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22:15:31

데이비드 테넌트

<colbgcolor=#000><colcolor=#fff> 데이비드 테넌트
David Tennant
파일:DT 프로필 2023.jpg
본명 데이비드 테넌트[1]
David Tennant
출생 1971년 4월 18일 ([age(1971-04-18)]세)

[[스코틀랜드|]][[틀:국기|]][[틀:국기|]] 웨스트로디언 주 배스게이트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5cm
학력 스코틀랜드 왕립 예술학교 (학사, 명예박사)[2]
직업 배우, 성우, 내레이터, 프로듀서
데뷔 1987년
부모 아버지 알렉산더 '샌디' 맥도널드
어머니 헬렌 맥도널드
배우자 조지아 모펫(2011.12.30 결혼~현재)[3]
자녀 장남 타이 테넌트(2002년생)[4]
장녀 올리브 테넌트(2011년생)
차남 월프레드 테넌트(2013년생)
차녀 도리스 테넌트(2015년생)
삼녀 버디 테넌트(2019년생)
서명 파일:David_tennant_sign.jpg
링크 파일:IMDb 로고.svg

1. 개요2. 위상3. 생애
3.1. 어린 시절3.2. 신인 ~ 2004년3.3. 2005 ~ 2009년3.4. 2010 ~ 현재
4. 정치 성향5. 사생활6. 사건사고
6.1. TERF·케미 베이드녹 비판·갈등
7. 출연 작품8. 기타
8.1. 닥터후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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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스코틀랜드배우 겸 성우.[5]

2. 위상

We've just got to say it, he is the greatest Shakespearean actor of his generation.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그는 당대 최고의 셰익스피어 배우다.
2023년 《맥베스》 BBC 평론[6]
명실상부한 《닥터후》의 아이콘이자 《브로드처치》, 《멋진 징조들》 등의 드라마로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자랑하며 오늘날 영국 텔레비전 산업의 간판 스타로 평가된다. # 또한 《햄릿》, 《헛소동》, 《리처드 2세》, 《맥베스》 등의 셰익스피어 무대로 평단의 찬사를 받았다. 상기한 문장은 주관적 서술이 아닌 2024년 영국 영화 아카데미의 소개다.[7]

2008년 "당대 최고의 햄릿"이라고 극찬받은 이래 지금은 위와 같이 현시대를 대표하는 셰익스피어 배우로 일컬어진다.[8] 영국 정론지 더 가디언은 "연극의 역사가 만들어지는 과정(theatrical history in the making)을 볼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고 평가한 바 있으며, 인디펜던트는 역사적인 5대 극으로 1963년 피터 홀 · 존 바튼 · 클리포드 윌리엄스가 공동 연출한 《장미 전쟁》, 1970년 피터 브룩의 《한여름 밤의 꿈》, 1971년 홀과 해롤드 핀터가 공동 연출한 《옛 시절》, 1976년 트레버 넌의 뮤지컬 《실수연발》과 함께 2008년 그레고리 도란이 연출한 테넌트 주연의 《햄릿》을 선정했다.# RSC 역시 50주년을 기념하며 자체적으로 선정한 6대 연극 중 햄릿의 대표를 테넌트로 지목했다.#

영국 우편국이 발행하는 기념우표에 그가 10대 닥터햄릿으로 나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참고로 이 기념우표에는 왕실을 제외하면 세계적으로 국격을 드높인 인물만 실린다. 2024년 현재까지도 두 번 이상 치하된 배우는 찰리 채플린, 비비안 리와 테넌트 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가 왜 '국민 배우'로 불리는지 확인할 수 있다.[9]

이렇다 보니 2010년부터 꾸준히 왕실로부터 작위 수여를 거절했다는 루머가 나왔다. 최상급 서훈을 제외하고는 국민들이 청원서를 접수하고 그 안에서 후보자를 결정하는데, 2008년부터 OBE 청원이 계속해서 들어갔고 《브로드처치》 이후로는 CBE 자격도 넉넉하기 때문이다.[10] 게다가 영국 정부도 이런 공적을 인지하고 있음을 위의 기념우표 사례와 백악관 국빈만찬 초대[11] 등으로 여러 차례 표현했다 보니, 왕실은 훈장을 수훈했는데 테넌트 쪽에서 거절한 것 같다는 타당한 추측이 퍼졌다.[12] 테넌트가 일언반구 없으니 단정할 수는 없지만 그가 오랜 세월 노동당을 지지한 스코틀랜드인이라는 점[13], 평소에도 토크쇼에 나와 수구주의를 거침없이 비판해왔다는 점, 2022년 배우자 조지아가 거절 루머를 간접 긍정한 SNS 등을 근거로 현재는 현지팬들에게 거의 정설(?)로 통하는 중이다.

3. 생애

3.1. 어린 시절

본래 이름은 데이비드 존 맥도널드(David John McDonald).[14] 스코틀랜드 웨스트로디언 주 배스게이트에서 동네 목사 아버지[15]아일랜드계 2세대인 어머니 밑에서 삼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연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계기는 무려 3살 때 《닥터후》를 보고 반해서라고 한다. 또 남매들과 나이 차가 꽤 나서[16] 어렸을 때 주로 혼자 놀다보니, 스스로 역할극을 하면서 연기에 자연히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아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를 바랐지만 열망이 강해서 막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페이즐리 중등학교에 진학한 그는 11살 무렵부터 연기를 배우기 위해 스코틀랜드 왕립 예술학교의 토요 아침 특강을 듣는다. 선생으로 참여한 여배우 이디스 맥아더가 재능을 알아보고, 부모에게 그가 배우로써 성공할 자질이 있다고 설득했다고 한다. 이후 테넌트는 16살에 글래스고 보건국에서 제작한 공익 드라마로 데뷔하고[17] 같은 해 예술학교에 조기입학한다.[18]

영국 배우조합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동명이인 등록금지 규정[19] 때문에 본명을 사용할 수 없게 되자 '데이비드 테넌트'라는 예명을 짓는다. 남들이 자신을 부르는 이름은 바꾸고 싶지 않아 '맥도널드'라는 성을 바꾸자고 결심했는데,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아 당시 즐겨 읽던 음악 잡지를 뒤지다가 펫 샵 보이즈의 '닐 테넌트'의 성을 차용했다고 한다.

3.2. 신인 ~ 2004년

파일:DT_Takin' Over The Asylum.jpg
드라마 《Takin' Over The Asylum》 (1994)

공식적인 배우로써 처음 출연한 작품은 17살에 출연한 드라마 《Dramarama》. 예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던디 지역 극장에서 연극 활동을 주로 하며 시트콤 《Rab C Nesbitt》에서 트랜스여성 바메이드 '다비나' 역으로 출연한다. 이후 1994년 BBC 스코틀랜드 드라마 《Takin' Over The Asylum》에서 양극성 장애를 앓는 소년 '캠벨 베인' 역을 맡은 것이 첫 주연이었다. 이 작품이 영국 TV 아카데미 작품상을 타면서 스코틀랜드의 코미디언이자 극작가 아라벨라 위어의 눈에 든다. 업계에 연줄이 없지만 재능이 있는 동향의 무명 배우를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위어는 테넌트가 런던에 있는 자기 집에서 하숙 생활을 할 것을 제안한다.[20]

런던 생활을 막 시작한 테넌트가 단역으로 출연한 영화 중 하나가 《Jude》였다. 공교롭게도 이후 9대 닥터 역을 맡게 되는 크리스토퍼 에클스턴이 주연으로 나오며, 테넌트는 여기서 주인공에게 시비를 거는 술취한 대학생 역이다. 1995년에는 연극 《What the Butler Saw》로 영국 국립 극장(Royal National Theatre)에 처음 섰다. 이때 무대 위에서 나체로 연기하는 배역을 맡아서 이후 《닥터후》로 유명세를 얻고 난 뒤 다른 의미로 재발굴(...)되기도 했다.[21]

얼마 지나지 않아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Royal Shakespeare Company, 통칭 RSC)에 입단한 그는 《뜻대로 하세요》의 어릿광대 '터치스톤' 역으로 처음 셰익스피어 무대에 오른다. 의외일지도 모르지만 당시만 해도 테넌트는 "그의 깡마른 너드 같은 외모가 로맨틱 리드를 맡기에는 부적격하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에[22] 코미디 특화로 커리어를 쌓았다. 말단을 벗어나 조연이 되었을 때도 슬랩스틱 코미디의 원류로 불리는 셰익스피어의 초기 희극 《실수 연발》에서 '시라쿠사의 안티폴루스' 역을, 리처드 셰리든의 매너 코미디[23] 《The Rivals》에서 '캡틴 잭 앱솔루트' 역으로 출연하는 등 어릿광대의 이미지가 강했다.
파일:DT_Romeo.jpg
<rowcolor=#fff>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 (2000)
이렇다 보니 2000년 연출가 마이클 보이드가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연 로미오로 발탁했을 때는 대단히 파격적인 배우 선택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 평론가한테는 "테넌트가 훌륭한 희극 배우(comic actor)임에는 틀림없지만 여배우와 케미스트리가 없고 비극을 소화하기에는 어색한 인상(Cooter, 2000)"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물론 지금보면 희대의 망언이지만, 2005년 이후 스타덤에 오르고 나서도 인터뷰에서 종종 자신은 '잘 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주인공 스타일'이 아닌데 카사노바10대 닥터 역으로 여론이 변한 게 신기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대중의 인식과 다르게 테넌트는 평단에서 지금도 정석적인 주연 남배우 스타일이 아니라 '성격파 배우로서 주연으로 성공한 희귀 사례'로 분류된다.

한편 BBC 라디오에서 1993년부터 전문 성우내레이터 경력을 쌓았다. 국내 팬들이 자주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테넌트의 성우/내레이터 경력은 2024년 현재 영화 아카데미와 같은 공적인 행사에서 그를 소개할 때 텔레비전 · 연극과 함께 라디오를 언급해줄 만큼 세월이 깊고 방대한 성과다.[24] 셰익스피어 희곡을 오디오 드라마로 옮기는 '아크엔젤 시리즈(Arkangel Shakespeare)'에도 1998년부터 꾸준히 참여했다.[25] 2001년에는 BBC Radio 4 채널에서 《헛소동》의 '베네딕' 역을, 빅 피니시 프로덕션에서는 《닥터후: 콜디츠》라는 오디오 드라마에 작은 단역을 연기했는데[26] 공교롭게도 이 둘은 이후 더 큰 인연으로 돌아온 작품이 되었다.

2002년 케네스 로너건의 희곡 《Lobby Hero》에서 주인공 '제프' 역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로런스 올리비에상[27] 남우주연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다. 이때 마틴 맥도나 감독의 눈에 들어 희곡 《필로우맨》의 주인공 '카투리안'으로 발탁되고, 2003년 전세계 초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런던의 영화 및 방송 산업 관계자들에게 드디어 주목받기 시작한다. 스티븐 프라이가 제작한 영화 《Bright Young Things》를 필두로 2003년부터 대중적인 작품에 출연하기 시작한 이유가 이래서다. 2004년에는 영화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 '바티미어스 크라우치 2세'로 캐스팅되었으며, BBC 드라마 《블랙풀》에서는 주인공을 맡은 데이비드 모리시의 반대 역 '피터 칼라일 경위'로 출연한다.

《해리 포터와 불의 잔》 촬영 당시만 해도 무명에 단역으로 캐스팅된 거라 촬영장에서는 제대로 된 의자도 없는 신세였다.[28] 2005년 개봉 당시 레드 카펫에서도 《닥터후》에 캐스팅 되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아직 차기 닥터로 인지도를 얻기 전이라,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 중에는 '카사노바'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았다. 테넌트에게 그닥 관심없는 인터뷰어와 짧게 대화를 나누며 이때가 아니면 언제 이렇게 군중이 밀집해 있는 행사를 구경할 수 있겠냐고 들떠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몇 개월 뒤, 누구도 상상 못한 방식으로 모든 것이 바뀐다.

3.3. 2005 ~ 2009년

2003년 BBC 웨일스의 드라마 부서장이 된 줄리 가드너는 러셀 T. 데이비스와 1989년 종영되었던 《닥터후》의 부활을 기획한다. 이때 BBC 웨일스와의 계약 조건 일환으로 러셀은 시대극 《카사노바》도 함께 준비하게 되는데, 정작 극의 주인공인 '젊은 자코모 카사노바' 역에 만족스러운 배우가 없어서 프로덕션이 난항에 빠진다. 러셀 왈, "이 역을 제대로 이해하는 배우가 없었다"고. 그러던 중 테넌트의 오디션 테이프를 보고 "내 대사를 내 상상보다 더 완벽하게 구현하는 저 배우가 누구냐"고 탄성을 지르며 발탁했다고 한다.[29] 그리고 2005년, 《카사노바》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테넌트는 하룻밤만에 혜성으로 떠오른다.[30]
파일:DT_Casanova.jpg
<rowcolor=#fff> 드라마 《카사노바》 (2005)
카사노바에서 테넌트는 억누를 수 없는 매력으로 주연의 소질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한다. (중략) 이런 진보적인 캐릭터가 탄생한 건 데이비스의 비전 덕분이지만, 이를 성공시킨 핵심은 테넌트에게 있다. 그는 기존의 카사노바가 가진 독성을 제거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수천 명의 여성들을 전적으로 동의하에 유혹할 수 있는 한 남자의 초상을 제시한다. (중략) 테넌트의 카사노바를 보고 있으면 매력의 명강연을 보는 것 같다. 그는 희곡의 재치와 시인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거부할 수 없는 마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유혹의 대가이다. 요컨대 데이비드 테넌트가 카사노바에서 보여준 연기는 매혹적인 역작(tour de force)으로, 탁월한 배우가 펼치는 기량의 범주를 확인할 수 있다.
디사이더, 회고 평론

이 드라마가 의미 깊은 필모그래피가 된 이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사실 《카사노바》는 《닥터후》 시즌 1과 바로 옆 촬영지에서 동시에 제작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러셀이 테넌트를 닥터 감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러셀 본인의 말을 옮기면 "나에게 그는 자연스럽게 닥터의 이미지와 겹쳐졌고, 그건 줄리도 동의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테넌트는 오디션을 보지 않고 제작진에게 닥터 역을 제안받는다.

여러 인터뷰와 회고록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러셀은 테넌트가 자신 못지 않게 어마어마한 후비안이라는 사실을 《카사노바》 촬영장에서 대화를 나누며 알았다고 한다.[31] 한편 테넌트는 러셀에게 '고무 모형 속에 들어가서 아무도 못 알아보는 외계인이어도 좋으니 닥터후에 출연시켜달라'고 졸랐는데 그때마다 러셀의 반응이 이상하게 미적지근해서 자신이 뭔가를 잘못한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러셀은 이미 그때쯤 그를 다음 닥터로 생각하고 있었고, 《카사노바》 촬영이 마무리될 무렵 《닥터후》 에피소드 몇 개의 편집본을 보여줄 테니 저녁 식사를 하자고 집에 초대한다.

줄리 가드너가 동석한 자리에서 외부인으로서는 최초로 《닥터후》 시즌 1의 편집본을 본 테넌트는 엄청 신났지만, 고개를 돌리자 가드너와 러셀 두 사람이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어서 긴장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 순간 제안받은 것은 "혹시 닥터를 할 생각이 없냐"는 질문이었고, 긴장이 풀려 터진 웃음 끝에 화답한 것이 "아주 긴 코트가 있으면 좋겠다"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닥터후 프랜차이즈의 역사에서 저 말을 모르는 후비안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진 순간이 이렇게 탄생했다.

3.3.1. 닥터후

파일:external/images.amcnetworks.com/tenthdoctor.jpg
<rowcolor=#fff> 드라마 《닥터후》 (2005 ~ 2010)
데이비드 테넌트의 영향력은 닥터후가 새로운 세대에게 매력을 어필하는 데 핵심적이었다. (중략) 닥터에 대한 그의 해석은 생동감과 숨겨진 고통이 복잡하게 혼합된, 겉으로는 활기가 넘치지만 내면은 과거에 사로잡힌 인간상이었다. 테넌트의 깊이 있는 캐릭터 묘사는 청중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 드라마를 BBC 라인업의 초석으로 다시 확립시켰다.
무비웹, 회고 평론

2005년 뉴 시즌 1 피날레 〈The Parting of the Ways〉에서 처음 등장해 2010년 신년 스페셜 〈The End of Time〉으로 퇴장하기까지 테넌트가 열연한 10대 닥터는 전세계적인 《닥터후》 열풍을 일으켰다. 이 시기는 테넌트의 인생에서도 중대한 터닝 포인트였지만 닥터후 프랜차이즈에도 역사적인 황금기가 되었다.

특히 각본의 완성도부터 배우들의 연기, 영국내 시청률, 국제적인 인기까지 모든 면에서 정점을 찍었던 시즌 4 ~ 스페셜 시절은 현재까지도 클래식 시리즈와 뉴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의 전성기로 기록된다. 기네스 세계 기록에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SF 시리즈(The Most Successful Sci-fi Series of All-time)'로 등재된 것도 이때였다.

OTT 시장은 커녕 트위터, Tumblr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막 창업하던 시기에 《닥터후》가 세계적인 미디어 프랜차이즈로 성장한 것은 2010년 이후 드라마들이나 할리우드의 자본이 뒷받침된 영화 프랜차이즈와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였다. 조악한 CG가 난무하는 화면만 봐도 알겠지만 공영방송의 한계에서 오는 저예산과 열악한 제작 환경 속에서 오직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와 호소력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일구어낸 결과였기 때문이다. 쇼러너 러셀 T. 데이비스가 "영국 텔레비전 산업의 역사를 다시 썼다"는 평가를 받는 게 당연한 기념비적인 성공이었고,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시청자들을 사로잡은 테넌트의 명연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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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 기간에도 테넌트는 다른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2005년 드라마 《시크릿 스마일》에서는 사이코패스 데이트 폭력범 '브랜든' 역을 호연했고[32], 2007년 TV 영화 《리커버리》에서는 교통사고로 심각한 뇌상을 당한 환자 '앨런 해밀턴'을 열연했다.
파일:DT_Recovery.jpg
<rowcolor=#fff> TV 영화 《리커버리》 (2007)
특히 《리커버리》는 보는 사람도 힘들 정도로 고역인 모습을 완벽한 리얼리즘 연기로 묘사하여, 《닥터후》를 유치하다고 얕보던 평단에서도 "지나치게 감정적이지 않고 단지 믿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것은 훨씬 강력하다. 영화를 보고 울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감정이 없는 짐승이거나 거짓말쟁이다. 테넌트는 호프먼, 디카프리오처럼 편견을 깬 진지한 배우(Wollaston, 2007)"라는 극찬이 나왔다. 극중 배우자로 나온 새라 패리시와 워낙 뛰어난 앙상블을 보여준 만큼 《리커버리》가 정작 어떤 시상식에도 노미네이트 되지 않았을 때는 의아하다는 평이 많았다. 이후로도 2008년의 《햄릿》과 더불어 《닥터후》의 후광을 이겨내고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작품이다.

이 밖에도 2007년 BBC TV 영화 《러너스》에서는 어수룩한 운전면허 강사 '크리스' 역으로 일상적인 코미디를 선보였고, 2008년 BBC와 HBO 합작 TV 영화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에서는 앤디 서키스와 합을 맞추며 주인공 '아서 에딩턴'을 섬세한 연기로 묘사해 호평받았다. 8월부터는 후술할 《햄릿》 연극을 위해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8년 10월 26일, 《닥터후》 시즌 4에서의 연기로 영국 내셔널 텔레비전 어워드(National Television Awards, 통칭 NTA)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을 때 수상 소감으로 "시즌 4 스페셜을 마지막으로 하차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33] 후임 쇼러너 스티븐 모팻이 시즌 5까지는 계속 하는 것이 어떠냐고 권유하여 심사숙고했지만[34]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의미로 러셀후 사단과 함께 떠나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배우로서의 이미지가 닥터로 고착되는 것에 대한 염려도 있었겠으나 허리 디스크 때문에 몸 상태가 안 좋았기도 하다. 당시도 그렇고 이후로도 인터뷰에서 종종 "지금 떠나지 않으면 몇 십 년이고 혼자 닥터를 해먹는다고 욕 먹을 것 같았다"고 말하는 걸 보면 《닥터후》에 대한 애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마침내 2010년 1월 1일 〈The End of Time〉이 방영되며 테넌트는 약 4년 간의 닥터 역에 마침표를 찍는다. 그때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뉴스 기사나 후비안들의 기록을 봐도 나오지만 새해부터 초상난 것처럼 통곡하는 집안이 많았다. BBC 10시 뉴스[35]가 특정 닥터의 재생성을 특별 보도로 다룬 것은 이게 처음이었다. 해당 영상. 이후 모팻이 밝히기를 테넌트가 하차를 결정했을 때 BBC가 《닥터후》의 종영을 검토했다고 하니, 그의 인기가 어느 규모였는지 실감할 수 있다.# 다행히 러셀과 테넌트가 떠나기 전에 극구 반대해 종영되지는 않았다.

이후로도 테넌트는 《닥터후》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후임 배우들과 꾸준히 연락하는 한편, 대중에게도 감사함과 사랑을 지속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것이 이 드라마를 통해 배우자 조지아와도 만났고, 2011년에 결혼한 뒤로는 5대 닥터 역의 피터 데이비슨이 장인이 되어서(...) 《닥터후》를 통해 배우가 되겠다는 꿈부터 세계적인 명성과 평생의 가족까지 얻었다. 현재까지도 아이들과 꼬박꼬박 챙겨보고 있다고 한다.[36]

3.3.2. 햄릿

파일:DT_Hamlet.jpg
<rowcolor=#fff> 연극 《햄릿》 (2008 ~ 2009)
2008년 《닥터후》가 시즌 4를 방송을 마친 무렵[37] 테넌트는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으로 돌아갔다. 연출가 그레고리 도란이 차기 《햄릿》에서 테넌트를 주인공으로 발탁했다는[38] 특종이 나가자, 보수적인 셰익스피어 평론가들은 리허설이 시작되기 전부터 10대 닥터의 후광을 이용하려는 거냐며 조롱섞인 우려를 쏟아냈다. 그러나 개막과 동시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셰익스피어 비극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올린 이 극에서 테넌트는 "21세기 최고의 햄릿"이라는 찬사와 함께 "당대 최고의 햄릿(The Greatest Hamlet of His Generation)"이라는 격찬을 받는다.[39] 영국 정론지 텔레그래프는 "내가 본 햄릿 중 의심할 여지 없이 가장 훌륭한 공연이었으며, 특별한 용기와 카리스마를 지닌 주인공 배우가 극을 이끄는 가운데 진정한 위대함을 설득해냈다.(Spencer, 2008)"고 평했고, 가디언은 "연극의 역사를 목도할 수 있어서 운이 좋았다(McCrum, 2009)"고 상찬했다.

대중의 관심도 뜨거워 연일 매진 기록을 내는 등 굉장한 성공을 거두는데, 그간 앓고 있던 허리 디스크가 악화되어 급하게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40] 중도 하차한다. 수술 후 공연 기간 막바지에 돌아와서 재활 치료 도중에 무대에 서는 정신력을 칭찬받았지만, 결국 기준 일수가 미달되어 유력시되었던 로런스 올리비에상은 노미네이트 되지 못했다. 보통 시상식 측에서는 사유를 밝히지 않는데 후보자 리스트에 테넌트가 제외된 것에 대해 항의가 빗발치자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상복은 없었지만 2009년 셰익스피어 재단이 기념 전시회를 위해 자체 선정한 '셰익스피어를 빛낸 명예의 전당 12인'에 테넌트가 포함되었다는 점#, 2011년 인디펜던트가 선정한 역사적인 5대 극에도 2008년 테넌트 주연의 《햄릿》이 들어간 점[41] 등을 보면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로열 셰익스피어 극단 역시 창설 기념 50주년에 자체적으로 선정한 6대 연극[42] 중 《햄릿》에서 햄릿 부문에 테넌트를 대표로 지목했다. 영국 우편국이 발행한 기념우표에도 '햄릿'으로 사진이 실리게 된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2008년 이례적인 평단의 찬사와 관객의 성원에 BBC도 관심을 갖었다. BBC 커미셔닝 위원회가 RSC에게 "이 공연을 보존해서 보다 폭넓은 대중에게 접근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을 하기 이르렀고, 도란이 찬성해서 영상화가 진행되었다.[43] 이렇게 해서 2009년 무대 연출의 차별화 요소가 유지된 TV 영화가 제작된다. 참고로 연극을 재현한 영화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업 영화와는 연출부터가 확연히 다르다.[44] 그렇다고 공연을 라이브로 찍은 것은 아니어서 2008년 당시 무대에 올린 공연과도 조금 달라졌다.

현재 인터넷에서 영상으로 시청할 수 있는 것은 이 TV 영화 《햄릿》이다. 2009년 12월 26일 처음 방송되었고 약 90만 명의 시청자가 실시간으로 시청했으며 방송 후 24시간 동안 15,000명 이상이 BBC iPlayer에서 스트리밍했다고 한다. 대중적인 호응과 함께 언론의 반응도 거의 만장일치로 긍정적이었다. "어려운 셰익스피어 극이 친밀하고 강렬하게 재탄생했다"는 호평이 많았고 연극을 TV로 옮길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을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방송 일주일 후 주간지 옵저버(The Observer)에 무려 당시 영국 총리였던 고든 브라운이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크리스마스 연휴에 데이비드 테넌트가 연기한 햄릿을 보았습니다. 덕분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사랑이 다시 깨어났습니다."라는 기고문을 게재해 화제가 되었다.

이토록 큰 성공을 거두면서 2010년에는 DVD와 블루레이로 발매되었으며, 영국 뿐만 아니라 미국 PBS에서도 방영되는 쾌거를 이룬다. 이 TV 영화는 현재도 영국과 미국에서 교재 및 참고문헌으로 폭 넓게 쓰이며 종종 최고의 《햄릿》 영화로 손꼽힌다.##

도란과 테넌트의 《햄릿》이 갖는 의의에 대해서는 논문이 다수 나와 있지만[45] 핵심을 정리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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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다음의 기본 지식이 필요하다.
  • 셰익스피어 극은 하나의 완전한 원전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햄릿》이라는 '연극 대본'은 텍스트의 제작 연도에 따라 제1쿼토(Q1), 제2쿼토(Q2), 폴리오(F)라고 명명된 각기 다른 버전의 3가지 판본이 존재할 뿐이다.
    • 1603년에 나온 Q1은 엘리자베스 시대에 상연된 실제 공연을 배우들이 복기한 해적판이다. 따라서 Q2와 비교했을 때 텍스트가 온전하지 않고 파트의 순서가 다른 부분도 많지만 실황 요소가 훨씬 강하다. 1604년에 출간된 Q2는 셰익스피어의 자필 원고를 토대로 정돈된 판본이다. 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텍스트로서 문학성을 인정받는다. F는 셰익스피어 사후 1623년에 나온 것인데 극단에서 보관한 원고를 토대로 제작되었다. 일부 파트가 삭제되고 무대 지시문이 추가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 대부분의 출판 원고는 Q2를 기반으로 한다. 반면 Q1은 '나쁜 판본(Bad Quarto)'으로 불리며 2000년대 전까지 연극계에서도 찬밥신세였다.

  • 모든 《햄릿》 연극/영화는 세 판본을 종합적으로 편집 · 축약 · 삭제하여 대본을 만든다. 존재하는 텍스트를 전부 합치면 일반 연극의 두 배가 넘는 분량이 되어서 셰익스피어 생전에도 간추려 2~3시간을 넘지 않게 공연했다. 즉, 모든 《햄릿》 극은 연출가와 주연 배우가 집중하고자 하는 주제와 해석을 반영해서 재구성한 결과물이 평가 대상이 된다.
    • 간혹 케네스 브래너의 1996년 영화가 '원전을 삭제하지 않고 그대로 영상화해서 내용이 가장 충실하다'고 잘못 아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는 셰익스피어 극이 소설을 영화로 옮기는 것과 똑같은 개념인 줄 아는 일반 대중의 오해다. 우선 브래너의 영화는 선택과 집중을 안하고 세 판본을 전부 꾸역꾸역 합친 산물이라서, 현지에서는 오히려 이걸 '프랑켄슈타인 대본'이라고 부른다.[46] 영화의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빠른데도 러닝타임이 4시간이 넘는다는 것은 결코 '원본에 충실'한 것이 아니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도 지금도 아무도 이렇게 공연하지 않는다. 그리고 둘째, 브래너의 영화에도 삭제된 파트가 있다.
    • 부연 설명하면 연극은 현장에서 청중과의 소통이 중요한 매체다. 즉, 현실적인 시간 안배가 매우 중대한 문제다. 따라서 어떤 파트와 대사를 넣을지 뺄지를 고심해서 만드는 게 셰익스피어 극에서는 '정석'으로 불린다. 결국 원본에 충실하다는 것은 무작정 다 집어넣는 게 아니라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를 선택해서 컴팩트하게 조합하는 방법이다.[47] 로런스 올리비에의 1948년 영화가 포틴브라스를 완전히 삭제했음에도 불구하고 브래너의 영화보다 더 정석 셰익스피어 극으로 불리는 이유다.[48]
둘째로 비평 사조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셰익스피어 생전, 그러니까 17세기 엘리자베스 시대에 《햄릿》은 대중적인 통속극이었다. 특히 서스펜스가 강한 복수 비극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다른 셰익스피어 작품보다 인기가 많았다. 이렇게 속도감 있는 통속극으로써 실제로 상연된 공연이 어땠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Q1 판본이며, 일반 대중 예술로서의 《햄릿》을 '로우브로우(lowbrow) 햄릿'이라고 한다. 또 이때만 해도 햄릿의 복수 지연은 공연 마지막까지 관객의 흥미를 붙잡기 위한 극적 관습(dramatic convention)[49]으로 여겨져서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

주인공 햄릿의 우울한 성격이 부각된 것은 18세기 신고전주의 비평부터다. 하지만 플롯의 핵심은 여전히 '복수 비극'이었기 때문에 햄릿을 지금처럼 '결단력이 부족한 우유부단한 왕자'로 여기지는 않았다. 이때는 오히려 햄릿이 클로디어스가 기도 중이어서 죽이지 않는 장면이 주목받았다. 적의 영혼까지 파멸시키려는 의지가 주인공으로서는 파격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 비평가 사뮤엘 존슨은 《햄릿》이 인간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삶을 비추는 거울(the mirror of life)"이라고 극찬했다. 18세기 후반부터는 본격적으로 햄릿의 복잡한 성격과 광증이 논의되기 시작한다. 독일 문인 괴테는 햄릿을 섬세한 감수성 때문에 복수할 행동력이 결여된 인물이라고 보았다.

오늘날의 대중이 햄릿 하면 떠올리는 '사색에 골몰해서 우유부단한 왕자'의 이미지는 19세기 낭만주의 성격심리 비평이 만든 것이다. 낭만주의 비평가들은 Q2의 문학성을 찬양하면서 주인공의 심리를 분석하는 데 집중한다. 영국 비평가 S. T. 코울리지는 햄릿을 "사색하는 철학자"로 해석했고[50] 윌리엄 해즐릿이 이걸 발전시켜서 햄릿을 "염세적인 지성인"으로 만들었다. 러시아 소설가 이반 투르게네프는 이걸 돈키호테와 반대되는 내향인이라고 평가한다. 여기에 『셰악스피어 비극론』을 집필한 A. C. 브래들리가 우울증 이론을 덧붙였다.[51] 마지막으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걸 그리스 소포클레스 비극과 접목시켜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을 만들었다.[52]

20세기의 신진 비평가들은 낭만주의를 비판하는 새로운 사조를 형성하여 이걸 극복하려고 노력했다. 대표적인 예시가 시적 접근(poetic approach)과 역사 비평(historical criticism)이다. 하지만 1948년 로런스 올리비에의 영화는 Q2를 중심으로 성격심리 비평, 그중에서도 코울리지의 '사색하는 철학자 햄릿'과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53]을 채택했다. 이것이 대중들에게도 '정통 햄릿'으로 자리잡으면서 19세기의 해석이 20세기에게도 뿌리박힌다. 케네스 브래너의 1996년 영화는 할리우드 자본으로 대서사시(Epic)를 내세워 겉보기에는 대중에게 다가간 것처럼 꾸몄지만, 모든 판본을 이어붙였다는 점에서 텍스트에 대한 엘리트적인 과시가 강해졌다고 평가받는다.

이런 낭만주의 비평은 21세기 현재도 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주류 엘리트주의 해석이다. 이것이 엘리트주의라고 불리는 이유는 낭만주의자들이 《햄릿》의 문학성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극장의 현실과 괴리된 '심리 소설'로 연구하면서, 이것이 원래 일반 대중을 상대로 공연을 위해 쓰인 희곡이라는 사실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17~18세기 인기가 많은 통속극이었던 《햄릿》은 19~20세기를 거치며 어느새 고상한 식자층들의 지적 유희를 위한 사색 비극이 되어버렸다. 이걸 '하이브로우(highbrow) 햄릿'이라고 부른다.
정리하면 대중에게 《햄릿》은 이제 '고어(古語)를 알아듣는 것도 힘든데 읇조리는 독백은 철학적이고 뭐고 지루하기만 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왕자 나으리의 고민만 쓸데없이 길어 극 속도가 느리고 재미없는' 고전이 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영국 현지에서도 셰익스피어 연극을 보는 관객은 - 원래 관심을 가져야 하는 업계 관계자와 학교에서 영문학 숙제로 보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앉아있는 학생 - 둘 밖에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21세기의 《햄릿》은 더이상 일반 대중이 안 찾는 고전이 되어버렸다. 이런 배경에서 도란과 테넌트의 연극은 셰익스피어를 대중들이 다시 찾게 만든 포스트모더니즘 《햄릿》으로써 큰 성공을 거두었기에 지대한 의의를 가진다.

도란은 우선 원문의 가치를 해치지 않는 수준에서 21세기 관객들이 이해하지 못할 고어들을 현대 영어로 바꾸었다. 또 기존의 다른 공연과 달리 Q1의 비중을 높여 극을 재구성했는데[54] 이로써 여태껏 학계에서 '나쁜 판본'이라고 경시되었던 Q1 구성이 실제 공연을 함에 있어서는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입증했다. 한편 테넌트는 "선왕의 유령을 보고 단도로 손을 긋는 장면은 관객들에게 '피의 맹세'를 떠올리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는데, 이것은 그동안 정통 무대에서 '사색 비극'에 밀려 완전히 소외되었던 '복수 비극'을 다시 부활시켰다는 선언이었다. 이런 선택을 한 이유에 대해 그는 "그동안 엘리트 지향적인 RSC에서는 잊기 쉬운 것"이었다고 덧붙이며 극단의 해석을 받아들이라는 권위주의 대신 대중에게 다가가는 극으로 재편했다고 밝혔다.

즉, 이렇게 Q1과 복수 비극을 전면으로 내세운 것부터가 셰익스피어 연극계를 장악하고 있는 '하이브로우' 중심의 엘리트주의를 해체하고 셰익스피어 생전의 대중적인 통속극으로 돌아간다는 과감한 의지 표명이었다. 여기에 더해 도란과 테넌트는 이 공연을 역대 《햄릿》과는 차별되는 스릴러로 구성했으며, 역사상 유례없던 인터미션[55]을 넣었다. 기도하는 클로디우스 뒤로 다가간 햄릿이 단도를 치켜드는 순간 전반부가 끝나면서, 셰익스피어 극에 현대 스릴러 장르의 클리프행어(cliffhanger)가 추가되었다. 의상과 소품뿐만 현대적인 것이 아니라 서스펜스와 극적 관습도 현대적으로 재창조한 것이다. 이런 구성 덕분에 3시간 30분의 긴 고전 연극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관객의 열광이 이어졌고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한편 이 연극은 올리비에와 브래너의 영화로 확고하게 자리잡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이론과 완전하게 결별한 작품이기도 했다. 우선 테넌트 본인부터가 "도대체 어디서 햄릿이 어머니에게 성적인 욕망을 품었다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I don’t really see where he wants to fuck her.)"고 강하게 부정하며 프로이트의 완전 배제를 선언하였고, 실제로도 극중에서 햄릿과 유령, 거르투르드, 클로디우스의 성격과 관계성 등을 기존과 다르게 재현하면서 관객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또 햄릿의 남성성은 언제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여부와 연관되었는데, 이러한 전통적인 젠더 관념을 벗어나면서 - 테넌트 본인과 닥터의 이미지가 그러하듯 - 극도로 예민하고 섬세한 메트로섹슈얼의 모습으로 전환되었다. 이로써 지난 수세기 동안 《햄릿》 연극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던 프로이트 해석이 종결되었다.

도란과 테넌트의 《햄릿》은 이렇게 낭만주의에서 벗어나는 액션을 취하는 한편 신고전주의로 돌아가 관객이 주인공 햄릿뿐만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을 연민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인간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강화시켰다. 일례로 클로디우스를 보면, 기존의 《햄릿》은 그를 철저하게 악한으로 그려서 관객이 햄릿의 복수심에만 이입하도록 유도한다. 하지만 이 극에서 테넌트는 클로디우스 역의 패트릭 스튜어트에게 그를 햄릿의 관점으로 판단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이 연극은 클로디우스를 단순한 찬탈자가 아닌 왕국을 재정비하는데 필요한 왕이자 거르투르드를 진심으로 사랑한 개인으로서 복잡한 인간으로 그린다. 햄릿은 여전히 클로디우스를 증오하지만, 관객의 시선에서는 양쪽 모두가 안타까운 입체감이 부여된다.

햄릿의 성격에 있어서도 테넌트의 햄릿은 "번뜩이는 총명함, 거친 유머를 지닌 이 햄릿은 내가 본 햄릿 중 가장 재미있는 햄릿이다. 광기 어린 변덕스러움 속에서도 테넌트는 효심 어린 분노와 충동적인 위험을 암시(Billington, 2008)"한다는 논평이 나올 정도로 신고전주의적인 광증 묘사가 두드러진다. 그렇다고 테넌트가 낭만주의의 성격심리 비평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이 햄릿은 10대 닥터의 특성과 맞닿은 테넌트 고유의 아우라를 끌어들여 "헨리 어빙과 허버트 비어봄 트리의 빅토리아 시대 낭만주의로 돌아가서, 궁정의 궤변에 적응하지 못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너무나도 깊이 느껴서 죽음으로 극을 끝낸 영웅(Hartley, 2009)"이라는 평가를 받았다.[56] 이 과정에서 호레이쇼와의 우정이 기존의 다른 《햄릿》보다 훨씬 더 두텁게 묘사되기도 했다.

도란과 테넌트는 지금껏 소외되었던 20세기의 여러 비평도 적극 수용했다. 우선 18세기 신고전주의자 사뮤엘 존슨이 셰익스피어의 극을 "삶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표현한 것을 20세기의 시적 접근 비평[57] 요소와 결합시켜, 산산조각 난 거울을 소품과 동시에 무대 자체로 사용한다.[58] 극중 모든 인물의 얼굴이 깨진 거울에 다각도로 보이는 연출은 미쳐가는 햄릿, 오필리아, 거르투르드, 그리고 클로디우스까지도 분열된 자아를 드러내는 데에 효과적인 상징물로 사용된다. 죽음과 육체에 관한 철학적인 문제를 사색하는 햄릿의 내면을 갈비뼈가 그려진 주황색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광기를 나타내는 맨발의 모습으로 표현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다.

또 앞서 도란과 테넌트가 《햄릿》을 스릴러로 재해석한 근거 중 하나는 원작에 이미 수많은 감시와 스파이들이 등장한다는 점이었다.[59]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이걸 통해서 햄릿의 세계가 국내에서는 시민을 감시하고 국외에서는 명분없는 전쟁을 계속하는 21세기 영국과 다를 바 없다는 시의성을 이 연극에 덧입혔다는 점이다. 즉, 셰익스피어 극이 사회와 고립된 예술이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킨 역사 비평의 지적[60]과 《햄릿》을 통해 20세기 사회를 고찰한 폴란드 평론가 얀 코트의 현대적 해석[61]을 적극 수용해 변용했다. 도란과 테넌트의 극이 포스트모던한 무대에서 빅 브라더의 존재감이 드러나는 감시 카메라와 CCTV 화면을 중요하게 사용하는 것은 이런 의의를 가진다. 이제 햄릿은 끊임없이 감시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살상무기 역시 긴 쌍날칼, 독약과 함께 권총이 추가되었다.

마지막으로 테넌트는 햄릿을 연기하는 면에 있어 20세기의 실존주의 해석[62]을 중요하게 첨가했다. 여기서 "To be or not to be" 독백은 매우 중요한 장면이 된다. 기존의 다른 《햄릿》에서 이 독백은 시처럼 낭송하거나 관객을 향해 선언하는 배우가 가장 많고, 화가 난듯이 소리치거나 TED 강의처럼 가르치듯이 말하는 배우들도 있다. 반면 테넌트는 이 장면을 이렇게 처리한다.
테넌트의 햄릿은 내면을 응시하듯 조용히 혼잣말하며 음울하게 독백하는데, 이 장면은 감정적인 진실성과 언어의 명확성 측면에서 역대 햄릿을 통틀어 가히 최고라는 찬사를 받는 대목이다. 고통과 피로, 망설임과 혼란 속에서 자살을 고려하는 사람의 실존적인 고뇌를 가장 잘 전달했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일반 관객들 중에도 '여태껏 어렵기만 하고 와닿지 않았던 독백이었는데 이걸 통해 의미를 직접 체감하게 되었다'는 후기가 많다.

그리고 이 연극에서 테넌트는 역할을 관찰하고 연기하는 올리비에의 고전 연기법보다 역할 속에 몰입해서 사는 미국의 메소드 연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63] 이런 메소드적인 동기 부여가 절정에 닿은 것이 극중 요릭의 해골로 실제 해골을 사용한 부분이었다. 이 해골은 셰익스피어의 열렬한 팬이었던 폴란드 피아니스트 '안드레 차이코프스키'가 사망하면서 RSC에 써달라고 기증한 것이었지만, 영국의 강력한 무대 미신 때문에 그동안 어떤 배우도 사용하지 않은 것이었다. 헌데 테넌트는 이걸 처음으로 사용했고, 이후 대중에게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항의를 받자 가짜로 바꿨다고 알려놓고 끝까지 차이코프스키의 것을 고집했다.[64]

이 선택에 대해서 테넌트는 "햄릿이 요릭의 해골을 들여다보며 말하는 장면은 우리 모두가 찰나의 순간에만 지구에 머문다는, 죽음과 허무에 대해 햄릿이 인식하는 구절이다. 나는 햄릿이 요릭을 아는 것만큼 차이코프스키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그의 사진과 정보를 찾아보며 한때 그가 욕망과 요구, 꿈과 기대를 가졌던 실존 인물이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과거 살아 숨쉬던 누군가의 실제 눈구멍을 들여다보며 그 장면을 연기한다는 것은 나에게 그 순간이 훨씬 더 무거운 의미로 느껴지게 했다. 거기에는 '인간성(humanity)'이 있었다. 그건 무척이나 생생한 삶의 감각임과 동시에, 햄릿의 말이 더더욱 가슴에 와닿게 만드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조나단 베이츠 평론가의 말처럼 "관객이 해골이 진짜라는 것을 모르는 상태에서 메소드 연기를 펼치며 그 순간의 진실에 집중한 것"도 사실이지만, 매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햄릿》의 실존적인 의미를 되새기는 의식이기도 했던 셈이다.

요약하면 도란과 테넌트의 《햄릿》은 통속극으로써 Q1의 경쟁력을 입증하는 한편 복수 비극 요소를 부활시켜서 사색 비극 중심의 권위적인 엘리트주의를 타파했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해석과 결별하면서 그동안 소외되었던 신구(新舊)의 비평을 조화시켜 등장인물을 다각적으로 재조명했으며, 의상이나 무대뿐만 아니라 해석적인 측면에서도 현대 사회를 반영해 시의적으로 만드는 등 모든 면에서 과거와 현재를 세련되게 절충했다.

즉 실험적인 현대극 방식으로 고전과 스릴러 장르의 혼합, 하이브로우(고급문화)와 로우브로우(하급문화)의 경계 소멸, 연극과 TV 매체의 접목을 성공시키며 셰익스피어를 대중의 품에 돌려준 완벽한 포스트모더니즘 《햄릿》이었던 것이다. 이것을 통해 평소 셰익스피어 연극에 전혀 관심없던 일반 관객들, 특히 젊고 비(非)엘리트주의적인 대중을 끌어들이는 것에 성공했다는 측면에서 커다란 의의가 있었다.

이 공연의 성공은 셰익스피어 연극에 대한 접근성을 대폭 낮추었을 뿐만 아니라 RSC의 정책에도 큰 영향을 주어서 주드 로베네딕트 컴버배치, 톰 히들스턴 등의 배우들도 적극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 이에 극소수의 기성 평론가들은 "고전을 인기 영합주의로 만들었다"며 극심한 반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같은 평단에서 오히려 스노비즘이라고 까이며 "테넌트는 스타 배우로서 셰익스피어 무대에 선 것이 아니라 본래 셰익스피어 배우로서 드라마계에 진출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 것이고, 출신지를 잊지 않고 극단에 금의환향해 대중의 관심을 가져와 주었다"는 반박을 받았다.

테넌트는 《햄릿》 이후로도 《헛소동》, 《리처드 2세》, 《돈 주앙 인 소호》, 《굿》, 《맥베스》에 이르기까지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 / 실험극에 계속해서 공헌하며 2024년 현재는 웨스트엔드에서 레전드급 네임 밸류를 자랑한다.[65]

이런 공을 인정받기에 도란과 테넌트는 2016년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년 기념식에서 각각 총연출과 진행을 맡았으며, Q1 출판 400주년을 맞이한 2023년에는 도란은 기사 작위(Knight Bachelor) 수훈을 받고, 테넌트는 돈마 웨어하우스에 《맥베스》로 무대에 돌아왔다.

3.4. 2010 ~ 현재

2010년 드라마 《Single Father》에서 아내와 사별 후 다섯 아이를 키우는 아빠 역을 맡았다. 드라마 자체는 평이 갈렸지만 테넌트의 연기만큼은 호평 받았다. 이 시기 미국 NBC 드라마 《Rex Is Not Your Lawyer》의 파일럿 에피소드를 찍으며 미국 진출을 시도했으나 이 드라마는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당하면서 방송도 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2011년에는 다시 연극 무대로 돌아와 《헛소동》에서 남주인공 '베네딕'으로 활약한다. 이 작품 역시 셰익스피어 희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극이며 《닥터후》를 통해 절친이 된 캐서린 테이트가 그의 상대역으로 나온다. 굉장한 캐미스트리를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으며, 《햄릿》처럼 TV 영화로 촬영한 것은 아니지만 실황 공연을 녹화해서 디지털 극장(Digital Theatre)에 올려놓은 영상이 나왔다.[66] 같은 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뮌헨 비행기 참사 역사를 다룬 TV 영화 《United》에서 '지미 머피'를 연기했다. 영화 《프라이트 나이트》에도 출연해 '피터 빈센트' 역으로 나름의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지만 흥행에 실패해 흑역사를 쓰기도 한다.

2012년에는 육아가 신경쓰여서인지 애니메이션 성우를 주로 맡았다. 그 중에서도 《스타워즈: 클론 전쟁》의 로봇 휴양 박사 역은 2023년에 《아소카》로 실사화되어 스타워즈 드라마에 레귤러 성우로 출연하는 이유가 된다.
파일:davidtennant2013.jpg
그러다 2013년 BBC 드라마 《바르샤바의 스파이》, ITV 드라마 《브로드처치》, BBC 드라마 《정치인의 남편》과 《더 이스케이프 아티스트》 등의 여러 대작으로 돌아온 테넌트는 커리어에 제2의 부흥기를 맞이하게 된다. 특히 《브로드처치》와 《정치인의 남편》에서의 명연기로 화제가 되었는데, 《브로드처치》에서는 과거의 사건으로 심신이 망가져가는 날카로운 수사관 '알렉 하디'를, 《정치인의 남편》에서는 승승장구하던 경력에 위기가 온 엘리트 정치인 '에이든 호인스'가 열등감과 분노, 질투에 사로잡혀 변해가는 모습을 연기했다. 이 두 캐릭터의 연기가 정말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에 둘 다 보고 있으면 이게 진짜 같은 사람이 맞나? 싶다. 하필 두 드라마의 방영 텀도 3일밖에 되지 않아서[67] 하경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팬들은 호인스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엇보다 《정치인의 남편》의 경우, 상대역의 에밀리 왓슨이 "배우로서 하기 힘든 연기에 도전했다"고 평가할 정도였으니...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직접 확인해 볼 것.

이 중에서도 《브로드처치》는 평균시청률 31%를 기록하며 영국 전체를 들썩이는 성공[68]을 거둔다. 그런데 이게 뜻하지 않게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시즌1 종영 직후에는 세계 100개 국에 판매된다. 어찌나 인기가 좋았던지 호주 시청률을 전문으로 다루는 매체에서는 '브로드처치 피날레가 금요일 밤의 기적을 가져왔다(Broadchurch finale brings a Friday night miracle).'라고 평가했다. 또 프랑스에서는 뉴스 일기예보에 브로드처치가 등장할 정도였으니, 여러모로 국제적인 쾌거를 이룬 작품이 되었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다시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으로 돌아와, 같은 해 10월부터는 셰익스피어 극 《리처드 2세》에서 주인공 리처드 2세를 열연하였다. 이 연기를 위해서 테넌트는 자신의 머리를 기르고 붙임머리를 허리 가까이까지 오도록 길게 붙였다고 한다. 이 작품은 유럽일본에서 영화로도 상영되었는데 2014년 5월 DVD블루레이로도 출시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23일, 닥터후의 50주년을 기념하며 팬들의 성원에 보답해 10대 닥터로 돌아왔다. 빌리 파이퍼와 함께 멀티 닥터 스페셜 에피소드 〈The Day of the Doctor〉에 특별 출연했으며, 장인의 코미디 모큐멘터리 〈The Five(ish) Doctors Reboot〉에도 카메오로 나왔다. 2016년에는 빅 피니시의 러브콜을 수락해 오디오 드라마에 참여하게 되었다. 오로지 팬심으로 단역을 맡아 참여했던 과거가 있던만큼 이제는 닥터로서 돌아온 감회를 밝히기도 했다.

2014년에는 《브로드처치》의 미국판 리메이크작 《그레이스포인트》에서 다시 한 번 주연을 맡는다. 하지만 원작의 배우가 리메이크작에서 카메오도 아닌 주연을 다시 연기하는 경우는 흔치 않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우려를 표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관심이 쏠린 부분은 리메이크된 이야기의 행방과 테넌트 본인의 억양 문제[69]였는데, 억양 문제는 생각보다 잘 해결된 듯하였지만 《그레이스포인트》의 내용 자체는 《브로드처치》와 크게 다르지 않아 흥행에 실패하였다.

그렇게 1월부터 5월까지의 《그레이스포인트》 촬영을 마치고 바로 영국으로 귀국한 그는 다시 3일 후부터 《브로드처치》 시즌 2를 찍기 시작해 10월 말이 되어서야 촬영을 마친다. 그야말로 1년의 6분의 5를 한 캐릭터로만 쭉 연기하고 있는 상황. 《그레이스포인트》의 '에밋 카버' 역에서 《브로드처치》의 '알렉 하디'로 복귀하기까지 채 이틀도 안 되는 시간이 주어졌지만, 본인은 그 둘이 각각 전혀 다른 평행세계에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그레이스포인트》를 한창 찍고 있을 때 《브로드처치》 시즌 2의 대본이 도착했는데, 그 대본을 읽는 순간엔 잠시 세계관에 혼란이 와서 아찔했다고. 게다가 《브로드처치》 시즌 2의 촬영은 철저한 비밀에 부쳐졌기 때문에 그 당시 여러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에 당황한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2015년 《브로드처치》 시즌 2가 성공적으로 다시 돌아온다. 이때 브로드처치에 대해 얘기하러 간 앱솔루트 라디오에서 크리스천 오코널[70]이 그의 차기 작품에 대해 묻자, 정확한 작품의 제목은 언급하지 않고 '미국의 어떤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만 얘기한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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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26일, 마블 스튜디오에서 공식적으로 넷플릭스 드라마 《제시카 존스》에 테넌트가 출연한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그가 맡은 역은 드라마의 메인 빌런 '킬그레이브'. 위에 상기한 테넌트의 발언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미드 《한니발》을 예상했는데, 이것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드라마와 역할이란 게 드러나면서 팬들은 충격과 감동의 쓰나미를 선사받았다. 여튼 테넌트는 이로써 《그레이스포인트》에 이은 두번째 미국진출을 이룸과 동시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도 공식 입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20일, 넷플릭스에서 13개의 모든 에피소드를 풀며 드디어 공개되었는데, IMDb, 메타크리틱, 로튼토마토에서 각각 8.6점, 81점, 신선도 93%를 받는 등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트라우마PTSD, 데이트 폭력학대관계, 강간 등의 무거운 주제를 감각적이고 긴장감 있게 구성한, 누와르풍의 웰메이드 심리스릴러 드라마라는 평이 대체적. 무엇보다 테넌트가 연기한 악당 '킬그레이브'는 정말 소름끼치도록 인상적이었다[71]는 평과 함께, 소소함으로 지루해진 초반 분위기를 그의 본격적인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뒤엎으면서 드라마에 대한 평가도 단숨에 끌어올린 장본인이라는 평가가 압도적이다. 특히 미국 등지에서는 데어데블킹핀과 더불어 '지금까지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내 최고의 빌런이라든가 히스 레저조커 이후, 실사화된 만화 원작 빌런 중 최고의 악당이라는 찬사를 받는 등 여러모로 성공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2016년에는 셰익스피어 타계 400주년을 맞아 한 번 더 로얄 셰익스피어 극단의 《King and Country》에서 '리처드 2세'를 잠시 동안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런던에서 뿐만아니라 뉴욕의 무대에서도 공연하며 미국 연극계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또 같은해 5월에는 닥터후 오디오 드라마를 통해 다시 10대 닥터로 돌아왔다. 뉴 시즌 닥터들 중에는 처음으로 합류하며 이번에 출간된 3개 에피소드를 시작으로 《Doctor Who : The Tenth Doctor Adventures》 시리즈를 계속 만든다고 한다. 덕분에 앞으로도 그의 '10대 닥터' 연기를 조금 더 볼 수 있을 듯하다.[72]

2017년 상반기에는 런던에서 현대극 《Don Juan in Soho》의 주인공 돈 후안 역을 연기했다.[73] 연극 외에도 드라마 필름을 찍기도 했는데,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인도적인 치료를 적극적으로 시도했던 스코틀랜드 정신과 의사 로널드 랭(R.D.Laing)의 전기영화 《Mad to Be Normal》이나 레즈비언 커플의 임신문제를 다룬 《You, Me and Him》[74]은 죄다 인디 영화 쪽이어서 어째 팬들의 입장에서는 배우가 열심히 일해도 티가 안 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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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후반기에는 도날드 덕 가족의 모험》의 주인공 스크루지 맥덕의 새로운 성우로 공개되며 팬들을 환호하게 했다.[75] 이로써 디즈니 세계관에까지 공식 입성하여 정식으로 디즈니 캐릭터의 일원이 된 셈이다.''' 이미 컨펌된 시즌 2까지 스튜디오 작업은 완료한 모양. 8월 12일에 파일럿 에피소드가 처음 공개된 후 9월 23일부터 2021년 3월 15일까지 시즌 3까지 방영된 채로 종영되었다.

요즘에는 마블의 《제시카 존스》와 디즈니채널의 《도날드 덕 가족의 모험》 등의 작품으로 미국 시장으로도 점차 발을 넓히는 중인 모양이다. 이와 같은 그의 인기는 멋진 징조들의 드라마판 출연을 통해 다시 한 번 상승세 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테리 프래쳇닐 게이먼이 합작하여 쓴 영국 판타지 소설을 원작으로 BBC아마존닷컴이 공동제작한 TV 시리즈 《멋진 징조들》의 주인공 악마 크롤리 역으로 2019년 다시 한 번 상승세 곡선을 그리게 되었다.

2020년 《Des》

2020~2022년 《Staged》 코로나 19 자체 제작 코미디

2021년 다국적 합작 《Around the World in 80 Days》

그리고 2022년 10월 23일, BBC 창사 100주년 특집 및 뉴 시리즈 300화를 기념하는 에피소드에서 10대 닥터가 아닌 14대 닥터로 복귀했다.[76] 이로써 테넌트는 정식 넘버링을 가진 닥터를 두 번 맡게 된 최초의 배우가 되었다. 다만 완전 복귀는 아니고, 도나 노블로 돌아온 캐서린 테이트와 함께 60주년을 기념하는 2023년 스페셜 삼부작에서만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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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프랜차이즈를 재활시키기 위해서 긴급 투입된 것이었지만, 작품 내외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다시금 저력을 보여주었다는 찬탄을 받았다. 여러모로 뉴 시리즈를 마무리하고 다음 시대를 위한 디딤돌 역할을 잘 했다는 평가다. 한편 뉴뉴 시리즈를 이끌어갈 15대 닥터 역의 슈티 가트와는 여러 인터뷰에서 테넌트가 어린 시절 자신의 닥터(my Doctor)였다면서 "연기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테넌트의 《햄릿》을 찾아보았다. 그는 내가 배우가 된 이유 중 하나이자 우상(icon)"이라고 밝혔다.[77] 이로써 2000년대 당시 미래 세대에게 심어준 꿈이 15~18년의 세월이 흘러 유종의 미로 돌아온 감동적인 결과가 나왔다.

4. 정치 성향

공개적으로 노동당을 지지하고 있다. 2005년에 노동당의 방송에 출연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했다. 노동당 선거 방송 나레이터를 몇 번 맡은 적이 있는데, 이 때의 인연으로 2011년 결혼식에 고든 브라운이 참석한다. 그래도 나름 비판할 건 비판해야된다는 주의라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당 정책에 대해서는 얄짤없이 까기도 했다.[78][79]보수당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를 라디오 방송에서 대놓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캐머런은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 않느냐'고 대답. 정치 이야기를 특별히 즐겨하지는 않지만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투표 행사권을 중시한다. 또한 시민들의 권리의식 자각과 정치적 무관심 타파를 위해 정치 드라마가 더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밝혔다.[80]

스코틀랜드 분리독립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중립적이다. 적극적으로 독립 지지를 표명하며 사람들의 설득에 나선 배우 숀 코너리나 친구 존 배로먼과 달리, "배우보다 정치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권고"하는 등 직접적인 견해를 드러내지는 않았다. 그러다 2017년 브렉시트 이후에,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냈다.#

5. 사생활

어머니와 굉장히 많이 닮았다.#비교사진 유난히 모계 유전자를 진하게 받아서, 아버지를 닮은 나머지 형제들과는 별로 안 닮았다. 그의 어머니는 2007년 12월 5년간의 암 투병 끝에 타계하였다.

아버지가 스코틀랜드 교회 총의장을 역임한 목사지만 테넌트 본인은 독실한 신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도 아버지와 사이가 굉장히 좋았다.[81] 아버지는 2016년 폐섬유증으로 사망했다.

법적 성명과 동일하지 않은 예명으로는 활동하지 못한다는 미국 배우 조합의 가입 조건이 걸리는 문제가 생겨서 결국 본명이었던 '데이비드 존 맥도널드'에서 예명이었던 '데이비드 테넌트'로 개명했다. 이걸 밝힌 인터뷰 자체는 2013년에 했지만 "벌써 몇 년 되었다(have been for a few years)"고 하는 걸 보면 2009~2011년 언저리에 한 듯.[82] 이에 따라 자식들도 '테넌트'라는 성으로 호적에 올리게 되었다.

일할 때가 아니면 집에만 틀어박혀 있는 자타공인 집돌이다. 은근히 낯을 가리는 성향 때문에 사생활을 밝히기 꺼려 매스컴에서 연기 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다. 이는 특히 《닥터후》에 출연하며 미디어의 막대한 관심과 과도한 사생활 침해에 시달리면서 더 철저해졌다. 또 조지아 모펫과 결혼하기까지 온갖 루머와 파파라치에 들볶이는 경험을 하면서, 외부에 가족사를 얘기하거나 레드카펫과 같은 공식석상에서 가족과 함께 사진을 찍는 건 절대적으로 기피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조심을 해도 아내와 함께 걸어가는 사진이라던가 공식석상에서 귀가하는 사진은 곧잘 찍힌다.

그래도 요즘은 매스컴도 조금은 자중하는 분위기여서 그런지 2014년 말부터는 서서히 가족 이야기에 물꼬를 트고 있다. 수상 소감에 아내와 아이들을 언급하기도 하고, 닥터후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에 5대 닥터제니에 대해서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가족들 사진으로 만든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모습도 포착되었다.[83] 가족 얘기를 하면 아내보다 양아들 타이를 더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이 라디오를 지금 타이가 듣고 있을지도 몰라요.'라든지, '우리 아들이 게임 쪽에 빠삭한데'라던가, '이번 시상식장에 함께하지 못한 우리 아내 조지아와 아들 타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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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이 되는 조지아 모펫과는 2008년에 《닥터후》 시즌 4 6화 〈The Doctor's Daughter〉에서 그녀가 닥터의 딸 '제니'로 출연하며 처음 만났는데, 이때부터 서로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러다가 2011년 1월에 조용히 약혼식을 올린 둘은 같은해 12월 30일에 결혼한다.

그런데 테넌트와 조지아의 나이 차는 무려 13살이나 나서, 위에도 언급되어있듯 결혼 전부터 악성루머에 상당히 시달렸다. 게다가 조지아는 5대 닥터 피터 데이비슨의 친딸이다.[84] 그래서 더욱더 파파라치의 눈에 띄는 것이 조심스러웠다고. 여튼 이러한 관계 때문에 테넌트 역시도 극중의 닥터 못지 않게 뭔가 타이미와이미 한 인연을 가진걸로 유명한데,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닥터〈닥터의 딸〉 에피소드에 나오는 '닥터의 딸' 역을 연기한 닥터의 딸과 사랑에 빠져서 닥터의 손녀이자 닥터의 딸인 아이를 낳게 된 것.

자녀는 2남 3녀[85]로, 아이들의 이름은 (나이 순서대로) 타이(Ty), 올리브(Olive), 윌프레드(Wilfred), 도리스(Doris), 버디(Birdie)라고 한다. 이 중 큰아들 타이는 조지아와 그녀의 전 남자친구 사이에 낳은 자식인데, 테넌트가 그녀와 결혼하며 입양하였다. 우리나라보다 동거나 이혼, 재혼이 나름 흔한 유럽에서도 이런 경우는 보기 드문 사례다. 그래서 더 감동을 주었다.[86]

자식들 역시 열렬한 후비안이다. 큰아들 타이는 사실 조지아와 테넌트가 결혼하기 전부터 10대 닥터를 가장 좋아했는데[87], 몇 년 뒤 최애닥터가 자기 아빠가 되어서 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또 최근 조나단 로스 쇼에 나와서 테넌트가 한 말에 따르면, 4살 꼬마인 딸 올리브와 2살배기 아들 윌프레드도 《닥터후》에 빠져서 소닉 스크루드라이버를 가지고 뛰어다니며 논다고. 특히 올리브는 테넌트의 《닥터후》 마지막 에피소드 〈The End of Time〉를 보고 너무 서럽게 울어서 애먹었다고 한다. 닥터의 재생성 장면을 보고 딸이 울기 시작하자 테넌트는 자기 딸이 아빠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기특하고 뿌듯해서 '놔둬도 곧 그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딸이 4시간 후에도 계속 울고 있어서 자신의 육아법을 반성하게 되었다나. 여튼 아이들 때문에 자기 집 TV에는 항시 자기 자신이 나오고 있어서 상당히 부끄럽다고 한다.

6. 사건사고

6.1. TERF·케미 베이드녹 비판·갈등

데이비드 테넌트는 본인이 성 소수자가 아님에도 성 소수자 인권 운동에 적극적인 얼라이로도 유명하다. 특히 테넌트 본인이 논바이너리 자녀가 있는 만큼 트랜스여성논바이너리 지지에 적극적이며, 활동 기간 동안 꾸준히 공석에서 목소리를 내왔다. 그런 공로를 인정 받아, 2024년에 영국 LGBT 시상식에서 'Celebrity Ally' 상을 수상했다.# 이때 그는 시상식에서 영국 평등부 장관인 '케미 베이드녹'을 비판하며 '그녀가 입 좀 닥쳤으면 좋겠다(I just wish Her to shut up)' 라고 공개적으로 저격하였다.

이는 베이드녹이 그동안 비 트랜스 친화적 행보를 보였기 때문인데, 예를들어, 베이드녹은 시스젠더 여성의 안전을 위해 트랜스여성이 여자화장실에 출입하거나 여성 스포츠팀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88]

이에 베이드녹은 "나는 닥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스톤월(LGBT 단체)의 지지를 여성과 소녀들의 안전보다 우선시하는 남성들에 의해 침묵당하지 않을 것이다. 이 부유한 좌파 백인 남성 연예인은 이념에 눈이 멀어, 정부의 유일한 흑인 여성을 공격하면서 공개적으로 내 존재를 끝어내리라고 요구하는 모습의 문제를 보지 못하고 있다."# 라고 맞받아쳤다. 테넌트가 백인 남성이라는 강자고, 자신은 흑인 여성이라는 약자라는 점을 내세운 발언이다.

당시 영국 총리였던 리시 수낙도 역시 "표현의 자유는 우리 민주주의의 가장 강력한 특징입니다. 여성에게 입을 다물라고 하거나 그들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당신이 문제입니다."# 라고 간접적으로 베이드녹을 지지하고 테넌트를 비판했다.[89]

한편 이전부터 TERF로 유명한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도 테넌트를 '젠더 탈레반' 이라고 부르며 꽤 강도높게 공격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인용 원 트윗: 다른 어떤 상황에서도 BBC가 특권층 백인 남성이 흑인 여성 주요 정치인이자 이민자의 딸에 대해 "입 다물라"고 하고 "존재하지 말라"고 바라는 것을 그저 사소한 논란으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J.K 롤링: 그러나 '젠더 탈레반'의 발언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이기에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J.K 롤링: (데이비드 테넌트의 '(트랜스포비아들은)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는 징징거리는 새X들(F**kers)일 뿐이고, 그들은 모두 곧 사라질 것입니다.' 라는 발언을 인용하며) 이 남자는 여성 전용 돌봄을 원하는 강간 생존자들, 남성 앞에서 옷을 갈아입도록 강요받아 국민건강서비스를 고소중인 간호사들, 남성들에게 스포츠 기회를 잃고 있는 소녀들과 여성들, 그리고 성범죄자들과 함께 수감된 여성 죄수들에 대해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다고) 말하고 있다.#

테넌트가 해리 포터와 불의 잔에서 바티미어스 크라우치 2세 역을 맡았던걸 생각하면, 영화의 원작자가 영화 출연자 배우를 저격한 꽤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90]

7. 출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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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기타

  • 팬들 사이에서는 소로 통한다. 뭔말인고 하니 '소처럼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고. 번외로 소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해서 소가 테넌트처럼 일하면 병난다는 말도 있다. 주로 활동하는 TV 드라마와 영화, 연극 외에도 라디오, 오디오 드라마, 내레이션, 더빙, MC 등 매년 평균 출연 작품이 10개는 거뜬히 넘어서[91] 40대의 나이에 공식 필모그래피만 백 단위로 센다. 덕분에 팬들은 해마다 필모그래피가 마를 걱정 없이 새로운 작품을 볼 수 있어서 좋아했지만 반백살이 넘으면서부터는 너무 무리하는건 아닌지, 몸은 괜찮은 건지 등의 염려를 자주 한다. 소 말고 또 다른 별명은 '테람쥐(테넌트+다람쥐)'. 10대 닥터의 갈색 줄무늬 정장과 긴 갈색 코트가 다람쥐를 연상시켜서 붙은 별명이다. 이 때문에 국내의 테넌트 팬들은 자신들이 테람쥐한테 까먹히는 도토리라고 자처한다. 그 밖에도 자주 쓰이는 애칭으로는 '김테넌'이 있다.
  • 파일:external/i.dailymail.co.uk/article-0-02D56969000005DC-685_468x652.jpg 때문에 과거 영드갤에서는 '기회만 된다면 불지르고 싶은 옷장'에 테넌트의 옷장이 높은 순위에 자리했다. 팬들이 가장 거품물고 갖다버리길 바라는 것이 벨벳 정장 패션[93]인데, 그 수준이 너무 아스트랄해서 팬들은 여기에 f**king을 접두사로 붙여서 부르고 있다. 그냥 한마디로 패션고자. 대다수의 팬들은 테넌트가 작품 내에서 입는 패션으로 만족하는 중이다. 하지만 영화 《Decoy Bride》에서 입은 의상처럼 스타일리스트마저 대체 왜 그랬나 싶은 예외도 있다. 그래도 배우자 덕분에 나아진 것인지 불혹을 넘기면서부터는 많이 자중(?)하고 있는 듯.
  • 지인들은 이름의 앞글자를 따서 'DT'라고 많이 부른다. 또 '데이비드 10인치(David Ten-inch)'라는 별명으로도 유명한데 빌리 파이퍼가 붙여줬다고 한다. 정확히 뭘 계기로 그런 별명을 지어준 건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팬들 사이에서는 검열삭제가 10인치여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는게 기정사실화 되었다.[94] 이 때문에 이와 관련된 유머로는 "안이 밖보다 크네(It's bigger on the inside)!"와, "닥터는 심장이 두 개니까 그것도 5인치씩 두 개인거?" 등이 있다. 참고로 후자 드립은 제레미 클락슨도 친 적이 있다.
  • 탑기어에 출연한 적이 있다. 이때 랩타임이 1분 48초 8이 나왔는데 그 전에 출연한 빌리 파이퍼보다 0.5초 느려서 '컴패니언보다 느린 닥터'라고 놀림받았다. 그런데 이는 빌리가 랩타임을 잴 때 속옷이 비치는 바람에 코스를 살짝 벗어나서 실격 처리 해야하는 것을 인정해줘서 시간이 단축된 거였다고. 이걸 가지고 테넌트가 "저도 단추 푸르면 기록 줄여 주나요"라는 드립을 치자 클랙슨은 "당신 단추는 필요 없어요"라고 딱 잘라버린다.
  • 10대 닥터로즈 타일러 관계 못지 않게 테넌트와 빌리는 사이가 좋은 걸로 유명하다. 앞서 기술되어있듯 테넌트에게 명대사 티셔츠를 사준 것도, '데이비드 텐인치'라는 별명을 붙여준 것도 빌리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둘은 연인 관계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결혼도 서로 다른 사람과 한데다가, 극소수의 지인만 초대한 결혼식에 서로 초대하여 참석했다. 이 때문에 둘은 연인처럼 다정한 남사친&여사친 관계로 굉장히 유명하다. 이를 어떤 팬이 영상으로 정리해놓기도 했다.
  • 2005년 The Stage 매거진에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TV 아티스트' 6위에 랭크되었다. 2006년에는 영국의 게이레즈비언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 신문 설문조사에서 데이비드 베컴브래드 피트를 제치고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7년 라디오 타임즈 설문조사에서는 'TV에 출연하는 가장 멋진 남자'로 뽑혔다. 또 같은해 가디언지에서는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 24위에 랭크되기도 했다. 다음해인 2008년에는 The Stage 매거진에서 '영국 미디어에 가장 영향력 있는 20인'에 배우로는 5위로 랭크되었다. 2013년 GQ 매거진에서는 '영국의 베스트 드레서' 3위에 꼽히기도 하였다.
  •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지만 정작 혈통 자체로 따지면 순수한 스코틀랜드인이 아니다. 모친 쪽을 따라 올라가면 조부는 멀섬[95] 출신, 조모는 북아일랜드 출신이라고 한다. 게스트 스타의 조상에 대해 알아보는 BBC 다큐멘터리 《Who Do You Think You Are?》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조상의 뿌리를 찾기 위해 거슬러 올라가다 조모 쪽 증조부가 가톨릭 탄압 열성 운동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심히 괴로워하는 테넌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외할아버지가 1930년대 프로리그 축구 선수였고 다른 친척들이 아일랜드 독립을 반대하는 보수단체 오렌지단으로 활동했다는 것도 공개되었다.
  • 힘든 사람들을 보면 곧잘 눈물을 글썽이는 성격이다. 그 때문인지 자선 활동도 굉장히 열심히 해서 웬만한 자선 사업은 거의 다 참여하고 있다. 코믹 릴리프[96]는 기본이고 온갖 구호 단체 행사에도 참여한다. 자신의 침대를 자선 경매로 내놓았는데 옮기는 도중에 부서졌다는 테넌트 본인의 안타까운 사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BBC 드라마 《Recovery》를 찍은 후부터는 뇌상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삶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되어, 영국의 뇌상환자 전문 자선단체 '헤드웨이 에식스(Headway Essex)'의 홍보대사로 지금도 활동 중이다. 또 2007년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한 후로는 암 연구 지원기관 'Worldwide Cancer Research'의 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다발성 경화증과 같은 희귀병 환자 지원활동에도 참여하는 중이다. 그외에도 저개발도상국 식수위생사업 단체 One Water와 소외계층 아동과 가족을 지원하는 'Circle in Scotland' 등 다양한 자선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 2011년에는 우간다에 직접 찾아가 코믹 릴리프의 일환으로 자선활동을 했는데, 이때 찍은 영상에서 "Red Nose Day를 시청하는 많은 사람들이 더이상 기부를 하지 않고 있다 합니다. 충격적인 일이죠. 혹시 그게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행동 아닌가요? 이걸 보면서도 '아, 귀찮아. 나중에 하지 뭐.'라고 하고 있진 않나요? 제발 그런 사람이 되지 마세요. 부탁이니 그러지 마세요."라는 일침을 날려 화제가 되었다. 방영 직후 전화기부율이 폭발적인 상승세를 기록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영상은 2013년 Red Nose Day에 다시 방영되었다. 또 2014년에는 시에라리온에 직접 찾아가 기금 홍보 활동[97]을 하기도 했다.#해당영상
  •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상연한 연극 《햄릿》에서는 실제 사람의 해골을 손에 들고 열연한 것으로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 해골이 무대에 오르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한다. 1982년에 폴란드의 한 유명 피아니스트 안드레 차이콥스키(André Tchaikowsky)는 '《햄릿》에 나오는 해골 요릭으로 출연하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며 죽기 직전 자신의 해골을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에 기부한다. 문제는 이걸 그 어떤 배우도 만지고 싶어하지 않아서 그때까지 단 한 번도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고.[98] 그러다가 2008년 테넌트가 처음으로 그 해골의 사용을 기꺼이 승낙하면서, 피아니스트는 사망 후 26년 뒤 드디어 마지막 소원을 성취하게 되었다. 이때 '죽은 사람의 머리뼈와 연기하는 씬에서 기분이 어떠냐'는 인터뷰 질문에 테넌트는 "언젠가 살아있던 사람의 해골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게 정말 죽음이란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프기도 하다. 마지막엔 우리 모두 이 한줌의 물질로 돌아간다는 걸, 우리의 상상력은 우리가 우주를 가로질러 갈 수 있게도 하지만 모든 건 결국 한덩이의 뼈로 귀결된다는 걸 얘기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싶어했던 또 다른 한사람과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있다는 느낌을 받아 감동적이기도 했다. 매일 밤 안드레와 함께 무대에 오를 수 있어서 영광이다."라고 대답했다. 아래는 극중 요릭을 들고 햄릿이 독백하는 장면.[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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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워드 노튼이 영화 《인크레더블 헐크》 이후 브루스 배너 역에서 강판당해서 새로운 브루스 배너 역 후보에 들었다는 루머가 돌았지만 마크 러팔로가 캐스팅 되면서 사실이 아닌걸로 밝혀졌다. 또 《판타스틱 4》의 리부트 판에서 리드 리처즈 역을 맡을 수 있다는 루머도 돌았으나, 이것도 사실이 아닌걸로 밝혀졌다. 이전에 테넌트가 인터뷰에서 "전 히어로 영화에 등장하기에 좀 나이가 있으니까요. 판타스틱 4의 리드 리처즈는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네요."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그런 루머가 발생했다고 한다.
  • 국내 지상파 KBS에서 《닥터후》를 방영할 때 '10대 닥터'의 담당 성우가 김승준이었다.[100] 10대 닥터의 다소 까불까불한 이미지와 김승준 특유의 목소리가 잘 어울려서 좋은 더빙이라 호평 받았다. 김승준 항목을 보면 성우 본인도 테넌트의 목소리를 맡은 것에 애착이 있는 듯. 지금까지 테넌트의 출연작 중 더빙이 된 작품은 《닥터후》와 《해리 포터와 불의 잔》, 《트리푸톰》, 《스파이 펭귄》 정도인데, 《트리푸톰》에선 성우 전태열[101]이 그의 목소리를 맡았다.
  • 안타깝게도 테넌트는 2012 런던 올림픽의 성화봉송 주자가 되지 못했다. 《닥터후》 시즌 2를 보면 10대 닥터가 2012 런던 올림픽의 성화 불을 지피는 장면이 있는데, 이 때문에 전세계 후비안들은 테넌트가 실제로 성화봉송 주자가 되기를 바라며 서명운동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이들의 노력과 기대에도 불과하고 마지막 주자가 유소년 성화봉송단으로 확정되면서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갔다.[102] 나중에 TV쇼에 나와 하는 말이 "전화 기다리고 있었어요. 우린 기다리고 있었다구요!"라고. 사실 올림픽 전체에서 닥터후 시퀀스는 없었다고 봐야 할 듯하다. 개막식 때 타디스의 엔진 소리가 짧게 삽입된 것과 폐막식에 나온 봉사자들 옷이 타디스 풍이었다는 게 고작이었는데, 그조차도 거의 알아보는 사람들이 드물 정도였다.
  • 2013년 팬들이 뽑은 '12대 닥터이길 바라는 배우' 1위를 차지했다. #관련링크 하지만 테넌트는 이미 10대 닥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그가 또 다시 12대 닥터로 돌아올 확률은 당연히 0%.[103] 이건 어디까지나 팬들의 희망사항일 뿐이었지만, 이로써 그가 팬들에게 얼마나 강하게 닥터로서의 여운을 남겼는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이 전에도 10대 닥터는 여러 닥터후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닥터', '가장 좋아하는 닥터', '가장 매력적인 닥터' 자리를 차지한 전적이 숱하게 있다. 그리고 2013년 11월, 《닥터후》 50주년을 기념하여 라디오 타임즈에서 개최된 '최고의 닥터' 투표에서는 무려 56.1%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당히 1위를 차지해 '국민 닥터'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받았다. #관련기사
  • 기념우표에 2번이나 발행되었다. 첫번째는 2011년에 발행된 '왕립 셰익스피어 극단 50주년' 기념우표에서 "대표적인 햄릿역"으로 나왔고, 두번째는 2013년 '닥터후 50주년' 기념우표에서 "10대 닥터"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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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년에는 '가장 다양한 작품에 많이 나온 닥터'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사진 《닥터후》 오디오 북, TV 프로그램, DVD와 소설 등 각종 매체에 공식적으로 등장한 것만 쳐도 340회 이상이라고 한다.
  • 브로드처치》의 알렉 하디트위터를 욕하는 모습과는 별개로, 테넌트 본인도 SNS에 대해서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본인 왈, "트위터! 그건 꼭 많은 이들에게 스토킹당하는 것 같잖아요. 원하면 인사하러 오셔도 좋지만, 트위터에 올리려는 이유 하나로 그러진 말아주세요.[104]”라고 SNS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그뿐만 아니라 토크쇼에서도 나와 몇 번이고 "트위터 안 할 겁니다."라고 못을 박았다. 위에도 적혀있듯이 《닥터후》 출연 후 테넌트는 대중과 미디어의 막대한 관심에 꾸준히 시달려왔는데, 결혼 후에는 아내가 또 아내인지라 더욱 주목을 받게 되면서 온갖 루머와 파파라치에 들볶임을 당했다. 이러한 사생활 침해와 루머 양산이 가장 활발히 일어난 곳이 트위터[105]와 같은 SNS였기 때문에, 그가 이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가지는 건 당연한 결과다. 또 《닥터후》 출연 당시에는 테넌트를 사칭하는 트위터 계정이 너무 많아져서 BBC가 직접 '현재 데이비드 테넌트라고 올라온 트위터 계정은 모두 가짜'라고 공식 해명을 할 정도였으니. 그래도 한 동안 잠잠한가 싶었는데, 2014년에는 아내 조지아 모펫의 사칭 트위터 계정이 등장하면서 다시 일이 터졌다. 피터 데이비슨이 본인 트위터 계정에 "지금 내 딸의 공식 계정이라고 올라온 트위터 계정은 가짜이며, 조지아에게 트위터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라는 글을 올리면서 어느정도 해결되었지만. 때문에 테넌트 쪽에서는 이러한 일들이 재발될 빌미조차도 원천 봉쇄하기 위해 SNS를 일절 하지 않는다.
  • 2015년, 아내 조지아 모펫과 함께 11분짜리 단편 영화 《96 Ways To Say I Love You》(사랑한다고 말하는 96가지 방법)에 나왔다. 프로듀싱에는 조지아 테넌트[106]가, 음악에는 밴드 프로클레이머스가 참여했다고 한다. 이 단편에 출연함으로써 테넌트 부부는 자기 자식들의 이름을 가진 배역들을 전부 한 번씩 맡게 되었다.
  • 2015년 영국 내셔널 텔레비전 어워드(NTA)에서 '특별 공로상(Special Recognition Award)'을 수상하였다.[107] 프로클레이머즈가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올라왔을 때도 이게 본인을 위한 건지 전혀 짐작도 못하다가, 자신에 대한 헌정 영상이 나오자 감격해서 어쩔 줄 몰라한다. 이때 헌정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은 모두 동료 배우들이나 함께 작업했던 감독, 작가 등으로, 이 중 마지막에 나오는 사람이 테넌트의 아버지다. 이에 테넌트는 아버지가 화면에 나오는 걸 보고 감동해서 울먹인다.[108] 이후에는 수상소감을 말하는데 정말 사전에 어떤 준비도 하지 않아서 무대에 올라가 당황+감동으로 횡설수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여담으로 개념 있는 말을 잘하는 걸로도 인기가 많다.[109] 예컨데 '정치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길 바라는건 너무나 당연한게 아니냐'라는 얘기를 한 적도 있고, '성희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정인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기보다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한다'고 말한 적도 있다. 또 테넌트는 UN 여성 인권신장 캠페인에 참여한 걸로도 알려져있다. 최근에는 드라마 《제시카 존스》가 페미니즘적 시각을 담고 있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우리 모두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한다고 생각해요. 그건 화제거리에 오르고내리고 할 문제가 아니니까요."라는 대답을 하기도 했다. 또한 성소수자 문제에서도 성소수자 편에 서서 크고 작은 지지의 의사를 여러 번 보이기도 하였다.
  • 2019년 11월에는 BAFTA와 NTA 노미테이트 경력 상위 100명의 배우들을 제치고 '지난 10년간 영국에서 가장 열심히 일한 배우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백 단위 필모그래피와 소라는 별명의 위상이 제대로 느껴진다.
  • 2019년 할로윈 때 배트맨 코스프레한 적이 있다.
  • 레딧에 방문해서 팬들과 소통한 적이 있다.링크
  • 2022년 닥터후 60주년 기념 에피소드 복귀와 14대 닥터 캐스팅 루머가 확산되는 중인데, 독일 코믹콘에서 질문을 받고 답변을 했다. 호스트가 "웬 '새'가 말하기를, 러셀 T. 데이비스가 당신을 복귀시킨다던데..."라고 하자 테넌트는 "혹시 그 새 이름이 인터넷인가요?"라고 유쾌하게 받아쳤다. 이후 "지난 20년간 이런 질문을 다양한 형태로 받아왔는데,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제가 어떤 대답을 해도 의미가 없더라구요. 부정을 해도, 긍정을 해도 그게 결국엔 인터넷에서 원하는 답변이 될 겁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실제로 60주년 특집에서의 복귀가 확정되었다.

8.1. 닥터후 관련

위에도 적혀있듯 어렸을 때부터 《닥터후》를 보고 자란 열렬한 후비안이다. 처음 본 닥터이자 가장 좋아하는 닥터가 4대 닥터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돈만 생기면 《닥터후》의 외계인 인형들을 모았는데, 한 번은 가족 행사 때문에 챙겨보던 《닥터후》를 못보게 되자 화가 나서 그 인형들하고만 얘기했다고. 또 14살 때는 학교 에세이에 자기가 후비안임을 증명하는 글을 썼다고 한다. 글의 내용은 닥터를 연기하는 것이 자신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열망인가에 대한 것이었다는데, 이후 바라는대로 되었으니 정말 제대로 덕업일치.그것도 두 번이나

상술했다시피 테넌트는 어렸을 때부터 매주 드라마를 챙겨봤을 뿐만 아니라 각종 장난감과 만화책, 닥터후 매거진 등 다양한 굿즈를 사 모으면서 작품 내외적인 설정도 빠삭하게 꿰고 있는 열광적인 후비안이다. 특히 4대 닥터의 팬이어서 톰 베이커에게 싸인을 받기 위해 글래스고에 찾아가기도 했는데,

《닥터후》에서 10대 닥터로 열연할 당시 나온 토크쇼들을 봐도 그가 어느 정도의 후비안인지 알 수 있다. 닥터의 고향 행성 갈리프레이가 속한 성단 이름[110]을 아는 건 기본이고, 후비안들에게 '《닥터후》에 출연한 프레이저 하인스라는 배우가 아팠을 때 그의 역을 약 2주간 대신 연기한 배우의 이름이 누구냐'는 퀴즈를 즉석에서 생각해낼 정도로[111] 막강한 덕질스펙을 보유하고 있다. 또 닥터후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해 코멘터리를 하는데, 클래식 닥터후와 뉴 닥터후를 넘나들며 범닥터후적 설명을 하기 때문에 듣고 있으면 정말 대단하다.

사실 《닥터후》 뉴 시리즈가 2005년에 다시 부활하기 전[112]부터 닥터후 오디오 드라마에 출연한 경험이 꽤 된다. 2001년에는 7대 닥터의 오디오 드라마 《Colditz》에, 2003년에는 《Doctor Who Unbound》 시리즈의 〈Sympathy for the Devil〉과 〈Exile〉에 조연으로 출연하였다. 또 2004년에는 《Dalek Empire III》라는 닥터후 스핀오프 오디오 드라마 시리즈 중 〈The Exterminators〉에 나와서 달렉의 비밀을 밝혀내는 주인공 역으로 출연했다. 특히 2003년에 개봉한 《닥터후》 애니메이션 〈Scream of the Shalka〉는 원래 그가 출연할 작품이 아니었는데도 조연으로 들어갔는데, 이는 다른 라디오 연극을 녹음하던 테넌트가 옆 녹음실에서 닥터후 애니메이션을 녹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당장 그곳에 찾아가 디렉터를 이리저리 설득하여 따낸 역이라고 한다.

최근 왕중왕급의 후비안으로 급부상 중인 12대 닥터 피터 카팔디에게 가려져 그 덕질스펙이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지만, 상기 설명처럼 테넌트 역시 젖먹이 시절부터 닥터후를 파왔고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으로 덕질 중인 덕중의 덕이다. 또 그는 현재 닥터후를 제작하고 있는 1세대 후비안들 중에서도 상당히 젊은 편에 속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닥터후 덕질 내공과 참여 경력, 그리고 뉴 시리즈에선 처음으로 장기집권한 닥터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산전수전을 첫빠따로 겪었다는 점에서 《닥터후》에 참여하는 배우들에게는 어딘가 최초 선배 혹은 조언가와 같은 위치에 있다. 그래서 맷 스미스, 제나 콜먼, 피터 카팔디, 조디 휘태커 등 닥터후에 캐스팅 된 배우들이 테넌트에게 조언을 구한 일화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113] 카팔디의 말에 따르면 닥터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전부터 테넌트와 함께 커피타임을 여러번 가지며 종종 닥터를 맡은 배우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즐거웠다고. 또한 11대 닥터에서 12대 닥터로의 재생성 장면 촬영 후 맷 스미스가 카팔디에게 편지 하나를 전해주었는데, 그게 다름아닌 '테넌트가 카팔디를 위해 작성한 조언 리스트'였다고 한다. 이번 13대 닥터 역으로 확정된 조디 휘태커가 조언을 얻기 위해 가장 먼저 연락한 전임 닥터도 바로 테넌트라고. 그래서 어째 매번 닥터가 바뀔 때마다 공개되기 전에 미리 알게 되는 듯 하다.[114]

테넌트는 또 닥터후뿐만아니라 셰익스피어, 비틀즈, 마블 코믹스 등 여러가지에 덕후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특히 스코틀랜드의 국민 밴드 프로클레이머스(The Proclaimers)의 열렬한 팬이다. 테넌트가 《닥터후》에서 하차하며 닥터후 크루들과 기념으로 찍은 동영상에는 프로클레이머스의 히트곡 'I'm Gonna Be (500 Miles)'가 배경음악으로 쓰이는데, 프로클레이머스와 함께 찍은 씬[115]에서는 소개 자막에다 아예 'Proclaimers & Their biggest fan(프로클레이머스와 그들의 최고 광팬)'이라고 해 놨다. 그 이후로도 프로클레이머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찍은 사진이 여럿 보인다. 2013년에 출시한 프로클레이머스의 앨범에는 테넌트도 참여해서 함께 라이너 노트(음반 해설)까지 썼다고 한다. 또 테넌트는 마블 코믹스 팬이기도 한데, 결국 2015년에 소원대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입성했으니 이쯤되면 명실상부 성공한 능덕.

여튼 이러한 삶 덕분에 테넌트는 단순히 성공한 덕후를 넘어 존경받는 덕후, 열망을 주는 덕후로 유명해졌다. 그를 보면서 닥터가 되는 꿈과 배우의 꿈을 키워나가는 꿈나무들도 많다고. 유튜브의 한 유명 닥터후 관련 채널 유튜버는 테넌트 덕에 처음으로 매스미디어에 눈을 뜨게 되었고 전공도 언론정보학을 공부하게 되었다며 감사함을 표하기도 했다.[116] 또 언젠가 한 번은 앱솔루트 라디오 코너에서 한 어린 팬이 "데이비드 당신은 내게 닥터가 되는 꿈의 열의를 줘요. 그리고 당신은 내 최고의 닥터에요."라고 전하자 그걸 듣고 뭉클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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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덕후기질은 그가 평상시 입는 옷에서도 확실히 드러나는데, 뻑하면 입고 있는게 비틀즈 티셔츠다. 그 외에도 한정판 슈퍼맨 컨버스라던가 헐크, 스파이더맨, 다스 베이더, 미국드라마 웨스트 윙 티셔츠 등 다양한 일코해제 패션을 선보인다. 또 《닥터후》 촬영당시에 빌리 파이퍼가 사준 본인명대사 티셔츠를 입고다닌 걸로도 알려져있다.

2015년에 참가한 위자드 월드 코믹콘에서는 '요즘엔 무슨 덕질을 하고 있냐'는 팬의 질문에 HBO 드라마 《뉴스룸》을 주로 파고있다고 대답했다. 또 그 외에도 다양한 것에 대해 덕질 중이라고 엄청 신나한다. #해당영상

그런가하면 2016년에는 12대 닥터 코스프레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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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에 열린 위저드 월드 코믹콘에서는 자신의 학창 시절 《닥터후》 덕질을 할 때의 경험담을 얘기해주기도 하였다. 근데 또 이게 현실판 닥터후스러운 이야기여서 팬덤에서 화제거리가 되었다. 어렸을 때 그의 방에는 4대 닥터 톰 베이커의 포스터가 항상 걸려있었는데, 어느 날 글래스고의 한 서점에서 톰 베이커의 팬 미팅을 연다는 소식이 들리자 그는 4대 닥터의 싸인을 받기 위해 포스터를 들고 찾아갔다 한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날 그 서점에 베이커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 서있던 사람들 중에는 스티븐 모팻도 있었고, 그 중에는 늦게 와서 사인을 받지 못한 피터 카팔디도 있었다고. 즉, 한날 한시 같은 장소에 3명의 닥터와 미래 닥터후 쇼러너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함께 있었던 것이다. 이 사실은 최근에 피터 카팔디와 대화를 나누다가 알게 되었다고 하는데, 알고보니 진짜 멀티 닥터 에피소드 같은 해프닝이었기에 놀라우면서도 신기했다고 한다. #해당영상
[1] 개명 전 본명은 데이비드 존 맥도널드(David John McDonald). 2013년 미국 배우 조합의 행정 문제로 개명했다.[2] 2016년 모교에서 드라마 부문의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3] 5대 닥터로 유명한 피터 데이비슨의 딸이다.[4] 아내 조지아 모펫이 결혼 전 낳은 아이를 테넌트가 입양해 함께 양육했다.[5] 유명 배우가 마케팅 일환으로 가끔씩 성우를 맡는 경우와 다르다. 테넌트는 라디오, 오디오북,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한 전문 성우내레이터다. 따라서 특기한다.[6] S.Ahmed, K.Maltby, B.Hilton, 2023.12.21.[7] 참고로 BAFTA는 원래 '영국 영화 텔레비전 예술 아카데미'의 줄임말이다. 그러나 이 경우 텔레비전 시상식이 아닌 '영국 아카데미 영화 시상식(British Academy Film Award)'의 초대이므로 이렇게 표기한다.[8]로미오와 줄리엣》을 시작으로 현재 《맥베스》에 이르기까지 20대에 로미오, 30대에 햄릿, 40대에 베네딕과 리처드 2세, 50대에 맥베스를 맡았다. 이는 셰익스피어 연극계에서 최고로 인정받은 극소수만이 타는 커리어다. 더욱이 테넌트는 주요 기념해에 하이라이트 무대로 돌아오고 있다. 평론가들도 표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할 정도라 웨스트엔드에서 어떤 위상인지 실감할 수 있다. 영국 '영화' 아카데미가 소개문에 저 무대들을 괜히 언급한 것이 아니다.[9] 세 명을 제외하고 역대로 두 번 발행된 인물은 찰스 배비지, 프랜시스 치체스터(최초로 단독 세계 일주를 성공한 항해사), 윈스턴 처칠, 벤자민 프랭클린, 조지프 리스터, 바비 무어, 윌리엄 셰익스피어빅토리아 여왕이 있다. 분야는 다르지만 모두 영국에서 국민적인 아이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10] 《닥터후》의 성공으로 러셀 T. 데이비스, 버나드 크리빈스가 OBE를 수훈받았고 《브로드처치》와 《더 크라운》으로 올리비아 콜먼이 CBE를 수훈받았다. 참고로 《닥터후》와 《브로드처치》는 둘 다 기록적인 시청률과 함께 국제적인 성공을 거두어서 영국 텔레비전 산업의 양대 채널(BBC, ITV)에 각각 획을 그었다고 평가된다. 또 가장 최근에는 RSC 감독 그레고리 도란이 기사 작위(Knight Bachelor)를 수훈받았는데, 도란의 주요 필모그래피 중 두 개가 테넌트의 《햄릿》과 《리처드 2세》다. 객관적으로 각 분야에 획을 긋는 작품이 한두 개도 아니고 여럿이며, 함께 참여한 주변인들은 수훈을 받는데 테넌트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본인이 거절하지 않는 이상 말이 안되기 때문에 루머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다.[11] 2015년 오바마 정부 당시 알란 릭맨과 함께 영국 문화계 대표로 초대되었다.[12] 작위는 후보자가 결정되고 수여식 6주 전에 본인에게 수락 여부를 묻는다. 이때 개인의 신념에 따라 거절할 수 있다. 왕실은 이 사실을 따로 공표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발설하지 않는 이상 알 수가 없다. 따라서 거절했다고 알려진 경우는 본인이 언론에 밝힌 경우다. 말하지 않으면 이렇게 인원으로 추산될 뿐이다.

참고로 위 각주에 상술한 릭맨도 비슷한 사례다. 커리어 도중 OBE, CBE 수여 연락을 두 차례 받았지만 거절했다는 루머가 돌았는데 계속 함구하고 있다가 뒤늦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렇다 보니 테넌트도 작위를 계속 거절해서 대신 백악관 국빈 리스트에 넣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13] 대부분 군주제 폐지론을 지지하는 공화주의자다. 이러면 당연히 왕실을 지키라는 의미로 주는 서훈을 안 받을 가능성이 높다.[14] 후술하겠지만 이후 2013년에 미국 배우 조합의 가입 조건이 걸리는 문제가 생겨서 결국 법적 성명을 예명과 같게 개명했다. 이에 따라 현재는 본명도 '데이비드 테넌트'가 되었으며, 자식들 역시 테넌트라는 성으로 호적에 올리게 되었다.[15] 샌디 맥도널드는 이후 스코틀랜드 교회 총의장을 역임하지만 그건 테넌트가 20대 중반이었던 1997~1998년이다. 유소년기의 테넌트는 랠스턴(Ralston)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자랐다. 목회관에서 생활해 궁핍하진 않았겠지만 꼬마였을 당시 부러진 안경에 테이프를 감고 썼다는 걸 보면 넉넉치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검소한 인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16] 위로 8살 터울의 누나, 6살 터울의 형이 있다.[17] 금연 권장 드라마로 공중전파를 탄 것은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상영되었다고 한다.[18] 정원 연령이 17~20살인데 16살에 합격해서 특례 입학했다.[19] 같은 이름을 가진 배우들이 활동에 있어 혼선을 빚는 것을 막기 위해 제정된 규정이라고 한다.[20] 이후 《닥터후》로 유명해진 테넌트는 이때의 은혜에 감사함을 밝혔으며, 위어의 늦둥이 자식에게 대부가 되었다.[21] 어떤 관객이 당시 무대를 찍은 사진이 퍼져서 '텐인치(David Ten-inch)' 별명이 유명해졌다.[22] 2000년대 이후로 대중문화 지형이 아주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90년대만 해도 "마초적인 면이 없고 체격이 너무 말라서 주연 남배우로 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이 중론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테넌트는 학창 시절에 게이라는 오해를 받고 학교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그에게 '로맨틱 리드'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카사노바》와 《닥터후》가 잇달아 성공한 2005년 이후였는데, 이때도 새로운 유형의 TV 스타라는 기사가 많이 나갔다.[23] 영문학에서 매너 코미디(comedy of manners)는 상류 계급의 위선적인 행태에 대한 풍자 코미디 장르로 '풍습 희극'으로도 번역된다.[24] 오디오 쪽 필모그래피만 개수가 170개가 넘는다. 비디오 내레이션까지 포함하면 200개가 거뜬히 넘는다.[25] 여기서 《베니스의 상인》의 '란슬롯 고보', 《리어왕》의 '에드거', 《로미오와 줄리엣》의 '머큐시오' 등의 역을 맡았다.[26] 'Feldwebel Kurtz'라는 나치 장교로 악당 하수인이었다.[27] 그 해에 상연된 최우수 연극, 오페라와 배우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로런스 올리비에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으며 영국의 토니상으로 불린다.[28] 다니엘 래드클리프와 다른 중견 배우들이 각자 의자에 앉을 때 혼자 서있으니까 제작진이 간이 의자를 갔다줬다고 한다. 참고로 감독이나 배우 의자들은 키가 높은데 스태프용 의자는 거의 바닥에 붙어있는 조그만 의자다. 그래서 다같이 촬영을 기다리는데 혼자 올려다 보느라 뻘쭘했다고. 그래도 마이클 갬본알란 릭맨, 매기 스미스와 같은 대배우들과 함께 찍는다는 사실에 매우 신났다고 한다.[29] 러셀 본인이 각종 인터뷰에서 직접 한 말이다. 2015년 NTA 공로상을 수여할 때도 말하고, 2023년 닥터후 6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imagine…Russell T Davies: The Doctor and Me>에서도 얘기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30] 어찌보면 쿠엔틴 타란티노크리스토프 발츠의 관계와 매우 유사하다. 타란티노처럼 러셀도 언어의 리듬감을 굉장히 중시하는 작가인데, 그가 요구하는 매력적인 화술을 구사하는 배우가 없어 제작에 난항을 겪다가 오디션을 통해 경력이 꽤 되었지만 덜 알려진 실력자를 발견했고, 그렇게 작가와 배우가 페르소나 관계를 형성하면서 이후 작품이 초대박남과 동시에 배우도 단숨에 세계적으로 떠오르는 윈윈(win-win) 상황이 되었다.[31] 어린 시절부터 덕질한 일화나 자잘한 설정까지 꿰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당장 테넌트는 10대 닥터로 합류하기 이전부터 성우 활동으로만 총 7개의 《닥터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Doctor Who: Colditz〉(2001), 〈Doctor Who: Sympathy for the Devil〉(2003), 〈Doctor Who: Exile〉(2003), 〈Doctor Who: Scream of the Shalka〉(2003), 〈Dalek Empire III〉(2004), 〈Doctor Who: Medicinal Purposes〉(2004), 〈UNIT: The Wasting〉(2005). 이것도 다른 녹화를 하다가 옆방에서 《닥터후》 관련 뭔가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쫓아가서 단역을 따낸 것들이다(...). 어느 순간부터 후비안들 사이에서 테넌트가 피터 카팔디에 덕력이 밀리는 것처럼 퍼진 모양인데 이런 것만 봐도 더했으면 더했지 절대 뒤지지 않는다.[32] 참고로 현재는 전설이 된 10대 닥터도 처음부터 대중에게 사랑받으며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테넌트가 닥터로서 처음으로 활약하는 2005년 크리스마스 스페셜 〈The Christmas Invasion〉이 방송되기 전에 《시크릿 스마일》이 먼저 나오는 바람에(...) 초창기에는 새로 바뀐 닥터의 인상이 소름끼쳐서 비호감이라는 시청자 불만이 많이 접수되기도 했다. 연기를 너무 잘해도 문제[33] 《닥터후》 제작진과는 얘기를 마친 상태였기에 현장에 있던 제작진은 다소 착잡한 표정인 반면 방청객의 반응은 완전 혼돈과 아수라장이었다. 해당 영상.[34] 모팻의 말에 따르면 본인은 원래 테넌트가 계속할 것이라는 전제로 시즌 5를 썼기 때문에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그 증거가 피시핑거와 커스터드로, 그의 말을 인용하면 "피시핑거와 커스터드는 사실 맷보다는 데이비드한테 더 어울리는 것이죠."라고 한다. 또 리버 송의 이야기도 재생성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시즌 4부터 나오기 시작했는데 연속성이 흐려져서 아쉬웠다고 밝혔다.[35] 영국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 우리나라로 따지면 지상파 3사 저녁 뉴스.[36] 립서비스가 아니라 정말 팬들이 내용을 물으면 다 알고 답한다. 돌아올 수 있는 자격이 괜히 주어진 게 아니다.[37] 시즌 4 피날레를 방영하고 시즌 4 스페셜 시즌은 아직 촬영하기 전이었다.[38] 도란에 따르면 테넌트의 연기력이야 진작에 알았고, BBC 다큐멘터리 《Who Do You Think You Are?》에 출연했을 때 유적에서 해골을 들어올린 모습을 보고 자신이 찾고 있는 햄릿이라고 확신했다고 한다.[39] 주로 가디언(The Guardian)로버트 맥크럼 평론이 인용되지만 조나단 베이트도 "1988년 마크 라이런스 이후 최고의 햄릿"이라고 논평했으며, 타임스(The Times), 텔레그래프(The Telegraph), 인디펜던트(The Independent)에서도 비슷한 극찬이 나왔다.[40]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응급 상황이 되었다.[41] 이 외 4개는 1963년 피터 홀 · 존 바튼 · 클리포드 윌리엄스가 공동 연출한 《장미 전쟁》, 1970년 피터 브룩의 《한여름 밤의 꿈》, 1971년 홀과 해롤드 핀터가 공동 연출한 《옛 시절》, 1976년 트레버 넌의 뮤지컬 《실수연발》이 선정되었다.[42] 《햄릿》 외에 《리어왕》, 《한여름 밤의 꿈》, 《로미오와 줄리엣》, 《템페스트》, 《헨리 6세》의 대표가 지목되었다.[43] John Wyver, 『Screening the Royal Shakespeare Company: A Critical History』, Bloomsbury Publishing, 2019 참조.[44] 가장 다른 점은 독백하는 장면인데, 테넌트는 제4의 벽을 허물 듯 카메라를 직접 응시하면서 말을 건다. TV 영화라는 매체로 옮겨졌지만 이것의 본질은 여전히 '영화'가 아닌 '정통 연극'임을 상기시킨 것이다.[45] 한국 셰익스피어 학회에도 있다. 참고해서 보면 재밌다.[46]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는 미국의 고등학교 선생들은 브래너의 영화가 수업 시간에 참조하기 좋다고 굉장히 고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영국의 전문 비평가들은 1980년 조너선 프라이스나 1988년 마크 라일런스의 연극을 훨씬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이래서다.[47] RSC에서는 이래서 전문적으로 텍스트를 연구하는 부서가 따로 있고 대본의 저작권을 철저히 관리한다.[48] 참고로 올리비에는 셰익스피어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작가를 기용한 반면 브래너는 본인이 대본을 짰다는 차이점도 컸다.[49] 당대의 다른 복수극에도 있었던, 일종의 장르적인 구조였다는 의미.[50] 한 행위와 관련된 모든 사항과 그로 인해 가능한 결과까지 지나치게 골몰해서 복수가 지연된다는 해석이다. 햄릿이 우유부단하다는 이미지가 여기서 나왔다.[51] 햄릿이 선왕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어머니의 근친혼으로 인해 깊은 우울증에 빠져서 복수를 지연했다는 이론이다.[52] 햄릿 본인이 무의식 중에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은 욕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소망을 실제로 행동으로 옮겼을 뿐인 클로디어스를 죽일 수가 없었다는 이론이다.[53] 프로이트의 해석은 낭만주의 비평 중에서도 사실상 각주에 불과했지만 올리비에 덕분에 가장 유명해졌다.[54] 가령 Q2, F를 중심으로 하는 기존 햄릿은 복수를 위한 극중극을 계획하다가 마음을 바꿔 '죽느냐 사느냐'를 독백하고, 또 마음을 바꿔 다시 공연을 진행한다. 하지만 이 극에서는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를 먼저 독백하고 마음을 다잡은 후 복수를 위한 극중극을 계획하는 순서로 진행된다. 도란은 이 구성이 훨씬 더 논리적이고 극중 긴장감을 유지시킨다는 비주류의 학설을 수용했다. 테넌트도 "기존 구성은 연기하는 관점에서는 흥미로우나 드라마의 스토리텔링 자체에는 불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55] 원래 《햄릿》 공연에는 인터미션이 없다. 참고로 이 인터미션은 '연극'에서 공연 중간에 쉬는 시간이므로 2009년 TV 영화에는 반영되지 않았다.[56] 여담으로 흥미로운 사실은 《닥터후》를 통속극으로 낮추어 보던 셰익스피어 학계가 이것을 계기로 10대 닥터의 내러티브를 문학적으로 분석하기도 했다는 점이다.[57] 영국 시인 T. S. 엘리엇이 성격심리 비평을 비판하면서 시작되었다. 엘리엇은 등장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객관적 상관물을 중시했고, 이것을 문학 비평가 캐롤라인 스펄전이 발전시켜서 작품 전체의 주제와 분위기, 모티프를 나타내는 '반복적인 이미지와 상징'을 분석하는 이론이 된다. 시적 접근 비평가들은 《햄릿》을 시로 분석했기 때문에 19세기 낭만주의자들과 똑같은 오류를 범했다고 비판에 직면했다.[58] 참고로 연극은 '거울의 방'을 연상시키는 무대였는데 TV 영화에서는 아무래도 연출적인 문제가 있어서 그런지 검은 방으로 바뀌면서 좀 달라졌다.[59] 그래서 이 극은 작중 초반의 망루 장면과 폴로니우스가 레아터스를 감시하려고 보낸 스파이 레이날도, 엘시노어에 관한 외교정책을 수행하는 대사 볼티몬드와 코넬리우스, 포틴브라스의 행진 장면 등 기존의 공연에서 주로 채택하지 않는 것들을 그대로 포함시킨다.[60] 성격심리 비평이 인물 분석에 집착한 나머지 《햄릿》이 쓰여진 당시의 사회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다고 비판하면서 나온 20세기의 비평 이론이다. 역사 비평은 셰익스피어 희곡이 '극장에서 실제로 상연된 연극'이라는 점을 주지하고 당대 관객들의 관점을 반영한 작품으로서 분석하는 역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61] 햄릿이 클로디어스로 대변되는 거대한 조직의 감시 아래 행동하고 있음을 주시하여 이것을 정치극으로 해석한 이론이다. 코트는 특히 개인의 역할이 타자에 의해 강요된 상황의 불합리성에 주목하며 《햄릿》의 세계가 비단 햄릿뿐만 아니라 레어티스, 오필리아, 포틴브라스 등 극중 인물 모두에게 거대한 감옥과 다름없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햄릿의 상황을 20세기에 비추어 보면서, 인간을 미칠 지경으로 몰아붙이는 세상에서 현대인이 느끼는 불안과 분열적 감수성을 투사했다.[62] 미국 문학자 토마스 맥파랜드는 하이데거의 존재론과 야스퍼스의 한계 상황(Grenzsituation) 개념을 가져와 《햄릿》을 분석한다. 햄릿이 "부재하는 실재(the reality of nonbeing)"와 맞닥트려 실존주의적인 고뇌에 찬 개인으로서 어찌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도록 운명지어진 인물이라는 해석이다.[63] 참고로 영국 연기법은 모두 올리비에식을 바탕으로 한다. 덧붙여서 도란이 유령/클로디우스 역에 스튜어트를 캐스팅한 것부터가 사실 메소드로 이행하겠다는 노골적인 표시였다. 스튜어트는 메소드의 대가인 스텔라 애들러의 제자이기 때문이다.[64] 이후 TV 영화에 나온 해골도 차이코프스키의 것이 맞다.[65] 실험극은 웨스트엔드에서 보통 인기가 없는 장르인데 테넌트는 무대에 돌아온다고 하면 그 시즌에 가장 핫한 연극 차지는 기본이고 표 구하기가 정말 하늘의 별따기다.[66] 테넌트와 테이트의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가 궁금하다면 보도록 하자.[67] 《브로드처치》 종방 3일 후에 《정치인의 남편》이 방영되었다.[68] 이게 진짜 어느 정도였냐면, 그 기간 가장 핫한 배팅판이 '누가 대니를 죽였는가'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또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누가 대니를 죽였는가"라는 표어가 대문짝만하게 걸려있는걸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한다. 사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평균 시청률이 20%도 넘기 힘든데, 최고 시청률이 아니라 '평균 시청률'이 31%였다는 건 정말 놀라운 기록이다.[69] 테넌트의 스코틀랜드 억양은 상당히 가벼운 편인데도 불구하고 원래 '스코틀랜드 억양' 자체가 강한 느낌을 주다보니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이질적이게 느껴진다. 그렇기 때문에 테넌트는 런던에서 흔히 쓰이는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 발음(Estuary English)'도 자유롭게 구사하며 스코틀랜드 억양이 요구되지 않는 대부분의 작품에선 이 발음을 상용한다. 하지만 영국식 영어미국식 영어는 확실히 다른데다가, 스코틀랜드의 억양은 오히려 미국식 발음을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상당히 쉽지 않았다고. 기껏 미국 발음을 연습해갔더니 코치가 하는 말이, 왜 캐나다 영어를 하고 있느냐고 그랬단다.[70] 영국의 유명 라디오 DJ. 앱솔루트 라디오에서 '크리스천 오코널의 아침 방송(The Christian O'Connell Breakfast Show)'을 진행한다. 테넌트와는 굉장히 친한 친구 사이여서 테넌트도 상당히 자주 출연한다. 특히 연말의 크리스마스 동화연극(Christmas Panto)에는 거의 해마다 반강제적으로 테넌트를 출연시키고 있는데, 테넌트 말에 따르면 자신의 약점을 잡고 협박해서 부려먹는다고.[71] 이 때문에 《닥터후》를 보고 이걸 본 많은 이들이 '두 번 다시는 10대 닥터가 나왔던 에피소드들을 웃으며 볼 수 없을 것 같다'고 불평하기도 했다고. #관련자료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한 인터뷰어의 질문에 테넌트는 "배우로서 다양한 연기에 도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걸 사람들이 이해해 줄 거라고 믿어요. 배우와 배역을 구별해서 생각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니까요. 똑똑한 후비안들이라면 저의 변신을 기쁘게 지켜봐 줄 수 있을거예요."라고 답했다.[72] 2016년 출간된 Volume 1에서는 도나 노블 역의 캐서린 테이트와 함께 작업하였고, 2017년 11월에 출간된 Volume 2에서는 로즈 타일러 역의 빌리 파이퍼와 함께 작업하였다. 벌써 10대 닥터의 상징적인 컴페니언 두 명과 재회하게 된 셈이다.[73] 돈 후안의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올린 연극으로 은근 노출 수위가 높았다는 후문이 있다.[74] 참고로 이 영화는 아내 조지아 모팻이 프로덕션에 참여했다.[75] 여담으로 이 캐릭터의 한국판 성우는 설영범인데 이 성우는 닥터후에서...[76] 15년의 세월이 흐른 10대의 외형에다가 성격은 11~13대의 생애를 거치며 성숙해진 모습이다.[77] 참고 1, 참고 2, 참고 3. 이 외에도 14대 닥터 문서의 촬영 후일담 문단 참조.[78]정치풍자 스케치에서는 재생성한 토니 블레어로 출연해 닥터후 패러디로 이를 풍자했다.[79] 사실 토니 블레어 인물 자체가 "부시의 푸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조지 W. 부시를 비롯한 미국 네오콘에게 많이 휘둘린 편이어서 노동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평가가 좋지 않다. 실제로 테넌트는 팟캐스트에서 부시와 딕 체니를 포함한 네오콘 일당을 여러 번 비판한 적이 있다.[80] 테넌트 본인이 상당한 정치 드라마 덕후다. 특히 HBO에서 방영한 미국드라마 《웨스트 윙》의 광팬인데, 그게 어느 정도냐면 무려 그 《닥터후》를 제끼고 《웨스트 윙》을 가장 좋아하는 TV 시리즈라고 할 정도. 또 2015년 코믹콘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현재는 HBO 드라마 《뉴스룸》을 덕질 중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건 이 두 작품 다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81] 참고로 닥터후 촬영현장에 아버지를 모신 적이 있는데, 시즌 4 7화 <Unicorn and the Wasp>에서 저택의 하인으로 카메오 출연을 하셨다. 참고로 캐릭터의 대사가 없어 굳이 암기할 만한 것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만족하셨다는 소감을 남기시기도.[82] 영국 가디언지 인터뷰 원문 발췌 - "I am now actually Tennant – have been for a few years, it was an issue with the Screen Actors' Guild in the US, who wouldn't let me keep my stage name unless it was my legal name. Faced with the prospect of working under 2 different names on either side of the globe, I had to take the plunge and rename myself! So although I always liked the name, I'm now more intimately associated with it than I had ever imagined. Thank you, Neil Tennant."[83] 하지만 그것도 쉽게 알아보기 힘들만한 사진인데다가, 찍힌 후에도 철저하게 블러 처리 요청을 하는 걸 봐서는 여전히 매스컴의 관심에 주의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84] 피터 데이비슨도 동명이인과 중복을 피해 예명을 쓴 경우다. 조지아가 데이비슨의 딸이면서 성이 다른 것은 이 때문. 데이비슨의 본명은 피터 M.G. 모펫(Peter M.G. Moffett)이다.[85] 막내는 2019년에 출생했다. 이때 큰아들 타이가 임신소식을 듣자, 피임방법을 가르쳐줘야겠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86] 비슷한 예로 차승원이 있다.[87] 조지아가 당시 《닥터후》에 출연하였을 때 찍은 컨피덴셜 영상에 나온다. 조지아가 타이에게 "어떤 닥터를 가장 좋아해?"라고 묻자 타이는 데이비드 테넌트를 가장 좋아하고 그 다음으로 톰 베이커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그 외에는 좋아하는 닥터 없어."라고 정작 외할아버지5대 닥터는 관심조차 없단다.#해당영상(21초부터)[88] 사실 이에 대해서는 찬반이 갈릴 정도로 논쟁이 심한 주제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89] 정작 리시 수낙과 보수당은 이후 대선에서 보기좋게 낙선하고, 테넌트가 지지하는 노동당의 키어 스타머가 당선하면서 테넌트 지지자들은 '또 테넌트가 이겼다'고 외치는 중(...)이다.[90] 사실 다른 해리포터 시리즈 출연 배우들도 J.K 롤링의 TERF 발언이나 행보에 대해서 비판을 하여 롤링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많았다.[91] 2004년부터 2013년까지 담당한 작품 모음과 통계치는 이 #링크로 확인할 수 있다.[92] 사진은 영화 《글로리어스 39》 촬영장에서 찍힌 것.[93] 심지어 색깔별로 다양하게 위아래 깔맞춤해서 입는다. 빨강색, 초록색, 황금색, 초콜릿색, 검은색 등등.[94] 앞에도 적혀있다시피 테넌트는 배우활동 초창기에 《What the Butler Saw》라는 연극에서 나체로 연기하는 배역을 맡은 적이 있다. 근데 이때 누군가가 찍은 사진이 인터넷에 퍼졌다.[95] Mull Island. 스코틀랜드의 이너헤브리디스 제도에 있는 섬이다.[96] Comic Relief. 세이브더칠드런과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자선단체다. 대표적인 캠패인 활동으로 'Red Nose Day(빨간 코의 날)'가 유명하다. 여러가지 재미있는 영상과 이벤트로 모금활동을 하는 것이 특징이다.[97] 테넌트는 다행히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가 심각하게 확산되기 전에 다녀왔다고 한다.[98] 영국 연극계에는 다양한 미신이 있는데, 특히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관련하여 징크스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게 상당히 민감해질 있는 문제여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99] 데이비드 테넌트가 연기한 햄릿은 배경을 현대로 각색한 버전이기에, 현대 의상을 입고 있다.[100] 10대 닥터가 처음 등장하는 뉴 시즌 1 파이널 에피소드에서는 유동균이 더빙했다.[101] 김승준과 전태열 모두 스펀지밥을 연기한 경력이 있다.[102] 사실 굳이 따지자면 닥터가 성화봉송을 하기는 했다. 자세한 건 맷 스미스 항목 참조.[103] 다만 두 대 정도 밀려서 실현되기는 했다.[104] 원문 : Twitter! It’s like being stalked by committee! Come and say hello if you want, but not for the sake of twittering about it.[105] 당시 둘의 연애부터 결혼까지 온갖 풍문을 찍어내던 파파라치 사진기사들이 그에 대한 찌라시와 사진들을 가장 먼저 퍼다 나른 곳도 트위터였다.[106] 조지아 모펫 본인이 맞다. 닥터후 50주년 기념 《The Five(ish) Doctors Reboot》 이후로는 배우로 크레딧에 올릴 때는 '조지아 모펫'으로, 제작자로 크레딧에 올릴 때는 '조지아 테넌트'라는 이름으로 구분하고 있다.[107] 내셔널 텔레비전 어워드(National Television Award)는 영국 아카데미 영화 및 텔레비전 예술상(BAFTA)과 더불어 영국의 대표적인 시상식이다. 브로드캐스트 시청자층 조사 위원회(Broadcasters' Audience Research Board)에서 각 항목마다 그 해의 텔레비전 프로그램들 중 몇 개를 후보 리스트에 올리면, 이후 대중들이 투표를 통해 선정하여 시상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시상식의 꽃인 '특별 공로상(Special Recognition Award)'의 경우에는 선정과정이 좀 다르게 진행되는데, 해마다 그 해의 방송활동과는 별개로 '영국 방송계의 발전에 업적을 남긴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원로 중견 방송인들이 받는다. 이에 비해 테넌트는 아직 이른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 공을 인정 받아서 더욱 의미가 깊었던 것. 또 그래서 본인도 더 놀란 듯하다.[108] 테넌트의 아버지는 이 당시에도 이미 폐섬유증을 앓고 있어 건강이 안 좋은 상태였다고 한다. 또 테넌트의 아버지와 누나는 스코틀랜드에 살기 때문에 자주 보지 못했는데, 자신을 위한 헌정 영상에 갑자기 자기 아버지가 나왔으니 테넌트가 얼마나 기뻤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109] 이는 가끔 유명배우들이 인종차별, 성차별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그들과 비교해 더 돋보여서 그러는 듯하다.[110] 캐스터보로스 성단[111] 그 자리에 있던 많은 후비안들 중 딱 3명만이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다며 손을 들었다. 질문에 대한 정답은 '해미시 윌슨'이다. 프레이저 하인스(Frazer Hines)는 닥터후 클래식 시즌의 2대 닥터 컴페니언 제이미 매크리먼을 연기한 배우다. 해미시 윌슨(Hamish Wilson)은 하인스를 대신해 약 2주간만 역을 맡으며 올드 시즌 6 〈The Mind Robber〉 시리얼의 에피소드 2와 3에만 출연했다.[112] 1989년 BBC는 7대 닥터를 끝으로 《닥터후》 시리즈에 무기한 휴방을 발표하였다. 이후 1996년에 8대 닥터TV 영화가 개봉되긴 하였지만, 2005년 러셀 T. 데이비스가 《닥터후》를 뉴 시리즈로 부활시키기 전까진 정말 기약 없이 기다리는 암흑기였다고. 이 기간 동안 그나마 《닥터후》의 명맥을 이어준 것이 빅 피니시의 닥터후 오디오 드라마 시리즈이다.[113] 자기 이전의 9대 닥터역을 맡았던 크리스토퍼 에클스턴이 쇼를 서둘러 떠나버린 바람에 테넌트 본인은 조언을 구할 만한 배우가 곁에 없어서 힘들었다고 한다. 그나마 시즌 2를 찍을 때는 시즌 1에서 경험을 겪은 빌리가 있어서 좀 나았는데, 그녀가 떠난 후에는 아직도 많은 것들이 새로운 자기가 자기보다 더 정신없을 다른 배우들을 도와줘야하는 입장이 되어버려서 그 서러움을 더 잘 안다고. 그래서 더욱더 자기 이후에 참여하는 배우들을 친절히 도와주려 노력한단다.[114] 맷 스미스는 자기 바로 다음 후임이었으니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 당연하지만, 12대 피터 카팔디도 대중에게 공개되기 전에 이미 서로 덕담을 나눴을 정도로 앞서 알고 있었다. 또 13대 닥터 역의 조디 휘태커는 아예 본인이 직접 테넌트에게 조언을 구하러 먼저 전화를 했으니. 본의 아니게 후임 닥터들이 테넌트에게 발표나기 전부터 조언을 얻는게 의례처럼 되어버린 셈이다.[115] 닥터후 크루들이 테넌트를 위해 깜짝선물 겸 프로클레이머스를 초대했다고 한다.[116] 이후 이 유튜버는 BBC 닥터후 프로덕션 팀에서 연락을 받고 공식적으로 닥터후 팬 쇼(Doctor Who: The Fan Show)를 책임지는 진행자로서 입사하게 되었다. 성공한 덕후를 존경하며 성공한 덕후가 된 셈.