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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略帽 (りゃくぼう)
略式制帽 (りゃくしきせいぼう)
1. 개요
구 일본군에서 사용되었던 전투모의 일종. 개리슨 모의 파생형 중 하나다.[1]일본 군도와 함께, 구 일본군을 상징하는 물품이기도 하다.
2. 상세
원래 일본 육군은 자신들에게 큰 영향을 준 프로이센군처럼 정모를 병/간부 가릴 것 없이 사용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심화되면서 전선이 격렬해지자, 값도 비교적 비싸고 지속적인 관리[2] 또한 필요한 정모는 여러모로 불편하다는 평을 받아왔다. 마침 더운 남중국 전선에 맞는 98식 군복을 보급하려던 일본 군부는 겸사해서 해당 계획에 새로운 전투모 개발도 끼워넣었다.
개발 자체는 당시 압도적인 휴대성 덕분에 여러나라에서 앞다투어 도입했던 개리슨 모를 적극 참고했다. 그 때문에 1938년부터 보급된 초기 국민모는 위 사진처럼 개리슨 모 특유의 보강천이 보인다. 보강천은 이후 생산분부터 단가 절약을 위해 생략된다. 윗부분 또한 게리슨 모처럼 움푹 패인 형상이었다가, 후기형에는 평평하게 펴져서 보급된다.
1940년대부터 일본은 물자 절약을 위해서 자국의 남성들에게 국민복을 입도록 장려했는데, 군용이었던 국민모 또한 여기에 포함되어 민간용으로도 제법 쓰이게 된다. 애초에 국민모란 이름 자체도 국민복과 세트로 불린 이름으로, 일본군 내에선 그냥 군모라 불렸다.
태평양 전쟁 때는 작전 지역 기후가 워낙 덥다 보니 이렇게 드림(帽垂れ布)을 달아 목이나 후두부, 뺨 부분의 햇빛도 가리게 했다. 제법 햇빛 가려주는 효과가 있었는지 당시 일본군 장병들은 이 모자를 쓴 채 90식 철모를 쓰기도 했다. 그게 바로 2차 대전기 일본군 하면 생각나는 드림 달린 철모다.
육군의 요구로 탄생했으나, 작업모로서의 편리함 덕에 일본 해군도 받아들여서 애용했다. 황토색으로 통일된 육군용과 달리, 해군용은 3가지 색상이 있었다. 동계 정복에는 남청색 버전, 하계 정복이나 작업복 착용시에는 하얀색 국민모를 착용했다. 그리고 육상 작전 때는 녹색이 살짝 섞인 카키색 국민모를 착용했다. 해군용 국민모는 정면에 육군의 별이 아닌, 일본 해군의 상징인 닻과 벚꽃 문양이 부착되어 있어 구분이 쉽다.
전후 자위대 또한 사용했으나, 1980년대부터 패트롤캡으로 교체했다.
| 국민모를 착용한 오사카 경찰 |
3. 기타
우연의 일치인지 같은 추축국이던 나치 독일에서도 개리슨 모에 챙이 달린 형태의 M43 야전모를 사용했다. 다만 개리슨 모의 파생형이라 할 수 있는 국민모와 달리, M43은 참고만 했을 뿐이지, 원래는 개리슨 모와 상관이 없던 모자였다.1940년대에는 성인 남성이라면 반드시 외출시 모자를 착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드레스 코드였었는데, 전후 일본이나 광복 후 조선에서는 전시체제와 일제 수탈로 인한 물자부족 때문에 신사모를 구하기 힘들어 많은 남성들이 꿩 대신 닭으로 외출할 때마다 국민모를 쓰고 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런 모습들은 1940년대 내내 유지되다가 일본에서는 경제재건이 이루어지는, 한국에서는 한국전쟁으로 들어온 잉여 미군 전투복이나 양복지가 시중에 다량으로 풀리는 195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자취를 감추었다.
현대의 스냅백이나 야구 모자처럼 뒤쪽에 넓이를 조절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다만 버클 및 스냅 단추나 벨크로를 사용하는 현대의 캡 모자와 달리, 베레모처럼 끈으로 조이는 방식이었다.
4. 매체에서
1940년대의 구 일본군을 묘사한 매체에선 반드시 등장한다. 다만 워낙 일본군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기에, 40년대 이전의 일본군을 묘사할 때도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예시로 중국 영화 800이 있는데, 작중 배경은 보급 1년 전인 1937년임에도 일본군들이 당당하게 후기형을 쓰고 나온다.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 케로로를 비롯한 케론인들이 쓰고 다니는 모자가 이 국민모를 만화적 그림체로 그린 것이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은하 제국군 장교가 쓰는 모자는 이 국민모를 바탕으로 디자인되었다[3]. 애초에 은하 제국군, 그중에서도 특히 은하 제국 해군은 그 자체가 일본 해군을 모티브로 하기에 생긴 관련성이다.
벼랑 위의 포뇨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남자아이 소스케의 아빠인 '코이치'도 이 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영화에서 코이치는 선장으로 등장하는데, 일본 상선사관들 역시 국민모를 쓰고 다니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야인시대에도 시대 배경상 엑스트라들이 자주 쓰고 나왔다. 다만 6.25 전쟁을 기점으로 등장 빈도가 급격히 줄어들더니[4], 김두한이 국회의원이 된 시점에서 찾아볼 수 없다. 이는 고증으로, 기타 항목에서도 서술했듯이 국민모는 1950년대부턴 국내에선 사실상 퇴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