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04:10:51

알폰소 1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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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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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보르본 왕조 제10대 국왕
알폰소 12세
Alfonso XII
파일:Alfonso-XII.jpg
출생 1857년 11월 28일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 마드리드 왕궁
사망 1885년 11월 25일 (향년 27세)
스페인 왕국 마드리드 엘 파르도 왕궁
재위기간 스페인 국왕
1874년 12월 29일 ~ 1885년 11월 25일
서명 파일:알폰소 12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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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70243><colcolor=#fff> 가문 보르본 가문
이름 알폰소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페르난도 피오 후안 마리아 데 라 콘쳅시온 그레고리오 펠라요 데 보르본 이 보르본
(Alfonso Francisco de Asís Fernando Pío Juan María de la Concepción Gregorio Pelayo de Borbón y Borbón)
아버지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
어머니 이사벨 2세
형제자매 이사벨, 마리아 델 필라르, 마리아 데 라 파스, 에우랄리아
배우자 오를레앙의 메르세데스 (1878년 결혼 / 1878년 사망)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1879년 결혼)
자녀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마리아 테레사, 알폰소 13세 }}}}}}}}}
1. 개요2. 생애
2.1. 재위기간
3. 평가4. 가족관계
4.1. 조상4.2. 자녀
5. 기타
5.1. 사생아 의혹

[clearfix]

1. 개요

스페인의 제17대 국왕.

2. 생애

스페인 여왕 이사벨 2세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866년 혁명이 일어나자 어머니와 함께 망명했고 1870년 어머니로부터 명목상이지만 왕위를 이어받았다.

아마데오 1세가 물러나고 제1공화국이 세워졌지만 제1공화국은 대통령이 쿠데타 등으로 끊임없이 바뀌었고 정치는 혼란이 가중되었다. 이에 다시 한 번 보르본 왕조를 재건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고 1875년 1월 14일 마드리드에 입성. 입헌군주국의 국왕으로 다시 보르본 왕조를 재건한다.

2.1. 재위기간

1876년 스페인은 입헌군주국임을 확실하게 하기 위한 헌법을 제정하게 되는데, 이 법의 골자는 주권이 의회와 왕에게 있음을 명시하여 입헌군주국을 명확히 제시했고, 그 외에도 왕의 입법권 및 의회 소집 및 해산권 부여, 상하원 의원의 선출, 국교는 가톨릭, 표현과 결사의 자유를 허락하는 등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법이었다.

또한 왕은 카를리스타의 반란을 진압했고, 쿠바 사태에 대해서도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하고 본토의 1개 주로 승격시키기로 합의를 보았다.[1] 그 외에도 카롤린 제도 점유를 놓고 독일 제국과의 분쟁에서 독일의 항해 및 교역권을 인정해주며 원만하게 해결을 보았다.

1878년 이종사촌인 오를레앙의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María de las Mercedes of Orléans)[2]와 결혼했지만 6개월 만에 장티푸스로 급사했고 1879년 테셴 공작 카를 대공의 친손녀인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3]와 재혼하여 1남 2녀를 두었다. 두 딸들인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마리아 테레사에 이어 유복자로 태어난 외아들 알폰소 13세가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1885년 결핵으로 인해 28세의 젊은 나이로 임종을 맞았다. 한참 젊은 나이였고 입헌 군주로서 자유주의자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개혁을 실시하던 명군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사망(좀 앓다가 죽긴 했지만)에 대하여 암살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2022년 현재, 역대 스페인 국왕 중 마지막으로 재위중에 승하한 국왕이다. 아들 알폰소 13세는 망명으로 퇴위했고, 증손자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양위했다.

그만큼 20세기 스페인이 혼란스러웠다는 것을 증명한다.[4]

3. 평가

스페인의 혼란스러운 근현대사 속에서 가장 뛰어난 정치능력을 보여준 왕이었다.

심심찮게 일어났던 쿠데타도 그의 집권기간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내치의 안정으로 부가 축적되고 왕실 재정까지 풍족하게 되었다. 여러모로 요절한 것이 안타까운 왕. 후임인 알폰소 13세의 시기는 이사벨 2세 시기처럼 혼란스러웠던 데다가 둘 다 결국 왕위를 내놓고 물러나야 했음을 생각해보면 참...

4. 가족관계

4.1. 조상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알폰소 12세
(Alfonso XII)
<colbgcolor=#fff3e4,#331c00> 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Francisco de Asís, Duke of Cádiz)
<colbgcolor=#ffffe4,#323300>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왕자
(Infante Francisco de Paula of Spain)
카를로스 4세
(Carlos IV)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공녀
(Princess Maria Luisa of Parma)
양시칠리아의 루이사 카를로타 공주
(Princess Luisa Carlotta of the Two Sicilies)
프란체스코 1세
(Francesco I)
스페인의 마리아 이사벨 공주
(Infanta Maria Isabella of Spain)
이사벨 2세
(Isabel II)
페르난도 7세
(Fernando VII)
카를로스 4세
(Carlos IV)
파르마의 마리아 루이사 공녀
(Princess Maria Luisa of Parma)
양시칠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공주
(Princess Maria Christina of the Two Sicilies)
프란체스코 1세
(Francesco I)
스페인의 마리아 이사벨 공주
(Infanta Maria Isabella of Spain)

4.2. 자녀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 / 자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Maria Christina of Austria)
1녀 아스투리아스 여공 마리아 데 라스 메르세데스
(María de las Mercedes, Princess of Asturias)
1880년 9월 11일 1904년 10월 17일 부르봉양시칠리아의 카를로스 왕자
슬하 2남 1녀
2녀 바이에른의 페르디난트 왕자비 마리아 테레지아
(María Teresa, Princess Ferdinand of Bavaria)
1882년 11월 12일 1912년 9월 23일 바이에른의 페르디난트 왕자[5]
슬하 2남 2녀
1남 알폰소 13세
(Alfonso XIII)
1886년 5월 17일 1941년 2월 28일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지니 공녀
슬하 4남 2녀[6]

5. 기타

알폰소 12세는 방계 조상인 카를로스 2세만큼은 아니어도 선대의 근친혼이 상당히 심한 편이었다.

일단 부모인 이사벨 2세카디스 공작 프란시스코부터가 친사촌 겸 이종사촌 관계였고 조부모도 친가와 외가 가리지 않고, 모두 외삼촌과 외조카끼리 결혼했으며[7] 증조부인 카를로스 4세도 친사촌과 결혼했기 때문에 윗대부터 근친혼이 겹겹이 중첩되었다. 이때문에 4대 혹은 5대 조상은[8] 고조부인 카를로스 3세를 포함해 6명에 불과하다. 영어 위키백과의 Pedigree collapse(혈통의 붕괴) 문서에서도 알폰소 12세의 가계도를 예시로 사용할 정도이다.[9]

5.1. 사생아 의혹

이사벨 2세와 프란시스코 부부의 관계는 좋지 않아서 알폰소 12세는 이사벨 2세의 사생아라는 의혹이 있다. 당시 보르본 왕조는 압스부르고 왕조 못지 않게 근친혼이 잦았는데 알폰소 12세는 특별히 눈에 띄는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없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검증되지 않은 의혹이다. 관뚜껑을 열어서 유전자 검사를 해볼수도 없고.(...)

여하튼 알폰소 12세의 사생아 의혹은 스페인 보르본 왕조와 대립하는 '카를로스파'와 보르본 왕조 출신이자 부르봉 왕조의 현 수장의 가문인 부르봉앙주 왕조와 대립하는 '부르봉오를레앙 왕조'에서 두고두고 써먹게 된다.(...)


[1] 그러나 나중에 약속이 안 지켜지며 문제가 생겼다.[2] 이모 몽팡시에 공작부인 루이사 페르난다의 5녀.[3] 테셴 공작 카를 대공의 차남인 카를 페르디난트 대공의 장녀이다.[4] 1936년 스페인 내전, 1939년부터 1975년까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독재가 있었으니... 다만 이것만으로는 기준이 되지 않는다. 알폰소 13세가 퇴위한 1931년부터 1947년까지는 아예 공화정이었고 그나마도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즉위한 것도 1976년이다. 그리고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시기는 스페인의 근현대사에 비추어 보면 안정적인 편이었다. 치세 말엽에 본인이 물의를 빚고 경제적으로 안 좋기는 했지만 정치적으로까지 개판은 아니었다. 본인도 그냥 각종 물의를 빚는 추태로 물러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공화정이 된 건 아니고 그냥 아들에게 양위한 거라 이사벨 2세나 알폰소 13세와는 다르다. 그나마 아들인 알폰소 13세 때는 개판이긴 한데 이쪽은 리베라의 독재 직전까지 매년 내각이 교체되는 수준에 여러 암살 시도들이 벌어졌다. 물론 그 다음 시대인 제 2 공화국과 프랑코 정권 시기는 알폰소 13세 때가 더 나아보일 지경의 개판이었다.[5] 루트비히 1세의 증손자이자 고모 마리아 데 라 파스 공주의 아들로 고종사촌이다.[6] 세고비아 공작 인판테 하이메,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 등.[7] 외조부 페르난도 7세와 친조부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모두 외조카인 마리아 크리스티나와 루이사 카를로타와 결혼했다.[8] 삼촌-조카 간 결혼 때문에 대수가 꼬인다. 근친혼이 한 번도 없었다면 4대조는 16명이어야 한다.[9] 참고로 이 문서에서 예시로 사용하는 다른 가계도는 오스트리아판 카를로스 2세라 할 수 있는 페르디난트 1세, 고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 7세, 그리고 먼 방계조상인 카를로스 2세의 가계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