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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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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족의 문서 훼손 약탈 모습.
Vandals, Half moon t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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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원2. 게르만 대침입기의 반달족3.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
3.1. 북아프리카 정복3.2. 로마 약탈3.3. 쇠퇴의 시작3.4. 정통파로 개종한 힐데리크3.5. 동로마 제국의 침공
4. 반달리즘?5. 후예?6. 대표적인 반달족 인물7. 관련 문서

1. 기원

게르만족의 일파로 일찍이 로마 제국과 접촉하여 2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는 도나우 강 국경에서 로마와 충돌한 적이 있는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반달족은 실링기 반달족과 하스딩기 반달족으로 나뉘며 연구에 따르면 하스딩기 반달족은 콘스탄티누스 1세고트족과 경쟁관계에 있었고 그가 죽자 판노니아로 밀려와서 도나우 강 안에서 살고 있었다고 한다. 기원은 분명치 않으나 고트족처럼 스칸디나비아에서 남하한 것으로 추정된다.[1]

2. 게르만 대침입기의 반달족


5세기 초에 훈족의 침입에 밀려 대이동에 나서 서쪽으로 진군하여 로마의 국경으로 밀려들어 왔으며 반달족의 대부분은 아리우스파 기독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406년에는 도나우 강을 건너 판노니아로 밀려들어가 갈리아 북부에서 로마에게 동화되고 있던 프랑크족의 저항을 받아 2만명이 사망하는 등의 피해를 입었으나 그 해 겨울에 라인강이 얼자 라인강을 넘어 갈리아를 남하하면서 황폐화시키고 아키텐까지 몰려갔다고 한다.

5세기 초에 계속 남하하여 피레네 산맥을 넘어 지금의 스페인히스파니아로 들어갔다.[2] 이때 단독으로 로마에 대항할 만한 세력은 못됐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훈족을 피해 달아난 수에비족, 알란족 등과 연합한 상태였다. 초기엔 알란족이 연합의 주도권을 쥐고 있었던 듯하다. 이들은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서로마 제국을 터는 동안 스페인을 접수했지만 알라리크가 죽고 아타울프의 협력을 얻는 데 성공한 서로마가 고트족과 함께 반격을 가해오기 시작했다. 결국 이 공격으로 인해 실링 반달족이 몰락, 하스딩기의 일원으로 흡수되고 알란족도 명맥을 잇기 힘들 정도로 타격을 입고 반달족에 흡수되었으며, 주도권은 반달족으로 넘어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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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북아프리카의 반달 왕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20px-Vandals_455.jpg

3.1. 북아프리카 정복

반달족의 족장인 군데리크는 알란족의 왕위를 얻은 후 북아프리카에 진출하기로 하였고,[3] 428년에 군데리크가 사망하자 그의 동생으로 왕위를 이은 가이세리크는 북아프리카의 로마 영토인 카르타고를 점령하는 동시에 지중해 연안의 영토를 침공하여 점령한다.

반달족은 429년에 지브롤터를 건넜고, 435년까지 마우레타니아 (모로코)와 누미디아 (알제리)를 석권한 후, 439년에 카르타고를 함락하였다. 442년, 가이세리크는 로마 제국과의 결별을 선포하고 완전히 독립하였다

서로마는 훈족의 침입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아틸라가 사망하자 반달족에 대한 대책으로 정략결혼을 추진했지만 페트로니우스 막시무스발렌티니아누스 3세를 죽이고 황제가 되자 교섭은 결렬되고 455년에 로마에 침공하기까지 이른다.

3.2. 로마 약탈

파일:attachment/saccodiroma.jpg
455년 6월 가이세리크 휘하 북아프리카 반달왕국 군대에 의한 로마 약탈. 약탈은 2주에 걸쳐 자행됐으며, 서로마 제국은 410년 서고트족의 침탈에 이어서 두 번이나 로마가 이민족에게 점령당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이에 대한 반격으로 468년에 바실리스쿠스가 이끄는 동서 로마 연합 함대가 아직 게르만 족의 손에 넘어가지 않은 이베리아 반도카르타헤나에 집결하였으나 반달 왕국 해군에게 괴멸당하고 말았다. 이것은 동로마 제국서로마 제국 간의 마지막 합동 작전이었다. 이후 동로마의 황제 제노는 474/476년의 협정에서 가이세리크와 반달족의 북아프리카 지배를 용인하였다.

3.3. 쇠퇴의 시작

477년, 게세리크는 80세의 고령으로 사망하였고 그의 장자였던 후네리크가 반달 왕국의 2대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동로마 제국의 눈치를 보며 니케아 종파를 용인하였으나 이후에는 동로마 제국이 그럴 능력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그에 개의치 않고 482년부터는 아리우스파 기독교를 제외한 나머지 종파의 신도들을 탄압하였다. 그가 484년에 죽은 후에는 군타문드가 즉위하여 니케아 정통파에 대한 박해를 중단하였으나 이미 왕국은 이탈리아 반도를 접수한 테오도리크의 동고트 왕국에게 시칠리아의 대부분을 상실하고 베르베르 인들에게 북아프리카 해안 도시들이 약탈당하는 등 쇠퇴기에 접어들게 되었다.

496년, 군타문드의 사후 즉위한 트라사문드는 독실한 아리우스파 기독교도로서 니케아 정통파에 대해 적대적이었으나 후네리크 때와는 달리 유혈 박해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트라사문드는 28년간 통치한 후 523년에 죽었고 겐세릭의 손자인 힐데리크가 즉위하였다.

3.4. 정통파로 개종한 힐데리크

힐데릭은 게이세릭의 장남이자 반달 왕국의 2대 왕인 후네릭의 아들이었는데, 어머니는 바로 서로마 제국의 황제 발렌티니아누스 3세의 딸 에우도키아였다. 그녀의 영향으로 힐데릭은 반달 왕국의 군주 중에서 삼위일체파 정통론자들에 대한 관대한 정책을 폈고, 그 스스로도 니케아 파로 개종하였다 ! 이후 힐데리크는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여 한세기 만에 카르타고 주교구가 회복되었으며, 잠깐이나마 카르타고 시민들은 반달 왕국에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힐데리크는 전쟁을 기피하여, 해안 도시들에 대한 약탈을 지속하던 베르베르 인들에 대한 전쟁을 사촌인 호아메르에게 일임하였는데, 이는 반달족 귀족들에게 나약한 왕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되어 반감을 샀다.[4]530년에 베르베르 인에게 반달 군이 패배하자, 반달족 귀족들은 반란을 일으켜 피지배층에게 지나치게 관용적인 왕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를 처형하였다.

3.5. 동로마 제국의 침공

462년까지 북아프리카 전역과 지중해 연안의 섬들을 장악하여 강력한 왕국으로 성장하였지만 정치, 종교, 인종적으로 피지배인들을 너무나 억압하였기 때문에 점차 쇠퇴하였으며[5] 결국엔 동로마 제국의 장군인 벨리사리우스의 공격으로 멸망한다.

4. 반달리즘?

유럽 중심주의의 피해자

북아프리카의 반달족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반달족은 반달리즘을 저지르지 않았다 !

게르만족의 대이동 때 로마에 침입하여 수많은 약탈과 문명 파괴행위를 저질렀다고 하여 이들에 유래한 반달리즘, 반달 이라는 말이 생겼지만, 사실은 이민족이 로마를 침공했다는 자체에서 로마인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기 때문에 생긴 말로 반달족은 문화 파괴행위보다는 조직적으로 로마의 재물을 배로 실어 북아프리카로 옮겼다고 한다.

반달리즘이란 단어는, 프랑스혁명자코뱅파의 파괴행위를 반달족에 빗대면서 처음 등장한 단어인데, 학계의 중론은 반달족은 파괴행위를 일삼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은 로마의 문화재를 약탈하는데 주력했으며 그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문화재가 훼손되었을 뿐 의도적으로 문화재를 박살내지는 않았다.

5세기의 반달족은 그 스스로도 이미 로마 문화를 받아들여 로마 문화의 우수성을 인정하던 상태였으며, 455년 반달족이 테베레 강을 건너 로마를 점령하자 당시 로마교황이었던 레오1세는 가이세리크를 만나 도시 파괴를 자제할 것을 당부하였고, 반달족은 순응하며 오히려 북아프리카에서는 자기 언어를 포기하고 라틴어, 막판에는 가톨릭을 채택했는가 하면 문학·신학에도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533년 동로마제국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휘하의 장군 벨리사리우스는 북아프리카에 상륙해 두 주일 만에 수도 카르타고를 함락했고, 1년이 못 되어 반달족의 흔적을 깡그리 없애버렸다. 오히려 이들이 반달리즘을 당해 모든 자취를 남기지 못한 것이다.반달족이 반달당했다 따라서 문화재산의 파괴행위에 반달리즘이란 이름이 붙은 건 반달족들에게 참 억울할 듯(...)

5. 후예?

동로마제국의 카르타고 재정복이후 이들의 민족 정체성은 빠르게 상실되었다. 많은 수가 추방당해, 뿔뿔히 흩어져 다른민족과 동화되고, 일부는 동로마 제국 군대에 편입되기도 하였기 때문. 물론 현재도 튀니지나 알제리에서 적발이 보이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들의 유전적 영향이 있었을 개연성은 있다. 실제로 알제리 등지에는 이들의 후손이 사는 도시가 있다.

6. 대표적인 반달족 인물

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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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는 트리폴리타니아 지역, C는 키레나이카 지역, F는 페잔 지역, 붉은색은 튀니지 방면 세력, 녹색은 이집트 방면 세력}}}


[1] Ruth H. Sanders, 2010《German : Biography of a Language: Biography of a Language》[2] 이 사건은 훗날 알안달루스안달루시아어원이 된다.[3] 스페인은 의외로 로마의 공격에 취약했다. 일단 육로로 이어져있다는 점과 로마의 최전방인 라인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건 아니라는 점이 크다. 당장 얼마 전에 알란족과 실링기 반달족이 로마군과 서고트족 동맹군에게 얻어맞아 몰락했으니 군데리크는 그걸 아주 잘 알았을 것이다. 반면 북아프리카는 서로마에서 제일 세금이 많이 걷히는 꿀땅이었던데다가, 주변에 위협적인 부족이 없어서 전통적으로 로마의 후방지역으로 간주되고 주둔병력도 적었다. 로마 본토와 가깝기는 하지만 당시 로마는 북방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느라 바다건너 북아프리카까지 대군을 투입할만한 여유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충분히 해볼만한 도박이었다.[4] 로마와 접촉한지 한 세기가 흘렀지만 그들은 여전히 전사다움이 왕의 덕목이라고 여겼다[5] 북아프리카 등지로 향한 일부는 기독교도에게 혀를 채찍질당하는 굴욕을 겪어 보복으로 기독교도 2천여명의 혀를 잘라버렸다. 흠좀무.[6] 의외지만 사실이다. 부친이 반달인으로 반달족 혼혈이다. 아마 반달족 중 일부는 로마에 우호적이었거나 로마에 투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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