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07 01:55:17

프랑스령 모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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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스페인 프랑스 스페인
현대 모로코 왕국 서사하라
※ T는 북부 탕헤르 일대, N은 지중해 연안 리프 지방, C는 카사블랑카, F는 페스(중북부), M는 마라케시, A는 아틀라스 산지, S는 동부 테필랄트(시질마사), WS는 서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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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식민제국의 식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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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모로코 프랑스 보호령
Protectorat français au Maroc
الحماية الفرنسية في المغرب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프랑스 보호령
파일:프랑스령 모로코 상선기.svg 파일:스페인령 모로코 국장.svg
국기 국장
<nopad> 파일:Marrocoprotectorate.png
1912년 ~ 1956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알라위 술탄국 모로코
<colbgcolor=#c1272d> 국가 라 마르세예즈
위치 모로코
수도 라바트
정치체제 보호령전제군주제
술탄 유세프 (1912~1927)
모하메드 5세 (1927~1953)
모하메드 6세 (1953~1955)[1]
모하메드 5세 (1955~1956)
상무총독
공용어 프랑스어[공식], 베르베르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교, 가톨릭, 유대교
통화 프랑스 프랑

1. 개요2. 역사

1. 개요

1912년, 프랑스스페인이 '모로코 관련 조약'을 체결하며 프랑스령 모로코와 스페인령 모로코로 분할되면서 설립된 보호령이다.

2. 역사

모로코의 알라위 왕조는 18~19세기까지 프랑스영국에 굴복하지 않고 독립을 유지했다. 그러나 모로코는 서서히 쇠락했고 유럽은 점차 강성해져갔다. 19세기 후반부터 프랑스가 접근했다. 1880년 마드리드 조약에서 모로코에 간섭하기 시작하더니 1903년에는 프랑스령 알제리를 통해 침공하기도 했다. 당시 독일 제국의 황제인 빌헬름 2세는 식민지 확장에 열을 올렸고, 그는 독립국이던 모로코를 독일의 식민지로 만드려고 했다. 독일이 모로코를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자 프랑스, 스페인, 영국이 격렬히 반대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제1차 모로코 위기가 시작된 것이다. 1906년, 이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알헤시라스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의 결과 독일은 모로코에 대한 프랑스의 종주권을 수용해야만 했다.

이렇게 독일로 부터 모로코의 종주권을 얻자 프랑스는 모로코 식민화에 열을 올렸다. 그 가운데 모로코의 도시 마라케시에서 프랑스 스파이로 의심받은 의사 에밀 모샹이 암살당하자, 프랑스 언론은 그를 "문명의 순교자"라고 묘사하면서 모로코를 정복해야 한다고 울부 짓었다.[3] 이에 프랑스의 장군 위베르 리요테이가 국경을 넘어 우즈다를 점령하면서 프랑스와 모로코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이 가운데 카사블랑카 출신 무슬림들이 유럽 노동자 9명을 죽이자, 이를 빌미로 프랑스와 스페인은 카사블랑카에 군을 파견해 포격을 시작하였다. 포격은 밤새도록, 그리고 8월 6일 아침까지 계속되었고, 모로코군은 끊임없는 포격으로 상당한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투를 계속했고, 이는 프랑스군 내부에 불안감을 조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군함에서 폭탄이 쏟아지고, 지상군에 의한 학살과 약탈이 이어진 지 3일이 넘도록, 한때 3만 명이 거주하던 번영했던 도시는 유럽인 거주 지역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폐허로 변했다.

이렇게 카사블랑카가 프랑스와 스페인의 손에 떨어지자 마라케시의 술탄이자 칼리파의 형인 압둘 하피드는 자신을 마라케시의 술탄이라 선포하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1908년 1월 페스의 울라마가 압드 알지즈를 폐위하고, 압드 알하피드에게 조건부로 충성 서약을 하여 새 술탄으로 인정했다. 이 조건에는 그가 지하드를 수행하고, 우즈다와 카사블랑카를 해방하며, 외세 보호 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페스의 지지를 얻은 압드 알하피드는 점차 세력을 확장했으나,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압드 알아지즈와의 내전은 6개월간 이어졌다. 결국 1908년 8월 마라케시 전투에서 압드 알아지즈가 패배하고, 병사들에게 버림받은 그는 카사블랑카로 도망쳐 퇴위를 선언했다. 이렇게 프랑스 손에 모로코가 떨어지려고 하자 독일은 1차 모로코 위기 때의 실패를 만회할 목적으로 일부러 독일 민간인 1명을 아가디르에 파견 후 구출을 핑계로 독일 포함 판터를 모로코에 파견하면서 제2차 모로코 위기가 시작되었다. 이에 영국이 프랑스 편을 들면서 독일과 대치를 하자, 결국 독일은 프랑스령 콩고와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의 영토 일부를 받는 대가로 모로코에 대한 프랑스의 종주권을 인정하였다. 이렇게 반대자도 없어시자 모로코의 술탄 압둘 하피드는 프랑스 외교관 외젠 레그노가 페스 조약에 사인하였다. 이 조약에 의거해 프랑스 통감은 대외 및 내정에서 절대적인 권한을 행사했으며, 외국에서 모로코를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이 조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모로코 국민들은 수도 페스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페스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술탄 압둘 하피드는 라바트로 도주하였고, 숫자에서 밀린 프랑스군도 페스를 떠났다. 이로 인해 엄청난 파괴가 발생하여 유대인과 무슬림 모두 많은 사람이 부상당하고 사망했고, 폭동은 이틀 뒤 프랑스군에 진압되었다.

프랑스의 식민지가 된 모로코는 엄청난 수탈을 당했다. 프랑스 농부들은 모로코의 농지를 독차지하였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하였다. 또한 모로코는 인산염이 많이 있는데, 광산에서 일하는 모로코인들은 어떠한 사회적 보호도 받지 못했고, 노조 결성이 금지되었다. 이로인해 상당수의 부족민이 프랑스 통치에 반대했다. 1912년부터 1927년까지 지속된 술탄 유세프 의 통치는 격동적이었고 스페인과 프랑스에 대한 잦은 봉기로 특징지어졌다. 이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리프 산맥에서 일어난 베르베르 봉기였는데, 압드 엘 크림이 이끈 그는 리프 공화국을 수립했다. 이에 반발한 스페인과 프랑스는 전쟁을 선포하였는데, 이 전쟁이 바로 리프 전쟁이다. 리프 전쟁은 스페인과 프랑스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프랑스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수도를 내륙에 있는 페스에서 바다를 접하고 있는 라바트로 수도를 강제로 옮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운동이 모로코에 들불처럼 일어났다. 1934년 12월, 새로 구성된 모로코 행동 위원회는 페스 조약에 적힌대로 간접 통치로 복귀, 모로코인 관리 채용, 자치 의회 설립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프랑스는 이들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 프랑스 본토가 독일에게 점령당하자 모로코인들은 독립을 거세게 요구하였다. 1940년대 후반과 1950년대 초반, 정치적, 비폭력적 노력이 무산되면서 모로코의 독립 투쟁은 점점 더 폭력적이 되었고, 특히 도시와 산업 중심지인 카사블랑카 에서 학살, 폭격, 폭동이 일어났다.

이에 모로코의 술탄 무함마드 5세는 국제 지대였던 탕헤르에서 자국의 독립을 호소하려고 했다. 연설 며칠 전인 카사블랑카에서 프랑스군이 모로코인들을 학살하는 카사블랑카 학살이 발생하였다. 이 학살은 모로코의 독립과 영토의 통일을 요구하는 탕헤르 연설을 하기 위해 탕헤르에 가는 무함마드 5세를 막기 위해 프랑스 당국이 벌인 짓이었다. 탕헤르 연설은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곧장 독립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튀니지에서 노동 조합원 파르하트 하셰트가 프랑스 정보기관 SDECE가 운영하느 테러 조직 붉은 손(La Main Rouge)에게 암살당하자 이에 분노한 모로코인들은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위가 진압 된 이후 프랑스 당국은 무장투쟁가 아바스 메사디를 체포하고, 유대-모로코 인권 운동가이자 지식인인 아브라함 세르파티는 시위에 연루된 혐의로 프랑스 정권에 의해 모로코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구심점이던 무함마드 5세는 마다가스카르로 추방되었다. 프랑스는 이렇게 사태를 마무리하려고 했지만 술탄의 추방 이후 모로코인들의 저항은 더욱 공격적으로 변했다. 프랑스 당국은 압력을 받고 국가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자 벤 아라파를 축출하고 망명한 술탄과 협상을 해야 했다. 무함마드 알-무크리와 같은 프랑스 충성파로 구성된 임시 "왕좌 위원회"를 구성하려고 했지만 이 구상은 모로코인들이 즉각 거부하였다. 결국 모로코인들의 요구에 굴복한 프랑스 당국은 1955년 11월 16일, 무함마드 5세를 모로코로 복귀시켰다. 그 이후 모로코와 프랑스는 협상을 해서 최종적으로 1956년 8월 20일 모로코는 독립하였다.
[1] 스페인 모로코에서는 인정받지 못함[공식] [3] 에밀 모샹의 장례식은 국상이었고, 사후에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