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7 19:33:41

세레체 카마

파일:보츠와나 대통령기.jpg
보츠와나 공화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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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5aadb,#fff><colcolor=#fff,#000000> 세레체 카마
Sir Seretse Khama
파일:2458_6563_3432.jpg
출생 1921년 7월 1일
베추아날란드(현 보츠와나) 세로웨
사망 1980년 7월 13일 (향년 59세)
보츠와나 가보로네
국적
[[보츠와나|]][[틀:국기|]][[틀:국기|]]
임기 기간 초대 대통령 (1966년 9월 30일~1980년 7월 13일)
정당 [[보츠와나 민주당|
보츠와나 민주당
]]

1. 개요2. 생애3. 기타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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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보츠와나의 초대 대통령.

2. 생애

현 보츠와나 지역의 부족장 중 한명이었던 카마 3세의 손자였다.

194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포트해어 대학교에서 문학사를 받았으며 이후 옥스퍼드 대학교와 이너 템플로 유학을 떠났다.

그러다 도중에 영국 여성 루스 윌리엄스와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했는데, 인종차별이 횡행하던 당시 사회 분위기 때문에 큰 반발을 받고[1] 추방당했지만, 반발 세력의 항의로 일반인 자격으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카마는 1962년에 보츠와나 민주당을 설립했고 1965년에는 수상이 되었으며 이듬해 보츠와나가 독립하면서 보츠나와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2]

이후 여러 위기에도 불구하고 무난하게 훌륭히 나라를 다스리면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하에 4선 모두 연임. 하지만 1980년 췌장암으로 사망한다. 2대대통령은 그의 임기동안 부통령자리에서 지탱해줬던 퀘트 마시레가 뒤를 이었으며, 그렇게 세워진 보츠와나는 아프리카에서 최고수준으로 안정적인 나라가 된다.

자식 농사도 훌륭히 지었는지 2008년에 그의 맏 아들인 이안 카마는 군인으로서 복무하다가 1989년부터 1998년까지 보츠와나군 총사령관을 역임하기도 했고 예편후 곧바로 2008년까지 10년간 부통령을 역임한 끝에 보츠와나 4대 대통령으로 취임, 무난히 연임한 뒤 2018년에 퇴임했다.

3. 기타

파일:7614_5957_1256.jpg
(아내와 아들들과 함께 찍은 사진)

2016년 제작된 영화 'A United Kingdom(국내 개봉명은 오직 사랑뿐)'의 모티브가 되었다.

보츠와나 50풀라 지폐의 인물이다.
파일:attachment/보츠와나 풀라/botswanapula03.jpg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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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장 바로 옆나라이자 남 아프리카를 자기 나와바리로 여기는 강대국이 아파르트헤이트로 악명높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이었고 독립하기 전의 츠와나는 그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영향력이 매우 거대했다. 거기에 더해 일부 백인들의 흑인차별로 인한 반발만 있었던게 아니라, 국내 일부 흑인들이 백인(이자 평민인) 여성을 왕비로 인정할 수 없다며 백인차별까지 해버렸다.[2] 그의 아내 역시 영부인이 되었는데, 이는 아프리카 최초의 백인 영부인의 사례로 여겨진다. 물론 아파르트헤이트치하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있기는 하지만 보츠와나는 남아공과 달리 백인들이 많지 않은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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