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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어 | Szent Korona |
독일어 | Stephanskrone |
영어 | Holy Crown of Hungary/Crown of Saint Stephen |
성 이슈트반 왕관은 헝가리의 왕관으로, 헝가리 역사상 최초의 왕가인 아르파드 왕조의 창업군주 이슈트반 1세의 것으로 전해진다. 오랜 기간 동안 전래되면서 대단한 상징성을 가지게 된 유물인데, 비단 헝가리의 왕권뿐만 아니라 헝가리의 국권 더 나아가 주권 그 자체를 상징하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헝가리 왕국, 그리고 현재 헝가리의 국장에도 그려져 있다.
성 이슈트반 왕관은 현재 헝가리가 왕정이 폐지됐기 때문에 더 이상 왕관으로 쓰이진 않고 수도 부다페스트에 위치한 헝가리 국회의사당에 원본이 소장 전시되어 있다. 성 이슈트반 왕관이 상징하는 것이 헝가리의 주권임을 생각하면 매우 적절한 장소라고 볼 수 있다.
2. 내용
2.1. 역사
아르파드 공작으로부터 세습된 헝가리 대공국의 대공 작위가 이슈트반 1세(István I, 975~1038, 재위 997-1038) 때인 1000년에 로마 교회와 독일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아 헝가리의 왕으로 격상되면서 11세기 헝가리 왕국이 건국되었다. 이 이슈트반 1세가 1000년 12월 25일 혹은 1001년 1월 1일에 세케슈페헤르바르에서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본 왕관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의 왕관은 이후 대대로 헝가리 왕국의 대관식에 사용되었다.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이슈트반과 그의 아들 임레(에메리코, 1006~1031)를 성인으로 시성하면서 왕관도 성 이슈트반[1] 왕관이라고 불리게 되었다.이후 여러 부침을 겪어 온 헝가리의 역사에서 어떤 세력의 왕이건 헝가리를 차지한 왕의 대관식이 있을 때마다 본 왕관은 항상 등장하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헝가리 왕권의 상징물로 그 입지가 격상되었다. 마치 고대 중국의 전국옥새처럼 성 이슈트반 왕관은 헝가리 왕위 즉위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는 상징이 되었다. 과장을 섞어 말하자면 헝가리 왕이 됨으로써 성 이슈트반 왕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성 이슈트반 왕관을 씀으로써 헝가리 국왕이 되는 것이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가문의 페르디난트 1세가 1526년 보헤미아 왕국, 헝가리 왕국, 크로아티아 왕국을 상속받으면서 합스부르크 제국이 출범한 이래 오스만 제국과의 패권 다툼 끝에 헝가리 전 지역을 차지했을 때도 이 왕관은 꾸준히 전해져 왔다. 1867년 대타협을 통해 오스트리아 제국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라는 이중 제국 체제로 전환됐을 때 헝가리 왕국이 성 이슈트반 왕관령이라는 명칭으로 지칭됐을 정도로 성 이슈트반 왕관은 헝가리의 국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신물(神物)이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두 번째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가 성 이슈트반 왕관을 착용한 모습. 좌측: 카를 1세 / 가운데: 오토 폰 합스부르크 / 우측: 황후인 부르봉파르마의 지타 공녀 |
하지만 강화 시도를 눈치챈 독일이 오토 스코르체니 SS 중령의 주도 하에 판처파우스트 작전을 개시하여 미클로시를 끌어내려 압송하고 극우 정당인 화살십자당 당수 살러시 페렌츠를 헝가리의 지도자로 세우는 한편 기세가 오른 소련군은 독일 국방군을 각지에서 격파해 가면서 점차 헝가리에 가까워지는 대혼란이 펼쳐졌다. 이에 성 이슈트반 왕관을 차라리 미국에 넘기면 넘겼지 절대 소련 빨갱이들에게는 넘겨줄 순 없다는 판단에 따라 당시 헝가리의 총리였던 게저 러커토스(Géza Lakatos) 등 왕관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1944년 10월에서 1945년까지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과정을 거쳐 본 왕관을 서유럽으로 반출하였으며 최종적으로 독일에 주둔하던 미군이 성 이슈트반 왕관을 인수했다. 왕관은 헝가리의 쾨세그(Kőszeg)에서 시작해서 헝가리의 벨렘(Velem), 오스트리아의 마리아첼(Mariazell), 오스트리아의 마트제(Mattsee), 다시 헝가리의 쾨세그, 서독의 아우크스부르크 등을 거쳤다. 이 여정 동안 왕관은 보호를 위해 수차례 땅에 묻히고 파내지고를 반복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헝가리 영토에는 소련군이 승전군으로 진주하였고 소련의 위성국인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그런데 만약 미국이 공산주의 국가인 신생 헝가리 인민 공화국에 헝가리 국권의 상징인 본 왕관을 그대로 반환한다면 직접적으로는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정당성 및 역사적 정통성과 공산정권이 합법정부임을 상징적으로 인정하는 것이고 간접적으로는 소련이 헝가리에 행사하는 영향력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격이 된다. 냉전이 막 시작된 시기였던지라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던 미국은 본 왕관을 헝가리에 돌려주지 않고 켄터키의 포트 녹스에 약 25년가량(1953년에서 1978년까지) 보관했다.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박물관에 전시한 것이 아니라 미국 연방정부가 보유하는 금을 보관하는 곳으로 유명한 포트 녹스에 엄중하게 보관했다는 점에서 미국도 성 이슈트반 왕관의 역사적 중요성과 상징성을 충분히 인식했던 듯하다.
냉전 기간 동안 헝가리인들은 소련의 말을 고분고분하게 듣지 않고 중립화와 개방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하면서 직간접적으로 반발했다. 이를테면 1956년 헝가리 혁명 등의 직접적인 반발이 있었으며 혁명이 소련군에 의해 좌절됐음에도 조심스럽게 개혁개방을 꾸준히 추진하면서 계속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고 했다.[4]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이러한 행보가 유효했는지 미국의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헝가리와의 관계 개선 및 동구권에서의 영향력 확보를 위해 대표단을 파견했고 헝가리 국민의회에서 미국 대표단이 성 이슈트반 왕관을 전달함으로써 1978년 1월 6일을 기해 본 왕관은 헝가리에 공식적으로 반환됐다.[5] 이에 헝가리 본토 국민들은 당연하게도 왕관의 반환을 대단히 기뻐했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반공 성향의 헝가리계 미국인들은 크게 반발했다고 하며[6] 반환을 추진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은 미국에서 '빨갱이' 소리를 듣고 반공 성향 민주당 지지층들까지 이탈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성 이슈트반 왕관 반환은 카터가 재선에 실패한 한 가지 원인으로 꼽힌다.
1978년 헝가리로 반환된 왕관은 약 20년간 헝가리 국립 박물관에 전시되다가 2000년 1월 1일 헝가리 국회의사당으로 옮겨졌으며 이후에는 계속 헝가리 국회의사당에서 헝가리 국권을 상징하는 유물로서 보관, 전시된다.
2.2. 제원과 특징
성 이슈트반 왕관은 약 2kg에 달하는 금과 은의 합금으로 이루어졌고 그 너비는 20.39cm이며 길이는 21.59cm이다.사실 본 왕관의 구체적인 기원은 불명확하다. 다만 왕관의 부분마다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양식이 나타나기 때문에 이 왕관은 여러가지 부속이 합쳐져 만들어졌다고 여겨진다. 크게 나눠 그리스 양식과 라틴 양식의 부속이 결합되었으며 그 외에도 출처가 서로 다른 여러 부속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덧붙여졌다고 추정한다.
왕관의 링 부분은 명백히 후기 동로마 제국 양식이다. 정확히는 동로마 제국 양식 중에서도 초기에 주로 쓰인 링 형태의 제관 양식이다. 여기에 그려진 이콘(성화)들은 대부분이 (혹은 전부) 동로마 황제 미하일 7세가 헝가리 왕 게저 1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이는 왕관의 뒤쪽에 미하일 7세, 당시의 동로마 공동황제였던 미하일 7세의 형제 혹은 미하일 7세의 황자로 추정되는 인물, 그리고 게저 1세가 그려졌으므로 확실시된다.
다른 동로마산 부속으로는 정확히 어느 부분인지는 알 수 없으나 12세기 말 헝가리 국왕 벨러 3세가 동로마 제국으로부터 전해 받은 것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왕관 하단의 금 체인으로 보석 장식이 매달려 있는 것도 전형적인 동로마 제관/왕관 양식이다.
반면 라틴 양식의 부속들은 출처를 전혀 알 수 없다. 이 부속들의 유래에 대한 여러 전설이 있지만 교차검증이 전혀 되지 않을뿐더러 결정적으로 왕관을 보냈다는 당사자들의 기록이 없다.
유명한 전설로 칼만 왕의 요청으로 주교 하트빅이 기록한 자서전에 에스테르곰 대주교가 교황에게 요청하여 헝가리 왕국의 초대 국왕인 이슈트반 1세의 왕관을 선물했다고 서술되어 있다. 왕관을 만들고 보니 이미 폴란드 사절이 폴란드 국왕을 위한 왕관을 수여해 달라는 요청을 하러 와서 폴란드 왕관이 먼저 만들어졌는데 교황의 꿈에 미카엘 대천사가 나타나 또 다른 나라에서 왕관을 만들어 달라고 할 것이라고 말하였고 다음 날 교황이 왕관을 하나 더 만들 것을 명령하여 그것이 헝가리의 왕관이 되었다는 것이 있다. 하트빅이 남긴 기록 속 전설에는 교황이 누구였는지 나오지 않으나 13세기 헝가리 전례서들에는 교황 실베스테르 2세(999-1003 재위)였다고 언급된다. 이 전설은 서유럽 가톨릭 교회들에서 자주 회자되었는데 정작 바티칸에는 관련 기록이 전혀 나오지 않아서 교차검증이 되지 않는다.
이외에 유명한 전설은 신성 로마 제국의 오토 3세가 왕관을 선물했다는 것인데 당사자 쪽에 왕관을 선물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물론, 당대 서유럽 기록에 왕관에 대한 것이 전혀 회자되지 않아 이 전설은 확실한 위작으로 여겨진다.
그리스 양식으로 만들어진 링 부분의 성화들은 전면에는 예수와 미카엘, 가브리엘 천사로 구성된다. 뒷면에는 미하일 7세, 미하일 7세의 형제 혹은 황자, 그리고 게저 1세[7]가 그려졌다. 예수의 성화와 미하일 7세의 그림은 서로 다른 모양을 한 부속에 그렸기 때문에 미하일 7세의 그림은 원본에는 없었으나 아마도 원본이 파손되어 수리하면서[8] 교체된 모양이다. 전면과 후면 사이의 성화들은 성 데메트리오, 성 제오르지오, 성 고스마, 성 다미아노를 표현하였다.
라틴 양식으로 구성된 십자 밴드의 유래는 불명확하지만 여기에 그려진 이콘(성화)의 양식으로, 최소한 부속들의 기원을 추정할 수는 있다. 다만, 공통적으로 11세기에는 등장하지 않는 양식으로 되어 있으며 십자 밴드 자체는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 밴드의 정 중앙에는 예수의 성화가 있고 밴드의 다른 부분에는 12사도 중 8명의 성화로 장식하였다.
2.2.1. 기울어진 십자가
성 이슈트반 왕관은 이와 같이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헝가리의 국보 중 국보라고 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유물임에도 불구하고 왕관 꼭대기의 십자가가 정방향이 아니라 심히 기울어졌다. 심지어 헝가리의 국장에도 이 기울어진 십자가 장식이 반영되었다. 본래 성십자가 조각 3개가 들어간 이중 십자가 장식이었다가 대체된 듯하다.
십자가가 이렇게 기울어진 이유를 두고 여러 설이 있다.
하나는 교황청에서 이슈트반 1세의 즉위를 기념하여 왕관을 보냈으나 왕관을 담을 때 상자의 높이가 왕관보다 낮아서(혹은 잘못 넣은 상태에서 보관함을 닫을 때 실수로 너무 세게 눌러서) 약간 찌그러진 채로 온 것을 '교황 성하께서 뜻이 있으셨겠거니'하고 그냥 쓰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16세기에서 17세기 사이에 보관상 실수로 손상되었다는 것이다. '상자에 잘못 넣었다가 그만…'이라는 내용은 같은데 십자가의 둥근 정수리 부분까지 찌그러진 걸 보면 의도치 않은 파손인 건 확실해 보인다.
15세기 초 얼베르트가 죽고 폴란드 왕국 국왕 브와디스와프 3세가 헝가리 국왕 울라슬로 1세로 선출되자 이를 막으려던 얼베르트의 왕비 룩셈부르크의 엘리자베트[9]가 유복자로 태어난 아들 라슬로의 안전한 왕위 계승을 위해 궁녀에게 왕관을 훔쳐 빈으로 도주하게 했다가 왕관이 헝가리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손상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3. 기타
- 대항해시대 3에서 중동 지방의 발견물로 등장한다. 게임 내 명칭은 '성 스테판의 관'.
- 대항해시대 온라인에선 '미의 예지 전승의 리게일리어'에 포함된 발견물이다.
이슈트반 왕관처럼 관 위에 달린 십자가 장식이 휘어지는 것을 우려했는지 러시아 정교회 주교관에 붙은 십자가에는 경첩이 달려 십자가를 접을 수 있다.- 헝가리의 에스테르곰, 비셰그라드,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 성, 우크라이나 자카르파탸주의 우주호로드 성에서 성 이슈트반 왕관의 복제본을 전시하고 있는데 이중에서 우주호로드 성의 복제본이 원본에 가장 가깝다.
4. 외부 링크
- 한국어 위키백과: 성 이슈트반 왕관
- 영어 위키백과: Holy Crown of Hungary
- 헝가리어 위키백과: Szent Korona
- 헝가리어 위키백과: A Szent Korona visszaszolgáltatása az Egyesült Államokból Magyarországra
- 독일어 위키백과: Stephanskrone
[1] 여담으로 이슈트반은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스테파노의 헝가리어 명칭이다.[2] 이 기간 동안 호르티 미클로시가 섭정의 자격으로 독재를 했다. 여담으로 이 사람은 바다 없는 나라의 해군 제독이라는 괴이한 직함 또한 가지고 있었다.[3] 오로지 성 이슈트반 왕관과 여타 레갈리아들을 지키는 임무만을 맡은 근위대가 따로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4] 이와는 별개로 헝가리를 방문한 미국인을 억류하여 볼모로 잡아 미국에게서 성 이슈트반 왕관을 돌려받기 위한 꼬장을 부리기도 했다.[5] 지미 카터 대통령은 성 이슈트반 왕관 진품을 헝가리 시민들이 볼 수 있는 장소에 전시하고 헝가리 인민 공화국의 상징으로 왕관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반환을 승인했다. 성 이슈트반 왕관은 공산주의 정권의 붕괴로 수립된 헝가리 제3공화국에서 상징으로 채택되었다.[6] 저걸 헝가리 인민 공화국에 준다는건 헝가리 인민 공화국이 헝가리의 정통정부라고 인증선언하는 것이었으니[7] 왕 게저 1세가 아니라 성 이슈트반 1세의 아버지 게저를 그린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8] 신성 로마 제국에서 부속을 교체한 듯하다.[9] 전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이자 독일왕 겸 보헤미아 국왕 지기스문트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