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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동유럽 | |
수도 | 에스테르곰 세케슈페헤르바르 | |
정치체제 | 연맹 대공국 | |
국가원수 | 켄데, 줄러(대공) | |
주요 지도자 | 아르파드(895~907) | |
언어 | 핀우고르어 | |
종족 | 마자르족 | |
종교 | 머저르 종교(주신: 이스텐) 텡그리 종교 가톨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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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9세기 말에 성립하여 서기 1000년 크리스마스 혹은 1001년 1월 1일까지 존재하였던 국가로 헝가리 왕국의 전신이다.마자르 대공국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바르 칸국이 카롤루스 대제의 공격으로 9세기 초 몰락한 이후 푸스타를 중심으로 정착한 마자르족이 세운 국가로 초창기에는 계절에 따라 중심지를 이동하는 유목민 공동체 성격이 강했으나, 이후 서유럽 원정이 실패하면서 방어 차원에서 요새가 건설되고 슬라브인 원주민들을 대거 흡수, 동화시키면서 푸스타를 기반으로 한 농업 중심 국가로 거듭났다.
인구는 10세기 기준으로 25만에서 150만 명 사이 정도로 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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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판노니아 분지 정착
※ 10세기 헝가리의 침공 루트 |
머저르족은 원래 우랄 산맥 남동쪽에 거주하고 있었다가 차츰차츰 서쪽으로 이동하여 750년 이후에는 돈 강 유역에 거주하며 하자르 칸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그들이 지금의 헝가리로 들어오게 된 것은 페체네그족 때문이었다. 머저르족은 830년경에 페체네그족이 하자르 칸국으로 쳐들어오면서 드네프르 강과 드네스트르 강 사이의 지역으로 이주한 상태였다. 그런데 894년에 페체네그족들이 다시 서쪽으로 진출[2]해오자, 마자르족의 군사지도자인 줄러(Gyula, 부군주)[3] 아르파드(Árpád, 845-907, 재위 895-907)의 계획하에 판노니아 분지[4]로 이동하였다. 당시 헝가리 지역은 아바르 칸국의 몰락 이후 사실상 무주공산에 가까운 상태였는데, 서쪽의 트란스다뉴비아 지역에서는[5] 발라톤 변경백국과 판노니아 변경백국이라 불리는 현지 왕조가 지배하는 카롤링거 왕조의 샌드백(?) 비슷한 나라가 있었고, 트란실바니아 일부와 헝가리 남부 일대는 불가리아 제1제국이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었으며 상헝가리라고도 불리는 현대의 슬로바키아 지역은 당시 니트라 공국이라 불렸으며 본래 카롤링거 왕조에 복속된 현지 슬라브족 국가였으나 당대에는 대 모라비아 왕국이라는 슬로비옌인들의 국가에 정복된 상태였고, 중앙 헝가리 평원은 아바르족, 블라흐족, 게피드족, 알란족, 훈족, 그리고 먼저 이주한 극소수의 마자르족이 어지럽게 섞여 뚜렷한 패권을 확립하지 못하고 난립해 있었다. 아르파드는 이 공백을 노려 판노니아 지역으로 대규모 이주 및 침공을 감행했고, 그 결과 카롤링거 왕조가 세운 두 변경백국을 무너뜨리고 해당 지역을 차지하는데 성공했으며 기타 지역에서도 소위 헝가리 7부족이라 불리는 여러 마자르족 지도자들이 각기 현지인들을 정복하고 정착했다. 아르파드 이후 군주들은 따로 노는 이 마자르 부족장들을 모두 복속시키면서 영토를 확장했고 이는 오늘날 헝가리의 모태가 되었다. 이러한 카르파티아 분지 정복 과정을 헝가리에서는 혼포클라러시(honfoglalás)[6]라고 부르며 여전히 민족주의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초기 헝가리사를 기록한 13세기의 연대기 게스타 훙가로룸[7]에 따르면, 907년 아르파드가 사망하였으며 그의 아들 졸터(또는 졸트나 졸탄)가 즉위해 950년경까지 재위하였다고 한다. 연대기에 따르면 그는 903년 즈음에 태어났다고 하는데, 950년까지 무려 43년간 재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사학자들은 이 기록의 신빙성을 부정한다. 현대 헝가리 학자들은 졸터가 880년대에 태어나 907년을 전후해 결혼한 것으로 보며[8], 아르파드의 다른 세 아들(즉 졸터의 형들)이 아르파드 사후 왕위를 계승했다가 형제상속의 원칙[9]에 따라 형들이 모두 사망한 후 졸터가 왕위를 계승했다고 본다. 그러나 실제로 907년부터 졸터가 사망한 950년까지 얼마나 많은 수의 군주들이 헝가리를 지배했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며, 심지어 졸터가 950년에 사망했는지조차 논란의 대상이고 아닐 가능성이 높다. 한술 더떠 중세시대를 연구하는 중세학자들은 졸터가 당대 마자르족과 맞선 외국인들이 마자르족을 표현하기 위해 만든 가공인물이라고까지 주장하는데, 독일계 국가 뿐 아니라 비잔티움 제국의 기록에도 졸터가 나온 것을 근거로 이 견해가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않으나 하여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졸터가 실존인물이라는 가정 하에졸탄의 바로 후대 대공인 퍼이스를 제외한 후대 헝가리 대공 및 국왕들이 모두 졸터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사실 퍼이스도 게스타 훙가로룸에는 나와있지 않고 비잔티움 제국의 기록과 기타 연대기들에만 나와있는데, 후대에 왕권을 확립한 졸터계 군주들이 이 시기 형제상속으로 난잡해진 시대의 역사를 지우고 졸터계 왕조가 계속해서 지배했던 것처럼 꾸미기 위해 역사를 조작한 것이다. 예를 들어 비 졸터계 군주들 중 거의 유일하게 이름이 살아남은 퍼이스는 아르파드의 3남 Jutocsa의 아들이며, 턱쇼니부터는 졸터의 후예로 비 졸터계의 가계가 끊겨 졸터계가 왕위를 독점한 것으로 보이나 그 이전에는 얼마나 많은 군주들이 헝가리를 얼만큼 다스렸을지 다른 기록이 발견되지 않는 한 미궁이다.
3. 서유럽 원정 시도와 실패
10세기 초부터 머저르족은 서유럽 지역에 대한 원정을 시작하였다. 머저르족의 원정은 독자적으로 행해지기도 하고 다른 나라의 용병으로서 행해지기도 하였는데, 그들의 원정 범위는 북으로는 발트해, 서로는 도버 해협, 서남으로는 이베리아 반도 중부, 남으로는 이탈리아 남단, 동남으로는 보스포루스 해협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까지 이르러 유럽 거주민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하지만 955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오토 1세에게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의 레히펠트 전투에서 패한 후 헝가리는 더이상 서유럽으로의 원정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헝가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비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에, 주변의 기독교 국가들이 그것을 명분삼아 쳐들어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4. 955 ~ 997, 가톨릭으로 귀의
아르파드의 손자 턱쇼니(Taksony, 재위 955-972)와 그의 아들 게저(Géza, 940-997, 재위 972-997)는 주변국들에게 침략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 로마 교회(가톨릭)로 귀의했다. 948년에 동로마에서 주교가 파견되고 제3의 통치자(허르커)였던 불추(Bulcsú, ?-955)가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하여 세례를 받기도 했을 정도였다.그런데 동로마 제국과 관계가 밀접했던 헝가리가 콘스탄티노플 교회(정교회) 대신에 로마 교회로 귀의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955년 아우크스부르크 전투 이후 독일에게 위축되어 심리적 부담감을 느껴 서방교회로 귀의하였다는 것이 통설이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기독교는 군주의 권위를 부각시키는 것이 목적이었지 진정한 기독교 개종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5. 헝가리 왕국 으로 계승
게저의 뒤를 이은 이슈트반 1세(István I, 975~1038, 재위 997~1038)는 1000년에 로마 교회와 독일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부터 왕의 칭호를 받아 최초의 헝가리 국왕으로 즉위하여 헝가리 왕국을 건립하였다. 이슈트반 1세는 헝가리에 기독교를 확고하게 뿌리내리는 정책을 폈는데, 즉위 이전에 이미 건립된 베스프렘(Veszprém) 대주교좌 외에 10개의 주교좌를 건립하였으며, 행정단위인 주 조직에 맞춰서 수석 사제들을 파견해 각 주 내에서 교회조직을 통괄하게 했다. 또 지금의 펀논헐머(Pannonhalma)에 수도원이 건설되어, 처음으로 헝가리인 수도자가 양성되기도 했다. 또 각 지역의 촌락 10곳당 교회 1채씩을 건설했으며, 그 교회의 유지를 위해 공물과 노역을 제공하도록 했고, 또 십일조와 주일 미사 참여를 의무화하는 조치들을 법적으로 규정하였다.6. 역대 대공
- 아르파드(? - 907, 재위기간: 895년 ~ 907년)
- 졸탄(Zoltán, 재위기간: 907년 ~ 947년)
- 퍼이스(Fajsz, 재위기간: 947년 ~ 955년)
- 턱쇼니(Taksony, 재위기간: 955년 ~ 972년)
- 게저(Géza, 재위기간: 972년 ~ 997년)
- 이슈트반 1세: 재위기간은 997년 ~ 1000년. 1000년에 헝가리 왕국의 왕이 된다.
7. 출처
- 이정희, 『동유럽사』 (대한교과서주식회사, 2005)
- 존 J. 노리치, 남경태ㆍ이동진 역, 『종횡무진 동로마사』 (그린비, 2000)
- 이상협, 『헝가리史』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96)
[1] 아바르족, 슬라브족, 훈족 기타 등등[2]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는데, 동로마 제국이 머저르족과 동맹을 맺고 제1차 불가리아 제국의 후방을 공격하자 당시 불가리아의 군주였던 시메온 1세(Симеон I, 재위 893–927)가 페체네그족과 동맹을 맺고 그들로 하여금 머저르족을 공격하게 한 것이다.[3] 머저르족은 하자르족의 체제를 받아들여 이중군주체제를 갖추고 있었는데, 종교지도자에서 유래한 제1의 군주인 켄데(Kende), 군사지도자인 제2의 군주 줄러(Gyula)가 함께 다스리는 체제였다. 그 밑에 행정을 담당하는 허르커(Harka)까지 포함하여 삼중군주체제로 보기도 한다.[4] 지금의 헝가리를 중심으로 한 동유럽-중유럽의 평원. 우랄계통의 머저르족들이 이곳에 거주하기 전에는 '판노니아족'과 '일리리아인'(판노니아족과 일리리아인 모두 아드리아 해에서부터 동유럽, 중부유럽 평원에 걸쳐 산 인도유럽어계통의 민족. 남슬라브족들에게 동화됨), '슬라브족'과 '판노니아로 이주해온 소수의 라틴인', '게르만계 부족'들이 거주했었다.[5] 현대 행정구역 기준 죄르, 세케슈페헤르바르, 페치[6] 국토 정복이라는 뜻이다.[7] Gesta Hungarorum. 굳이 번역하자면 헝가리 성인전 정도 된다. 전통적 견해에 따르면 헝가리 왕실에서 편찬된 사서의 성격을 띄나 현대적 견해에 따르면 익명의 저자가 편찬한 개별적 기록이다.[8] 심지어 이 결혼의 존재도 부정하고 대모라비아 왕국의 몰락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일 뿐이라는 급진적인 견해도 있다. 모라비아가 멸망한 년도가 907년이기 때문이다.[9] 이시기 헝가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목민이나 부족들은 형제상속을 따랐다. 특이한 사례로 신롬에 가입해 봉건제로 전환되고도 한참동안 형제상속을 유지한 프르셰미슬 왕조 보헤미아의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