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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 인민공화국 Magyar Népköztársaság Első Magyar Köztársaság | |||||
| | ||||
국기 | 국장 | ||||
| |||||
1918년 10월 31일 ~ 1919년 3월 21일 | |||||
성립 이전 | 멸망 이후 |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성 이슈트반 왕관령 | 헝가리 평의회 공화국 | ||||
국가 | Himnusz(찬가) | ||||
위치 | 동유럽 | ||||
수도 | 부다페스트 | ||||
정치체제 | 공화정 | ||||
언어 | 헝가리어 | ||||
민족 | 헝가리인 |
1. 개요
Első Magyar Köztársaság. 1918년부터 1919년까지 헝가리 지역에 짧게 존속했던 공화국.2. 역사
이중제국 체제하의 헝가리 왕국은 제 1차 세계대전 말 서서히 붕괴되가고 있었다. 전쟁은 패색이 짙어가고 있었으며, 전국 각지의 여러 민족들이 독립을 요구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 카를1세는 제국의 멸망을 막고자 1918년 10월 16일, 국민 선언문을 발표하여 각 민족들에게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하여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연방 국가로 재편하겠다고 선언하였으나 이러한 선언은 아무 의미 없었다. 오히려 이 선언은 이중 제국의 일원인 헝가리 왕국으로 하여금, 제국이 붕괴하고 있음을 인식하게 하여 헝가리 왕국이 이중 제국으로부터 분리되고자 결심하는 계기가 되었다.국민 선언문이 발표되자, 베케를레 샨도르 제3정부는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간 의 대타협을 폐지하고 동군연합만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하여 사실상, 헝가리 왕국을 이중 제국의 일원에서 독립국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베케를레 샨도르 제3정부는 카를 1세의 지명으로 구성된 왕정 친화적인 내각이었기에 헝가리 민중은 배케를레 내각에 여전히 적대적이었고, 동시에 애초부터 전쟁을 반대했던 의원인 카로이 미하이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내각의 구성을 원하는 국민 의회가 조직되고 있었다. 그들은 헝가리만의 완전한 독립국을 원하였다.
결국, 압박에 못이긴 베케를레 내각은 총사퇴하였고, 카를 1세는 왕정의 유지를 위해 허디크 야노시를 차기 총리로 임명하였다. 허디크 야노시는 군주제 지지자였다. 카를 1세의 허디크 야노시 총리 임명은 카를 1세가 여전히 헝가리 왕국에 왕권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으로 비춰졌으며 나아가 대타협을 부정하는 것으로 헝가리 민중들에게 인식되어 강한 반발이 일어났고 이는 본격적인 과꽃 혁명으로 이어졌다.
혁명으로 인해 허디크 야노시 총리는 하루도 사임을 표명하였으며, 이후 카를 1세는 카로이 미아히를 차기 총리로 임명하여 헝가리 민중의 뜻과 대타협 폐지 선언을 암묵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카로이 미하이 인민 정부는 수립 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의 완전한 분리를 선언하고 이후 공화국임을 선언하였다. 이어 곧 민주적인 선거법, 토지개혁의 실시를 비롯한 각종 정책이 발표되었고, 국내적으로는 공산당에서 극우파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당이 결성되었다.
하지만, 인민 정부는 국가를 안정적으로 통치하지 못했다. 내각은 극좌 · 극우파를 동시에 억압하면서 정치 상황을 안정시키려고 했으나, 부다페스트의 실업자들이 일으킨 대규모 시위를 막지 못하였다. 또한, 약속한 토지 개혁의 실시는 그 복잡한 절차 때문에 효과적인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농촌의 농민들은 폭력으로 대토지를 몰수하였고, 도시에서는 노동자가 공장을 점거하기 시작하였다.
인민 정부는 11월 13일, 프랑스의 주도로 베오그라드 휴전 협정을 통해 연합국과의 전쟁을 끝내었으며 프랑스로부터 특정 경계선까지(위 이미지 내 선 참고)의 헝가리 영토의 보전을 보장받고 헝가리군의 무장 해제를 진행하였다. 그러나 이는 헝가리가 가장 약하고 혼란스러울 때 자기 방어권을 잃는 최악의 수로 작용하였다. 결국 이는 헝가리의 영토를 노린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세르비아의 프랑스의 묵인 하에 이루어진 침공으로 이어졌고 곧 빅스 서한의 강요를 통해 문서화되었다. 빅스 서한의 강요는 민족적 자존심이 상한 헝가리의 극좌파가 혁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볼셰비즘을 헝가리에 실현시키려는 혁명의 무리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국민 의회의 중심 세력은 헝가리 사회민주당이었다. 사회민주당은 공산당과 협의하여 혁명 러시아와 외교적 협상을 벌이기로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혁명 러시아와 동맹 관계를 맺고 혁명 정권으로서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하였다. 헝가리 공화국은 무장해제로 인해 혁명을 막을 힘이 없었고 결국 혁명 정권에 의해 무너지게 되었다.
쿤 벨러(Kun Béla)는 전권을 쥐고 적군(赤軍)을 창설하고 경찰과 적위대를 조직하였다. 또, 20명 이상의 노동자를 고용한 기업은 모두 국유화되고 금융 기관, 교육 기관도 국유화되었다. 그러나 쿤 정권의 과격한 정책은 토지개혁 부문에서 농민의 반발을 사게 되었다. 처음부터 사회주의적 집단 농장의 건설을 목표로 한 공산 정부는 토지를 농민에게 재분배하지 않았다. 토지를 갈망하던 농민은 신정권에 대한 기대를 점차 포기하였다.
그런 한편, 1919년 4월에 국외적으로는 헝가리 혁명 정권을 위협으로 판단한 루마니아 왕국과 체코슬로바키아가 헝가리에 공격을 개시하였다. 위기 상황의 도래로 헝가리인의 민족 의식이 크게 고조되어 적군의 지원병이 배로 증가하였다. 적군의 반격은 특히 체코슬로바키아군과의 싸움에서 큰 승리를 가져와 협상국 측이 회담을 제의하게 되었다. 협상국은 티서(Tisza)강 이동(以東)에 점령하고 있던 루마니아군과, 슬로바키아를 점령하고 있던 헝가리군의 상호 철수를 제안하여 쿤 정권은 이 제안을 수락하였다. 쿤 정권의 적군(赤軍)이 슬로바키아에서 철수했으나, 루마니아군은 철수에 동의하지 않고 티서강을 넘어 다시 공격했다. 이로써 적군의 사기는 크게 저하하였고, 협상국이 쿤 정권과의 교섭을 거부하고 헝가리 농민이 냉담하여 쿤 정부는 붕괴하였다.
이후 국정 주도권을 장악한 헝가리 보수파들의 권력은 군대를 통솔하는 호르티에게로 집중되었고, 이들 극우파는 반혁명 정권을 수립하여 1920년 초에는 헝가리 전 영토에 극우파의 영향력을 행사하며, 협상국으로부터 합법적 정부로 인정받으려 하였다. 협상국은 이들 반혁명주의자들에게 헝가리 전국을 이양하기를 주저하고 민주적 선거를 실시하여 임시 정부의 수립을 주장하였다. 한편 쿤 정권을 무너뜨린 루마니아 군은 협상국의 조언에 따라 티서 강 아래로 철수하였다.
쿤 정권의 붕괴 이후 헝가리 임시 정부는 내부적으로 공산주의 세력의 탄압을 진행하였다. 후자르 카로이(sárvári Huszár Károly)를 임시 대통령으로 하는 임시 정부는 곧 사민당과 노조에게 반기를 들어 수천 명의 혁명주의자를 투옥시켰다. 이에 사민당은 선거 참여를 포기하고 정부에서 대표를 철수시키고 말았다. 이리하여 1920년 1월 선거는 자유 선거이기는 하였으나, 전 국민을 대표하는 의회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그중 다수파는 보수적 기독교 민족 통일당(Christian National Union)과 소지주당(小地主黨, Small - Holders')이었다. 그와 통일 농민당(United Agrarian)은 전쟁 이전부터 호민관이었던 샤보 이슈트반(nagyatádi Szabó István)에 의해 조직되어 소농의 이익을 대변하였으며, 특히 토지 개혁을 요구하긴 하였으나 이 당 역시 농업 프롤레타리아의 대표는 포함시키지 않았다.
1920년 봄에 반혁명 임시 정권은 무한한 과제를 안고 정권 이양 작업에 착수하였다. 헝가리에서 일어난 전쟁과 두 차례의 혁명은 헝가리에게 큰 재앙을 가져다 주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손실은 왕국의 붕괴와, 헝가리의 분할로 생겨난 경제적 탈구 현상이었다. 산업 실업자는 급증하였으며, 자본은 볼셰비즘 대두 이래 고갈되어 버렸다. 1921년의 국가 자본은 1910년의 2%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며, 보유고는 4%를 넘지 못하였다. 통화 팽창은 급격하. 산업력의 저하는 곧 농업 생산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헝가리의 민중은 헝가리의 재앙의 원인을 혁명의 탓으로 돌리며 혁명을 비난하였다. 새 의회는 카로이 미하이 정부나 쿤 벨러 정부가 시행한 모든 정책을 무효화하였다. 또한 양 혁명에서 주축이 되었던 유대인에 대해서 강한 적대감을 표시하였다.
헝가리의 분할 이후 모국으로 강제 귀국한 국민은 대부분 중산층들로서 그들의 생활상은 고용된 노동자보다 비참하였다. 이들은 좌 · 우 세력의 분열에서 우파에 가담하면서 전통적이고 과격한 민족적인 입장을 고수하였다. 이 중산층이 바로 백군 테러의 장본인들로서 과격한 변화를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사회적 불안과 분열은 격심해져 갔으며 헝가리 보수파들은 전통적 질서의 회복를 위해 헝가리 왕국의 복구를 결심하고 이후 헝가리 왕국을 선언하지만 국내외적 현실로 인해 마땅한 국왕을 선출할 수 없어, 섭정이 왕국을 통치하는 기이한 형태의 왕국으로 변모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