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21:34:21

에드워드 6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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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왕국 튜더 왕조 제3대 국왕
에드워드 6세
Edward VI
파일:잉글랜드의에드워드6세.jpg
<colbgcolor=#cf091f><colcolor=black> 왕호 에드워드 6세
(Edward VI)
출생 1537년 10월 12일
잉글랜드 왕국 미들섹스 햄프턴 코트 궁전
사망 1553년 7월 6일 (향년 15세)
잉글랜드 왕국 그리니치 궁전
재위기간 잉글랜드, 아일랜드의 왕
1547년 1월 28일 ~ 1553년 7월 6일
서명 파일:에드워드 6세 서명.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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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f091f><colcolor=#fff> 이름 에드워드 튜더
(Edward Tudor)
아버지 헨리 8세
어머니 제인 시모어
장례식 1553년 8월 8일
웨스트민스터 사원
종교 성공회 }}}}}}}}}

1. 개요2. 재위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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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국왕. 헨리 8세의 적자.[1]

적법한 왕위계승권자를 간절히 원하던 헨리 8세가 세 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에게서 얻은 귀하디 귀한 아들이다. 튜더 왕가에 자손이 귀했던 데다가 당시 영아 사망률도 매우 높았기 때문에, 헨리 8세가 무척이나 아끼고 보호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젊었을 때의 아버지와 달리 사냥에 참가한 적이 드물다고.

헨리 8세가 에드워드 6세를 얻었을 때는 당시 기준으로 한참 늦은 40대 후반이었다. 헨리 8세가 56세를 일기로 사망하자 에드워드 6세는 고작 9살의 어린 나이로 즉위했으나 15살 때 요절. 통치기간은 길지 못했다.[2]

그가 선천적으로 병약해서 요절했다고 알려져 있으나 잘못된 것이라 한다. 당대 기록에 의하면 태어날 때부터 건강했으며 자라날 때 잔병치레도 거의 없는 매우 건강한 체질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키도 크고 튼튼했다는 기록도 많이 남아 있다. 다만 갑작스럽게 병에 걸리더니 6개월간 증세가 악화되어 죽음에 이르렀고, 사망 당시에 16살 생일도 지나기 전이었기 때문에 병약해서 죽었다는 식으로 와전된 듯하다.

2. 재위

즉위했을 당시 고작 9세로 나이가 워낙 어렸기 때문에 외삼촌인 서머싯 공작 에드워드 시모어가 섭정을 했다. 즉위 초기 매우 영특해서 잉글랜드에 요시야 왕[3]이 나타났다며 기대가 높았다.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당대 최고의 신학자들에게 라틴어히브리어, 그리스어를 사사했는데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고 한다. 성격적으로는 엄격하고 냉정해서 거의 웃지도 않았다고.

에드워드 6세의 큰 외삼촌 에드워드 시모어는 군사적으로 유능하여 헨리 8세 시대에 공을 세운 바 있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다지 유능한 편은 아니었다. 동생 토머스 시모어와도 사이가 안 좋은 데다가 헨리 8세 시절 닥치고 버로우 타던 여러 야심가들은 시모어 가문이 독주하는데 대해 이를 갈고 있었다. 외삼촌들이 벌인 정쟁에 끼인 에드워드는 두 외삼촌 모두에게 넌더리를 냈다.

특히 성격이 불같고 노골적인 야심가였던 작은 외삼촌 토머스 시모어는 헨리 8세의 마지막 왕비 캐서린 파와 재혼하여 아이까지 있었는데도 캐서린이 데리고 온 의붓딸 엘리자베스 1세(앤 불린의 딸)와 결혼해 왕위에 접근해 보고자 그녀에게 추파를 던져서 한때 결혼이 파탄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어린 왕을 납치하려다가 체포되어 반역죄로 처형을 당한다.

큰 외삼촌 에드워드 시모어는 동생 토머스보다는 냉정했지만 자신에게 대항하는 세력이 생기자, 조카인 어린 왕을 보호하겠다는 명분으로 왕을 윈저 성으로 데려가서 사실상 감금한다. 에드워드 6세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외삼촌을 지지하지 않음을 천명했고, 끝내 에드워드 시모어는 몰락하게 된다. 이후 그는 농민 반란을 강경하게 진압하지 않아서 젠트리들에게 인기를 잃고, 결국 정적이던 노섬벌랜드 백작 존 더들리가 잉글랜드 내부 가톨릭 세력[4]과 손잡고 시모어를 탄핵하여 권력을 잃고 체포되어 처형당하게 된다. 처형 문서에는 물론 에드워드 6세가 서명했다. 후반 통치는 스스로를 노섬벌랜드 공작으로 봉한 존 더들리의 치세로 이어진다. 존 더들리는 헨리 7세 시절 가혹한 징세관으로 민심을 잃은 죄로(?) 헨리 8세에 의해 민심 수습 차원의 희생양으로서 참수당한 에드먼드 더들리의 장남이며 그의 아들은 엘리자베스 1세에게 총애받은 로버트 더들리다.

하여튼 존 더들리는 에드워드 6세가 사경을 헤맬 때 메리 공주의 즉위를 방해하며 제인 그레이를 옹립했다가, 반격을 받고 메리 공주가 여왕으로 즉위한지 1주일 만에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이복누나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와는 생전에 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이가 20년 넘게 차이 나던 엄마뻘 큰누나 메리와 특히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다만 종교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에드워드는 당시 칼뱅주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복음주의 계열 입장에선 모범생이었지만 메리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이다. 한 번은 둘이 이 문제로 싸우다가 둘 다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는데, 직후 에드워드는 메리에게 "내가 누나에게 갖고 있는 애정을 시험하려 하지 말라"고 차갑게 경고하는 편지를 보냈다.
독실한 칼뱅주의 성향 복음주의자였고 자신과 성향이 맞았던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 토머스 크랜머잉글랜드 국교회를 체계화하고 안정화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기 때문에 자신이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으면, 가톨릭 신자인 누나 메리가 왕위를 이어받아 잉글랜드 교회를 다시 로마 교황 휘하로 되돌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후 에드워드 6세는 갑작스레 병[5]에 걸려 병세가 악화되어 죽음이 확실시되자 왕위 승계 문서를 수정하여 메리를 왕위 계승권자에서 제외하면서, 자연스럽게 엘리자베스도 제외하고 한때 결혼 상대로 고려되었던 친척 제인 그레이에게[6] 왕위를 넘기기로 한다. 이러한 왕위 계승권 교란은 결국 에드워드 6세 사후 엄청난 분란을 낳게 된다.

좌우지간 에드워드 6세가 죽고나서 사후 왕위를 둘러싸고 메리 1세의 추종자와 제인 그레이를 여왕으로 내세운 노섬벌랜드 공작 존 더들리의 세력이 충돌했지만, 이미 종교를 떠나 정통성에서 심각하게 밀렸기 때문에 존 더들리 내부 진영에서 이탈자가 속출했다. 결국 노섬벌랜드 공작 더들리가 뒤늦게(?) 메리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존 더들리는 메리가 즉위한지 1주일 만에 체포되어 자신의 잔당 세력 대부분과 함께 처형되었다.[7]

요절한 데다가 재위 기간 동안 특별한 업적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버지 헨리 8세나 이복누나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에 비해 존재감이 미미하다. 하지만 헨리 8세를 많이 닮았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리고 헨리 8세가 가톨릭에서 잉글랜드 교회를 독립시켜 잉글랜드 교회를 만들고 잉글랜드 내 교황 노릇까지 겸임하며, 몇 번씩이나 아내를 갈아치우고 재혼하는 우여곡절 끝에 가까스로 얻은 외아들이어서 워낙 오냐오냐 애지중지 자란 탓에 안하무인이었다고 한다. 또한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외삼촌 등 여러 권신이 벌이는 정쟁을 생생히 지켜보았기에 성정이 잔인한 편이었고 매사에 신경질적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르네상스 시대의 군주에 걸맞은 교육을 받아 매우 총명했다고.

당시의 성격 그대로 자라 오래 왕위를 지켰으면 "아버지를 능가하는" 왕이 되었을 거라는 평가도 있는데,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분석이다. 그의 사후에 이복누나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가 차례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3. 기타

  • 에드워드 6세는 자세한 일기를 남겼다. 상당히 무미건조한 필치로 쓰여 있는데, 특히 큰 외삼촌 에드워드 시모어가 처형당하던 날 "금일 8~9시 경에 외삼촌이 처형되었다." 정도의 짧은 한 문장을 냉정하게 적고 넘어간 대목이 인상적이다.
  • 에드워드 6세가 왕위 계승권자로 지정한 친척 제인 그레이는 생전 그의 왕비감으로 혼담이 오가던 사이기도 했다. 제인 그레이의 외할머니는 헨리 8세의 여동생 메리 튜더로, 에드워드 6세에겐 오촌 조카였다. 그 외에 에드워드 6세의 왕비감으로 혼담이 오갔던 사람은 또다른 그의 오촌 조카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여왕[8] 있다.
  • 개신교 칼뱅주의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독실한 신앙을 가졌지만, 종교적 처형은 단 두 건으로, 그것도 가톨릭교도도 아니고 개신교 계열 급진 재세례파 두 명이다.[9] 후임 메리 1세가 5년 재위기간에 300명이 넘는 개신교도를 화형시키고 수천 명을 고문 또는 추방한 것과 대비된다.
  •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 나오는 에드워드 왕자가 바로 이 사람. 실제로 에드워드는 병약한 이미지가 강하지만 의외로 차갑고 엄격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나름대로 고증을 충실하게 한 셈. 작중에서도 군주로서의 위엄과 품위를 항상 유지하려 했다. 나이로 따지면 거의 어머니 뻘인(20세 연상) 큰누이 메리에게 정숙하게 행동하라고 훈계를 할 정도.
  • 가톨릭에서는 에드워드 6세 시기에 개정된 성공회 주교 서품 양식에 중대한 흠결이 있다고 보아 해당 서품 양식이 제정된 시기를 기준으로 성공회의 사도계승이 단절되었다고 보는 입장이다.
  • 변덕스러운 아버지 헨리 8세에게 진심으로 가장 많이 사랑받는다는 점에서 조선 시대 숙종의 막내아들인 연령군과 비슷하다. 형제들 중에서 먼저 요절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1] 적자이지만 장자는 아니다. 누나만 둘 있는 아들이기에 당연히 장자일 것 같지만, 헨리 8세는 에드워드 이전에 헨리 피츠로이라는 서자를 두었다.[2] 단, 재위기간은 의외로 그 뒤를 이은 이복누나인 메리 1세보다 조금 길다. 5년간 재위했던 메리보다 1년 긴 6년간 재위했다.[3] 성경에서 구약시대 유대 왕국 소년왕인데 신앙심과 지성을 모두 갖추었다.[4] 헨리 8세 시절 수장령과 반역법으로 가톨릭 자체는 불법화되었지만 로마수위권만 부정하는 선에서 국교회 내부의 다수의 전통주의 세력 또는 지하에 잔존한 소수의 가톨릭 복원 세력, 잉글랜드인이면 당연히 잉글랜드 국교회 신자이기 때문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했다. 칼뱅주의에서 가톨릭 성향까지.[5] 에드워드 6세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병이 어떤 병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결핵, 폐렴 등 여러 설이 있다. 출생 시 노출된 매독균에 의한 신경매독이라는 설도 있다.[6] 헨리 8세의 여동생 메리 공주의 외손녀로 에드워드 본인의 오촌 조카.[7] 이때 왕위엔 전혀 관심도 없었지만 욕심많은 어른들에게 휘말려 괜히 여왕으로 옹립된 제인 그레이 또한 처형되었다.[8] 헨리 8세의 누나 마거릿 튜더의 친손녀.[9] 재세례파는 다른 개신교와도 완전히 이질적인 교리 때문에 유럽 어디에서나 박해받았다.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