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2-13 22:17:28

할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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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1B3D><colcolor=#fff>
카타르 제6대 아미르
할리파 빈 하마드 알사니
خليفة بن حمد آل ثاني
파일:할리파 국왕.jpg
출생 1932년 9월 17일
카타르 도하
사망 2016년 10월 23일
카타르 도하
재위기간 제6대 아미르
1972년 2월 22일 ~ 1995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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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1B3D><colcolor=#fff> 가문 사니 가문
아버지 아흐마드 빈 알리 알사니
어머니 사라 빈트 모하메드 빈 자심 알사니 왕비
배우자 1처: 암나 빈트 하산 빈 압둘라 알사니 왕비
2처: 아이샤 빈트 하마드 알 아티야 왕비
3처: 루다 빈트 자심 빈 자브르 알사니 왕비
4처: 모자 빈트 알리 빈 사우드 알사니 왕비
종교 이슬람(와하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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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카타르의 제6대 군주로 아들인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왕세자의 쿠데타로 인해 강제로 쫓겨났다.

2. 생애

아흐마드 빈 알리 알사니 치하에서 왕세자로 지명된 뒤 1972년 2월 22일 사촌을 축출하는 무혈 쿠데타로 집권하였다. 집권 이전에는 치안부대 사령관, 민사법원 책임자, 부총독, 재무장관을 거쳐 국가 경제·사회·행정 전반의 정책 수립을 주도하며 국영 기업과 에너지 행정을 정비했고, 1971년 9월 3일 영국으로부터 카타르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내각 확대와 헌법 개정, 국방부 신설, 자문기구 정비를 추진했으며 1977년 아들 하마드 빈 할리파를 왕세자로 지명했다. 외교적으로는 대사급 수교 확대와 1981년 걸프 협력회의 창설에 기여했고, 걸프전에서 카타르군의 참전을 이끌었다. 경제 면에서는 석유·가스 생산과 외국 기업과의 생산분배계약을 확대하고 1991년 북부 가스전에서 LNG 첫 수출을 달성했다.

이렇게 카타르 치세는 안정되나 했으나 1990년대 이후 아들 하마드 빈 할리파 알사니 왕세자가 할리파가 스위스 제네바로 가있던 사이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이 왕위에 올랐다. 쿠데타에 소식을 들은 할리파는 아들을 무지한 사람이라 부르며 자신이 여전히 카타르 국왕임을 선언하였다. 그러자 하마드는 미국 로펌을 고용해 아버지의 은행 계좌를 동결시켜 반쿠데타 시도를 막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6년 2월 14일 할리파를 지지하던 세력이 쿠데타를 일으켰다.[1] 이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이집트, 바레인의 지원을 받았으며 특히 당시 UAE 최고사령관이던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얀이 깊게 연관되어 있었다. 하지만 반쿠데타는 실패로 끝이났고 할리파는 사형을 포함한 4가지 혐의를 적용받았다.

하지만 2004년 아내 셰이카 모자 빈트 알리 알사니의 장례식을 계기로 두 부자는 화해를 했고 그는 9년 간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카타르로 돌아왔다. 2016년 10월 23일 8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카타르는 그의 사망 후 3일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1] 카타르 정보부는 이 쿠데타 시도를 "아부 알리 작전"이라고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