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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하산 2세 (الحسن الثاني / Hassan II) |
출생 | 1929년 7월 9일 |
출생지 | 프랑스령 모로코 라바트[1] |
사망 | 1999년 7월 23일 (향년 70세) 모로코 라바트 |
학력 | 모로코 왕립 아카데미 보르도 대학교 (법학/학사) |
재위 기간 | 1961년 2월 26일 ~ 1999년 7월 23일 |
아버지 | 모하메드 5세 |
어머니 | 랄라 아블라 빈트 타하르 |
배우자 | 랄라 라티파[2] 랄라 파티마[3] |
자녀 | 모하메드 6세 외 2남 3녀[4] |
종교 | 이슬람 수니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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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하산 2세는 모로코 왕국의 2대 국왕이다. 아버지 모하메드 5세가 프랑스 당국에 의해 코르시카, 마다가스카르에 유배되었을 때도 동행하였고, 1961년 부왕이 승하하자 즉위하였다.
2. 재위
재위중에 아랍 민족주의자들의 쿠데타를 여러 번 넘겼다.[5] 1971년 7월 10일, 무아마르 카다피의 사주를 받은 1천 명의 사관생도들이 그의 42회 생일 연회를 습격하면서 외국 대사 및 정부 요인 등 92명이 사망하였으나 이후 사관생도 중 일부가 마음을 돌리면서 진압할 수 있었다. 1972년 8월 16일 프랑스 방문 후 귀국하는 도중 그가 탑승한 보잉 727기가 반란군 전투기로부터 공격을 받아 8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하였으나, 살아있었던 하산 2세는 신분을 속이고 반란군 전투기에 "폭군이 죽었다. 쏘지 마라"고 교신하여 격추당할 위기를 넘기고 비상 착륙, 쿠데타를 진압했다.공화국이 세워진다면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인물로, 1963년 알제리와의 무력 충돌이 일어나자 알제리를 지지하여 파리로 추방 및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모로코의 혁명가 메흐디 벤 바르카가 1965년 10월 29일 파리에서 납치 실종된 사건[6]이 일어나자, 1966년부터 4년간 프랑스와 단교 상태에 들어갔다.
1969년 스페인으로부터 이프니 지역을 되찾았고, 1975년에는 서사하라에 녹색행군이라 불리는 모로코 민간인 대량이주를 하였다. 미국 등 서방 세계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고 의회에 다당제를 자리잡게 했으며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채택하였다. 서사하라 점령 이후 폴리사리오 전선 진압을 위해 박정희 정권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어 군사협력을 강화하였다. 하지만 1960년대부터 1980년대말까지는 소위 '납의 시대(سنوات الرصاص)'라 불리면서 정적을 가혹하게 탄압하였다.
1999년 사망하면서 아들인 무함마드가 왕위를 계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