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22:30:07

야마구치 오토야

<colbgcolor=#000><colcolor=#fff> 야마구치 오토야
[ruby(山,ruby=やま)][ruby(口,ruby=ぐち)][ruby(二,ruby=おと)][ruby(矢,ruby=や)]| Otoya Yamaguchi
파일:external/img.chess443.net/2014052000004_2.jpg
출생 1943년 2월 22일
일본 제국 도쿄부 다이토구
사망 1960년 11월 2일 (향년 17세)
일본 도쿄도 네리마구
국적
[[일본 제국|]][[틀:국기|]][[틀:국기|]]

[[일본|]][[틀:국기|]][[틀:국기|]]
가족 아버지 야마구치 신페이
소속 대일본애국당
전아시아반공연맹
묘소 아오야마레이엔(青山霊園)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의 인물. 도쿄 찌르기 사건의 범인으로 유명하다.

2. 생애

1943년 도쿄에서 일본군 육군 장교였던 아버지와 평범한 주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2남 중 둘째로 출생했다. 형은 연년생으로 동생처럼 빠른 1942년생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패전 이후 육상자위대에서 근무했다.

집안 환경이 환경인 데다 어릴 때부터 신문을 즐겨 읽으며 정치 소식에 밝았던 그는 1959년에 16세의 나이로 대일본애국당[1]아카오 빈[2](1899~1990)의 연설을 듣고 감회받아 대일본애국당에 입당해서 청년 본부 위원이 되었다.
야마구치 오토야의 대일본애국당 활동 당시 모습[3]
이후 좌익 정치인의 연설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는가 하면 아카오 빈의 연설을 비난하는 사람을 두들겨 패는 일종의 자발적 정치깡패 노릇을 하게 되었지만 입당한 지 반 년 만에 대일본애국당을 탈당했는데 그 이유는 "더 과격한 활동을 하게 될 텐데, 이대로는 아카오 빈 선생과 당에 폐가 될 것 같아서"였다.

1960년 7월 1일 동지들과 함께 전아시아반공연맹을 결성했다.[4]

2.1. 도쿄 찌르기 사건

파일:otoya 2.jpg 파일:attachment/uploadfile/Tokyostabbing.jpg
범행 당시 복장 아사누마를 습격하는 순간

1960년 10월 4일 그는 집에서 우연히 와키자시를 찾아냈으며 즉시 메이지 신궁을 참배한 후 고바야시 다케시 일본 교원 노동조합 위원장과 노사카 산조 일본공산당 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대학의 학생위원인데 가르침을 받고 싶다"며 면담을 요청했지만 고바야시 다케시는 이사갔고 노사카 산조는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실패했다.

10월 12일 가쿠란 교복과 카고 재킷을 입고 뿔테안경을 낀 채 와키자시를 챙겨 아사누마 이네지로의 연설 현장으로 향한 후 문제의 사건을 일으켰다.
汝、浅沼稲次郎は日本赤化を図っている。自分は、汝個人に恨みは無いが、社会党の指導的立場にいる者としての責任と、訪中に際しての暴言と、国会乱入の直接の扇動者としての責任からして、汝を許して置く事は出来ない。茲に於て我、汝に対し天誅を下す。 皇紀二千六百二十年十月十二日 山口二矢。
아사누마 이네지로, 당신은 일본의 적화를 도모하고 있다. 나는 당신 개인에게 대한 원한은 없으나, 사회당의 지도적 입장에 있는 자로서의 책임과 방중을 즈음한 폭언과 국회 난입의 직접적인 선동자로서의 책임을 물어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 이에 나는 당신에게 천벌을 내린다. 황기 2620년(1960년) 10월 12일 야마구치 오토야.

파일:Otoya_Yamaguchi_Cell_Writings.jpg

사건 이후 그해 11월 2일 도쿄 소년감별소 동쪽 건물 2층 2호실에서 치약으로 七生報国、 天皇陛下万歲(칠생보국[5], 천황폐하만세)라는 내용의 유서사세구를 남긴 후 목을 매달아 자살했다. 향년 17세였다. 하지만 재판을 받기 전에 범인이 자살한 것 때문에 죄수에 대한 관리 실패가 드러나 이에 대한 여론의 비난이 컸고 범인을 관리하던 교도관들도 모두 징계받았다.

야마구치 오토야 공술 조서가 책으로 공개됐다.[6]

참고로 소설가 사와키 고타로에 따르면 자민당 실력자인 고노 이치로[7]와 그 외 다른 정치인도 그의 테러 대상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태평양 전쟁에 대해 비판적인 언설을 한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황족도 노리고 있었다고 한다. 한편 좌익 세력을 아니꼽게 보고 있던 우익들은 천벌을 받았다며 그의 행동을 찬양하면서 성대한 장례식을 치르는 등 선전용으로 잘 이용해 먹었으며 사건 이후에도 그가 세상을 떠난 11월 2일에는 우익 단체에 의해 그가 안장되어 있는 아오야마레이엔(青山霊園)에서 추모식이 열리는데 추모제의 이름은 山口二矢烈士墓前祭[8]로 구글에 검색하면 이미지가 많이 나온다. 사족으로 그가 청년본부원으로 있었던 대일본애국당 당총본부의 제단에는 그의 데스마스크가 모셔져 있다고 한다.

3. 여담

아버지 야마구치 신페이는 육상자위대 소속 간부 자위관(장교)로 1959년에 1등육좌(대령)였는데 아들이 저지른 사건으로 인해 사건 발생 3일 후인 10월 15일에 자위대에서 부담을 느껴 전역해야 했다.[9]

[1] 전쟁 전부터 활동하던 반공주의자들이 모여 만든 정당. 일본은 제2차 세계 대전 이전부터 사실상 국가적으로 반공을 선언했다.[2] 과거에는 사회주의자였으나 고등경찰에 끌려가서 한 번 조사받은 후 "천황제 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반공, 반소련주의자였기 때문에 태평양 전쟁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3] 맨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두번째가 야마구치 오토야이다.[4] 이 단체는 훗날 방공정신대라는 정신 나간 이름의 단체로 발전했는데 이들은 스스로 "임협우익"을 자처하며 행동대(를 자처하는 깡패)로 활동했다. 원래 1955년에 결성된 방공신문사의 "방공신문사 청년봉사단"으로 결성되었으나 1960년의 안보투쟁 이후 코다마 요시오와 점점 더 친하게 지내면서 과격화되었으며 방공신문사에서 파문당한 잔여 멤버들이 전아시아반공연맹과 합세하여 방공정신대가 되었다. 트럭에 확성기를 올려 놓고 거리에서 시끄럽게 연설하는 "가선 스타일"의 원조라고 자처하고 있으며 현재 주주총회의 총회꾼 짓이나 어린 폭주족들을 꼬드겨서 회원으로 가입시키는 일로 유명하다고 한다.[5] "일곱 번 거듭 태어나도 역적을 주살해 나라에 보답하겠다"는 의미다. 남북조시대의 남조 측 근황파 무장 쿠스노키 마사시게아시카가 다카우지에게 패해 자결하면서 남긴 사세구로 알려져 있는데 왜 하필 일곱 번인가 하면 불교에서 이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 가장 많은 횟수라고 한다. 의미가 의미인 만큼 일본 제국 시절 군국주의 교육에도 쓰였고 카미카제 대원들의 하치마키(머리띠)에도 쓰였다.[6] 야마구치 오토야의 일생과 야마구치 오토야의 아버지의 글 등이 있다.[7] 고노 요헤이의 아버지이자 고노 다로의 할아버지[8] 의미를 해석하면 야마구치 오토야 열사의 묘 앞에서 하는 제사란 뜻이다.[9] 과거 일본군의 만행 때문에 그 교훈을 삼아 자위대는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위대의 복무의 선서(복무신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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