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6 00:46:36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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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스페인의 방송국 안테나3가 스페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 100명'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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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블라스코 이바네스 마누엘 산타나 알리시아 코플로비츠 안토니오 루이스 솔러 자코네로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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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dddddd>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Buenaventura Durruti
파일:Jose_Buenaventura_Durruti_Dumange_1936.jpg
본명 호세 부에나벤투라 두루티 두망헤
José Buenaventura Durruti Dumange
출생 1896년 7월 14일
에스파냐 왕국 카스티야 레온
사망 1936년 11월 20일 (향년 40세)
스페인 제2공화국 마드리드
최종 국적
[[스페인 제2공화국|]][[틀:국기|]][[틀:국기|]]
가족 형제 8명
배우자[1] 에밀리엔 모랭
콜레트 두루티
직업 노동운동가, 혁명가
종교 무종교
소속 전국 노동 연맹
서명
파일:Firma_Durruti.jpg

1. 개요2. 생애3. 창작물4. 여담

[clearfix]

1. 개요

스페인아나키스트이자 혁명가.

2. 생애

1896년 카스티야이레온에서 8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노동에 종사하여 14살에 철도 노동자가 됐다. 아버지가 사회주의자이자 노동조합 활동가였기 때문에 그도 노동운동에 점차 깊숙이 관여했다. 이로 인해 1917년 총파업이 발생했을 때 주도적으로 활동하다가 도망자 신세로 전락하기도 했다. 이때 프랑스 파리로 망명하여 1920년까지 머물렀는데 그곳의 아나키스트들과 접촉하며 아나키즘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였다.

이후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아나키즘 운동에 투신한다. 그는 동지들을 모아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를 암살하려고도 했고, 아나키스트 노동자 조직인 전국 노동 연맹에서 활동하며 바르셀로나의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우익 세력에 의해 희생된 아나키스트에 대한 보복 공격, 군부 지도자 미겔 프리모 데 리베라의 병영 습격 등의 굵직한 사건들에도 관여했다. 이러한 활동 때문에 그는 여러 번 감옥에 갔고 사형 선고를 3번이나 받았다.[2]

이후 스페인 왕정이 몰락하고 공화정이 수립되자 두루티는 스페인으로 돌아왔고 당대의 아나키스트 그룹 중에서도 가장 전투적인 성향을 보였다.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공화정에 반발하여 스페인 내전을 일으키자 그는 아나키스트들을 모아 저항군을 이끌었다.

두루티는 1936년 11월 19일 마드리드 전투에서 가슴에 총을 맞았고 다음날 사망했다. 그의 정확한 사인에 대해서는 국민군에게 사살되었거나 아군의 오발로 인해 사망했다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그의 사망 소식은 공화파의 사기 저하를 우려해 바로 발표되지 않았고 11월 23일 바르셀로나에서 50만 명의 군중이 참여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3. 창작물

스페인 만화 어느 아나키스트의 고백에서는 그가 신었다는 신발이 두루티의 신발이라 불리면서 주인공이 소속된 부대(공화파 부대)의 한 부대원이 가진 걸로 나온다. '빈센트(비센테)'라는 이름의 그 부대원은 나중에 전사하게 되고 그 신발은 주인공에게 들어온다. 주인공은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파시즘 정권을 타도하겠다는 의지로 그 신발을 간직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동료들마저도 국민파를 이길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잃고 아나키즘을 버리기 시작한다. 결국 절망감을 느낀 주인공은 그 신발을 태워버린다.

Hearts of Iron 4에서는 스페인 내전 시작 시 아나키즘 루트를 선택할 경우 아나키즘 스페인군의 원수로 등장한다.

4. 여담

그의 일대기를 다룬 책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이 출판되었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지만 여기서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매우 가정적이고 다정다감한 가장이었다고 한다.[3]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느라 부엌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는데 한 친구가 "여자들이나 하는 일"이라고 말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자네도 본을 좀 받게. 나는 아내가[4] 일하러 나가고 없을 때는 집안 청소도 하고 잠자리를 정돈하며 요리도 한다네. 그 외에도 딸을 씻기고 옷도 갈아입힌다네. 자네 부인도 일하고 있는 동안 아나키스트인 자네가 술집이나 카페에 쭈그리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자네는 뭘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이라네."

당시 CNT는 공화국 정부와의 마찰로 해산되기 전 아예 여성 투사들로 구성된 민병대 '자유여인단(Mujeres Libres)'을 조직하는 등 조직 전체로 보면 스페인에서 여성 해방 문제에 있어서 가장 급진적인 단체였다. 그러나 대중조직이란 현실 아래 실제 개별 행동가들 차원에서 노동자 문화의 거친 마초성과 여기 내제된 뿌리깊은 성차별적 의식을 완전히 뿌리뽑을 순 없었고, 여기 관련해서도 조직 내부로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런 문맥에서 두루티가 가부장적 억압구조의 큰 기둥 중 하나인 가사노동 문제에서 이런 진보적 모습을 강조했던 것은 아나키스트 이념적 기강을 세우는 조직인 FAI의 핵심 멤버 중 하나로서 조직적 이상과 현실이 대립하는 사회적 문제에 모범을 새웠다 할 수 있다.

두루티의 이름을 딴 두루티 칼럼(The Durutti Column)이라는 영국 밴드가 있다.


[1] 아래에도 언급되지만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한 적은 없다.[2] 이 사형선고는 스페인, 칠레, 아르헨티나 3국에서 각각 받았다. 모두 각국에서 그가 벌였던 아나키즘 활동 때문이었다. 그는 스페인에서의 상황이 녹록지 않았을 때 라틴 아메리카로 도피했었는데 물론 거기서도 아나키즘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3] 추종자들이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딸의 증언이다. 감옥이나 정치활동으로 집에 없을 때도 많았지만 있을 때는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4] 프랑스 출신 아나키스트이자 속기사인 에밀리엔느 모랭 Émilienne Léontine Morin, 1901~1991. 두루티와 모랭은 실제 생활은 당시 아나키스트들 사이에 유행하던 자유결합, 자유연애 가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부부 생활을 했으면서도 막상 법적으로 정식 결혼은 프랑스에서나 스페인에서나 한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