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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비전 그룹 프로덕션 | ||
아트비전 | 아임 엔터프라이즈 | VIMS |
미오 크리에이션 | 크레이지 박스 | 어라이즈 프로젝트 |
일본 내레이션 연기연구소 (양성소) |
<colcolor=#FFFFFF> 아트비전 ARTSVISION | |
<colbgcolor=#0e2d7f> 회사명 | 주식회사 아트비전 株式会社アーツビジョン ARTSVISION Incorporated |
약칭 | 아츠(アーツ) |
창립일 | 1984년 6월 1일 |
본사 | 도쿄도 시부야구 요요기 1-14-3 마츠다 빌딩 3층 |
업종 | 성우 · 배우 매니지먼트 및 육성 |
링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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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트비전 그룹 프로덕션
아트비전 그룹 프로덕션의 계열사 | |||
회사명 | 설립년도 | 비고 | 사이트 |
아트비전 | 1984년 | 링크 | |
일본 내레이션 연기연구소 | 1985년 | 부속 성우 양성소[1] | 링크 |
아임 엔터프라이즈 | 1997년 | 링크 | |
미오 크리에이션 | 1998년 | 간사이의 성우 기획사 | 링크 |
크레이지 박스 | 2000년 | 링크 | |
VIMS | 2007년 | 아임 엔터프라이즈의 자회사 | 링크 |
어라이즈 프로젝트 | 2015년 | 아임 엔터프라이즈의 자회사 | 링크 |
일본의 성우 기획사 그룹. 1990년대까지 아트비전이라 하면 아래 항목인 성우 기획사 아트비전을 의미했으나, 2000년대 이후 계열사가 많아지고 규모가 커지면서 아트비전의 자회사들을 총칭해서 아트비전 그룹이라고 부른다. 모체이자 그룹의 일부인 아트비전도 아트비전이고 그룹 이름도 아트비전이라서 혼용해서 쓰일 경우 매우 헷갈린다.
도쿄배우생활협동조합의 매니저였던 마츠다 사쿠미(松田咲實)가 담당 성우들을 데리고 독립해 1984년 6월 1일에 아트비전을 설립한 것이 시초. 설립 당시에는 약소 신생 기획사들 중 하나였으나, 80년대 후반부터 하야시바라 메구미, 사사키 노조무, 미츠이시 코토노 등을 발굴하면서 급성장, 제3차 성우붐의 중심에 있었으며 90년대 일본 성우계를 주름잡았다.
2000년대 이후 계열사들을 포함한 규모로 볼 때 업계 최고(最故)인 아오니 프로덕션과 맞먹을 정도로 일본 굴지의 성우 기획사들 중 하나. 특히 하야시바라 메구미와 함께 성우의 음반활동, 라디오 활동을 개척하고, 이후 시이나 헤키루, 호리에 유이, 타무라 유카리를 연이어 성공시키며 쌓은 성우 아티스트 분야의 노하우는 업계 최고라고 평가 받는다.
2014년 성우 기획사 별 심야 애니메이션 출연 횟수 랭킹에서 1위 2851회로 2위 아오니 프로덕션(760회)을 약 4배 차이로 압도할 정도로 애니메이션 분야에 강세지만, 내레이션, 외화 더빙에서는 상대적으로 약세이다. 회사의 역사가 짧은 점도 있고, 2000년 전후로 아트비전의 중흥을 이끌었던 베테랑 성우들이 차례로 퇴사한 것이 크다.[2]
창립자이자 아트비전 그룹 회장 겸 아트비전, 아임 엔터프라이즈의 사장이었던 마츠다 사쿠미가 2007년에 16세 성우 지망생에게 성관계를 요구했다는 아트비전 사건이 일어났다. 마츠다는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모든 직책을 내려 놓았다. 하지만 아들 마츠다 요이치(松田陽一)가 아임 엔터프라이즈 사장직에 있는 등 족벌 경영 자체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그 사건을 계기로 성우들의 계열사간 이동은 크게 일어났다.
요요기에 그룹 소유의 마츠다 빌딩[3]이 있으며, 오사카에 위치한 미오 크리에이션을 제외한 모든 계열사가 들어와 있다. (1층 일본 내레이션 연기연구소와 어라이즈 프로젝트, 2층 아임 엔터프라이즈와 VIMS, 3층 크레이지 박스와 아트비전.) 아트비전 그룹이라는 말 대신에 마츠다 빌딩 그룹 또는 마츠다 그룹이라고도 불린다.
2. 성우 기획사 아트비전
아트비전 그룹의 모체가 되는 기획사. 1984년 6월 배협의 매니저 마츠다 사쿠미가 설립했으며 초기에는 배협 출신 성우들이 많았다. 부속 양성소를 통해 레전드급 성우들을 연이어 배출하며 1990년대에 급성장을 했고, 2000년대 이후에도 그룹 계열사들 중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그러나 카지 유우키, 쿠와타니 나츠코, 타무라 유카리, 호리에 유이 같은 몇몇 인기 성우들을 아임과 VIMS로 이동시켰고, 일본 내레이션 연기연구소 출신 유망주 상당수를 아임과 VIMS로 보내면서 예전보다 규모가 줄어들었다.
설립 초기에는 부속 양성소 니치나레 졸업생은 물론 카츠다 성우학원 졸업생들[4]도 많이 있었으나, 이후 신인 성우들은 거의 다 니치나레 출신이다.
2.1. 소속 성우
2.1.1. 남성
- 김광현[5]
- 나가노 유스케
- 나가미네 아라타
- 나가사코 타카시
- 나카무라 신이치
- 나카지마 카즈나리
- 노나카 히데아키
- 니시무라 토모미치
- 니시지마 요이치
- 마에노 토모아키
- 마츠다 켄이치로
- 마츠모토 요시키
- 미야나가 케이타
- 미키모토 유지
- 모치즈키 켄이치
- 묘진 아오토
- 무라사메 류토
- 본코바라 코우
- 사사누마 아키라
- 사사다 타카유키
- 사이젠 타다히사
- 사와키 이쿠야
- 사토 하루오
- 시가 카츠야
- 스미야 테츠에이
- 시미즈 토시히코
- 시바노 타카히로
- 아사쿠라 에이스케
- 아즈마 류이치
- 야마시타 다이키
- 야스다 리쿠야
- 야와타 료
- 엔도 아츠시
- 오다 히사후미
- 오시다 히로유키
- 오오니시 코스케
- 오오니시 타케하루
- 오오쿠보 토시히로
- 와타나베 타쿠미
- 요시오카 링고
- 우메하라 유이치로
- 이노우에 사토루
- 이노우에 쥰(성우)
- 이세 후미히데
- 이와사키 료
- 츠치야 토시히데
- 치바 잇신
- 카네마사 이쿠토
- 카가미 리키
- 코무라 쇼
- 코미야 하야토
- 코쿠분 마사토
- 키타지마 준지
- 타니구치 아츠시
- 타무라 켄스케
- 타카기 와타루
- 타카나시 켄고
- 타카시나 토시츠구
- 타케다 코지
- 타케우치 에이지
- 타케우치 켄
- 토리우미 코스케
- 토비타 노부오
- 토베 코우지
- 하라다 마사오
- 하마노 다이키
- 하마다 요헤이
- 하세베 코이치
- 하야시 다이치
- 하즈미 준
- 히로세 유우야
- 호소이 오사무
- 호시 소이치로
- 호시노 미츠아키
- 후지부치 마사유키
- 후쿠시마 준
- 히야마 노부유키
2.1.2. 여성
- 나라하시 미키
- 나루세 마미
- 나카무라 에리코
- 나카무라 키미코
- 나카타 사나에
- 노구치 루리코
- 누마쿠라 마나미
- 닛타 히요리
- 데구치 카요
- 마루타 마리
- 마키노 아마네
- 마타요시 아이
- 마츠다 사츠미
- 마츠다 시오리
- 마츠시타 미유키
- 마츠쿠보 이호
- 메이(성우)
- 미나모리 미즈키
- 미우라 마사코
- 미야우치 이로하
- 미즈오치 유키코
- 미즈하시 카오리
- 모리 나츠키
- 몬덴 유키코
- 사노 나오미
- 사카모토 치카
- 사카키바라 노조미
- 사쿠라기 유우
- 사쿠라바 아리사
- 쇼카
- 스가와라 사치코
- 스도 사오리
- 스베 와카나
- 스와 아야카
- 스즈시로 사유미
- 스즈키 레이코
- 시노미야 후코
- 시노하라 아케미
- 시라마츠 와카나
- 시모다 아사미
- 아마노 유리
- 아사쿠라 아즈미
- 아리마 미즈카
- 아이다 사야카
- 야마시타 아야카
- 야마자키 하루카
- 오오니시 노조미
- 오오타 이츠키
- 오카다 사치에
- 오카모토 요시코
- 요네마루 아유미
- 요리타 나츠
- 요시다 아사미
- 요시즈미 코즈에
- 우에하라 미유키
- 우에하라 유키노
- 유키나리 토아
- 이누이 나츠네
- 이료 아이라
- 이마이즈미 리오나
- 이시이 유카리
- 이시즈카 사요리
- 잇시키 마유
- 카고세 치에코
- 카노 마리
- 카노 치아키
- 카와세 마키
- 코모토 아키코
- 코이즈미 세나
- 코이케 이즈미
- 코이케 아키코
- 쿠보타 히카리
- 키노 치카
- 키시모토 에마
- 타고토 나츠미
- 타니구치 유나
- 타마미야 유키
- 타무라 세이코
- 타치바나 히나
- 타치바나 히카리
- 타카하시 메구루
- 타카하시 사오리
- 타카하시 카오리
- 타카모리 요시노
- 타카하시 카오리
- 타키모토 후지코
- 테즈카 치하루
- 하가이 마리
- 하나사키 키요미
- 하라 유미
- 하루노 안즈
- 하루미 히나노
- 하루카 란
- 하세가와 아키코
- 하시모토 유이
- 하야미즈 리사
- 하야세 유키미
- 하야시 리카
- 하타나카 마리에
- 한바 토모에
- 후지와라 나츠미
- 후지이 미나미
- 후지타 아야
- 후지타 요코
- 후지타 사키
- 히로세 세이카
- 히키다리 료코
- 히키타 유미
- 히토스기 카스미
- Lynn
3. 관련 문서
- 사건 사고
[1] 1985년 설립된 성우 양성소 「스튜디오 201」을 전신으로 한다.[2] 전성기 시절 활약한 수많은 성우들 중 남아있는 성우들이 사카모토 치카, 타카기 와타루, 히야마 노부유키 정도다.[3] 창립자 마츠다 사쿠미의 이름을 딴 빌딩이다.[4] 오카모토 마야, 미나미 오미, 모리카와 토시유키, 미츠이시 코토노, 타카기 와타루 등[5] 金洸玄. 출신지가 대한민국인 성우로, 샘플보이스의 한국어 내레이션의 받침 발음이 아주 조금 어눌한 것과 칸사이벤 구사를 하는 것을 보면 어렸을 때 일본으로 이민해서 자란 뉴커머로 추정된다.[6] 2011년 모리카와 토시유키가 설립.[7] 2012년 스즈무라 켄이치가 아트비전 소속 매니저와 공동 설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