성우의 수입이 정확히 밝혀진 것은 1997년 하야시바라가 유일하고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각종 숫자들은 모두 근거 없는 자료들이다.[59] 夕食ばんざい. 1985년 4월 1일부터 2000년 3월 31일까지 후지테레비에서 매일 아침 11시에 방송했던 요리방송으로 저녁식사에 올릴 만한 게스트의 자작메뉴를 선보이는 컨셉이었다.[60] 《뉴타입》에서 연재한 <하야시바라 메구미의 빰빠라 생활> 2007년 4월자 칼럼에서. 혼인신고는 1998년 3월 30일 본인 생일에 했고 결혼식은 6월에 했다. 한 케이코는 베테랑 성우인 동시에 점성술사로도 유명하다.[61] NHK 아동용 애니메이션 《あひるのクワック》의 주제곡으로 하야시바라 메구미 명의로 발매된 최초의 음반이지만 캐릭터송과 같은 일회성 싱글로 디스코그라피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89년 발매당시는 순위권 밖으로 판매량이 집계되지 않았으나 97년 재발매되어 차트에 진입했다. (2002년 이전 오리콘차트는 100위 이내만 집계했다.)[62] 요술공주 밍키(1991)의 두번째 오프닝, 엔딩 테마로 사용되었다.[63] 츠부라야 프로덕션에서 제작하고 아사히 테레비에서 방영한 특촬 드라마인 천년왕국 삼총사 바니 나이츠의 주제곡.[64] 성우 아티스트 최초는 1998년 TWO-MIX (보컬 : 타카야마 미나미)의 「TRUTH?? A Great Detective of Love??」가 최초. 「Northern lights」는 단독명의로 최초이자 역대 2번째 TOP 3 진입.[65] 당시 킹 레코드와 계약을 맺고 데뷔 싱글을 준비 중이었는데, 작곡가 카라시마 미도리와 친해져서 같이 음반을 내자는 제안을 받아들여 EMI에서 음반을 냈다. 이를 알게 된 킹 레코드는 노발대발했고 결국 킹 레코드에서 데뷔는 1년 미뤄지고 PULSE는 하야시바라 공식 디스코그래피에서 제외된다. 처음 EMI에서 발매되었을 때 최고 순위 92위, 판매량 2000여장을 기록했지만, 1994년 킹 레코드에서 재발매되어 최고 순위 82위, 판매량 5000여장을 기록했다.[66] 3장으로 구성. 1번 디스크에는 놀이 동요가, 2번 디스크에는 잘 때 듣는 동요가, 3번 디스크에는 기념일 및 절기에 관한 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동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앨범 표지는 오랜 기간 키티 성우를 맡아온 하야시바라를 위해 산리오가 키티와 다니엘 캐릭터를 무료로 사용하게 해주었다. 자켓 사진[67] 라디오 《Tokyo Boogie Night》 900회 기념으로 제작된 미니 앨범. 라디오 공개 녹음 현장과 인터넷 주문으로만 판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